[루쉰 잡문] 그 날의 목소리
기픈옹달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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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이란 사람의 손아귀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기억이란 놈은 좀 낫다. 여러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더 확고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특정한 기술을 통해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건이 기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섬광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더듬더듬 찾아 대략적인 모습만을 발견하는데 그치기도 한다. 여튼 얼마간의 노력이, 특정한 기술이, 우연치 않은 사건들이 기억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망각이란 쉽지 않다. 기억술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망각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잊으려 하면 할수록, 망각을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망각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잊혀진다’는 말처럼 망각이란 우연치 않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망각이란 늘 뒤늦게 발견된다. 과거란 빼앗길 수는 있어도, 버리기란 그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제목처럼 과거를 다루는 글이다. ‘이미’ 떨어진 꽃을 뒤늦게 저녁이 되어 줍는다. 시간의 거리만큼 본디 그 꽃의 싱싱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마련이다. 한창 꽃구경하러 다닐 시간인데, 요 며칠 크게 바람이 불고 비도 내렸다. 집 앞 놀이터에 커다란 벛나무들이 있어 봄이면 꽃이 한가득이다. 어찌나 큰지 좁지 않은 놀이터의 하늘을 전부 가릴 정도다. 그런데 올봄에는 떨어진 꽃만 보았다. 오가는 길에 발에 차이는 꽃잎을 보며 벌써 봄의 끝자락을 생각한다. 답답한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후두둑 떨어져 내린 꽃잎 때문인지 꽃향기만 아찔하다. 어둔 밤, 아찔한 꽃향기와 바닥에 흩어져 내린 꽃잎 사이를 걷노라면 가져보지도 못하고 빼앗겨버린 것만 같다.
떨어진 꽃에 대한 ‘심상心象’을 찾아보려다 그만두었다. 보나 마나 수많은 글이 쏟아져내릴 것이다. 그 많은 글을 주어 모은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라는 제목과 행위를 더 잘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다. 물론 어쩌면 이런 질문조차 부질없는 것인지 모른다. 제목이 무슨 상관인가. 제목을 통해 저자는 나름의 마침표를 찍었다지만, 독자의 호흡과는 영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루쉰의 문집은 각 책이 독립된 선명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들풀>과 같은 글은 조금은 예외겠지만, 끊임없이 썼던 글을 시절에 따라, 인연에 따라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묶었을 뿐이다. 독립된 저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문집에 가깝다. 따라서 <아침 꽃 저녁에 줍다>에 실린 글을 더 잘 이해하려면 각 글이 인연을 맺고 있는 이웃한 다른 글들을 살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작업은 요원하거니와, 제목이 말 거는 기묘한 감각을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 적어도 앞선 글과 비교할 때, <무덤(墳)>, <열풍(熱風)>, <외침(吶喊)>, <방황(彷徨)>, <들풀(野草)>과 같은 제목과 비교할 때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머리말(小引)에서 본디 이 책의 제목은 <옛일 다시 들추기(舊事重提)>라고 밝힌 바 있다. 처음 제목을 정했을 때보다 글을 쓰면서 과거가 요원한 것임을 자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지난 일을 들춰내는 것보단, 뒤늦게 수습하는 것이 더 정감적이다.
그저 옛일(舊事)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이라는 시간의 거리감을 느낀 것은 어째서 일까. 물론 그것은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그에게서 이 부분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내가 보기에 그는 마치 계곡과 같은 시대를, 삶을 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중국’과 중국 사이의 기묘한 시공간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흔히 중화라 불리는 전통적인 문명세계를 말한다면 중국이란 오늘날 우리 눈앞에 등장한 새로운 근대 국가를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중국이란 ‘중국’에 자신의 모습을 덧씌워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흔히 회자되는 ‘중국몽中國夢’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루쉰의 시대에는 ‘중국’과 중국은 결코 맞닿아 있지 않았다. ‘중국’이란 제거되고 폐기되어야 할 옛 구습이었다면, 중국이란 당대 사람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알 수 없는 미래였다.
이른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계몽주의자들은 새 시대의 망치를 들고 ‘중국’을 부숴대는 인물이었으며, 저마다 다른 식으로 중국의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었다.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여는 시대의 과업을 생각하면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들추기’ 혹은 ‘줍기’라는 식의 행위는 망치를 손에 쥔 사람과는 영 거리가 멀지 않나.
<아버지의 병환>은 루쉰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러 이리저리 고생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루쉰의 다른 글에서 여럿 보이는 예교禮敎에 대한 비판, 예를 들어 효자가 구한 약이 효험이 있다는 관념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전통 의학에 대한 불신이며, 나아가 그가 훗날 의학에 뜻을 두었던 까닭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의사가 되지 못했다. 아마 의사가 되었다면, 면역의 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의 박멸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지.
오히려 그의 글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것은 천연天演, 혹은 진화進化에 대한 관념이다. 그는 전통의 병균인 병증을 치료 혹은 제거하는 백색의 성자보다는 자연스러운 발전을 관찰하는 사회/생물 학자에 가까워 보인다. 구 시대란 사라질 운명만을 지니고 있다. 생명이 죽음을 배태하듯. 생명의 진화처럼, 소멸도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시대의 변화는 어떻겠는가.
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면서 가까운 친척의 말을 따라 어린 루쉰은 아버지를 크게 불렀다. 임종의 순간, 생사의 경계를 넘어 망자의 세계로 내딛는 발걸음을 목소리로나마 붙잡는 것이다. 하긴, 초혼招魂 이미 죽은 사람의 혼도 불러오곤 하지 않았나. 목소리가 작으면, 마음을 내지 않으면 망자의 귀에 닿지 못하는 법. 곁에서는 더 크게 아버지를 부르라고 재촉했다. 덩달아 크게 부르는데 평온한 얼굴에 긴장한 빛이 비친다. 도리어 그 목소리가 고통을 남겨준 것이다. 결국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란 ‘떠들지 말아... 떠들지...’라는 타박이었다. 망자에게 필요한 것은 도리어 적막이 아니었을까.
我現在還聽到那時的自己的這聲音,
每聽到時,就覺得這卻是我對於父親的最大的錯處。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내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싶다. 또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은 정말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 아버지의 병환>
이런 경험 때문일지, 전통적인 예교를 비판하면서도 가부장제의 폭력을 누구보다 앞서 문제 삼으면서도 그에게는 ‘아버지’라는 표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느 어떤 사상가처럼 그에게는 ‘부친을 살해’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라질 존재일 뿐이다. 그 자연스러운 퇴장을 붙잡은 자신의 목소리만이 한참의 세월을 지나서도 여전히 성성하게 남아 있다.
한편 그것이 이른바 ‘유언遺言’이라는 식의 계승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해 보인다. 루쉰은 옛일,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중국’에 오래도록 익숙한 하나의 전거가 되는 옛일은 아니다. 서양이 신화의 세계를 구축했다면 ‘중국’은 고사古事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할 정도이다. 역사는 하나의 전형이 되어 끊임없이 반복/변주된다. 역사 속을 살아내었던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루쉰이 건드리는 과거란 이야기할만한 가까운, 그리고 개별적인 기억의 조각들일뿐이다.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되, 미신과 같은 귀신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점은 흥미롭다. 앞서 보았듯 루쉰은 어린 시절부터 기묘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산해경>을 비롯한 이야기들은 신화와 미신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신을 비롯한 신묘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신화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것이 문화의 토대로 작동하기보다는 이른바 하류 문화로 근근이 이어져 왔다는 면에서 민중의 욕망에 가까운 미신이라 할만하다. 입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살이 붙고, 모습을 바꾼 이야기들.
<오창묘의 제놀이>를 보면 그런 미신에 대한 어린 루쉰의 관심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축제가 벌어지고 다양한 신들이 왁자지껄 등장하는 무대는 어린 루쉰을 사로잡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쉰은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놀이에 참여하지 못한다. 축제에 가기에 앞서 <감략>을 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 외웠기에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축제에 참여하게 된 것.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축제는 별 재미가 없었다. 왜일까? 루쉰은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直到現在,別的完全忘卻,不留一點痕跡了,
只有背誦《鑒略》這一段,卻還分明如昨日事。
我至今一想起,還詫異我的父親何以要在那時候叫我來背書。
오늘에 와서는 벌써 흔적도 없이 깡그리 잊혔다. 오로지 <감략>을 외우던 일만이 어제 일처럼 기억에 분명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아버지가 그때 무엇 때문에 나더러 그 책을 외우라고 하였는지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 오창묘의 제놀이>
의도치 않게 기억에 남은 것은 기대했던 재미난 축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 책을 읽던 상황, 그때부터 남은 몇 구절이다. 어쩌면 그가 이야기한 뒤늦은 저녁에 줍는 꽃송이란 마치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망각에 이르지 못한 기억의 편린들. 망각에 이르지 못하고 남아 있기에 대체 그 이유를 찾아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무상無常에 대한 관심, 미신적 의학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도, 그의 말속에 신묘한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현재는 투쟁의 전장이지만 과거는 모아 줍는 선별의 영역이다. 기존의 역사적 전통에 닿지 않는 비전통의 전통,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에 뒤섞여 흔적으로 남아 있는 미신적 존재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애정은 루쉰이 서 있는 기묘한 지대를 보여준다.
적어도 그렇기에 루쉰은 뻔한 계몽주의자와는 다른 언어를 갖는다. 똑바로 미래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과거를 청산해야 할 구습으로만 여기지도 않는다. 활발하게 살아서 산자를 망자의 세계로 인도하는 무상처럼, 생사의 경계 어딘가를 노니는 그처럼, 전통과 계몽 사이에 루쉰이 있다.
나는 루쉰을 ‘계몽’보다는 ‘혁명’이라는 열쇳말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계몽이란 적어도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으며, 지향하는 바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선명한 목표가 있다. 그러나 루쉰의 글쓰기는 늘 이리저리 오가는 서투른 면이 보인다. 날카롭되 곧지는 않다. 직언直言이라 할 수는 없다. 속임수는 없되 전통적인 의미의 올곧은 글은 아니다. 그는 결코 선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혁명이란 제 자리를 모르는 자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도래한다. 선각자가 그려내는 꿈이란, 꿈보다는 선명한 표상은 결코 혁명의 날을 가져오지 못한다. 미쳐 만나지 못한 욕망들, 사람들의 심연에 위치한 그 무엇,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무엇인가가, 다만 무엇인가가 새로운 시대와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을 테다.
그렇게 루쉰은 병든, 그러나 캐도캐도 뽑히지 않는 질긴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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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간, 세미나에서 나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엔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요즘은 할 이야기가 다 떨어져버렸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쓰고 있어요.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 별 차이없는 문장들이라도 써내고 뱉어내다 보면 뭐라도 있겠지요. ㅎ
예전 글들은 '브런치'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작년에 쓴 글을 하나씩 정리하는 바람에 다른 글들이 밀려 있어요.
묵힌다고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 빨리 정리해 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