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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후기] 감시와 처벌 :: 제3부 제1장 순종적인 신체 (0405) +4
삼월 / 2018-04-10 / 조회 3,435 

본문

 

이 장은 푸코가 주목하는 고전주의(17, 18세기) 시기 규율 기술의 발전을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으로 새로 발견되었고, 권력은 신체를 교정·복종·순응·능력부여가 가능한 무엇으로 인식했다. 신체를 분석가능하게 보는 관점과 조작가능하게 보는 관점이 연결되면, 거기서 ‘순종’의 개념이 나타난다. 순종하는 신체는 복종과 이용, 변화, 완전화가 가능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신체는 권력의 그물에 포착되었지만, 특히 18세기의 순종은 기술 측면에서 몇 가지가 달랐다. 통제의 규모는 세밀하게 작용했고, 동작의 경제성과 유효성이 문제였으며, 시간과 공간, 기호체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신체의 통제, 체력의 복종, 순종-효용성을 강제하는 이런 방법을 푸코는 ‘규율’이라고 부른다.

 

규율은 원래 수도원의 자기지배 방식에서 시작되어 군대와 학교, 작업장으로 퍼져나갔다. 고전주의 시기 규율은 지배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신체의 소유관계를 토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달랐다. 노예제의 고비용과 폭력성에서 벗어난 세련된 방식이었다. 규율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는 신체에 관한 하나의 기준이 생겨나는 때이다. 이때 신체는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유용함과 함께 복종하게 되고, 복종과 함께 유용해진다. 규율에서는 공간을 분할하는 기술, 시간활용을 통해 활동을 통제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교, 군대, 작업장의 기술들은 서로 모방하면서 확산된다. 규율과 훈련을 분석하면서, 푸코는 권력의 속성 몇 가지를 언급한다. 예를 들면 작업장의 규율을 통한 권력은 공제보다는 조합을, 생산물의 강탈보다는 생산기구와 강제적으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학교 운영에서 두드러지는 규율 방식은 시험이다. 시험은 서열화 안에서 수험자가 도달한 수준을 알려주고, 개인의 능력을 세분시켜 준다. 시험에 통과 후 진급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연속적 계열화가 확립된다. 시험을 통해 권력은 시간을 통제하고, 시간의 활용에 관여한다. 규율 방식은 매순간 상호통합 되면서 최종 지점을 향해 가는 직선적 시간을 나타낸다. 그 시간은 ‘진화’하는 시간이며, 통제기술에 의해 계열화된 사회적 시간이다. 이는 ‘진보’와 ‘생성’이라는 의미에서 진화의 발견이다. 푸코는 여기서 18세기의 중대한 발견인 ‘사회의 진보’와 ‘개인의 생성’이 시간의 관리와 계열화라는 권력의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17세기 말 보병부대 병사들의 배치를 보면, 개인에게 최대의 효율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푸코는 맑스의 언급을 이어받아 협동작업의 생산성에 대한 논의와 연결시킨다. 협동작업의 생산성은 노동에 참여한 개별 노동자 생산성의 총합을 뛰어넘는다. 이 뛰어넘은 부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아주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이다. 생산력 증대를 위해서는 대규모의 협동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규율이 꼭 필요하다. 이때 작업장에서 신체는 부품이 되어 전체로 편입되고, 시간마저도 부품화되며, 간결하고 명확한 명령체계와 이에 복종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푸코는 규율이 네 가지 주요한 기술을 사용한다고 밝힌다. 일람표 작성, 작전, 훈련, 힘의 조합을 확고히 하기 위한 ‘전술’. 여기서 전술은 군사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군사학이라는 학문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규율 이론가인 기베르는 인간과 무기, 긴장상태, 정세 등에 관한 지식이 모두 전술에 포함된다고 서술한다. 푸코가 보는 정치는, 국내의 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한 군사적 기술이기도 한다. 군대는 하나의 기술이고 지식이므로, 이 기술과 지식을 사회 전체에 반영할 수 있다. 한편에는 전략-정치-전쟁 계열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전술-군대-정치라는 계열이 있다. 전쟁이 전략을 통해 국가 정치를 수행한다면, 정치는 전술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전쟁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이용한다. 푸코는 18세기 철학자와 법학자들이 어떤 면에서 사회에 대한 이런 식의 군사적 통제를 꿈꿨다고 본다. 통제의 준거는 원시적 계약이 아닌 강제권에, 기본적 인권이 아닌 끝없이 발전되는 훈련방법에, 모든 사람의 의지가 아닌 자동적 순종에 있었다.

 

사소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심히 주장하는 푸코 덕에 이제 우리가 얼마나 사소해 보이는 규율에 따라 ‘순종적인 신체’가 되어갔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예와 달리 매매되거나 매질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불쾌한 일들을 잘 참아내는지 알게 되었다. 죽기보다 싫은데도, 아침이 되면 알람시계를 끄고 학교와 작업장으로 향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기본적 인권과 자유로운 계약, 자유의사처럼 보이는 자발적 복종과 통제가 어떤 메커니즘에서 가능한지도 마찬가지다.

 

푸코가 보여주는 권력은 매우 미세하고 촘촘하다. 가시적 형태로 드러나지 않으며, 억압과 금지의 형태로만 나타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가시적일 때가 많고, 우리에게 자발성을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날 때도 많다. 그러나 푸코가 말하려는 것이 권력의 치밀함과 은밀함에 대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권력의 치밀함과 통제는 우리 자신의 자발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자발성은 특정한 기술적 메커니즘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노동력이 부품으로만 취급된다면, 우리는 그 부품을 다른 무엇과 접속시킬 수도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이 책의 첫 부분에서 밝힌 푸코는 그 접속의 가능성을 틈날 때마다 암시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홍시님이 방랑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푸코도 방랑이 범죄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을 여러 번 언급한다. 맑스는 《자본》에서 방랑죄의 엄중한 처벌(귀 자르기와 사형 등)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방랑자는 자본주의 발달 이후 노동자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자로 이해되었으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같은 이유로 집시가 유대인과 함께 강제수용 되기도 했다. 푸코가 주목하는 대감금이 광인과 부랑자를 노동교화하는 데 있고, 근대적 감옥이 교정을 위한 시설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랑이라는 단어가 몹시 친근하고도 불온하게 느껴졌다. 산업예비군의 역할을 거부하는 이 잉여집단에게서 순종과 규율을 거부하는 자의 이미지를 본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쩝. 저는 오늘도 자발적으로 세미나 진도를 따라가며 <감시와처벌>을 읽습니다.
세미나에 순종적인 신체가 됨에 순응하며.
후기 감사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자발적 독서 좋네요. 대단합니다.
푸코세미나 합류 1주일 전인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홍시님의 댓글

홍시

방랑이라는 단어가 친근하고도 불온하게 느껴지는 홍시입니다. 후기 잘 읽었어요~ 홍시는 방랑자인가? 네, 방랑하는 자 맞고요.
그러나 (공동체를 사유하며) 자기 규율을 만들어가는 방랑자예요. 앞으로도 그럴거구요.

'공동체를 사유하며'  --> 세련된 표현이 도통 떠오르질 않네요~  :-)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방랑자 홍시!
공동체를 사유하며 자기 규율을 만들어 가는 자!
푸코의 스타일과 지향을 콕 집어 보여주는 서술인 듯 싶은데요.
저도 지금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저도 살포시 방랑자 대열에 합류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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