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세미나 아침 꽂 저녁에 줍다(오창묘의 제놀이~아버지의 병환)
손미경
/ 2018-04-10
/ 조회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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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1일 루쉰 세미나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발제 손미경
오창묘의 제놀이 (五猖會)
설이나 명절을 제외하고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제놀이 무렵이다. 제놀이란 아마도 중국식 가장행렬로 사당으로 가서 신에게 술을 따르고 복을 기원하는 것 같다.
어린저자가 오창묘의 제놀이를 구경하러 둥관(東關)으로 가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둥관으로 가기위해 집안사람들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미리 빌려둔 큰 배에 행차준비로 분주 할 때 어린 저자의 등 뒤에 나타난 아버지는 제놀이를 가기 전에 『감략』이라는 책을 외울 것을 주문한다. 제놀이 갈 생각으로 들 떠있던 막 글을 익히기 시작한 7살 어린 저자는 죽기 살기로 뜻도 모른 채 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단숨에 외워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다.
정작 저자는 제놀이의 흥미를 잃어버리게 됨은 물론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진의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그런 주문을 하고 나서 집안사람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듯이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들이 그 일을 성공시키길 그 누구보다 기다렸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평소 자신의 아들이 영특하다고 생각한 것을 도박을 하듯 갑자기 시험을 해보고 싶었을 것 같다.
5월 25일
무상( 無常)
신맞이 제놀이 날에 각종 귀왕들 중에 가장 보고 싶어 한 것은 활무상(活無常)이다.
활무상이 인민 들게 가장 낯익고 친밀하며 평소에도 늘 볼 수 있는 신으로 여겨진다. 무상은 사람들에게 귀신이면서도 사람이고 이지적이면서도 인정미가 있고 무서우면서도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활무상은 주로 성황묘나 동악묘 등에 저승간이라 곳에 바로 눈에 띄는 새하얀 신상이다.
그의 역할은 산 혼을 끌어가는 사자로 활무상과 비슷하나 반대되는 것은 사무상(死無常 우리나라의 저승사자와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활무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하등인이라고 지칭되는 민중들의 삶이 마치 엷은 안개 속에 잠겨있는 곳을 찾아가듯 생활의 고단함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을 받고 중상모략을 당하고 모함을 받으며 그 억울함이 저승에나 가야 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원한들이 무상의 손에 있는 커다란 주판에 의해 제대로 계산될 것이므로.
6월 23일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백초원은 저자의 집 뒤쪽의 매우 큰 정원. 마음껏 뛰놀았던 놀이터이자 저자의 상상력의 창고. 저자는 미녀 뱀이 날아다니는 지네한테 죽었다는 옛날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삼미서옥은 저자가 최초로 배움을 시작한 서당.
저자는 서당의 선생님에 대한 좋은 추억과 한낮에는 습자, 저녁에는 대구를 맞추었다고 기억한다. 아마도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미서옥은 사오싱 고향집 부근으로 현재는 이 집과 백초원 모두 사오싱 루쉰기념관의 일부분이 되었다.
9월 18일
아버지의 병환
아마도 저자 삶의 가장 큰 이정표가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태동안 수종병을 앓았다. 한의는 일단 청해 오는데도 적지 않은 비용을 요청하거니와 처방전은 항상 기본약에 보조약이 따르는데 이게 사람 잡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중에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래 영약이란 구하기가 당연 어려우리라. 그러나 차도가 없자 첫 번째 의사는 다른 의사를 소개했으나 이 한의의 보조약 처방은 전보다 더 기이하다. 예를 들면 귀뚜라미 한 쌍, 처음으로 짝지은 것으로 본래부터 한 둥지에 있던 것. 더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평지목 10주, 패고피환(敗鼓皮丸)라는 오래된 북 가죽으로 만든 특수한 환약 등등 여기에 이르게 되면 그 터무니없음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점입가경인 것은 병이 종국에는 전생의 죄업 때문이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답이 없다.
어린 저자가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했을 무거운 짐을 감지할 수 있다. 미신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말도 되지 않는 약재를 구하러 다닐 뿐이었다.
아버지 마지막에 이르러 숨이 지지 않게 자꾸 불러대기만 할 뿐.
그 순간 아버지와 아들은 『24효도』에서 열거한 그러한 효도를 해야 하는 타이밍 이었을까. 자신의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야 했던 것은 아니 였을까 하는 회한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루쉰은 때때로 구습에 젖은 효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하는 이유도 아버지 병환에서 비롯된 자신의 겪은 악몽 때문이라고 유추해본다.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