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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차라투스트라 3부(나그네~ ) :: 0326(월) +6
모로 / 2018-03-30 / 조회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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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세미나 후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나그네~감란산에서)      

작성자 : 모로

 

너무나 강인하고 위대하여 일말의 자비와 연민도 허락하지 않는 차라투스트라. 하지만 일순 슬픔으로 냉담해지거나 이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유약한 존재가 돼, ‘나 이렇게 상처 받았노라’ 투정부리고 역정을 낸다. 이래서 자아는 고정된 게 아니라 순간순간의 정서만 있을 뿐이라고 세미나 첫 시간에 그렇게 밑밥을 깔았었나보다. 하지만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이 그만큼 지리멸렬함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아니면 격렬한 사랑에 빠진 자의 바로 그 모습이다.... 라고 이해하려다가도 하루에도 열두 번 널을 뛰는 다중이 차라투스트라여, 너의 기복을 좇는 것이 심히 피로하구나!

 

* 나는 나의 ‘나그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니.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길, 위버멘쉬가 되기 위한 길을 가는 자를 나그네에 빗댔다.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위대함에 이르는 길’, ‘내가 오를 마지막 정상’이라 표현한 데서 그 길이 녹록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여정에 반드시 장착하여야 할 것은 준엄함!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니’라는 문장에 대해 오라클님은 ‘도덕의 계보’를 인용,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멀리 있는 자(알지 못하는 자)”라는 전제를 강조하며, “사람은 주어진 모델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정은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해석. 그렇다면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가 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위 문장이 무시무시한 경고처럼 들려 오싹해졌다. 그리하여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으면 끊임없이 나 자신을 고양시켜야겠다는 의욕 충천!  그런데 얼핏 오라클님의 해석은 내 안에 진정한 나의 모습이 정해져있다는 결정론적 사고로 읽히는데,​ 기껏 중력의 영에 맞서 체험 - 체험은 경험과 달리 능동성, 주체성을 전제하기에 의지를 생성하지 못하면 평생 자신을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 했는데 정작 자신이 보잘 것 없으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결정론적 사고와 위버멘쉬로의 성장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궁금하다.

  

* 영원히 되돌아오는 ‘영원회귀’ 논쟁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도대체 영원회귀라는 개념은 이해됐다 싶음 다시 아리송해지는 게 개념 정리가 계속 영원회귀하는 것 같다. 아마 영원회귀의 대상이 분명히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단어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는 것 같다. 무엇이 계속 돌아온다는 것인가. 단순히 같은 일이 반복된다 - ‘데자뷰’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식의 - 는 의미가 아니라, ‘매순간이 영원히 돌아온다’, ‘영원히 돌아오는 것이 돌아온다’는 의미로 정리됐다(아마 다음에 또 논쟁이 되돌아올 수도...) 일단 정체됨을 경계하며 매 순간 생성해야 한다는 변이의 능력, 위버멘쉬가 되기 위한 행동 강령으로 이해하련다. 

 

이번 논의에서 새롭게 정립된 부분 - 이번 회귀를 통해 생성된 것 - 을 꼽자면, 영원회귀가 고리형(환원형)으로 도식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니체는 기계적인 반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는 양치기의 환영에서 뱀으로 형상화됐다. 또한 난쟁이의 비난에 당황하는 부분은 차라투스트라도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사물로서 우리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인 운동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구체적으로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건강한 변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니체의 위험한 책~>에 나온다. - 이를 차이가 나는 반복으로 바꾸는 자가 바로 위버멘쉬다. 그러려면 뱀의 머리를 물어뜯어야 하는데, ‘공격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내 입안에 대가리를 쳐 박고 있는 뱀을 상상해보니 사실 물어뜯을 엄두가 안 나긴 한다. 차라투스트라처럼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고 호기롭게 외칠 수 있는 담대함을 갖고 싶다.

 

이날 세미나 자리에서는 ‘그렇다면 용기를 어떻게 낼 것인가’라는 매우 실존적이며 실용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제대로 응시하는 정직, 수치심과 성찰 능력, 힘의 의지 발현, 최초의 운동 포착 등 다양한 방법론이 제기됐다. 나의 경우, 어떻게 기계적 반복의 궤도에서 이탈하고자 했던가. 돌이켜보니 살아야 한다는 강렬한 생의 의지에 따랐을 뿐이었던 것 같다.   

 

* 당신의 왜소한 덕은?

누구 하나 나의 말을 이해할 귀를 갖고 있지 못한 곳에서 내 무슨 말을 하랴!

 

<뜻에 반하는 복에 대하여>, <해돋이에 앞서>에서 ‘미래의 자신을 잉태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상승해야 한다’고 그렇게 설파했건만 차라투스트라는 뭍에 오른 후 어떤 멍청한 아이가 장난감 상자에서 꺼내놓은 것 같은 작은 집을 보고 기겁을 한다. “이것들도 집이라고?”

 

소란스러움, 더 많은 것을 받아낼 속셈의 찬미, 의욕 없음(소극성), 위선, 솔직, 공정, 친절, 체념, 시달림을 받지 않으려는 호의, 얌전하게 만드는 중용.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세속적인 덕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덕이라 일축했다. 세상의 규범들이 왜소하다는 이미지로 시각화되는 대목이다. 이날의 발제자 바르사님의 왜소함 커밍아웃처럼 우리 모두 찔리는 왜소한 덕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 고백하자면 까칠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성질을 누르고 맘에 없는 호의를 베풀곤 한다. 그래서 “누구 하나 나의 말을 이해할 귀를 갖고 있지 못한 곳에서 내 무슨 말을 하랴!”라는 대목에서 나는 정녕 들을 귀를 갖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댓글목록

소소님의 댓글

소소

나는 지금까지 자주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었나봐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 온 내가 ‘나’인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또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나의 이미지를 나인’척’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내 삶에서 진정한 의미의 나는 부재하고 있었으니 그토록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나 싶기도 하고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나를 만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알록달록한 깃털들로 그것이 ‘나’인냥 살고 있었군요.
자의던 타의던 알록달록한 깃털을 두르기 이전의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도 그것이 나라고 찰떡같이 믿었나 봅니다.
현존하는 나는 매순간 변신하고 있으니 나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방랑을 마다하지 않는 나그네가 되어야 겠습니다.
지금 여기의 나를 긍정하고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그 시작은 지금까지의 나를 살해할 수 있는 용기!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소소의 무한긍정이 주위를 전염시키는군요. ㅋㅋㅋ
"나는 매순간 변신하고 있으니, 나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방랑을 마다하지 않는 나그네"
"지금까지의 나를 살해할 수 있는 용기!"

모로님의 댓글

모로 댓글의 댓글

지난 시간에 세상의 덕만 갖거나 자신의 덕만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소소님 의견처럼 남들이 만든 나와 진정한 나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중이지 않을까 싶네요ㅎ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1. '나그네'의 이중성, 혹은 두명의 '나그네'에 대하여....................................................................

제목이 '나그네'인 것은 우리의 삶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동시에 진정한 나를 찾지 못했을 때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완전 멋진 해석입니다. 첫번째 나그네와 두번째 나그네는 다른 의미의 나그네입니다.

저는 첫번째 나그네만을 보았을 뿐인데, 모로가 발견한 두번째 나그네가 우리에게 주는 각성이 훨씬 날카롭습니다!!
사실 첫번째 나그네에서 두번째 나그네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사유의 흐름이었을텐데,
하지만 사유의 흐름이 어떤 의식에 사로 잡혀있으면, 자연스러움이 차단당하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자신을 찾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도덕의 계보> 서문


2. '나는 나를 기다린다' ......나는 이미 결정된 존재인가? 그 존재가 보잘 것 없다면? ..........................
두 가지 질문 모두, 삶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2-1] 우리의 삶이 '자신에 이르는 길-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을 때, 나는 이미 결정된 존재일까?
① 먼저, 우리가 참된 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체성을 해체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강제하는 '시대의 중력장'과 대결해야 할 것입니다.
② 이제,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잠재성을 시험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에 안주하려는 '자신의 중력장'과 대결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하나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자신에 이르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나'는 결코 '하나의 고정된 나'와 같이 결정된 형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전자가 시대와 대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면, 후자는 자신과 대결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입니다.
전자의 관점에서 "나는 (참된) 나를 기다린다"고 했을 때, 시대의 중력장에 대결하는 과제를 표현합니다. 한편
후자의 관점에서 "나는 나를 기다린다"는  명제는 "나는 수천의 새로운 나를 기다린다"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나는 항상 나로 머물러 있지만, 그것은 항상 다른 내가 되는 방식으로 그랬다.”
니체가 인간의 목표로 설정한 위버멘쉬는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수많은 건강상태만큼, 다양한 철학(다양한 자신)이 존재한다." <즐거운 지식>
니체는 힘들의 배치에 따라 수백명의 자신이 있음을 깨닫고, 수많은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바그너-니체, 차라투스트라-니체, 결국 디오니소스-니체......

문제는 "하나의 정체성을 해체함으로써, 어떻게 다양한 자기를 생성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번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아났던' 디오니소스의 형상이고, 영원회귀에 대한 암시입니다.
영원회귀는 힘들의 과잉상태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생성시킨 체험의 결과물입니다.

[2-2] 결국 도달한 나의 존재가 보잘 것 없다면, 나는 '나에 이르는 과정'을 어찌 참아낼 것인가?
이미 보았듯이 '나에게 이르는 길'은 한번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극복이라는 영원히 반복되는 과정(영원회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나'는 '어떤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시험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기극복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보잘 것 없는 나'는 당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
왜냐하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생이었던가? 좋다, 다시한번!"

'나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영원회귀의 과정(영원히 되돌아오는 반복의 과정)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과거에 나일 수 있었던 수많은 나들, 앞으로 나일 수 있는 수많은 나들에 대해 긍정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회귀에 관한 또하나의 주제를 얻습니다.
무엇이 영원히 돌아오는가? "매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자신만이 영원히 되돌아온다"고 말입니다.
이때 영원한 것은 '새로운 자신에 대한 의지(긍정)'이며, 반복의 결과는 항상 '차이와 다양성'으로 나타납니다.
모로의 텍스트를 결론처럼 여기 옮깁니다. "반복을 차이나는 반복으로 바꾸는 자가 바로 위버멘쉬이다"

모로님의 댓글

모로 댓글의 댓글

참된 나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매번 생성,변화하는 것이라니 정말 다행이네요. 아직 기회가 많다는거죠?ㅎ

소소님의 댓글

소소 댓글의 댓글

오라클님의 글은 늘 논리정연하게 잘 정리해주셔서 나의 모호한 생각들을 한층 더 명확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같이 공부하는 재미가 배가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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