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 후기] 5장 묵자와 전기 묵자, 6장 맹자와 유가 중의 맹자학 :: 0328(수)
라라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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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8일 후기
◆묵자
묵자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묵자에 대한 기록은 <사기>에서도 간략하다. 사기를 저작할 때 사상계는 대부분 유가였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묵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천년 동안이나 주목받지 못했다.
<회남왕서>에 따르면 묵자는 유가의 예가 번쇄하다고 싫어했다. 후한 장례[후장(厚葬)]은 재물을 낭비하고 인민을 곤궁하게 하고 오랜 복상[구복(久服)] 삶과 생업을 방해한다고 여겨 주도[(周道):주나라의 예악 및 전장제도]를 반대하고 하정[(夏政):하나라의 정강]을 채택했다.
묵자의 성은 묵(墨), 이름은 적(翟)이라고 한다. 근래에는 묵은 성씨가 아니라 학술에 대한 지칭이라고 한다. 또 묵은 고대의 형벌의 하나로서 형을 받는 무리라고도 본다. 묵적은 원래 목공 수공업주였고 생산노동에는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유사(游士)가 되어 가는 곳마다 주장을 발표하고 정치에 참여하려고 했다. 또는 군사전문가이거나 이상적 평등주의자로 종교적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공자와 묵자는 대조해보면 흥미롭다. 공자는 주나라의 제도, 문물을 동경하여 합리화 정당화하려고 애쓴 반면 묵자는 그 제도의 타당성과 효용성에 회의를 품고 더 유용한 것으로 대체하려 하였다. 즉 공자는 고대 문명을 합리화한 옹호자였는데, 묵자는 고대 문명의 비평가였다. 공자가 무조건 행했다면 묵자는 조건적으로 행했던 것이다. 이것이 청 말에 다시 묵자가 연구된 이유이기도 하다.
<회남자>에 따르면 “묵자의 심복은 180명 모두 불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고, 칼날도 밟을 수 있었으며, 죽음 앞에서도 돌아설 줄 몰랐다.” 묵자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절대 복종했음을 알 수 있다. 묵학도의 행위는 협자(俠者)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무사와 다른 점은 첫째 무사들은 봉건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자기 수고의 대가를 받기만 하면 어느 전투에나 참가했으나 묵자와 그의 제자는 공격적인 전쟁에는 반대하여 방어를 위해서만 싸웠다. 둘째 통념적인 무사는 오로지 자기의 직업윤리에 따라서 행하지만 묵자는 직업윤리를 잘 다듬어 거기에 합리적인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묵자는 전체주의적 국가와 절대적인 통치자의 권위를 주장한다. 묵자에게 국가란 시비의 기준이 혼란스러워 생긴 무질서를 종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기능이란 기준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국가 안에는 오직 한 가지 기준만이 존재하고 국가 자체에 의하여 인정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집단의 복종과 훈련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맹자
맹자의 위치 중국역사상 공자를 소크라테스라고 본다면 맹자는 플라톤이라고 볼 수 있다. 순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다고 본다. 유가를 다른 이름으로 공맹학, 추노학, 사수학이라고 부른다. 맹자는 추인인데 추(鄒)와 노(魯)는 매우 가깝고 모두 유가의 근거지였다. 공자는 일생을 문왕과 주공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사명을 다했고 맹자는 일생을 공자의 유업을 계승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맹자는 송유(宋儒)가 말한 도통설(道統說)을 견지했던 것이다. 도통설은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증자-자사-맹자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맹자의 태도 맹자는 정치 경제적으로 여전히 “전통을 따르고”, “선와의 법도를 좇았지만”, 실제로는 “선왕의 법도”를 이상화하고 이론화했다. 전통적으로는 모든 제도는 귀족들을 위하는 것이었으나 맹자는 백성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왕도와 패도는 맹자가 구분하는 이상정치의 상반된 형태이다. 왕도주의의 왕은 모든 제정과 시책을 인민을 위해 한다. 인민도 왕에게 기꺼이 충성을 한다. 패도주의의 군주는 오직 무력으로 인민을 정복하여 강제로 추종하게 한다.
맹자는 백성의 혁명권을 인정하는데 이 이론은 통치자에 대한 일정한 견제 역할을 한다. “인민이 가장 귀하다”는 근본사상을 정치에 적용하나 부모나 형제의 경우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른다. 불충보다 불효를 더 큰 죄라고 본다. 또한 맹자의 이상에 따르면 토지는 국가의 공유재산이고 인민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받는 자유경작인이다.
성선 유가는 인간의 4단이 사회조직에 표현된 것이 인륜이라고 여긴다. 사단은 각각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사덕으로 발전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을 말한다.
중국철학 사상에서 인성의 본질적인 문제는 가장 논란거리이다. 맹자는 이 문제에 관하여 당시 3개의 학설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 둘째, 인간의 본성은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 셋째 어떤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어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이다.
맹자의 반공리주의 4덕은 인성이 발전한 자연적인 결과로 보기 때문에 인성을 발전시켜야하는 이유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지 이롭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가는 인(仁)을 인간 본성에서 자연적으로 촉발되는 덕목으로 간주하는데 반하여 묵가는 겸애를 외적 조건이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부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기원론에 있어서도 묵가는 필연적인 공리주의적인데 유가는 인륜주의적이다. 유가는 짐승과 차별되는 인륜의 존재와 도덕원리가 국가의 기원으로 본다. 그래서 유가는 묵가처럼 유용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인간의 본성상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의 통치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여야 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Great Morale) 그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다. 아무런 방해없이 올바로 함양될 수 있으면 온 천지를 충만시킬 것이다. 호연지기를 배양하는 방법으로 맹자는 의와 도를 배합해야 한다고 한다.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굳건하여 쉬지 않고 의를 축적하여 생기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천지를 충만시킬 정신이 아니면 심중에 흡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로운 행위가 아니다.
이번 시간에 느낀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유교적인가 이다. 맹자의 정치사상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는 도덕적인 지도자이어야 한다. 정치는 사회적 정의에 따라 이루어지면 되는 것인데 유독 우리 사회는 도덕적인 면을 강조한다. 몇 년 전 고승덕씨가 교육감 후보로 나왔을 때 남경필 도지사를 평가할 때 자식과 연관시켜 평가하는 것은 유교적 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들어왔으나 서구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을 객관화하여 따로 보지 못하고 같이 묶어서 보는 경향이 크다. 우리가 얼마나 가족에 얽매여 있는지도 보여준다.
유교에서도 불사이군(不事二君) 불사이부(不事二夫)라는 말은 있지만 불사이부(不事二父)라는 말은 없다. 두 왕이나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섬길 수도 있다는 말인데 유독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효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 공동체를 너머서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