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발제] 차라투스트라3부_(나그네~감람산) :: 03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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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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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1. 나그네: 사유정상에 오르는 길
① 자정이 가까운 깊은 밤. 차라투수트라는 섬 등성이를 넘어가고 있었다---산을 오르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젊은 시절에 그가 한 많은 외로운 방랑을 떠올리고는, 얼마나 많은 산과 등성이와 봉우리를 올랐던가 생각해보았다.
나 나그네요 산을 오르는 자다---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니.
자기자신을 체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해석한 세계를 체험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이다(영원회귀). |
② 내게 우연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때는 지나갔다. 이미 나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과 분리되었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연성은 일정한 의미, 즉 운명으로서 자신의 세계(삶)의 일부가 된다. |
③ 되돌아올 뿐, 끝내 집을 찾아 내게 돌아올 뿐이다. 나 자신의 자기, 그리고 그 자기를 떠나 오랫동안 낮선 곳을 떠돌고 모든 사물과 우연 사이에 흩어져 있던 것은.
자신의 모든 경험은 결국 자신의 삶을 생성하는 원천이 된다. |
④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시간을 모면하지 못하리라.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시간을, ‘이제야 비로소 너 위대함에 이르는 너의 길을 가고 있구나. 산정과 심연은 이제 하나가 되었구나.’
위대함에 이르는 길이란 모방이 아니라 창조의 길을 간다는 것이고, 이에는 고독이 따른다. 그러한 위대함은 심연(고통, 무의식 등)을 긍정하는 태도에서 나타날 수 있다. |
⑤ 네 뒤에 되돌아갈 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네게 더없는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하리라!---너의 발 스스로가 네가 걸어온 길을 지워왔다. 그 위에 ‘가능하지 않음’이란 글자가 씌여 있구나.
되돌아갈 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망각 또는 단절이 이나라 자신이 변화함에 따라 과거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
⑥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같은 준엄함이 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자기 자신만 보는 경우에는 고립될 수 있다. 세상과 마주할려는 준엄함이 필요하다. |
⑦ 너 너 자신을 뛰어넘어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 너의 별들을 발 아래 둘 때까지 위로, 위를 향해!
별은 세속적인 욕망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욕망을 초극하여야 한다. |
⑧ 저 더없이 높은 산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그 대 나는 그들이 바다에서 솟아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과 바다는 일체이다. 산을 오르는 것과 바다로 내려가는 것도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
⑨ 사랑, 살아 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는 사랑은 더없이 고독한 자에게는 위험이다!
더없이 고독한 자란 자신의 세계에서 산을 오르던 자, 즉 차라투스트라를 의미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간다면 위험(me too)하다. |
3-2. 곡두와 수수께끼에 대하여: 영원회귀 사유의 두가지 기능
ⓛ 이렇게 말가호 나서 난쟁이는 입을 다물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의 침묵은 나를 짓눌렀다. 이런 산태로 둘이 있는 것, 그것은 진정 홀로 있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
② 용기야 말로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용기는 심연에서 현기증까지 죽여 없애준다. 그런데 사람이 있는 곳치고 심연이 아닌 곳이 어디 있던가! 바라본다는 것 그 자체가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아닌가?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그것이 생이였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까지 죽여 없애준다.
용기가 살해하는 것은 자신의 부정성이다. 용기를 통하여 삶을 긍정함으로써 타자에게 다가할 수 있다. |
③ 여기 성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을 보라!---그것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두 개의 길이 이곳에서 만나느 것이다—그 위에 성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의 이름이 씌어 있구나, “순간”이라는.
순간의 인식이 영원회귀의 출발점이다. |
④ 만약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었다면, 난쟁이여, 여기 이 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이 순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물을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길 수 있도록 모든 사물이 이렇듯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 자신까지도?---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올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우리의 삶이 영원이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
⑤ 그 때 갑자가 멀지 않는 곳으로부터 개 한 마리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나 홀연히 험난한 절벽 사이에 서 있었다---나 몸을 비틀고 캑캑거리고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어떤 젊은 양치기를 본 것이다. 입에는 시커멓고 묵직한 뱀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고---그 때 내 안에서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 부르짖는 어떤 것이 있었다---양치지는 내가 고함을 쳐 분부한 대로 물었다---이제 더 이상 양치기가 여느 사람이 아닌,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되어 그는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땅에 그와 같이 웃어본 자가 없었으리라!
뱀은 영원회귀를 의미한다. 영원회귀(허무주의)는 극복의 대상이다. 영원회귀를 극복하는 방법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용기이다. |
3-3. 뜻에 반하는 복에 대하여: 영원회귀 사유의 무게
① 창조하는 자가 일찍이 길동무와 자신의 희망을 이룰 아이들을 찾아 나선 일이 있다. 그런데 보라, 그 자신이 먼저 저들을 창조하지 않고는 저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자신과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
② 진정, 나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구나---바람이 열쇠 구명으로 불어와 내게 “오라”ㄱ로 했다. 문은 교활하게 열리면 내게 “가라!”고 했고. 그러나 나 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란 사슬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모든 것이 이처럼 징표가 되어 “때가 무르익었다!:고 내게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듣지 못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 |
③ 아, 심원한 생각 너, 나의 생각이여! 무덤을 파헤치는 너의 소리를 듣고도 더 이상 떨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나 언제 찾아낼 것인가?---지금까지 나는 너를 위로 불러 올릴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너의 무게, 그것만으로도 나는 항상 두려웠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 너를 위로 불러 올릴 수 있는 힘과 사자의 음성을 찾아야 하리라!
심원한 생각은 무의식을 의미하고, 위로 불러 올린다는 것은 의식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④ 행복이 나를 뒤쫓고 있구나. 내가 여인들을 뒤쫒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무튼 행복은 여인이다.
행복의 비결 |
3-4. 해돋이에 앞서: 형이상학적 초월성에 대한 거부
① 오, 내 위에 펼쳐지 있는 하늘이여---네 높이로 나를 던져 올리는 것, 그것이 나의 깊이다---신의 아름다움이 그의 모습을 가린다.
신이란 형이상학을 의미한다. |
② 너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너 내게 너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으렷다. 너는 오늘 사나운 바다 위로 말없이 떠올랐다.
하늘이 전해주는 지혜는 바다(세속)와 연결되어 있다. |
③ 내 의지 전부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나는 것, 너의 품속으로 날아드는 것 그 하나뿐이니! 떠도는 구름들과 너를 더립히고 있는 온갖 것 이상으로 내가 혐오한 자가 있었던가?---선과 악 그 자체는 단지 중간에 끼어든 그늘, 누기 있는 비애, 그리고 떠도는 구름일 뿐이다.
선과 악의 부정 |
④ 나 “모든 사물 위에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라는 하늘, 뜻밖이라는 하늘, 자유분방이라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고 가르친다면 진정 그것은 축볼일망정 모독은 아니다---나 모든 사물을 목적이라는 것의 예속 상태에서 구제해준 것이다—모든 것에 가능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합리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목적성과 합리성의 부정 |
3-5.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현대도덕에 대한 비판
① 나 여기 민중 사이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저들은 나를 물어뜯는다---밤이 되어 불가에 앉아 있게 되면 저들은 모두 내 이야기를 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 생각을 해주는 자는 없다---찬미하는 자는 짐짓 보답하려는 듯 꾸며되지만, 실은 더 많은 것을 받아낼 속셈이라는 것을!
저들이 차라를 묻어 뜨는 이유는 차라의 존재가 자신의 왜소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차라에게서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
②나 여기 민중 사이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저들은 더욱 왜소해졌다. 그리고 더더욱 왜소해지고 있다. 행복과 덕에 관한 저들의 가르침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덕에 있어서도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는 덕만이 “자기만족”과 화합을 이루니--- 변변치 못한 행복을 겸허하게 껴안고는 그것을 일컫어 저들은 “체념”이라고 한다.
중력의 장 때문에 왜소해지고 있다. 덕의 목표는 무능함을 가져오므로, 욕심을 버림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
③ 나 이 위선이야말로 저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약한 것임을 발견했다. 명령하는 자조차도 섬기는 자의 덕으로 꾸며대고 있는 것 말이다---슬픈 일이로다. 으뜸가는 주인이 고작 으뜸가는 시종에 불과할 뿐이라면!
명령에는 책임이 따른다. |
④ 저들이 근본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이 하나를 우직하게 원하니, 그 어느 누구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선수를 쳐 온갖 사람에게 접근하여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겁의 소치다. 비단 그것이 이미 “덕”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나는 차라투스트라, 신을 믿지 않는 자다---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는 자, 그리고 일체의 체념을 벗어버리는 자들 모두가 나와 같은 자들이렸다.
용기 없는 삶. 차라투스트라의 삶과 대비된다. |
⑤ “그냥 있어서 주어진다” 이것 또한 저 체념이 가르치는 바이다. 그러나 나 너희,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말하련다. 그냥 있어도 빼앗기게 되며 더욱더 많은 것을 너희는 빼앗기게 되리라!고
적극적인 삶이 요구됨. |
⑥ “어느 때고 너희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그러나 너희는 그에 앞에 원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이웃을 항상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그에 앞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
3-6. 감람산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결연한 의지
① 고약한 손임인 겨울이 내 집 내 곁에 자리하고 있다---나는 따뜻한 발에 따뜻한 생각을 품은 채 그곳, 바람도 잠잠한 나의 감란산 양지바른 곳으로 달려간다.
② 나 누구를 사랑하든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에 보다 제대로 사랑한다—나는 악의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며 찬물로 목욕을 함으로써 겨울을 비웃어준다---나는 어느 때보다 아침에 악의에 차 있다---그러면 나 저 환한 하늘, 눈처럼 흰 턱수염을 늘어뜨리고 있는 겨울하늘, 저 백발 노인이 마침내 솟아오르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빈번히 자신의 태양조차 숨겨온 저 조용한 겨울 하늘이!
③ 일체의 좋은 사물의 근원은 천 개의 겹으로 되어 있다. 일체의 좋고 희롱하기를 좋아하는 사물은 기쁨에 넘쳐 존재 속으로 뛰어들고 어찌 사물들이 이같은 도약을 단 한 번으로 그칠 것인가!
④ 겨울 하늘 처럼 자신의 태양과 굽힐 줄 모르는 태양의 의지를 숨기기. 나 진정 이 기술과 이 겨울의 희롱을 잘 배워두었던 것이다! 나의 침묵은 침묵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것이 내가 가장 아끼는 악의이자 기술이다.
⑤ 그 누구도 나의 바탕과 궁극적인 의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나 저 길고 환한 침묵을 생각해낸 것이다---사람들이 달려들어 나의 영혼을 파헤치는 일이 없도록, 나 황금을 삼킨 자가 그리하듯 나 자신을 필히 감쳐야 하지 않을까?---그리하여 나 저들에게 단지 내 산정의 얼음과 겨울을 보여줄 뿐이다. 내 산이 아직도 온통 햇빛의 띠에 휘감겨 있는 것은 나 보여주지 않는다!
⑥ 내 영혼은 그가 겪고 있는 겨울과 그 겨울의 한파를 숨기지 않는다. 이것이 내 영혼의 지혜로운 희롱이자 호의이다. 내 영혼은 그가 앓고 있는 동상조차도 숨기지 않는다. 고독은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자의 도피다. 또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