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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후기] 한줌의 정치_3부 근대인의 초상 :: 0317(토) +1
샐리 / 2018-03-23 / 조회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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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가 늦어 죄송합니다 !!

 

필경사 바틀비, 영웅일까 사회부적응자일까? (의식의 흐름 주의)

 

우리는 지난 시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바틀비를 위해 투자했다. "I would prefer not to"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나누었다. 일터에서 "안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그의 말은 자본주의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필경사 바틀비와 관련된 여러 칼럼을 읽었으나 하나의 정답은 없었다. 그러다 필경사 바틀비의 보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읽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줄거리의 몇 부분을 적고 함께 이야기 해보고 싶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필사를 했다. 그는 마치 뭔가 필사한 것에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내 문서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듯 했다. 소화를 위해서 쉬지도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했다., 만약 그가 즐겁게 일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을 상당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silently, 창백하게palely, 기계적으로mechanically 필사를 계속했다.”

 

먼저 바틀비는 처음부터 안하는 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매우 열심히 일을 했다. 이 부분은 아마도 대부분의 성실한 노동자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일하곤 하니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갑작스레 안하는 편을 택하도록 만든것일까? 왜 대부분의 성실한 노동자였던 그는 사회 부적응자와 같은 모습을 취한 것일까?

 

“날이 감에 따라 나는 바틀비와 상당히 화해하게 되었다. 그의 착실함, 전혀 방탕하지 않은 점. 부단한 근면함(그가 칸막이 뒤에서 선 채로 공상에 빠지고 싶어할 때를 제외하고), 대단한 고요함great stillness, 어떤 정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 등으로 그를 고용한 것은 사무실에 소중한 이득이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것, 즉 그가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 아침에 가장 먼저 와 있고,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정직성을 각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을 걱정도 염려도 또 이상히 여기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정직성을 느끼다니. 변호사가 철저히 자본주의에 찌든 고용주임은 잘 알겠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변호사가 밤에 잠시 사무실을 들렀을 때에도 바틀비가 있었다는 부분이다. 나는 이쯤에서 바틀비는 사람이라기보단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개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관념같은. '늘 사표를 서랍 깊은 구석에 박아두고 사는' 직장인의 관념.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 숨은 욕망'은 아닐까?

 

"그는 여느 때처럼 내 사무실의 붙박이 같은 존재로 남아있었다. 아니—그게 가능하다면—그는 전보다 더욱 붙박이가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가 왜 거기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목걸이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짊어지자니 괴로운 연자 맷돌(마태복음 18:6) 같은 존재가 된 것이 분명했다.”

 

변호사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바틀비를 보며 괴로워한다. 바틀비는 언제나 같았다. '일하던 바틀비'가 '일하지 않는 바틀비'가 되었을 뿐이다.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틀비가 찰스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안에서는 너무나도 큰 변화였다. 하루종일 사무실 안에서 일하던 정직하고 근면하던 바틀비는 일하지 않아 남을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바틀비를 평가하는 지표였다. 지금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바틀비는 감옥에서 죽는다. 음식을 먹는 것 마저 안하는 편을 택한 채.

 

나에게 바틀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거부한 영웅인지 사회 부적응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당연한 것을 안하는 편을 택했을 뿐이다. 당연히 노동을 해야하는데 안하는 편을 택했고,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하는데 안하는 편을 택했으며, 당연히 살아야 하는데 안하는 편을 택했다. 노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꽂혀 자본주의와 연결지어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 속의 필경사 바틀비는 그저 '무엇이 당연한 것이고, 왜 그것이 당연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일해야 해,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해, 굶으면 죽을거야, 죽음은 두려운거고 삶이 끝나는 거야.'

이 한 줄은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을 것 같다. 이 한 줄은 당연한 말인가? 왜 당연한가? 
바틀비는 죽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을까, 자유를 느꼈을까? 여러모로 참 짧지만 어려운 내용이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1.
샐리의 후기는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 안하는 편을 선택하겠다"에 대한 멋진 해석입니다.
바틀비는 우리 삶에서 당연히 주어진 것에 대해 "무엇이 당연한 것이고, 왜 그것이 당연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샐리의 해석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2.
더구나 바틀비를 사람이라기보다 '관념의 인격화'라고 해석한 것도 참 흥미롭습니다.
"변호사가 밤에 잠시 사무실을 들렀을 때에도 바틀비가 있었다.....
바틀비는 사람이라기보단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개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관념같은.
'늘 사표를 서랍 깊은 구석에 박아두고 사는' 직장인의 관념. '안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 숨은 욕망' 같은"

3.
결국 바틀비가 아무것도 '안하는 편을 선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말없이silently, 창백하게palely, 기계적으로mechanically 필사를 계속'해야 했던
사회로부터 그에게 요구되었던 강제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누구든지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어떤 일을 계속 할 것'을 강요받는다면,
바틀비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근대인의 초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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