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열풍 :: 지식이 곧 죄악이다
삼월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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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지식이 곧 죄악이다>라는 글에는 신문화운동으로 지식을 추구하게 된 사람이 저승에 가서 벌을 받는 꿈을 꾸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기름콩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작은 지옥‘에서 무수히 넘어져 머리에 혹이 생겼다. 그 지옥의 문 앞에는 기름에 흠뻑 젖은 채 일어나려 하지도 않고, 대답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백 번 미끄러져 넘어지던 화자는 바닥에 머리를 너무 세게 찧는 바람에 정신이 다시 몸 안으로 돌아왔다. 깨어난 그는 자신이 정말로 죽었던 것인지, 단지 꿈을 꾼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일이 두려워 감정으로 해결해 보기로 한다.
<사실이 웅변을 이긴다>에서 루쉰은 신발을 사러 갔다가 점원에게 입씨름에서 지고 만다. 말로 항변하려다가 ‘잘 보시라고요!’ 한 마디에 입을 닫고 만다. 중국에서는 사실이 웅변을 이길 수 없음을 루쉰은 깨닫는다. 그래서 한 보수 지식인에게 일갈하기로 한다. 선생님, 잘 보시라고요!
‘국학’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백화문 사용을 비난하고 고문 문체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루쉰은 가짜 골동품에서 발하는 거짓 빛발이라고 비판한다. 근대적 문장부호를 따르지 않는 그들의 글은 띄어쓰기가 없고, 구식 표점부호를 사용하여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외국어를 억지스러운 중국식 고문 표현으로 옮겨 적어 이상한 단어가 만들어지는데, 루쉰은 이들의 방식을 비꼰다. 사실 그들은 가짜 골동품을 만들고 있을 뿐, 고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루쉰은 ‘국학’을 주장하는 이들이 표현하는 고문이 얼마나 어색한지를 여러 편의 글에서 지적한다. 이럴 때 루쉰이 익힌 고문은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비평가들에게
루쉰은 중국 문예에서 비평가의 출현이 잦아지는 것을 반기고 있지만, 비평가들의 어떤 태도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한두 권의 ‘서방’의 낡은 비평론에 기대거나 머리가 굳은 선생들이 뱉은 침을 줍거나, 중국 고유의 천경지의 따위에 기대어 문단을 유린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비평의 권위를 지나치게 남용한 것이라 꼬집는다. 번역본이나 번역 행위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덕가라는 사람들의 과민한 신경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1924년에 쓰인 《열풍》의 마지막 글 <‘교정’하지 않기를 바란다>에서는 잘못된 교정, 졸렬한 모방을 비난한다. 잘못 알고 살아있는 사람을 ‘고인’이라고 표현하며 그의 작업을 비판한 일에 대해서는, 비판 자체를 사과하지 않고 ‘아직 고인이 되지 않았다’라고만 고쳐 넣는다. 대상이 살아있건, 살아있지 않건 비판의 내용은 수정하지 않는다.
열풍은 이렇게 끝났다. 그 자체가 뜨거운 바람이어서가 아니라, 주위가 워낙 차갑고 고요해 작은 입김조차도 열풍처럼 뜨겁고 거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