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후기] 오리엔탈리즘2부 1~2장 :: 0306(화) +1
miro
/ 2018-03-11
/ 조회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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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제1장 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지식의 퇴폐와 인간노력의 공허함을 주제로 하는 소설 부바르와 뻬뀌세에서 플로벨은 다소간 직접적인 형태로 지식을 응용하고자 했으나 재능의 결여로 그리고 관념과 현실을 함께 거래하지 않는 것이 유리함을 알고, 결국은 문헌을 무비판적으로 베끼며 다시 복사장이로 되돌아가는 주인공을 해학적으로 묘사한다. 다양한 분야를 거치는 이론적, 실천적인 산책에 나서지만 결국 이 “진격하는 부르주아지”는 무능력과 범용의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판명되고, 그 어떤 열광도 진부한 상투문자에 귀착되어 버리고 만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사이드가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부바르의 비전, 즉 “유럽이 아시아에 의해 소생한다” 는 비전은 플로벨이 느낀 19세기적 기호 – 곧 특수한 과학기술을 사용하면서 공상적인 비전에 따라 세계를 재구축하고자 한 19세기적 기호를 표상한다. 이것은 매우 낭만주의적 관념으로 산업혁명과 중상주의로 이후로 만연한 서양문화의 물질주의와 기계론(및 공화주의)을 타파하고, 계몽주의시대의 합리주의에 의해 소멸된 고대적인 제문제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아시아에 의한 유럽의 소생이라는 것은 아직 순수한 동양을 통하여 그들의 인간 역사와 운명의 개관, 실존적인 패러다임, 인류의 종교적 유산의 긴요한 제가치. 이런 것들을 감정적으로 타당함과 동시에 지성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지키자는 의미이다. 그 결과로 유럽은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당대의 유럽에 대한 아시아의 ‘용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럽에 의해 아시아와 아시아에 의해 소생된 유럽이 “궁극에는 융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원정(1798-1801년) 이후로 본격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 오리엔탈리즘(18세기 말 ~ 19세기 초)은 18세기적 4가지 요소가 그 기반이 된다.
먼저, 제1요소로 동양은 이슬람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지리적으로 확대되며 동양에 대한 문헌이나 자료도 다양해진다. 기행문학, 보고서, 항해기 등에 의해 참조되고, 아라비아어뿐 아니라,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쓰인 동양의 문헌들도 다수 수집, 번역되었다. 그러나 확대된 동양도 반드시 유럽이 주된 관찰자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유럽이 밖으로 향하여 확대되는 때에도 유럽의 문화적인 힘의 의식은 강화된다. 제2요소는 역사 그 자체가 종래보다 더욱 근원적으로 인식되고 비교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험과 더욱 오래된 다른 여러 문명과의 비교가 유효한 것이라는 점을 수용하여 18세기 역사가들은 동양의 문헌자료를 직접 취급하여 (유럽과 다른) 동양의 특수성을 파악하는 것이 유럽 자신의 자기이해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비교연구에 의한 명확한 개관을 넘어, 관찰자의 편견을 버리고 대상의 공감적 동일화에 의해 개관 그 이상의 것을 해보고자 하는 경향이 제3요소이다. 주변 지역이나 문화와의 선택적 동일화는 지금까지 양극구조로 인식해 왔던 유럽/비유럽, 유럽-기독교문화/비유럽-기독교문화의 경계가 더 이상 유럽인의 보편적 세계관으로써 역할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인간들의 연대와 인류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폭넓은, 보편적인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이 문장은 세미나에서 토론되지 않았던 것같다. 추후 이 부분에 대한 사이드의 생각을 더 살펴보겠다) 마지막 제4요소는 유형화(분류)로 하나의 유형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며 특징에는 관찰자의 관념이 반영되고 지시(명칭)나 전이가 이루어진다. 인류의 분류법도 체계적이고 다양화되어 인종, 피부색, 혈통, 기질, 성격 그리고 유형이 기독교/기타라고 하는 구분을 압도하게 되었다. 동양 혹은 동양인은 xx다라고 분류되고 규정된다.
이런 상호 연관되는 여러 요소는 세속적인 틀 속에 재구성되고, 재배치되고, 재분배되었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바탕이 되어 이후 꾸준히 강화되고 내재화된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세속적인 틀에 대응하는 세속적인 어휘나 개념의 저장고, 그리고 그것을 구사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공급한다.
2부 제2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 합리주의적 인류학과 문헌학의 실험실
사시와 르낭은 오리엔탈리즘을 과학적, 합리적 기초 위에 두기 시작한 첫 세대이며, 건설자로서 이들은 오리엔탈리스트라면 누구나 공유하여 이용할 수 있는 어휘나 관념을 창조한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들에 의해 과학적인 전문 용어의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동양을 조명하기 위한 특별한 형식이 확립되었다. 그들은 동양을 대표하는 중심적 권위로 확립되었고 그들의 저작은 세대를 이어 정통성을 획득한다. 이제 그들에 의해 동양은 소생되고 근대성 속으로 이전될 것이다.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던 문장: 사시가 썼다는 《일반문법의 원리》에 쓰인 “귀여운 아들이여, 이 소설은 너를 위하여 썼다.” 사이드는 이 문장이 다음의 의미라고 풀어낸다. - 내가 너를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은 네가 이러한 사항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들이 간단하게 손에 들어오는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내가 스스로 이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 나긋나긋한 담화어법 속에는 주제가 얼마나 애매하든, 달성이 얼마나 곤란하든 그것을 명석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내가 너에게 주겠다는 은혜로운 합리성이 표현되어있다. 사시는 교육자로써 ‘제시’를 하고 제자들은 그것을 제공받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동양은 너무 멀고 이상하기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지적 권위자에 의해 주의 깊게 발췌되어야 하고, 동양의 작품은 유럽인에게 본질적으로 맞지도 않고 흥미를 지속할만한 것을 포함하지도 않으며 충분한 취미와 비판정신을 가지고 쓰이지도 않았으므로 발췌하는 것 외에는 간행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발췌된 것만이 동양을 의미하는 기호의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그 지적 권위자가 판단했으므로 발췌된 단편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사시는 동양을 단편적으로 규범화하였고,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되는 텍스트의 규범을 낳았다.
사시의 계승자 르낭은 오리엔탈리즘을 문헌학에 적응시켜 재구성한다. 르낭은 낡은 기독교신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단절하고 그것에 대체되는 새로운 교의-필경 과학-로써 문헌학을 그의 지식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르낭이 처음으로 행한 본격적인 오리엔탈리즘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라고 하는 셈어 연구를 보면, 이것은 문헌학을 통한 연구로 그 결론은 동양의 셈어는 인도-유럽어에 비해 생물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타락된 형태이며 재생력 없는 비유기적이고 비생산적으로 경화된 언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만한 판단이 동양어의 문헌학자에 의해 그의 실험실 속에서 행해졌다. 결국 르낭에 의해 연구된 셈어는 문헌학의 실험실 속에서 발명된 허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르낭의 문헌학적 실험실은 유럽민족중심주의의 실천의 장이었던 것이다.
부바르와 뻬뀌세가 복사장이로 돌아가 그들이 좋아하는 사상을 책으로부터 종이 위에 믿음직스럽게 복사하는 것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처럼 이들 두 지존과 그들의 계승자들은 동양을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분리하여 그들만의 동양을 침묵 속에 주석도 없이 텍스트로부터 텍스트에 복사하면서 동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아마 이것이 그들이 생각한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 이였을 것이다.
p.s. <오리엔탈리즘>은 사이드 자신도 고백했지만, 매우 푸코적으로 쓰였다는 현님과 임마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관련 댓글 해주실거죠?
댓글목록
김현님의 댓글
김현
우와 미로님! 상세하고 꼼꼼한 후기 고맙습니다! 저도 그동안 희미해졌던 내용들이 다시 상기되네요! ^_^
먼저, 마지막에 써주신 푸코적인 것을 이번 후기에서도 다시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매 댓글 이런 말을 쓰긴 하지만, 매 시간 에드워드 사이드 본인도 계속해서 푸코를 언급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ㅋㅋ
이번에는 2부 2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의 동양에 대한 서술 방식, 학문의 연구 방식에 관련하여, 벤담식 원형 감시시설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는데요. 실베스트르 드 사시는, 지난 시간 범위에서 읽고 또 같이 이야기했듯이,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을만큼, 동양에 대한 학문을 개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학문은 이미 오랜 전통 속에 체계화된 것과 달리, 동양은 그렇지 않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방대하고 그가 기울인 노력은 대단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한 체계는 그만큼 선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시는 사화집, 명문집, 일람표, 일반원리의 개설에 집중하여, 책에 나온 것처럼, 일람표를 통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벤담식 원형 감시시설을 건설하여, 가시적인 지식을 만들어냈습니다. 권위자가 되어 대상을 한 눈에 바라보는 방식을 표현하려던 게 아닌가 합니다. 더불어, 고문서를 섭렵하며, 텍스트를 '선택'하고, 또 주석을 달고 기호화하고 배열하는 등의 이러한 사시의 해석은,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격자를 통해, 바라보고 재단하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봤습니다.
지난 세미나 시간에는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세미나 멤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제가 멈칫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근대 오리엔탈리즘이 싹트던 시기의 사상적 조류들 중에서도 제3요소, 공감적 동일화에 대해, 특히 미로님의 활약 덕분에 그래도 텍스트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치만 그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쏟는 바람에, 정작 해야할 주제나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도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분량이 적은 만큼, 미로님이 후기에서 써주신 것과 같이, 세미나 시간에 미처 얘기하지 못한 내용을 다시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도 미로님의 활약을 기대하며, 세미나 시간에 뵈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