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후기] 1945년 0년 :: 0308(목) 7장 자신만만한 희망의 아침 +2
라라
/ 2018-03-14
/ 조회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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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후기>
사람의 감각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어떤 사건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개인 단독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경험은 개개인의 감정을 흩어져 버리게 했다. 생존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은 인간으로써 할 수 없다고 한 일들을 서슴없이 행했다.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이라는 푯발로 도배를 한다. 최악의 고통을 격었던 사람들의 공유하는 감정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대부분의 유럽과 아시아는 파괴되었다. 이에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신념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0년은 1945년 백지 상태에서 시작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사라질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합의했더라도 합의는 있을 수 없다. 다양한 정치적 이상, 야망이 있을 뿐이다.
가장 급진적인 변화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오히려 철저히 파괴되지 않았기에 가
능하다고 본다. 보수당이 전쟁을 끝냈는데 기여하였더라도 이제 영국인들은 좌파정부의 지배가 현명하다고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 또한 진보주의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였다. 드골은 공장과 은행을 국유화했고 대중교통도 국유화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좌파가 꿈꿨던 이상들이 실행되었다.
일본이나 한국은 좌파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의 생존이라는 이름하에 대중의 뜻과 상관없이 지배층(엘리트충)이 주도하는 0년의 시작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기시노부스케, 한국에서는 이승만 주도로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기시노부스케는 아베의 외할아버지이라고 한다. 남한은 박정희가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한국판 재벌방식으로 급성장한다. 박정희를 지지한 사람은 기시노부스케였다.
전후의 고통은 물리적인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감각을 바꾸어 놓는다. 생존에 대한 합리화는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한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자체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계획에 따라 수정없이 착착 진행되는 것은 파시즘의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역사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권력자나 지배자의 시선으로 보았는지 알게 되는 세미나였다.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냐는 말에 아무 다른 생각 없이 이순신이라고 한국경제를 일으킨 것은 박정희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감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배를 만들고 경제활동을 한 것은 민중 개개인의 힘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배를 만들고 경제활동을 한 것이 민중 개개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역사란 그렇게 구성되어왔음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역사에는 완전한 단절도 없고, 완전히 새로운 시작도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
지금의 우리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겠지요.
전쟁을 막자는 '네버 어게인'이 또다른 방식의 전쟁인 냉전으로 이어지고,
전체주의에 반대하여 또다른 전체주의인 국가주의나 권위적 군사독재가 이어진 20세기의 후반.
제3세계를 사실상 식민화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던 세계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하자,
일본에서는, 만주국의 지배자였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가 집권합니다.
만주국군관학교에서 기시 노부스케에게 배운 다까끼 마사오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그의 딸 박근혜 역시 대통령이 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오래도록 수치스럽게 살아가도록 만들었을까요?
사대를 수치스럽게 여기지만, 몇 천 년 간 사대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던 점령국인 미군의 언급과,
이안 부루마의 날카로운 서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사람의 감각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이 말은 <0년>이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파괴, 그 시작을 의미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이안 부르만의 진술은
역사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는 현실 논증으로 나아가는 듯 보입니다.
그 역사의 그림자는 경험으로 체득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길들여진 감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결과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개인의 노력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개인의 감각 또는 집단의 감각은 고착화됩니다.
이 때 우리는 다시 혁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서 혁명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아니, 그것은 사회적 혁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을 바꾸는 혁명!
그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바꿀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새로운 문제 의식과 화두를 던져주어서 감사합니다.
여러 번 '감각'과 '일상'과 '혁명'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생각의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