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무덤 ::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 ~ <『무덤』 뒤에 쓰다> 0307(수)
삼월
/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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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 1925. 7. 22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에게는 대담하게 정시하는 용기가 결핍되어 있다. 옛 성현들의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정시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고통은 몸으로 체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들은 동시에 눈을 감아버린다. 문제가 없고, 결함이 없고, 불평이 없고, 바로 그 때문에 해결이 없고, 개혁이 없고, 반항이 없다. 중국의 문인들은 만사에 눈을 감고 잠시나마 스스로 속이고 남도 속인다. 중국인들은 이 감춤과 속임으로 기묘한 도피로를 만들었는데, 스스로는 바른 길이라고 여긴다.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바로 국민성의 비겁함, 나태함, 교활함을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문예와 국민정신은 서로 감춤과 속임의 늪에 빠져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게 되었다. 작가들이 가면을 벗고 진지하게, 깊이 있게, 대담하게 인생을 살피고 자신의 피와 살을 써 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수염에서 이까지의 이야기> 1925. 10. 30
루쉰은 이 글에서 시종일관 자신을 비난하고 면직시킨 장스자오를 조롱하고 있다. 장스자오는 루쉰의 <수염이야기>를 격이 떨어진다고, 이러다간 엉덩이 얘기도 쓰겠다고 비난한 듯 보인다. 이를 받아치는 루쉰의 해학이 경지에 올랐다. 병이 없으면서도 신음한다는 장스자오의 비난을, 루쉰은 ‘병이 없다면 누가 신음하겠는가?’로 받아친다. 수염에서 시작하여 엉덩이까지의 것들은, 만약 평안하여 아무 일 없다면 누가 좋아 그것들을 기념하겠는가. 루쉰은 뒤이어 엉덩이가 아닌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가 소화기관을 통해 직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고 언급한다. 중화민국 14년에 있었던 시위에서 루쉰이 앞니 두 개가 빠지는 부상을 입었다는 오보가 있었다. 사실 이 앞니는 그 전에 이미 인력거 사고로 빠졌고, 루쉰은 몸이 아파 시위에 참가하지 못했다. 오보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장스자오처럼 붓을 놀려 법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루쉰은 자신의 앞니에 관한 사실을 밝힌다.
<견벽청야주의> 1925. 11. 22
견벽청야주의에서 견벽은 참호전을 말한다. 청야는 적의 점령에 대비해 모든 물자를 깨끗이 태워버리는 전술이다. 루쉰은, 교육 당국이 공공 오락장소의 풍속교화를 위해 공연장과 공원에 여학생의 출입을 금지시킨 일을 이 전술들에 빗댄다. 옛 현자들은 말끝마다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고 하지만, 루쉰이 보기에 대개는 말만 하고 마음이 없거나 재능이 없었다. 풍속교화의 목적은 인성해방과 교육의 보급, 특히 성교육에 있다. 교육자들은 이 일을 해낼 수 없어 ‘가두어라’는 말로 감옥에서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견벽청야’는 물러나서 지키는 것이지 나아가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외로이 지키기만 한다면 결과는 멸망뿐인데, 교육에서 ‘견벽청야’를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인가? 백성을 다 죽여 황제가 되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모든 여학생을 가두어버리면 해칠 만한 풍속교화가 없어질 것이다.
<과부주의> 1925. 11. 23
판위안롄은 중국의 ‘교육 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속성사범’을 발명했다. 이에 따라 반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많은 교사들이 군국주의, 존왕양이주의, 그리고 현모양처주의를 떠들어댔다. 루쉰은 이에 대해 자손을 생각지 않고 나라를 넘겨주는 일이라 보며 ‘과부주의’라 비난한다. 루쉰이 보기에 여학교의 교장 및 사감들은 ‘과부’ 또는 ‘의사과부’이다. 주로 외국에서 유학하고 신교육을 받은 독신여성들에게서 젊은 여자들이 당하는 재난은 지난날 도학선생들 밑에서 공부할 때보다 심각하다.
애정도 자극과 활용을 통해 발달하는 법이며, 대상이 있어야 애정을 깨닫게 된다. 루쉰은 독신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고집스럽고 의심이 많고 음험한 성격으로 변한다고 본다. 일들은 냉혹하고 성적인 사건에 민감하며 질투가 많다. 겉으로는 순결한 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본능적인 결핍감이 꿈틀댄다. 젊은 학생들의 밝고 천진한 면은 이들과 맞지 않으며, 이들로부터 의심과 참견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에게 배운 학생들은 청춘의 진면목을 잃어버리고, 정신면에서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과부인’ 인물이 된다. 이들은 독립한 후 다시 아직 독립하지 않은 사람들을 학대한다. 루쉰은 이들이 마음을 크게 먹고 더욱 원대하게 사고해 나가기를 바란다. 루쉰에게 이 일은 여성교육의 측면에서 커다란 문제였고, 구제할 부분으로 보였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12. 29
1. 해제
‘페어플레이’, 중국식 표현으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다
2. ‘물에 빠진 개’는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 때릴 수 있는 예에 속한다
3. 특히 발바리는 때려서 물에 빠뜨리고 더욱이 계속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은 것은 남의 자식을 그르치는 일이다
물에 빠졌다 나온 개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을 물었던 개는 다시 물에서 기어 올라와 혁명가들을 물어 죽인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반항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기력과 생명을 소모해야 한다.
5. 거덜 난 인물은 ‘물에 빠진 개’와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나쁜 사람은 빙산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자행하고, 일단 실족하면 갑자기 동정을 구걸한다. 어리숙한 사람은 그를 ‘물에 빠진 개’로 보면서 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가엾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당한 도리가 이미 실현되었으니 이때야말로 의협은 바야흐로 내 손에 달렸다고 여긴다. 절룩거리는 시늉을 하여 피해 숨은 이 개는 다음날 다시 나타나 어리숙한 사람을 문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부분적으로는 바로 어리숙한 사람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지금은 아직 ‘페어’만 할 수 없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시행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물에 빠진 개’들이 인간다움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좋은 사람이 용서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나쁜 사람은 구제된다.
7. ‘바로 그 사람의 도(道)로써 그 사람의 몸을 다스린다’에 대하여
‘페어플레이’는 병폐가 있으며 심지어 약점으로 변하여 도리어 악한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8. 결말
개혁자에 대한 반개혁자의 해독은 지금까지 느슨해진 적이 없었으며, 수단의 지독함도 이미 더 보탤 것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개혁자만이 여전히 꿈속에 있으면서 늘 손해를 보고 있으며, 그리하여 중국에는 도무지 개혁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반드시 태도와 방법을 고쳐야 한다.
<『무덤』 뒤에 쓰다> 1926. 11. 11
책이 절반이나 인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루쉰은 후회와 애수에 잠긴다. 책의 제목을 『무덤』이란 지은 일에 대해 스스로 교활한 속임수라 일컫는다. 서문에서 말했듯 루쉰은 자기 글을 편애하는 이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증오하는 이에게는 약간의 구역질을 주고 싶었다. 루쉰이 글 속에 모든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놓는 것은 아니다. 루쉰은 스스로 다른 사람의 길을 인도하는 게 쉽지 않다며, 자신조차도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루쉰은 ‘선배’와 ‘스승’을 믿지 않지만, 다만 하나의 종점이 바로 무덤이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루쉰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게 좋으면서도, 자신의 글이 청년들을 독살하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그러면서 처음 백화를 제창했을 때 공격받았던 일을 떠올린다. 어느 잡지에서 백화를 잘 지으려면 고문을 읽어야 한다는 예로 자신이 등장했을 때, 루쉰은 몸서리를 쳤다. 백화를 짓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 자구와 격식, 낡은 망령들에 숨이 막힐 듯한 무거움을 느꼈다. 일체의 사물은 변화하는 가운데 중간물이라는 것이 있다. 진화의 연쇄고리 중에서 일체의 것은 다 중간물이다. 최초로 문장을 개혁할 때는 (자신처럼) 이도저도 아닌 작자가 생기는 것이며, 그의 임무는 얼른 깨달은 후에 새로운 목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세월과 함께 지나가고 점차 소멸해야 하므로 교량의 나무 하나, 돌 하나에 지나지 않아 결코 전도의 목표나 본보기 따위는 될 수 없다. 루쉰은 옛사람이 책에 써놓은 가증스런 사상이 자신의 마음속에도 늘 있다고 느낀다. 세계는 바보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총명한 사람은 결코 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