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발제] 한줌의 정치 :: 0224(토) 1부 우리, 중천을 떠도는 자들 +2
나나
/ 2018-02-22
/ 조회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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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2018.02.21.(토) 10:30 나나
<뻔뻔한 시대, 한줌의 정치>
1부- 우리, 중천을 떠도는 자들
1.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 이다 (p.8)
끝도 없는 재개발로 집을 잃은 사람, 노동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 아직도 ‘손무덤’을 현재의 시제로 사는 이주노동자, ‘방역사업’을 위해 중세 유럽의 페스트 치사율과 맞먹는 비율로 인간에 의해 ‘살 처분’되어야 했던 가축, 대대적인 토목공사로 살 곳을 잃은 강 속의 생명체, 그 토목공사 덕에 그나마 받던 보조금이 줄어 ‘똥을 누는데도 돈이 들게 된’ 장애인. 이명박정권 이래, 이 가진 적 없고 힘없는 자들의 목록은 수도 없이 늘어났다. |
■ 이 사회의 ‘외부’로 추방된 자들
- 우리가 사는 사회의 내부에 있지만 결코 ‘내부’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자들,
- 말할 자격이 없기에 침묵 속에 갇혀 있고, 시야에 치워져 있기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자들.
· 일하고 있지만 일하는 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자들,
· 살고 있지만 살 권리를 빼앗긴 자들
· 죽어도 죽는 것으로 ‘생명’으로 세어지지 않는 자들
· 정상인 눈에 보이지 않도록 ‘시설’에 치워놓은 자들
* 쌍용자동차의 해고자들, 용산의 철거민, 홍대청소노동자
■ ‘외부세력’ - 추방, 배제된 자들이 있는 그 ‘외부’로 달려간 자들
-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외부세력’임을 자처하며 추방된 자들과 함께하려고 했던 자들
· 홍대청소노동자 =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 = ‘박혜경과 레몬트리공작단’
· 철거와 싸우던 두리반 = ‘백수들’과 아무대가없이 노래부르던 수많은 인디밴드들
· 35미터의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 송경동과 ‘희망의버스’기획단
· 제주도 강정마을 = ‘평화의비행기’를 타게 만들었던 외부세력
■ ‘외부자’의 문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에 대한 인식
- ‘제3자’ 혹은 ‘외부세력’이 정부나 자본가, 보수언론 등에 의해 ‘불온한 자’나 ‘악당’취급을 받아왔으며 외부자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처럼 느끼게 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세력’이 스스로 악당을 자처한 것은, '외부‘로 추방하려는 모든 시도가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했기 때문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어찌 쌍용자동차만의 일이겠으며, 용산이나 두리반의 철거민 추방이 그들만의 문제일 것인가! 그것은 단지 다른 노동자나 다른 철거민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리해고의 칼질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회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며, 그런 사회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고, 그런 부모나 자식을 가진 사람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들 가까이 있는 어떤 사람이 추방되고 배제되는 것은 그 ‘외부자’인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
- 그렇기 때문에 안정되고 편안해보이는 ’내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외부로‘, 추방의 지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임
■ 추방에 대항하는 새로운 반격의 거점 ‘외부세력’
- 추방된 자들의 그 고독 속으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수많은 이들을 외부자로, ‘외부세력’으로 끌어들여, 그 외부를 추방의 시도 자체에 대한 새로운 반격의 거점으로 변환시킴
- 2011년은 착취나 불의에 대한 항의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외부세력 일수 있음을 보여준 한해였음.
2. 크레인 위의 중천 (p.12)
■ 중천 = 죽음과 비죽음사이의 공간
- 김진숙의 85호 크레인 : 가느다란 실 끝에 매달린 죽음은 보이지 않는 중천을 보이게 하기 위함 이었고, 그런 중천이 도처에 널려있음을, 우리가바로 그 중천의 입구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려 함.
- 중천은 죽음과 비죽음 사이의 장소를 수많은 사람들이 ‘대중’이 되어, 하나의 흐름이 되어 모여드는 특이점을 만듬
■ 희망의 버스
- 버스가 우리를 세상 바깥으로, 황무지 같은 곳으로 싣고 감으로써, 희망보다는 절망의 장소로 가는 버스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음
- 버스가 가는 곳 -> 절망의 황무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중천 -> 우리가 보고 싶지 않기에 보지 못했던 것, 우리가 극구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는 곳
* 버스가 희망인 이유: ‘희망’이란 있지도 않은 안락한 세상에 대한 꿈같은 것이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잇는 죽지도 못하는 장소들을 눈 돌리지 않고 직시하고, 그 중천에 매달린 죽음 같은 절망들을 정확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
3. 그날 평화시장 앞에선, 두 개의 다른 시간이... (p.29)
■ 전태일의 죽음으로 시작된 하나의 시간(시대)
- 노동자의 삶이 모든삶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노동자의 연대가 모든 연대의 지향점이 되었음
- 노동자가 다른계급이나 계층에 속한사람들의 ‘미래’가 되고 ‘현재’를 이끌어주던 시간
노동을 해도 먹고살 수 없던 사람들의 고통을 노동할 수 없어서 먹고살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대신하게 되고, ‘불행’한 삶을 뜻하던 노동이 노동할 수 없음과 대비되어 ‘행운’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린 시간이,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되고 전자가 후자를 자신들의 안정된 노동의 세계로부터 배제하는 시간이, 거대한 노동조합이 불의에 대한 항의를 상징하던 이타적인 조직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기적인 조직으로 추락한 것은 아닌지 의심받는 시간이 그리하여 노동운동이 다른 운동을 이끌지 못하고. 노동자가 다른 계급, 계층의 미래가 되어줄 수 없는 시간이. |
- 과거의 사건조차 과거보다는 미래의 시제속에서 현재로 다가오고, 과거의 노동자가 현재의 민중을 이끌던 시간
■ 우리가 새로이 시작해야할 시간의 미래
- 하나일수 없는 그 ‘불가능’성이 , 다양한 양상의 운동, 그것의 수다한 가능성의 원천이 되도록 만드는 것
4. 비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대학생 (p.33)
점거와 탈환, 포위와 이탈이 겹치며 반복되는 교착 속에서, 우리는 정리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와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겪는 대학생이 뒤섞이는 혼성의 지대를 발견한다 |
· 80년대: 조직된 학생운동과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의 형태로 만남
· 90년대전반: 노동자들은 전노협이라는 조직으로 발전, 학생운동의 주류는 노동운동에서 멀어짐
· 90년대후반: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이라는 안정적인 조직으로 성장, 학생운동은 쇠락을 거듭 -> 이제 단지 취업에 목숨을 건 취업준비생이 됨
· 97년 이후: 비정규직의 학대와 대학등록금의 증가가 노동자와 학생을 불편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함.
■ 새로운 종류의 연대에 대한 상상
* 비정규노동자: 전체 시간의 일부만을 노동할 수 있는 노동자
* 비정규대학생: 학교에 다니지만 전체 시간의 일부만 수업을 듣고 공부할수 있는 대학생
- 대학생과 노동자가 비정규성이라는 하나의 공통성을 갖고 하나의 신체에 동시에 거주하는 시대
- 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기업에 대한 저항과 대학생을 학교 밖으로, 비정규 대학생으로 내모는 대학에 대한 저항이 사실은 동일한 것임을 보여줌
- 비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대학생이 합류하면서 만드는 새로운 종류의 연대, 노동자와 대학생의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의 출현에 대한 기대 필요
5. 경쟁의 생물학, 경쟁의 교육학 (p.37)
■ 경쟁에서 살아남는 비결
- 성적관리를 위해 흥미와 열정을 죽이며 좋아하는 강의를 포기할 줄 아는 ‘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왼전 신속하고 멋진 발제... 감동이예요 ㅜㅜ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오 ~~ 눈에 딱 들어오는 깔꿈 정리 ~~
토요일날 봐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