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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후기] 0222 :: 법의 지배 +2
연두 / 2018-02-23 / 조회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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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미나_0년_후기

6 법의 지배 

 

그들은 왜 싸웠는가

단촐하게 셋이서 세미나를 시작하며 우리는 이안 부루마가 끄집어낸 이야기들마다에서 그들은 도대체 왜 싸운 것인가 알기 힘들었노라고 입을 모았다. 그가 주류 역사가의 관점을 비켜가는 입장에서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풀어내는 데다 자신의 주장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로서는 이야기들이 더욱 파편과 같이 느껴지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의 책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살 건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다. 그 엄청난 범죄와 전쟁의 발발은 아마도 믿기 힘든 수많은 우연들의 조합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그 개연성 혹은 인과관계를 주류 역사가들도 제대로 발명하지는 못했으리라. 그 어느 누가 신의 시선으로 그 전쟁을 종합하여 해석할 수 있을까. 6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 그 때 이곳저곳에서, 그 전대미문의 무엇을 맞딱드린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도 각자가 전쟁의 피해자였을 것이다. 퇴각할 길 없이 미군에 봉쇄된 마닐라의 젊은 일본군들이나 그들에게 살해된 10만여의 필리핀 시민들이나 모범사례로 공개처형 당한 피에르 라발이나 뉘른베르크 재판을 기록한 젊은 유대인 기자나 죽음의 수용소에 감금되어 가스실로 실려간 그 수십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이나. 피해의 정도가 다 제각각인데 어떻게 모두를 피해자로 그냥 퉁칠 수 있을까. 유대인을 겨냥한 나치의 치밀한 국가적 계획범죄를 인식하게 된 후, 최종적으로 유대인을 '가장 큰 피해자'로 이름짓는 것은 그 끔찍하고 거대한 사건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다. 

 

살아 남으라는 명령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생존이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전쟁의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 타인을,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야 했으리라. 여러 가지 분할선이 더욱더 선명해졌을 것이다. 함께 살아 남는 일은, 윈윈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그래서 이안 부루마는 기회주의가 아마도 아주 유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분할선을 흐리게 만들거나 넘나드는 자들은 잘 살아 남았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자신, 아군이 살아 남기 위해서 쓰인 것 같다. 기회주이자들은 이데올로기를 넘나 든다. 세미나 반장은 이안 부루마가 이데올로기란 이데올로기일 뿐 공산주의, 파시즘, 민주주의 등등 이들을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의 힘 밥상의 힘

살아 남는 문제는 지금, 이곳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대한 경험과 시각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자본주의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모두를 잠식한다. 자본이 인간을 지배한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자신을 착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우연히 삶의 균열이 일어났을 때 그 틈을 벌리면서 다른 삶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일상이 아닐까. 이전과 다른 일상을 구성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나는 다른 일상을 구성하는 힘으로 삶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다 믿는다. 우리 삶을 전쟁터로 만드는 자본주의와 대결하며 좋은 삶을 꾸리는 데에는 신체적 역량, 요리의 기술, 살림의 역량이 아주 유용할 것이다.

 

복수의 대리자

법의 지배라는 6장의 제목은 법이 어떻게 지배력을 획득하는가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후 무너진 국가를 재건하는 상황에서 지배력을 위해 그들에겐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 대중의 억눌린 감정에 호응하는 일이 중요했다. 자유정부는 법을 통해 전범을 심판할 자격을 획득한다.(그들은 법의 이름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심판했다.) 연합국 혹은 정부는 실질적으로 대중의 복수를 대리했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정당성을 획득했다. 정당성의 획득은 오랫동안 억눌린 쓰디쓴 증오를 해소하는 복수를 통해서 가능했다. 

 

정의는 힘이 있는가

나치의 놀라운 응집력과 파괴력, 그 힘은 어떻게 가능했나, 이것 또한 권력의지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들이 니체를 끌어다 붙인 이유가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반면 정의는 어떤 힘을 갖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삼월이 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건 정의란 것은 과연 얼마나 힘이 있는가. 전쟁을 끝낸 것은 결국 정의의 힘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나는 물었다. 전쟁은 각국의 이해와 욕망이 끝낸 것이 아닐까. 

 

한나 아렌트의 보고서 

베르겐-벨젠에서 예닐곱명의 전범재판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괴물, 야수로 불렀다. 그러나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강조되면 그런 행동마저도 정상적으로 만들었던 범죄 구조 및 체계에 대한 요점을 잃을 수도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보고서가 그 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아이히만은 당대 법률을 어기지도 않았고, 나치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으며, 자기 업무에 좀 더 탁월한 이로 비춰지길 원했던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는 '사유의 무능'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악마의 얼굴을 한 괴물이 아니었다. 사유하는데 무능한, 사유하기를 포기한 인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유대인은 누구인가

인간에게 원초적인 감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남았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오 신속한 후기네요.
단촐해서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쉬는 시간도 없이 내리 세 시간을 떠들었더라고요.
세미나원들이 가진 각자의 고민들에 더 집중해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뭔가 마음 속에 가진 묵은 질문들을 던져 볼 수라도 있어서 갈증이 좀 풀리기도 했고요.
저는 전쟁의 개연성 혹은 인과관계를 역사가들이 발명해내지 못했으리라는 첫 문단의 표현에서
발명이라는 말이 콕 박히네요.
원래 존재하는 개연성이나 인과관계를 밝혀낸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발명해낼 뿐이라는 연두의 표현이 말이에요.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일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 발명마저도 불가능할 때가 많았을 거고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머리로, 가슴으로, 허덕허덕 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입니다요. 암요, 암요.
질문들을 계속 추가하고,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쭉 가봅시다요.
그럴 힘을 내게 해 주는 후기, 잘 읽었어요!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와 세미나 넘 재밌었을 듯 ㅠ 후기가 증명.
결석을 더 아쉽게 하는 후깁니다요.
근데 정의는 아직 발명 안 된 거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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