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후기] <실종자> 세 번째 부분 +4
희음
/ 2018-02-27
/ 조회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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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후기는 바로바로 써야지 세미나 당일로부터 딱 사흘을 넘기고 나면 기억은 거짓말처럼 뭉텅뭉텅 빠져나가 버리고 마네요. 그러면서도 매번 이 기억력을 믿어보려고 하는 것 또한 그 기억력의 무능력에 대한 망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ㅠㅠㅋㅋ 많이 모자라겠지만 최대한 기억을 쥐어짜내 보겠습니다.
<<실종자들>>은 카프카의 세 편의 장편 중 가장 처음 쓰여져서인지 비교적 선명한 서사 형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두 편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 안에는 ‘세계’라는 것이 없다는 것, 헤맴과 길 잃음과 관망만이 K의 거의 모든 세계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 이야기는 물론 K마저도 소설 안에서 점점 모호해지고 희미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카프카만의 독특하고도 탁월한 특개성으로 꼽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소설은 그런 특징이나 매력이 조금은 덜 들어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이번에 읽었던 <옥시덴탈 호텔에서>와 <로빈슨 사건>은 서사나 사건 위주로 메워져 있어서 그 흥미가 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카프카만의 목소리, 카프카만의 글쓰기의 흔들리는 몇몇 기미와 징후들을 발견해 내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토라진 님은 이 소설이 다른 두 편에 비해 지나치게 개연적이고 짜임새 있어 보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건들뿐만 아니라 인물들 또한 의지적이며 어떤 자기 법칙에 의해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했고요. 그런데 저는 조금 의견이 달랐습니다. 삼촌의 집에서 쫓겨난 뒤로 카알이 어딘가로 향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카알이 자신의 트렁크 속에 넣어 두었던 한 장의 가족사진이었거든요. 그 사진은 그가 삼촌의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그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다고 카알이 가족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이 있다거나 사진 안에 담긴 그 단란했던 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사진은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에게 있어 목숨처럼 중요한 무엇이 되죠. 그 사진은 그에게 한 마디로 ‘물신’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사라진 다음에서야, ‘갑자기’ 말이죠. 그 다음부터는 마치 사진 한 장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카알이라는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의 서사를 관장하는 것이 바로 그 사진 한 장이 된 셈이라 할까요. 이런 부분에서 위에서 말한 카프카만의 글쓰기의 특이한 기미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 소설 안에 이야기의 개연과 계획이란 게 있다고 한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 기존 소설들과는 다른 방식의 개연일 겁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어떤 것이 소설 속 인물을 이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의. 그 사진은 <<성>>에서의 늘 가려져 있고 숨어 있는, 끝내 발견되지 않는 ‘성’과 ‘클람’ 등을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옥시델탈 호텔에서> 부분의 테레제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는 이야기도 흥미를 불러일으켰어요.
그런 몇 개의 공동숙소 옆을 그냥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테레제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휴식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화창한 겨울의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모녀는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약간 잤는지, 눈을 뜬 채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테레제가 추위와 허기로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그날, 공동숙소에서 한 귀퉁이의 잠잘 공간만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어머니와 헤맨 그날을 떠올리는 대목이죠. 그런데 어머니는 살기 위한 장소를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기 위한 장소, 혹은 ‘다시금’ ‘제대로’ 죽기 위한 장소를 찾기 위해 그 쇠락한 몸으로 어딘가로 치닫듯 걷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끝내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에 인용된 그 기억도 어떤 ‘사실’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바람이 빚어낸, 만들어진 사실일지 모릅니다.
테레제는 아래에서 현기증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능숙함을 놀란 시선으로 쳐다보았고 어머니의 다정한 시선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하는 그녀가 실행하는 슬픔의 방식 또한 우리를 놀라운 공감으로 안내했습니다.
평소의 그녀와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자세하게 얘기했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발판의 지주를 묘사할 땐 그게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죽음과 관계가 없었는데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직접적인 어머니의 죽음이 아닌 그 죽음과는 ‘관계가 없’는 ‘발판의 지주’를 묘사하면서야 비로소 눈물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직접적인 슬픔의 장면, 슬픔의 극단 앞에서 우리는 말이 막힙니다. 그 슬픔은 우리의 존재를 넘어서는 슬픔일지 모르기에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은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각자의 코나투스에서 비롯될는지도요. 하지만 그것은 은폐되었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슬픔은 다른 하찮은 것,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일 혹은 어떤 사건에 힘입어 불가항력적으로 누수되듯 흘러나오게 됩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테레제를 따돌렸습니다. 그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죽음 쪽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 것이죠.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대리하기 위한 어떤 것으로 ‘말’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쏟아내기 위한 대상으로 카알이 적합했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카알은 그녀의 사랑 혹은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목록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후기를 보니, 희음님이 말씀하셨던 '사진'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어떤 것',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어떤 것',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어떤 것'을 향해
카알은 계속 나아가고, 그 미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이 어떤 무늬의 미로를 그리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감정적으로 울림을 주었던 테레제의 어머니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강렬한 감정과 함께 길어올려지는 듯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 즈음,
테레제의 이야기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테레제가 말을 거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독을 견뎌왔듯이,
우리도 서로 모여 말을 건네고, 말을 받고, 말을 섞으면서
마음을 나누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그 마음들 사이에 있던 카프카를,
또 기다리게 됩니다. !!!
희음님의 댓글
희음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사진'을 길게 바라보고 물고 늘어짐으로써
저는 어쩌면 카프카의 호흡과 입김을 만나려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이런 안간힘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실종자들>>의
마지막 페이지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 사실 좀 조심스럽긴 하네요.ㅎㅎ
던지는 말마다 놓치지 않고 잘 받아서 몇 배는 더 아름다운 메아리로 돌려주시는 우리의 반장님,
카프카 세미나를 딱 3주 남겨 놓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너무 감사했다고,
더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고 인사하고 싶어요.^^
김현님의 댓글
김현
셈나 참석을 못했는데, 후기로라도 접하니 반갑습니다.
사진에 대한 희음님의 코멘트에 저도 공감이 가네요.
초반에는 그 사진이 들어있던 트렁크도,
심지어 사진을 볼 때의 카알의 감정은, 애틋함보다도 다른 감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그 사진이란 게 없어진 이유로, 카알은 일행들과 헤어지기로 결심도 하고, 어딘가로 향하게 하는,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카알에게 사진이 중요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듯 싶습니다.
그런 걸 보면, 역시 끝날 때까지 사진은 나타나지 않겠지요..? ㅎㅎ
저도 세미나에서 영영 등장하지 않는 사진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_ㅜ
다음 주에는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우앗, 현 님이닷~~~^^
지난 번에 현 님이랑 자연 님이랑 안 계셔서 그 적막이 얼마나 깊었던지,
형광등을 다 밝혔는데도 어스름 깔린 저녁처럼 느껴지는 아침 시간이었죠.
이야기를 더해 가고 서로의 이야기에 다시금 기대고 도취되면서 조금씩 나아졌지만요. 힛.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는 사진 대신 무엇이, 또 다른 사라진 어떤 것이
카알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게 될지를 내심 더 기대하게 된다는.^^
우린 거의 3주 만에 보는 셈이니 더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 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