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무덤 :: 수염이야기~'타마더'에 대하여 0228(수)
토라진
/ 2018-02-28
/ 조회 1,619
첨부파일
- 루신 세미나 - 무덤.hwp 다운 18
관련링크
본문
<사진 찍기 따위에 대하여>
1. 재료 따위
S시에는 서양놈이 눈알을 절여 절인 채소를 대신하여 먹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전선에 사용하거나 사진을 찍는 데 사용했던 것이었다.
2. 형식 따위
S시의 괴소문들은 사진 찍기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정신이 함께 찍혀 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진 찍히면 허리가 잘리는 것 같다고 여겨 기피하기도 했다.
구기도(求己圖)(하나의 자기가 거만하게 앉아 있고, 또 하나의 자기가 앉아 있는 자기를 향해 비열하고 가련하게 무릎을 꿇는 사진) 방식의 사진은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윗사람에 아첨하는 중국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구기도가 없어졌지만 자신이 세력가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상반신을 확대해 찍는 사진은 반쪽짜리 구기도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중국인의 정신인 일명 위엄의 빛, 즉 원기는 찍혀 나갈 수도 있고 씻겨서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277)
- Th.Lipp은 그의 [윤리학의 근본문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릇 모든 주인은 쉽게 노예로 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한편으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상, 다른 한편으로 당연히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세가 일단 떨어지게 되면 군말 없이 새 주인 앞에서 굽신거리게 된다.(278)
3. 무제 따위
오직 ‘메이란팡’(경극 예술가)의 예술만이 중국에서 영구적이다. 중국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오래가는 예술은 남자가 여장하는 것이다.
<다시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뇌봉탑이 무너진 것은 시골 사람들이 미신에 따라 그 탑의 벽돌을 자기 집에 갖다놓으면 길조라 믿고, 그것을 파 갔기 때문이었다. 파괴가 없으면 건설도 없다는 말은 대체도 옳은 말이다. 하지만 파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건설이 있는 것도 아니며, 뇌봉탑과 같은 파괴는 낡은 질서의 완전한 청산이 아니기 때문에 건설과는 무관하다. 사람들이 다시 뇌봉탑을 세우려는 것은 ‘서호십경’에서 모자란 하나를 채우려는 ‘십경병’일 뿐이다.
- 완전무결하게 정체되어 있는 생활은 세상에서 찾아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파괴자가 들이닥치는데, 그러나 결코 자체 내에서 먼저 각성한 파괴자가 아니라 강포한 강도이거나 외래의 오랑캐이다. (290)
- 부서진 기와와 자갈 마당에서 낡은 관습을 손질하는 것이야말로 슬픈 일이다. 우리는 혁신적인 파괴자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상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혁신자와 도둑, 노예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 후자의 두 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 구별은 결코 복잡하고 어렵지 않으며 남을 관찰하고 자기를 반성하면 된다.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무리 선명하고 보기 좋은 깃발이라 할지라도, 무릇 언동이나 사상 속에 그것을 빙자하여 자기 소유로 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자는 도적이며, 그것을 빙자하여 눈앞의 하찮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자는 노예이다.(292)
<거울을 보고 느낀 생각>
옷장에서 발견한 구리거울을 통해, 신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상관없이 음식물이기만 하면 건강한 사람은 대체로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다만 쇠약하고 병든 사람은 오히려 늘 위를 해칠까, 몸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여 특히 금기가 많고 기피하는 것이 많다.
- 만일 도량을 넓혀 대담하고 두려움 없이 신문화를 마음껏 새로 흡수하지 못한다면 양광선(서양인들이 역법을 맡는 것을 반대한 인물)처럼 서양 주인 앞에서 중국의 정신문화를 숨김없이 드러낼 때가 아마 머지않을 것이다.(300)
<춘말한담(春末閑談)>
나나니벌이 파란벌레를 양자로 삼는다는 옛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파란벌레를 애벌레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 독으로 마비시켜 잡아놓은 것이라는 것이 파브르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중들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머리가 없이도 복종하는 기계로 만들면, 높은 분들은 얼마나 안전하고 즐거울 것인가? 그러나 머리가 잘려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을 추었다’는 ‘형천’(산해경에 나오는 괴물)이 어디에선가 나타날지 모르니 높은 분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의 태평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그렇다면 또 “예를 읽으면 오랑캐에게서 구해야 하는”법이다. 오랑캐라, 지금은 그들에게서 본받으려고 하므로 잠시 그들을 외국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들 쪽에도 비교적 훌륭한 방법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역시 없다.(307)
<등하만필(燈下漫筆)>
1. 통용이 되지 않는 지폐를 헐값에 은화로 바꾸고 기뻐한 일이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든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노예로 변하며 게다가 노예로 변한 다음에도 대단히 기뻐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소나 말처럼 스스로 풀을 찾아 뜯어먹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어떻게 다녀야 할지만을 결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과거는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시대와 잠시 안정적으로 노예가 된 시대였을 뿐이다.
- 당연이 현재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그러나 되돌아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앞에도 여전히 길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서 여태껏 없었던 제3의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오늘날 청년들의 사명이다. (318)
2. 우리는 오래전부터 귀천이 있고, 대소가 있고, 상하가 있는 것으로 잘도 꾸며 놓았다. 등급별로 제어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등의 유풍을 따라 복고가들은 국민들에게 전횡을 일삼고 외국 사람에 대해서는 비위를 맞춘다. 외국인들이 이를 모르고 중국을 찬양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보고 낡은 것을 칭찬하거나, 여행의 흥취에 색다른 풍속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라면 증오할 만하다. 중국의 문명은 외국 사람들을 도취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모든 사람들을 다 도취시켜 놓았다. 이 도취를 깨워 부자들이 누리도록 마련된 인육의 연회석을 뒤집고 이 인육의 연회를 마련하는 주방으로서 중국을 파괴하는 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사명이다.
- 그런데 대는 신하가 없으니 너무 힘들지 않은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기보다 비천한 아내가 있고, 더 약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들도 희망은 있다. 다른 날 어른이 되면 ‘대’로 올라설 것이므로 역시 더 비천하고 약한 처지가 있어 그들을 부리면 된다. (321)
<잡다한 추억>
1. 나는 바이런의 시를 번역본으로 읽어서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밖의 대부분의 외국시가 그러했다. 바이런이 많이 읽힌 이유는 그가 그리스 독립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 청년들의 마음속에 혁명사조가 크게 일어나고 있었고 복수와 반항을 부르짖는 것이 쉽게 감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2. 혁명이 일어나자 복수의 사상은 감퇴되었다. 사람들은 이미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고, ‘문명’이라는 명목 하에 한족의 체면을 세우느라 더 이상 잔혹한 복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3. - 내 성질이 유달리 나빠서인지 아니면 지난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항상 복수는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무저항주의자들은 인격이 없다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보복이란 누가 판단하고 어떻게 공평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때로는 관용은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 다. 그러나 즉각 이 말은 겁쟁이가 발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는 보복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또는 비겁한 악인이 창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남을 해칠 생각을 키워 가고 있지만, 그 사람이 보복할까 두려워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만하기 때문이다.(331~332)
4. - 이쪽 나라가 저쪽 나라를 적으로 삼을 때면 언제나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들이 적개심을 부채질하고 그들에게 일치단결하여 방어하거나 공격하도록 한다. 그러나 필요한 조건이 하 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민은 용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용감해야만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가가고 강적과 육박전을 벌이고 그리하여 원수를 갚고 원한을 풀 수 있기 때문이 다. 가령 겁이 많고 나약한 인민이라면 아무리 고무한다 해도 강적과 맞서려는 결심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그래도 남아 있으므로 발산할 장소를 찾 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소가 바로 동포든 이민족이든 상관없이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인민 이다. (334)
-그것은 군중에 대해 그들의 대중 분노만 불러일으키지 말고 내면적인 용기를 주입하려 노력 해야 하고 그들의 감정을 고무시킬 때에 명백한 이성을 극력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다. 게다가 용기와 이성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이제부터 여러 해 동안 계속 훈련을 해야 한다 는 것이다. (335)
<‘타마더’에 대하여 >
‘타마더’라는 욕은 광범위하고 치밀하다. 그것의 유래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문이 중시되어 귀족이라는 계급과 관직이 세습되는 것을 욕할 때, ‘하등인’의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이 ‘타마더!’였다.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은 발음을 같으나 글자는 속되지 않은 것으로 ‘타마더’를 사용하기도 했다. 벼락부자가 된 이들의 고상한 척 하는 행태를 보고도 이 욕은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타마더’가 위아래 사방을 포위하고 있다.
- 만약 고문대족의 견고한 낡은 보루를 공격하려면 오히려 그의 혈통을 겨누는 것이 전략상 참으로 훌륭한 계략이라 할 만하다. ‘타마더’라는 이 말을 가장 먼저 발명한 인물은 확실히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비열한 천재이기는 하지만.(344)
- 중국인들은 지금까지도 무수한 등급을 가지고 있고, 가문에 의지하고 조상에 기대고 있다. 만약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유성, 무성의 ‘나라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타마더’가 위아래 사방을 포위하고 있다.(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