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무덤 :: 나의 절열관~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0221(수) +5
손미경
/ 2018-02-28
/ 조회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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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루쉰세미나 2018년 2월 21일 손미경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나의 절열관(節烈觀)
‘세상의 도리가 야박해지고 인심이 날로 나빠져 나라가 나라답지 않다’는 탄식의 소리는 항상 있어온 일이나 그것에도 시대가 다르면 그 내용도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탄식을 하며 핏대를 세우는 일은 ‘날로 나빠지는’것으로부터 자기를 제외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최근의 ‘날로 나빠지는 일’의 구제 방법은 ‘節烈 표창하기’이다. 節烈 표창이란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죽어야 하고, 폭행을 당하면 죽어야 한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을 한바탕 칭찬해야 세상의 도리와 인심이 좋아지고 중국이 곧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 節烈을 지키지 않는 여자가 어떻게 나라를 해치게 되며 또한 세상을 구제하는 책임이 어째서 오로지 여자에게만 있단 말인가. 또 표창한 다음에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인가? 節熱이 도덕도 아닐뿐더러 다처주의자인 남자가 節烈을 표창할 자격도 없다. 지금의 암흑세상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남자들로 인한 것인데.
節烈이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해온 것은 송대에 ‘유학을 업으로 하는 무리들’ 때문이며 더 나아가 국민이 피정복 지위로 떨어지면 수절은 성행하게 되고 열녀도 이때부터 중시된다. 즉 자기만 있고 남은 돌보지 않는 민심에 여자는 수절해야 하고 남자는 오히려 여러 아내를 가져도 되는 사회에서 이처럼 기형적인 도덕이 만들어졌다. 이름도 없고 의식도 없는 이러한 살인 집단 속에서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들을 추도한 뒤에 자기와 남을 헤치는 세상의 몽매와 폭력을 제거할 것을 빌어야한다.
1918년 7월
2 지금 우리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은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과 위엄 가지고 있는 사회. 따라서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 논의의 출발점을 제대로 된 아비 노릇에 방점을 찍는다. 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다음 세대 사람들을 해방시키자는 의미이다. 무릇 생명이란 보존해야하고 이어 가야하며 그리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라면 부자관계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가 생명의 긴 여정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가 누구의 은혜를 입었는지 구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중국의 옛 견해는 이러한 도리와 완전히 상반되어 부부는 인륜의 중간인데도 오히려 인륜의 시작이라 하고 남녀관계도 일상사인데도 오히려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낳고 기르는 일도 일상사인데 오히려 하늘만큼 큰 대단한 공로라고 여긴다. 중심은 어린사람에게 놓여 있어야 하는데 어른에게 놓여 있고 장래에 치중하기보다 도리어 과거에 치중한다.
앞선 사람은 더욱 앞선 사람의 희생이 되어서 스스로 생존할 힘이 없고 도리어 뒷사람에게 모질게 굴면서 그들의 희생을 끌어내어 발전능력을 파멸시켜 버린다. 우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일체가 중개인일 뿐이다. 단언컨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어떤 은혜도 없다” 사실 중국에서 예전의 이상적인 가족관계, 부자관계 따위는 진즉에 붕괴되었지만 어째서 여전히 옛날 그대로인가? 그것은 허위 도덕을 제창하여 진정한 인정을 멸시한 데 있다. 각성한 부모는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 1919년 10월
3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노라는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 주인공. 소설 속에서 노라는 자신이 남편과 아이들의 꼭두각시임을 각성하고 인형의 집을 떠난다. 각성 후 떠날 수도 집에 머물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작품에서 떠난 노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 대개의 결론은 타락을 하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루쉰은 갈 수 있는 길이 없을 때는 꿈에서 깨우지 말아야 한다고. 길을 찾지 못 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리어 꿈이라고. 그러나 이미 깨어난 노라는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돈, 경제가 가장 중요 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극렬한 투쟁이 필요할 터이고 집을 뛰쳐나가기에 앞서 경제를 획득하기 위한 싸움이 선행되어한다고. 가정에서는 남녀에게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사회에서는 남녀가 서로 대등한 세력을 차지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정권이나 거대한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욱 번거롭고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군중은 영원히 연극의 관객일 뿐, 커다란 채찍이 내려쳐지지 않으면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1923년 12월 26일 베이징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 강연
4 천재가 없다고 하기 전에
문예계에 바라는 목소리 중에 천재의 탄생을 바라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현재 중국에는 한 사람의 천재도 없고 현재 예술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실 천재란 천재를 낳고 자라게 하는 민중에 의해 태어나고 성장하게 되는 것, 즉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좋은 흙이 있어야 하듯이 민중은 이 흙에 비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고(國故)정리나 창작숭배와 같은 논조는 한쪽으로는 천재를 진정으로 바라면서도 한쪽으로는 멸망시키려 하고, 이미 마련된 흙조차도 깨끗이 쓸어버리려 한다. 국수를 내세워서는 결코 천재가 태어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기풍을 가진 민중은 흙이 아니라 먼지이다.
천재를 바라는 우리들이 천재를 배양하는 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흙이 되는 역할은 천재를 바라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며 공연히 천부적인 천재를 기다리는 것보다 확실함이 있다. 이 점이 흙의 위대한 점이며 도리어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점이다.
1924년 1월 17일 베이징사범대학 부속중학 교우회 강연
4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내용을 보니 백사전설과 관계된 西湖에 있었던 탑이 뇌봉탑인 것 같다. 루쉰의 말대로 사람으로 변신한 백사와 청사가 허선이란 선비와 그것도 은혜를 갚기 위해 함께 살게 되었는데 무단히 법해선사가 이야기를 비극을 만들고 백사는 뇌봉탑에 갇히게 되었다는 전설. 이 짧은 글에서 루쉰은 왜 뇌봉탑이 무너진 것에 기쁨이 크다고 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법해선사의 쓸데없는 행위만은 아닌 듯하다.
1928년 10월 28일
댓글목록
손미경님의 댓글
손미경
한주 늦게 발제문 게시합니다. 게다가 후기까지 적을려고 하니 막막하여 간략하게 댓글로 대신 합니다.
이번 발제의 대략의 이야기는 아비들 그리고 여자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또 천재( 난세의 영웅 혹은 초인)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얻고자 하는것은 자유와 돈. 이것을 획득하기위한 노력은 '더 극렬한 투쟁'이 필요하며 그 극렬함는 성실하고도 집요한 정신을 요구한다. 마치 무뢰배 정신처럼.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미경샘은 우리공간에서 오래 공부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홈페이지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 거 같아요!!
홈페이지 운영자로서 반가운 마음에서 인사드려요 *^^*
세미나발제나 후기 외에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앞으로 더 자주 홈페이지를 이용해주세요. 미경샘^.^
삼월님의 댓글
삼월
절열관과 노라의 이야기, 아버지와 아이의 이야기.
성차별과 세대갈등까지 꿰뚫어보던 루쉰이라 지난주 세미나도 재미있었지요.
발제문이 올라오니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좋습니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집요하게 투쟁을 요구하라던 루쉰의 말이 떠올라 기운이 솟습니다. 무뢰배 정신 만세!
감사합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ㅎㅎ 무뢰배 정신 만세!
발제 정리 감사드려요~ 홈페이지에서 보니 또 새롭네요 ^^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미경님! 정말 이곳에서 만나뵈니 더욱 반갑네요.
저 역시 성실하고도 집요한 무뢰배 정신!!!!!
처세의 기술로 삼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