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발제] 오리엔탈리즘1부 3~4장 :: 0227(화)
임마
/ 2018-03-01
/ 조회 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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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적 전통이 존재한다 할 때, 그 기원에서의 의미와 각각의 시대적 상황에 있어서의 의미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며 그 의지 또한 다를 것이라는 단상에서부터 출발합니다(84~87, 오리엔탈리즘의 세 형태). 서설부터 지난 주까지도, 이번주 까지도 이런 입장에서 저는 사이드를 비판적으로 읽었습니다. 비판을 하기에 앞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가장 옹호적인 독해(most friendly reading)’가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을 실패하고 까대기만 하는 것 같은 자기비판이 있습니다만, 시간적 능력적 결핍을 핑계로 우선 준비한 발제를 하고자 합니다.
큰 가설은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과 나폴레옹 이후의 오리엔탈리즘, 사이드가 서설에서 비판한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의 부정적 시각, 텍스트 의존적이고 우월적인 오리엔탈리즘은 이후의 오리엔탈리즘에만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이 맞다면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 역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부정적인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비판받아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르며 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오리엔탈리즘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 하나를 제기합니다(세미나 과정에서 이 문장은 너무 지나친 문장이었던 것으로 수거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친절하게 독해하여 나폴레옹 이후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혹은 나폴레옹 즈음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비판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이드 본인이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데 사용한 논거를 마찬가지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여하튼 서설에서 제시된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시각의 기원에 이다지도 비판적인 것은 그 시각이 만약 문제라 할 경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문제의 기원을 정확히 알아야만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꼭 기원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지 모릅니다. 현 상황에 대한 적확한 파악, 그리고 매력적인 해결책의 제시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가, 는 아마 후반부에서 제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1장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게는 설득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장은 현 상황에 대한 파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 1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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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사업(Projects)
1.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스트
- 사이몬 옥클리
- 앙크틸
- 윌리엄 존스
- 이들의 특징 (149) : 사전 준비 불가 (도착하고 나서야)
<-> 나폴레옹(150) : 이집트 모두를 손에 넣고자 하는 목표, 장대하고 철저한 사전조사
2. 나폴레옹
“학자들을 군대에 편입” (151)
“원주민과 접촉하기 위해 학자들을 기용한 것이었고, 또 유럽의 지적 권위를 갖는 집단을 직접 본 충격이었다.” (153)
- 나폴레옹의 부산물 (162~163) : 과학사업, 지정학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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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동양에 대한 서양의 접근을 서술하기 위한 총칭적 용어, 즉 학문, 발견, 실천의 대상인 동양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행함에 있어서의 규율 (139)
: 그 경계선 동쪽에 놓여져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꿈, 이밎, 어휘의 집합
- 이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용됨, 그럼으로써 유럽은 안전하게 동양 위에 전진할 수 있었.
Q.
139p. “이슬람을 예외로 한다면, 유럽에서 동양이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일관하여 그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서양이 지배한 영역이었다.”
- ‘서양이 지배한 영역’ 이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인정하자.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앞부분이다. 이슬람은 유럽에 도전을 제기한 ‘동양’의 영역이었다는 것인데, 이슬람이 유럽에 도전을 가했던 것은 도전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인가? 혹은 다른 것인가? 이슬람이 유럽에 도전을 가했던 것은 지리적 인접성때문은 아니었을까? 중국, 한국, 일본 등이 유럽과 인접해 있었다면 동아시아 또한 유럽에 도전세력이 되지 않았을까?
사이드는, 위 인용 문장을 포석으로 깔고 ‘이슬람’에 대해 논지를 전개한다. “이슬람은 도발적인 존재였(140)”으며 경제적인 능력에서도 유럽에 확고하게 도전해왔다(139)고 서술한다. 이런 사이드의 언술 역시 그가 비판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언술은 아닌가?
2) 사이몬 옥클리 (1780년 <<사라센의 역사>> 저술, 142p)
: 이슬람이 이단이라는 견해
<-> 윌리엄 휘스턴
3)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 시리아 침략 : 1798년 (143p)
4) 앙크틸 (1759년 <<아베스타>>, 1786년 <<우파니샤드>> 번역)
그러나 앙크틸은 먼 과거로부터 무수한 문명이 흥망했고, 문학은 무한히 존재하여 왔다고 하는 비전을 거기에 도입했다. 그 후 더 이상 유럽의 여러 지역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145-146, 앙크틸에 대하여 슈와브의 평가)
5) 윌리엄 존스 : 앙크틸의 작업의 계승,
사이드에 의하면 나폴레옹 이전에 존재한 두 번째 오리엔탈리즘 프로젝트
“앙크틸이 광대한 전망을 열었다고 한다면, 존스는 번호화, 도표화 하며 그 전망을 닫았다.” (146)
윌리엄 존스,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의 창시자가 되었다 (148)”
Q. 앙크틸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봐야 하는가? 이 때의 오리엔탈리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6)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 사업 전부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149) : 사전에 무엇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
vs. 나폴레옹 : 철저한 사전조사
- “학자들을 군대에 편입” (151)
- “원주민과 접촉하기 위해 학자들을 기용한 것이었고, 또 유럽의 지적 권위를 갖는 집단을 직접 본 충격이었다.” (153)
- 나폴레옹의 부산물 (162~163) : 과학사업, 지정학 사업
7) 나폴레옹
151 “나폴레옹에게 동양이란 경험적 현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텍스트로부터 추출된 관념과 신화의 영역에 속하는 경험을 통하여 그의 머릿속에 존재했으며” (* comment : 이는 이제 우리가 익숙한 ‘오리엔탈리즘’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와 맥이 닿는)
-> (151) “특수한 전문적 지식이 직접 기능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이용된 최초의 보기가 되었다.”
152~153) “시민들은 점령군에 대한 불신감을 금방 잊은 듯 보였고” (152)
“학자에 대한 최고 예우”
“이러한 종류의 승리” (153)
“다른 어떤 사단보다도 ‘공격적’인 것이었다.” (156, 발제자 강조)
Q.
나폴레옹이 지적 권력을 통해 접촉하고자 한 충격적 방법 (153)을 사용한 것은 오케이. 지난 주 리딩에서 나왔던, 지적 권력이 선재하는 현상이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적 성격이라 할 때, 이와 맞닿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유사한 현상처럼 보이는 것과 나폴레옹의 의도가 그랬다고 연결 짓는 것까지 가능할까? 만약 최초의 의도는 그런 서양 우월적인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오리엔탈리즘이 되었다면 나폴레옹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종류의 승리”, “공격적” 등의 단어는 저자의 가치 판단이 너무 개입된 단어선택은 아닌가?
<<이집트지>> (159-160)
“어떤 지역을 현재의 야만상태로부터 구출하고, 거기에 과거의 고전적인 위대함을 회복시킨다는 것. 근대 서양의 방식을 통하여 동양을 가르친다는 것. 동양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과정에서 얻은 빛나는 지식에 근거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종속적인 위치에 두거나 그 행사를 자제한다는 것. ~~~ 동양에는 우리의 힘에 저항하는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주된 이유로 현실을 소유한다는 것. 이러한 것이야 말로 <<이집트지>>에서 완전하게 실현된 오리엔탈리즘의 투사라는 여러 모습이며, 나폴레옹이 서양의 지식과 권력을 사용하여 이집트를 철두철미한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섭함으로써, <<이집트지>> 그 자체가 성립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이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나폴레옹 원정에서 비롯된 일련의 텍스트 의존적인 자손들이 생겨났다.” (162)
168~169) “과거에 서양에서 아시아란 거리감과 소원감을 ~~, 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고, 소유하며, ~~”
169) “애매함은 없어졌고, 대신 온실에서 기른 실체가 대체되었다.”
제 1부 4장
“책에서 배운 것을 문자 그대로 현실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파멸적 실패를 감수하게 한다는 점이다.” (171)
Q.
4장의 첫 질문 : “영원히 존재하는 결점인가? / or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가 지배적일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이 존재하는 것일까?” (172) (* 이 질문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답하고 있는지, if not, 답정너)
- 172 윗 문장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상황은 다음의 두 가지”
- 논증 없이 바로 답정너 실행중. How do you think?
1)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상황
A.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고 위협적이며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것과 매우 가깝게 만나는 경우.
B. 실제로 성공이 초래되는 경우
- 텍스트는 현실적 성공이 보증하는 이상의 큰 위신을 갖게 된다. 텍스트는 서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현실조차 창조할 수 있으며, 이런 지식과 현실은 일종의 전통, 즉 미셸 푸코가 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낳게 된다. (174)
2) 1)에 비추어 나폴레옹과 드 레셉스
(* 드 레셉스 : 수에즈 운하 구상, 완성한 프랑스 외교관.)
Q. 나폴레옹과 드 레셉스에 대한 비판이 효과적인가?
앞선 두 상황, ‘멀리 떨어진 현상’과 ‘실제의 성공으로 인해 보강되는 권위’
나폴레옹과 드 레셉스를 논증하는 문장 자체는 전자이면서 후자의 논거를 갖다 쓰고 있다.
나폴레옹 이전엔 오리엔탈리즘에 ‘성공’의 경험이 없었다. 텍스트로만 존재했으며 거기에 어떤 권위가 부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에게 존재했던 텍스트가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다”(174)고 말하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음. (175에선 또, 오리엔탈리즘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서술중.)
“오리엔탈리즘의 담론이 그들의 행동에 의미, 명석함, 현실성을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다”(175) <- Q. 1) 정말 그런가? 논증이 없음
<- Q. 2) 나폴레옹에 존재하던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내용은 무엇인가? 현재 존재하는 오리엔탈리즘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소결 (177)
발제자는 앞서 사이드를 가열차게 깠지만,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의 기원이 어떠하였건 간에, 그것이 제국주의적 성공으로 인한 것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19세기라고 하는 위대한 시기에” 서양과는 상이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동양을 전제한 오리엔탈리즘이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177,178)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4) 180) 18세기 70~80년대 이후 1세기 반
문헌학자로 출발한 오리엔탈리스트/ 두 가지 특징
1) 유럽에 대한 동양의 언어학적 중요성 인식하며 새로운 과학적 자의식 형성
2) 동양은 언제나 동일하고 불변이고 획일적이며 근본적으로 특수한 객체라는 견해에 결코 변경을 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 주제를 구분하고 다시 구분하고 또다시 구분하고자 하는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이 두 가지 특징은 역시,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과 그 이후의 오리엔탈리즘의 구분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사이드는(혹은 역자는) 이 초기 오리엔탈리즘의 출발 지점에 대해서도 상당히 강한 어조로 피력하고 있으나 그 내용적으로는 현재의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나폴레옹 이후의 오리엔탈리즘의 특징과는 상당히 먼, “최초에 문헌학자로 출발했다면” 그 당시로는 객관적이고 새로운 과학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가치중립적인 의지가 가능할 수 있었음을 배제하지 못한다.
5) 나폴레옹 이후의 오리엔탈리즘
“예컨대 이슬람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엽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는 동양적인 것의 전형이 되었다.” (190~191)
‘순수한 오리엔탈리즘’ (“이것이야 말로 순수한 오리엔탈리즘이다, 195, 기브에 대해 말하며”)
196) 기브, 기브의 강연 <지역연구 재고> : 제2의 선택으로 새로운 접근 선언
“한번도 ‘자치의 의미를 이해한 적 없지 않은가” 외 (196)
“이와같은 동어반복, 청구 그리고 기각” (197)
현대의 오리엔탈리스트 (a.k.a. 지역연구 전문가) (197)
6) 위기 (192p~)
-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세력의 새로운 포진에 직면 (192)”
- 아브델 말레크 (193) 동양의 민족해방운동이 수동적이고 숙명적인 ‘종속민족’이라고 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개념을 뿌리째 파괴.
- 198) 혁명의 동란이 이슬람 동양 세계를 사로잡게 되었을 때.
199) “이러한 견해에 끊임없이 잠복되어 있는 것은, 서양인 소비자가 수로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이다.”
199)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다른 문화, 민족, 지리적 구분 속의 인간존재를 무시하고, 그 정수를 뽑아 버리며, 그것을 박탈하는 결과로 생기는 한계이다.
7) 챕터 마무리, 다음 챕터 예고(202) : “오리엔탈리즘이 그 영역과 경험 및 구조로 인하여 분명히 말살시킨 인간론적 가치를 실제로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