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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말과 사물 1025_3장 재현하기 후기 +2
아라차 / 2018-10-26 / 조회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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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 3장 재현하기 _ 후기



닮음 안에 있는 차이, 차이 안에 있는 닮음

 

 

 

역사는 분할선을 긋고 시대를 구분합니다. 16세기에는 유사성, 닮음으로 사물을 판단했고 이후에는 ‘동일성과 차이’의 시대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할선은 어떤 방식으로 그어지는 걸까요? 어떻게 하나의 사유가 다른 사유 앞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사유를 정립하는 걸까요? 그 시점을 설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푸코는 유사성의 시대인 르네상스와 차이의 시대인 고전주의 시대를 구분하면서도 이런 질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어쨌든 유사성은 이제 지식의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의 계기이자, 자세히 조사하지 않으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됩니다.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의 예로 유사성을 비판하고 데카르트도 비교 행위에 가장 순수한 형식을 부여하며 닮음을 거부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사유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어떤 닮음이건 비교라는 시금석에 따라 판단됩니다. 분석은 보편적인 방법으로서의 가치를 띠게 됩니다. 기호에 의한 정돈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지식은 동일성과 차이가 관한 지식이 됩니다. 

 

기호는 인식의 내부에서부터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기호가 확실성이나 개연성을 얻게 되는 것은 인식 때문입니다. 인식보다 더 오래된 절대적 기호를 되는대로 간파하던 인식은 개연적인 것의 인식에 의해 조금씩 구축된 기호들의 망으로 대체됩니다. 그러나 기호가 참으로 기호이려면 기호가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기호 역시 인식되어야 합니다. 기호는 개연성, 분석과 조합, 언어의 자의성을 인식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의미하는 요소는 자신이 의미하는 것에서 자신을 연결하는 관계를 추가적으로 드러낸다는 조건에서만 기호가 됩니다. 의미하는 요소는 무언가를 재현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의미하는 요소 안에 이 재현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재현은 지시이자 동시에 출현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자 자기 발현이기도 합니다. 재현의 분석과 기호의 이론이 서로 침투하여 완전히 뒤섞입니다. 의미의 분석과 상이한 기호의 이론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호가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고 강제적이고 집단적이라고 해도, 이 관계는 ‘재현’이라는 일반적인 요소 안에서만 확립될 수 있습니다. 재현은 기호의 이론이 ‘관념’을 이론의 근거로 끌어들였다는 방증입니다. 소쉬르가 일반 기호학의 수립을 시도하면서 ‘심리주의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정의를 기호에 부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푸코는 ‘닮음’이 인식의 영역 밖으로 떨어져나간 것 같지만 재현의 내부에, 관념에 틈새에 놓여있음을 발견합니다. ‘닮음’은 지식의 외부 가장자리에서 윤곽이 드러나는 형태, 전체적으로 인식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지울 수 없는 무언의 필연성처럼 인식 아래에 한없이 머물러 있는 관계의 기초입니다. ‘닮음’ 때문에 재현이 인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닮음은 상상력 쪽에 위치하거나 더 정확히는 상상력의 효력에 의해 나타나고, 역으로 상상력은 닮음에 기대서만 작용합니다. 상상력이 없다면 사물들 사이의 닮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재현들의 근접과 격리, 인접과 분리를 나타나게 하는 동시적 체계, 재현들의 순서관계를 복원하는 망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일성과 차이의 도표가 그려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사와 마주치는 것은 바로 이 영역에서입니다. 화폐와 가치에 관한 이론, 일반문법이 자리하는 곳도 이 영역입니다. 

 

다른 어떤 문화의 경우에도 그렇겠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도 역시 지식의 일반 체계는 한정되거나 명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지식의 일반 체계는 마치 암묵적이거나 불가피한 단일성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망에 따라 방법, 개념, 분석 유형 등으로 인간 자신이 들어가 버리기라도 한 듯이, 지식의 형태들이 서로 간에 친근성을 내보일 만큼 속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경험적 지식의 광범위한 망, 양적이지 않은 질서의 망이 마치 점선으로 이어진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감소했지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단일성, 동일한 배치와 동일한 질서를 찾아내려는 계획도 보입니다. 지식의 한계는 이렇게 재현의 질서를 세우는 기호의 재현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인식은 닮음을 배제하면서 확장되지만, 닮음 때문에 재현이 인식될 수 있는 것.
지식의 한계가 기호의 재현에 있는 것.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짜릿합니다. ㅎㅎ

나름 세심하다고는 하지만 작정하고 마음대로 시대를 구분하고 규정해대는 푸코를 보면서,
에리봉의 전기에서 고다르가 푸코를 욕하며 토마토를 던지는 부분이 떠올랐지요.
나도 던지고 싶다고!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댓글의 댓글

ㅎㅎㅎㅎㅎ 던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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