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무덤 :: 마라시력설 0213(화)
삼월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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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루쉰은 중국 문화의 가을에서 어떤 적막을 느끼며, 다른 나라의 문화와 문학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대상은 마라시파. 마라는 마귀, 사탄을 뜻하니, 시인 바이런이 그렇게 불렸다. 바이런을 중심으로 대체로 반항에 뜻을 두고 행동에 목적을 두어 세상으로부터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시인들이 포함된다.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 시인들을 두려워할 것이다.
2. 평화란 인간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요순시대를 그리는 사람들은 진화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인간이 마라시파의 힘을 얻으면 왕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향상되어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극점까지 도달할 것이다.
3. 문학의 쓸모란 ‘쓸모없음의 쓸모’이다. 문학은 쓸모없는 가운데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다. 문학이 살아남으려면 인류의 보편적 관념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도덕이라는 것은 이 인류의 보편적인 관념에 의해 형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와 도덕이 합치되면 살아남지만, 도덕에 반하는 시는 죽는다. 논리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시는 때로 도덕에 반하면서도 존재한다. 옛 규범을 벗어나 저항, 파괴, 도전을 담은 바이런의 시가 그랬다. 평화로운 사람은 두려워하며 그를 사탄이라고 불렀다. 착한 노아의 자손이었던 인류에게도 격세유전이 나타난다. 대홍수와 함께 멸종되었어야 할 사악한 이들이 후대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악마파 시인의 출현을 이상히 여길 일이 아니다.
4. 바이런은 스칸디나비아 해적의 후손이다. 그의 시 속 인물들은 사회에 반항하고 복수하려 한다. 바이런의 선악론은 니체의 선악론과 정반대이다. 니체는 약자들이 강자를 악으로 여긴다 했지만, 바이런은 사람들이 신의 강함을 선과 연결시킨다고 본다. 바이런은 신이 일종의 권력이요, 사탄 역시 권력임을 알았다. 그래서 신에 저항하는 사탄을 돕고자 한다.
5.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은 세상과 세속에 대해 분개하고 거대한 진동을 일으켜 대척되는 무리와 한바탕 싸움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점차 사회와 충돌하고, 점차 사회로부터 배척당한다. 바이런은 그리스의 독립을 원조했고, 군대에서 죽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돕기도 했다. 그는 힘을 귀중하게 여기고 강자를 숭상했으며 자기를 존중하고 전쟁을 좋아했다. 카인의 입을 빌려 “악마라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6. 영국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셸리는 어릴 때 「무신론의 필연」이라는 글을 쓰고, 학교에서 쫓겨났고 곧 집에서도 나왔다. 아일랜드로 건너가 지식인을 성토하는 글을 발표하고, 정치와 종교를 혁신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시극을 썼으나, 사회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했고 배우들은 상연을 거부했다. 거짓되고 나쁜 습속에 반항했으므로, 거짓되고 나쁜 습속으로부터 저지당했다. 세상에서 개혁과 파괴를 질시하는 자들은 한쪽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며, 사회가 그 말을 알아듣는다면 파괴는 더욱 귀하게 될 것이다.
7.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 레르몬토프, 고골 세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푸시킨은 낭만파 염세주의자였다. 바이런이 절망하여 분투한 것과 달리 푸시킨은 쉽게 변했다. 레르몬토프는 조금 더 강건하게 선악과 경쟁의 문제를 고민하고 습속의 도덕적 대원칙을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푸시킨처럼 레르몬토프도 결투 중에 죽었다. 푸시킨이 염세주의의 외형으로 황제에 굴복했다면, 레르몬토프는 소극적이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8. 미츠키에비치는 푸시킨과 동시대에 살았던 폴란드의 낭만파 시인이다. 바이런에게 영향을 받았고 나폴레옹을 숭배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국수 쪽으로 나아갔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글을 많이 썼는데, 그중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도 있었다. 러시아 황제를 향한 그의 분노와 증오, 복수심은 매우 깊어 작품 속에도 드러났다.
9. 헝가리의 페퇴피는 식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부터 시를 썼으며, 군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1848년 혁명부터 정치에 기운 시를 썼으나, 그가 쓴 글은 종종 감정이 지나치거나 군중에 위배되었다.
루쉰은 앞서 서술한 사람들이 하나의 유파로 통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두 강건하여 흔들리지 않고 성실과 진실을 지켜나갔으며, 대중에게 아첨하며 구습을 따르는 일은 하지 않았고, 웅대한 목소리를 내어 자기 나라의 신생을 일깨우고 천하의 위대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중국은 홀로 선진문명을 이루어 으스대고 있으나, 쇄국으로 인해 다른 나라로부터 멸시받고 허둥대며 변혁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루쉰은 이런 고립으로 인해 중국이 타락하여 실리만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본다.
바이런과 셸리가 악마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인간일 따름이며, 이 시인들도 사실 악마파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이들은 대개 열성적인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은 자들이며, 열성적인 마음으로 서로 의기투합한 자들이다. 그들은 군중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검투사처럼 무기를 잡고 피를 흘렸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피 흘리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재앙이다. 다시 루쉰은 중국에서 정신계의 전사라고 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 지극히 진실한 소리를 내어 중국인을 훌륭하고 강건한 데로 이끌 사람. 최후의 애가를 지어 천하에 호소하고 후손에게 물려 줄 사람. 그런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거나 군중에게 이미 살해되어, 중국은 마침내 적막해졌다.
유신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죄악이었다고 자백하며 회개하자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루쉰은 신문화를 소개할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막 속에 있는 시베리아의 소년에게 벚꽃과 꾀꼬리의 존재를 알려줄 사람. 중국의 적막을 깨뜨리기 위해 중국인이 아직 보지 못하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알려줄 선각자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루쉰은 깊은 사색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