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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후기] 0125 :: 성의 역사3_4장 육체 +8
연두 / 2018-01-30 / 조회 2,209 

본문

후기가 늦어 죄송해요. 후기를 목빼고 기다리실 분들 계실 텐데... 유택 보고 있나?


이날의 세미나는 대청소 이후 반갑게 등장하신 장석관님을 환영하며 약간은 어수선하게 시작되었다. 정리와 청소를 끝내서 매우 개운하면서도, 수도가 동파되어 부엌 개수대에 설거지꺼리가 가득한 상태였으므로 매우 찝찝하기도 하였다.


4장을 아주 경제적으로 읽으려면 말미의 4페이지만 읽어도 될 것 같다. 유독 친절하게 푸코는 자신의 주장을 4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앞선 45페이지 분량의, 지나치게 세세한 (당신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아프로디지아를 다루는 의학서 분석에 대한 사후배려같은 것인지도.


1. 고대의 의학에서 아프로디지아의 관리법이 아무리 상세하고 복잡하더라도 중요성을 과장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양생술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양생술에서는 영양섭취, 식이요법이 가장 중요한 전통을 이룬다. 당시 의학에서 중요한 일은 먹고 마시는 일이다. 성과 성의 관리법에 대한 관심이 음식물 처방의 엄격함보다 뚜렷이 우세해지는 때가 바로 유럽 사회의 윤리사에서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2. 이러한 의학적 관리법에서 성행위에 대한 일종의 병리학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후대에 성 행동이 병적 일탈을 가져오는 것으로 인정되면서 서구사회에서 일어났던 병리학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의학은 성행위를, 유기체의 동요로 인해 매 순간 영향받고 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영역으로, 따라서 역으로 성행위가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질병들을 초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편입시킨다.


3. 이러한 의학은 성적 활동에 극도의 경계를 요구한다. 주체는 자신이 따라야만 할 규칙들을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런 위험이나 손실 없이 적절하게 쾌락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용하게 마련인 복잡하고 수많은 조건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진리’의 담론에 붙들어 두어야 한다. 담론은 주체에게 성행위의 본질과 관련하여 성행위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하고 엄밀하게 그 본질에 순응하는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그는 캉길렘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분석을 인용한다. “치유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의학적 활동 안에서의 건강한 상태”이며, “의사가 아니라 건강이 환자를 치유”한다. 이 말은 4장 서두에 푸코가 소개했던 당대 의학의 역할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4. 이러한 충고와 이후 기독교 도덕 및 의학적 사유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희소성을 지향하는 엄격한 절제의 원칙, 성행위의 문란으로 야기될 수 있는 개인적 불행이나 집단적 병에 대한 강박관념, 욕망에 대한 엄격한 통제 및 판타지아에 대한 싸움, 쾌락을 성 관계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의 폐기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런 유사점들 사이에는 직간접적 연속성마저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와 근대 서양의 성 윤리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절정기에 이미 몇 가지 본질적 원칙이 확립되어 있었다는 인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고대의 성 윤리와 아프로디지아의 관리법에서는 주체가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문제가 중요하였다.


푸코는 자기 배려의 큰 맥락 안에서 아프로디지아, 성 윤리 확립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그가 지나치게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육체를 둘러싼 로마 헬레니즘 시대 건강의 실천이란 문제는 성의 역사 2권에서 살펴본 양생술의 강화로 볼 수 있다. 양생의학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생활을 지배하여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방식은 철학자들이 영혼을 감독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2세기 의학에서 아프로디지아의 문제는 신체, 건강, 환경, 상황에 대한 염려(두려움)이 커지는 경향 속에서 제기되었다. 개체와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는 온갖 간섭의 그물망이 있고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상태와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주의가 요구된다. 이것은 주체가 정치활동에서 복잡한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하나의 접합점을 형성하고 자신의 에토스를 세심하게 실천해야 하는 것과 유사한 모양새다. 후기를 정리하며 그가 왜 ‘육체’를 4장으로, 왜 자기 연마, 자기와 타인들이라는 주제 다음에 배치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각각의 그물망 속에서 끊임없는 주의를 요구하는 실천의 형태라는 모양새를 떠올리는 것 밖에….


여튼 그가 성의 역사를 통해서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바, 기독교 혹은 근대 서구의 성 윤리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절정기에 이미 그들의 본질적 원칙이 수립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그들은 그 유형적 동일성과 직간접적 연속성을 근거로 들지만 그것은 근본적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쾌락의 금기, 혹은 적절한 성행위와 병적 성행위의 구분 혹은 범주화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주체의 합리적인 건강의 실천이고, 주체가 자기의 신체를 둘러싼 건강에 대한 염려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성 윤리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푸코는 당대가 의학적 사항에 관한 관심이 매우 많았던 때임을 상기시키며 의학이 수사학, 철학에 근접한 상위학문으로 인정받았음을 언급한다. 우리는 당대의 의학이 수사학과 유사함에 대부분 동의하였다. 의술은 유려한 언술에 다름 아니었다며. 그리고 남성의 시각으로 서술된 의학서들의 남성/여성의 육체, 행위와 그 영향에 대한 기록들은 지난 세미나 내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푸코의 계보학은 연속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읽지 않으면 우리를 지치게 하기 쉽습니다.
왜 이것을 읽고 있나? 하는 물음조차 던질 수 없을 정도로... ㅎㅎ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푸코가 왜 이것을 말하고 있나?를 궁금해하며 읽어가면 될 듯 합니다.
의학서의 내용들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변화가 나타나는 지점들을 유의해서 봐야 할 텐데요.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을 성에 대한 억압 가설을 비판하면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권력이 억압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권력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합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해성사하듯 누군가가 원하는 진실을 토해냅니다.
억압가설 안에서는 저항마저도 담론 안에 휩쓸립니다. 저항을 하던 순응을 하던 행위는 담론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권력'과 '무력한 피지배자'의 도식을 상정하고 나면
개인은 사회구조에 무지하거나 혹은 무력함을 느끼는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보기에 후기의 푸코는 명백하게 그물망의 권력을 활용하고 실천하는 윤리적 주체의 계보를 살피고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강자'의 이미지를 떠올려도 좋겠고, 현실 속에서 윤리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는 모델을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푸코는 성의 역사 2권과 3권에서 도덕과 윤리가 분리되는 지점, 윤리가 주체와 연결되는 지점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성의 역사 2권에서는 도시국가 중심의 고대 그리스에서 자기관리의 기술이었던 가정관리술, 양생술, 소년애를 살폈습니다.
성의 역사 3권의 전반부 자기연마, 자기와 타인들에서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사이 헬레니즘 시대의
자기통치와 윤리관의 변화를 살폈고요.
성의 역사 3권의 후반부 육체와 아내, 소년애에서는 기원후 1,2세기 로마시대에
자기통치의 문제가 훨씬 더 개인의 윤리 문제에 근접한 양상에 대해 살필 것으로 예상합니다.
각 영역뿐 아니라 미세한 시기별 구분도 중요하게 봐야 할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시간의 중요한 지점은 로마 시대 의학이 그리스 시대의 보편성을 벗어나
개인의 문제로 사유되었다는 점이겠지요.

댓글로 너무 길게 떠들어 죄송합니다.
세미나 시간에 그렇게 떠들어 놓고도 이렇게 말이 많네요.
책이 끝나가니까 전체 정리를 해야겠다는 노파심에 그만...

후기 써야겠다고 계속 압박 느끼고 있는 거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요. ㅎㅎ
아직 많이 늦지도 않았지만, 성실하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댓글의 댓글

발제에서부터 지쳐 버려서 후기 쓰기가 힘들었네요. ㅎㅎ 척 알아보는 반장님.
도대체 왜 저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좀 아리송하네요.

1,2,3권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를 해 주니 좋네요. 전체적인 그림이 좀 잡힙니다.
시기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구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답변 고마워요!

그렇지만 내가 가진 삶의 문제 의식과 맞닿는 지점이 많지 않으니
대체 저 문제가 푸코에겐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많아요.
4장의 문제도 마찬가지고.
성의 역사 1,2,3 권을 연속해서 읽는 것이 저한테는 대체로 고문이었던 터라.
저는 따로 따로 읽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이제 끝나가네요. ㅎㅎ
지난 주 잠시 환희 이후 금방 고문. ㅡㅡ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댓글의 댓글

와~ 완전 정리가 쏙쏙 대네요 ~~
항상 감사합니닷~~ ^^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성이 중세나 지금처럼 도덕의 잣대나 금기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런 식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문제였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었다.
성이 실질적으로 그 자체로서는 악이 아니지만, 그 형태와 결과들로 인해 악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런 논의가 이어진 것 같은데,
이 시대 이런 양상들이 주체적 삶의 기술로 이어지지 않고 억압의 담론으로 (주로) 계승되었다....
쾌락과 절제가 자기 윤리와 자기를 도덕적 주체로 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푸코가 문제삼는 부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애매해지는 이 순간....

잠이 덜 깨서 그런가??

후기 잘 읽었어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용~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댓글의 댓글

고대 그리스 부터 로마초기의 그 묘한 굴절 포인트를 말해주지만 그러고 책이 끝날꺼 같아 몬가 불안합니닷
도시국가 제정 시대 등 정치 형태가 바뀌면서 삶이 바껴지고 거기에 필요한 자기를 세우는 방법이나 내용이 바뀌고.
그러고 ~ 책이 중세나 현대 로 안넘어 가고 끝날꺼 같아서..
내 맘 같아서는 현대 까지 쭉쭉 연결 고리를 찝어 줬으면 합니닷.

김현님의 댓글

김현

저도 반장님 말씀에 공감하면서 읽고는 있습니다만...
지난 2권의 양생술~소년애 파트, 이번 3권의 육체~역시 소년애 파트까지는 지칩니다.
저는 맥락을 좀 잡으려는 취지에서 각 파트별로 결론 먼저 읽고 읽는 편인데도
지나치게 자세하고 친절(?)하지만 아리송한 전개에 약간 진이 빠지긴합니다. ㅜㅜ
그래도 끝이 보이기는 하는군요........
육체부터 마지막 남은 파트까지 이제는 좀 지리한 느낌인데,
연두님 발제하시고 후기 남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위에 아라차님이 해주신 말씀은 푸코 읽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쾌락과 절제가 자기 윤리와 도덕적 주체로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성적이라는 것이 악으로 통용되는 것이 보편화되는 시기(기독교 사목교서 이후)와
성행위가 질병의 '가능성'으로 여겨지는 시기(3권의 시기들),
성행위가 단지 양생술의 측면에서 고려되는 시기(2권의 시기들)
이런 차이점을 가진 시기에서의 자기 연마와,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성적인 것 자체가 악으로 여겨지는 시기에는
각 주체가 그것을 도덕적 보편 규율로 상정하고 그것이 억압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게 되는 것을
문제 삼고자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지만 아무말 해봅니다.;;)

보여요님의 댓글

보여요

네 보여요 글자가 보여요 네 보여요~~~
근데.. 원글도 댓글도 휘리릭 읽을 수가 없는 이 압박!
까망건 글자요 흰건 바탕이라.. ㅎㅎㅎ
나중에 찬찬히 읽을게요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2천년전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적인 표상 때문인지,
아니면 2천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세상 때문인지
자꾸 2018년에 사는 현재의 나를 대입해서 읽게 되기도 합니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이야기를 하면서 권력이 업압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자기통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절제를 강조했다는 내용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자꾸 대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살짝 아주아주 살짝 집고 넘어 가고 싶은건.
이때 이야기한건 백인 남성이 스스로 자기통치를 하려는 부분이고,
그해 비해 여성은 인간도 아닌 사물이나 소유물(재산)의 위치에서 지배 받는자입니다. 스스로 윤리적 주체를 세울수 없는자이지요.
(물론 이번 "아내" 장에서 전보다는 동등해진것 처럼 말이 되어지지만 그것도 자유인 남자의 위치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고 완전한 동등이 아니라고 언급 됩니다.)

푸코를 읽으면서 다른 세미나를 생각하면 논점도 흐려지고
텍스트에 집중하기 위해 좋은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중간에 책 내용에 아내와 여성이 언급되면서
페미니즘 세미나 내용과 살짝 겹치는 부분이 있었지요~
인류사 전체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부권제 사회였고, 여성의 위치는 남성의 위치는 다르게 상정 되었다는것을 (아주)살짝 언급 정도 하고 싶었는데.

제 생각이 정리가 안되다 보니 .. 이야기 하고 또하고 해서
몬가 제가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었던것 처럼 되어 버린것 같아요 . ^^;;;;;;;

그리고 육체보다는 아내가 쫌더 (그나마) 재밌었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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