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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발제] 0201 :: 성의 역사3_5장 아내
gkpaul / 2018-02-01 / 조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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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셈나] 2018.2.1 발제 《성의 역사3 - 자기배려》

 

제5장 아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까지의 시기에 나온 일련의  텍스트들에서 우리는 결혼관습에 나타나는 고대와는 다른 어떤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첫번째 새로운 사실은 결혼생활의 기술이 특히 부부사이의 인격적 관계, 그들을 결합할 수있는 유대, 서로에 대한 각자의 태도와 같은 어떤 특정한 요소에 점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으로 보인다. 두번째 새로운 사실은 결혼한 남자가 자기에게 행사하는 자신의 주권이 점점 더 타인에 대한 의무의 이행과 특히 아내에 대한 어떤 존경의 실행으로 표명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기에 대한 배려의 강화는 타인에 대한 가치부여와 병행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대와 균형으로서의 결혼기술이 부부간의 성 관계에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한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플루타르코스의 저작)

이제 부부생활의 양식은 결혼생활에 대한 전통적 계율로 부터 해방된다. 우리는 이러한 양식을 부부 유대의 기술, 성적 독점의 주장, 마침내 공유된 쾌락의 미학 속에서 상당히 잘 찾아볼 수 있다.

 

1. 부부의 유대

 

[1] "쌍수적 관계."

제국 시대의 스토아학파 학자들은, 출산과 공동체적 삶 양자에 기여하기 때문에 결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고전적 테마를 되풀이하면서도 동시에 명백한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무소니우스는 여러 공식에서 결혼의 목적을 생식적 목적에서 공동체적 목적으로 강조점을 전이시킨다. 그는 어느 목적에 우선권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러한 목적들이 공동생활의 형태라는 유일한 형태 안에 포함되어야 하며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과 자식을 함께 양육한다는 것은 본질적 형태가 갖는 두 측면이라고 한다. 결혼은 본질적 목적으로서 직접 결혼으로 이끄는, 그리하여 결혼을 통하여 공동의 자손과 삶의 동반관계라는 결혼에 내재된 두 결과로 이끄는 원초적이고 단일한 경향에 뿌리박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자연에 부합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결혼하는 것이라는 무소니우스의 주장을 이해하게 된다.

히에로클레스는 짝을 지어 사는 인간의 쌍서적 특성과 무리를 이루어 사는 군서적 특성으로 인간 본성을 이원적으로 파악하고 도시국가는 가정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지지만 가정에서 그 근원과 함께 완성되는 것은 부부이며, 따라서 가정은 부부 주변에서 조직될 때만 완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물로서, 이성적 생물로서, 이성에 의해 인류에 연결된 개인으로서, 어쨌든 인간은 부부적 존재이다.

 

[2] "보편적 관계."

결혼의 실행 여부와 관련한 논쟁에서 에피쿠로스학파, 견유학파는 원칙적으로 반대했지만 스토아 학파는 호의적이었다. 결혼을 해야한다는 원칙은 결혼의 이익과 불편함을 비교하는 문제와 분리되어 자연에 부합하고 만인에게 유용하므로 보편성을 띠는 삶을 선택하라는 요구로서 모두에게 표현된다. 한편 이러한 결혼의 의무와 여러 상황 간의 관계에서 철학자의 결혼이 오랫동안 토론의 대상이 된다.

무소니우스는 철학자의 지도적 역할을 근거로 철학자의 결혼생활이 의무적(보편적으로 유효한 삶의 형태 부여)이고 필수적(타인의 삶의 모범을 보일)이라고 주장한다. 에픽테투스는 이상적 견유주의자의 결혼 포기에 대해서 이기적 의도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인류라는 보편적 가족에 복무함을 납득하지만 거기에 현재 상황적-한계(만일 현자들의 국가가 도래한다면 전투적 철학자의 결혼 거부는 불필요)를 설정함으로 해서 결혼의 보편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3] "독특한 관계."

이제 부부간의 유대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긴밀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무소니우스: 아드메투스 왕-아내 알세스트 경우) 온갖 삶의 양식을 규정짓는 역할을 했다. 결혼은 두 배우자가 함께 공통된 하나의 삶을 이루어내는 어떤 행동양식을 촉구한다. 공통된 삶의 양식은 함께 사는 기술(상대방의 존재, 말하는 기술 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로부터 결혼생활은 새로운 단일체(진정한 윤리적 단일체-호모노이아, 완전한 융합-사랑을 통한 결혼)를 구성하는 기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나온다.

결혼생활의 기술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기에 대한 주의와 둘이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배려가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내'라는 여자와의 관계가 삶에 본질적이라면, 또 인간 존재가 누군가와 공유하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부부적 개인이라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와 타인과 맺는 관계 사이에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양립불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생활의 기술은 자기 연마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부여된 결혼생활의 심사숙고한 형태와 특별한 양식은 일정한 상호적 형태의 형성에 의해 정의된다. 배우자는 특정한 파트너로서 자신과 동일한 존재이자 자신과 함께 실질적 단일체를 형성하는 원소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 연마 면에서 결혼의 주제가 갖는 모순이며, 자기 연마를 발전시켰던 철학 전체가 갖는 모순이다.

 

2. 독점의 문제

 

기원후 초기 몇 세기에 표명된 것으로 보이는 엄격한 결혼윤리에서 성관계의 '부부화'-직접적(결혼 외부 성관계 배제) 상호적(다른 곳 배제)인 부부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1] 무소니우스가 혼외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관계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성관계에 내재된 죄의 성격을 제거하기 위해 결혼이 성관계에 부과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존재에게는 결혼관계 안에 포섭되어 거기서 합법적 자손을 생산하는것이 성행위의 본성 자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행위, 부부의 유대, 자손, 가족, 국가와 내세, 인간 공동체, 이 모든 것은 각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계열을 이루며, 이러한 계열에서 인간은 삶의 합리적 형태를 발견한다. 더러움은 성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형태와 합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결혼으로부터 성행위를 분리하는 '방탕'에 있다.

 

[2] 이처럼 성적 관계와 쾌락이 합법적 부부관계에 소속됨으로써 간통이 새로이 문제시되고 이중적 성적 정절의 요구가 나타난다. 무소니우스는 대칭적 부부의 정절을 엄격하게 제시하고 이러한 스토아적 결혼의 기술은 정절의 형태에서 남녀를 동일한 방식으로 구속하길 요구한다.

신분적 구조라기보다는 애정적 유대이자 존경의 관계인 결혼은 모든 성적 활동을 안으로 귀속시키고, 결혼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성적활동을 단죄한다. 그리하여 결혼은 두 파트너 사이의 대칭적 정절을 요구하는 경향을 지니면서도, 또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애착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신중함이 조화되어야 하는 타협의 장소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제 남편이 밖에서 얻는 쾌락은 더 이상 남편의 신분적 우월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아니라 아내가 자신의 명예를 보전하면서도 양보와 관용을 통해 남편에게 자신의 애정을 증명해 보이는 만큼 남편 스스로가 더욱더 제한해야 하는 어떤 품행상의 과실의 결과이다.

 

3. 결혼의 쾌락

 

혼외에서 성 관계를 갖지 말라는 '독점의 원칙'. 부부간의 성적결합은 쾌락의 경제책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탈쾌락화'의 요구. 부부는 자손의 출생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식의 목적화'. 이 세가지가 바로 제국 시대 초기에 몇몇 도덕가들이 발전시키고 후에 스토아주의가 정교화한 부부생활의 윤리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주요 특질들이다.

결국 결혼과 아프로디지아의 관계는 결혼의 사회적, 정치적 목적의 우위를 제시하거나 쾌락의 본원적이고  내재적인 악을 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연적, 이성적, 본질적 의속성에 의해 정립된다.

쾌락의 활용을 결혼의 틀안에서 유지시켜야 할 책무는 스토아주의가 고취한 이 도덕에서는 자신과의 관계에 고유한 요구들을 만족시키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존재를 해치지 않고,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서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결혼 내에서 성적 쾌락들을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시된 규약은 플루타르코스의 텍스트들처럼 부부의 삶에 대해 가장 상세한 텍스트들에서 조차도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식, 관계들의 양식이다. 즉, 결혼의 도덕과 부부생활에 대한 충고들은 보편적으로 유효한 원칙인 동시에, 자신들의 삶에 영예롭고 아름다운 형태를 부여하기를 원하는사람들을 위한 규칙이다. 그것은 어쨌든 몇 사람에 의해서밖에는 실행되지 않는 존재의 미학이 지닌 불문율적 보편성이다.

부부간의 의사소통에서 아프로 디지아에 부여된 역할을 고려하여 아프로디지아의 가치가 강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소년애에 인정될 수 있었던 특권들에 대해서 점점 더 회의적인 방식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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