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후기] 실종자 -1.화부 2.외삼촌 +2
토라진
/ 2018-02-03
/ 조회 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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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과 레드 문으로 화려한 밤을 보냈던 하늘은 다음 날 아침에도 기분이 좋은지 한껏 푸르렀습니다. 우리는 오랜 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건넸죠. 커피향과 맑은 햇살, 그리고 <실종자> 표지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카프카와 함께 말입니다.
그 날의 분량은 1.화부, 2.외삼촌이었습니다. 화부 편은 단편에서 읽었던 내용이라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번역자가 달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2.외삼촌 편은 카프카 소설답지 않게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묘사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분량이 적고 내용 또한 복잡한 편이 아니어서 논의가 간결해 질 것 같았지만......늘 그랬듯이 이야기는 점점 깊어져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흐릿해진 기억으로나마 그 날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오랜 만에 다시 만난 카프카의 글들을 다시금 곱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지는 도착하지 않고 있다.
<실종자>에서 카알은 미국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우산을 잊어버린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시 배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정작 배 안을 헤매다 화부를 만난 후엔 우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맡겨둔 트렁크에 대해 걱정은 하지만, 트렁크와 얽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잠시 떠올릴 뿐 찾기를 이내 포기합니다.
사실 카알은 떠밀리듯 고향에서 떠나왔기 때문에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순간, 카알은 이미 ‘실종자’였던 것입니다. 낯선 공간에 갑자기 떨어진 한 인간이 그곳에서 헤매고 분투하는 설정은 이번 작품에서도 반복됩니다.
카알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국에서 정착할 방법도 딱히 없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는 의미가 없어져버린 거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화부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모습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 하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부에게 향하는 과도한 애정은 그의 외로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작품에서 여성은 인물이 의지하는 의지의 표상처럼 드러나고 인물과 소통하는 남자들과는 동성애적인 교감을 보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깊은 분석이 필요할 듯 합니다.)
하지만 <실종자>는 다른 장편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인물이 어느 장소에 느닷없이 떨어지는 설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알이 미국에 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녀를 임신시켰고, 이로 인한 양육비와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 부모가 미국행 배에 카알을 태워 보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장소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모호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들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종자>와 더불어 <소송>과 <성>은 고독 3부작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실종자>는 이 세 작품들 중 가장 먼저 쓰여진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은 마지막 작품입니다. <성>은 앞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장소나 인물의 행동과 사건들이 종잡을 수 없고 훨씬 더 모호합니다. 결국 카프카는 작가적 역량이 커질수록 좀 더 불분명한 이야기로, 논리와 체계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글쓰기가 나아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생전에 작가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현실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와 기존 문단에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태인이지만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했으며 직장인으로서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문학에 대한 열병으로 매일 밤 펜을 들어야 했던 카프카는 어쩌면 스스로를 ‘실종자’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이 독특한 정체성과 그가 인식한 세계는 기존의 질서의 틀로는 해석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의 문학이 가지는 특이점은 이 세계의 바깥, 또는 그 경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결국 카프카는 어딘가로 부터 늘 떠나온 상태로, 어딘가에 닿지 못하는 여행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부친 편지가 받는 이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듯이 말이죠. 그것은 어쩌면 카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는 그 닿아야 할 미국, 그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듯 보이니 말입니다.
전자렌지가 펜을 든다면?
‘2.외삼촌’에서는 우연히 만나게 된 삼촌 집에서의 생활이 비교적 상세히 그려집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삼촌은 카알이 영어공부에 매진하도록 가정교사를 고용하고 승마도 배우게 합니다. 여기서 삼촌은 카알이 현실에 적응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하지만 카알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삼촌의 감시와 지시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어딘가에 머물러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자 다시 떠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카알의 숙명이자 인간의 보편적 심리인 것이죠.
삼촌의 지인인 풀룬더 씨와 함께 그의 별장으로 가면서 이렇게 느낍니다. ‘카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저녁에 뉴욕 거리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보도와 차도를 횡단하면서 마치 소음을 몰고 가는 회오리바람 속에 있기라도 한 듯 차는 매 순간 방향을 바꾸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 소음은 마치 인간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낯선 어떤 것에 의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카알은 ‘낯선 어떤 것’에 대한 부름에 늘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낯선 어떤 것이 자극을 가할 때, 내부의 욕망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충돌하고 구부러진 미로들을 헤매며 비틀거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틀거림으로 스스로의 욕망과 열정을 키워가며 변화합니다. 때론 변태를 겪기도 하면서요.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변화시키면서 점점 더 높은 온도의 열정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방식. 그것은 ‘분자의 회전에 의해 분자들이 서로 밀고 당기거나 충돌하는데 이러한 운동 에너지가 음식물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는 전자렌지의 원리와 닮아 있습니다.
카프카의 이야기는 이야기 안에서 이야기를 부수는 방식이기도 하며, 이야기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말 걸기’이기도 합니다. 그에게서 세계는 이러한 지점들에서 생겨납니다. 기존의 모든 세계는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자렌지가 작동하는 것처럼 그는 이야기에 파장을 만들고 그 미세한 진동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허물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허물어진 세계와 관계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늘 끊어지고, 금세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죠.
꿈을 꾸면서도 깨어 있는 자각몽처럼,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꾸는 몽환적인 상태의 그 희뿌연함을 전자렌지에서 꺼내진 음식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훈기처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카프카는 어느 날 갑자기 전자렌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자렌지적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한껏 웃었던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카알의 미국 생활을 기대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했습니다. 카프카 글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너무 카프카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자연님의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서로의 안부도 묻고, 잠시 잊고 있던 카프카도 돌보며 즐거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점심으로 마련된 뜨거운 떡국으로 훈훈하게 덥혀진 몸과 마음은 세미나 시간 덕분에 얻은 덤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 합류하게 되는 승운님과 현님과 함께 더욱 재밌고 심도 있는 토론을 기대해봅니다.~~^^
댓글목록
김현님의 댓글
김현
첫 세미나를 빠져서 아쉬웠는데,
후기로 첫날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저 역시도, 실종자는 세 장편 중에 가장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많이 느꼈던 작품이었습니다.
마치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속을 헤매는 느낌이 주된 정서였다면,
아메리카라는 설정(결국엔 이 구체적인 설정도 나중엔 불분명해지겠지만요)과 전개가
다른 작품에 비해서 구체적이고, 덜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말씀하신대로 몽환적이기도 하고요.
아메리카라는 구체적 지명은, <성>에서 불쑥 등장했던, '스페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자렌지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ㅎㅎ
김이 자욱한 것만 생각했는데, 카알은 전자렌지 처럼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군요.
자리에 함께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오는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세미나 시간에 보이지 않은 현님을 제가 실재로 소환했습니다.
구체적인 지명이 오히려 낯설고 불분명하게 느껴진다고 했던 현님의 말이 떠올라......
"현님이 말씀하시길......" 이러면서 말이죠.
정말 현님의 스피릿이 저희와 함께 했던 걸까요?
후기만 읽고도 그 날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이토록 정확히 읽어내다니......
놀랍고도 기쁩니다~~^^
이번 주 현님과 함께 하게 될 세미나가 정말 기대됩니다.
눈치 없이 더딘 목요일아~~
쉬지 말고 뛰어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