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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발제] 오리엔탈리즘 서설
김현 / 2018-02-06 / 조회 2,247 

본문

오리엔탈리즘 세미나 < 서설 > 

2018.02.06. / 현

 

 본문에 앞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의미와 자신의 연구의 방법론에 대해 소개한다. 

 

[ 1 ]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15)으로,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에 있어서 타자의 이미지로, 때로는 유럽 문화를 구성하는 필수적 부분이자 하나의 담론으로 나타난다. (역자는 오리엔탈리즘을 단지 동양주의, 동양학 등으로 번역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동양에 대한 환상이나 예찬하는 동양중심주의가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이 포괄하는 범위가 관념, 가치, 이미지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은 학문적 전통과 관련하여 축적, 이식, 전문화, 전달 등을 통해 존속되고 있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16)이기도 하다. 이렇게 구성된 학문적 의미와 상상적 의미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교류가 있어왔고, 그리하여 제3의 의미에 도달하게 되는데, 고로 오리엔탈리즘이란, 또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18)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 있어 미셸 푸코의 ’담론‘ 개념은 유용할 것인데, 오리엔탈리즘은 하나의 담론으로,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과학적, 상상적으로 생산,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에 따라,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조준된 관심의 총체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구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유럽 문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힘과 정체성을 얻었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동양에 대하여,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기타 유럽의 관여 방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영국과 프랑스를 기반하여 서술하게 될 것이다. 19세기 초엽까지는 인도와 ‘성서’와 관련한 인접국과의 관계에서부터 오리엔탈리즘이 비롯되었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동양과 오리엔탈리즘을 지배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고, 미국 역시 과거 영국과 프랑스가 접근했던 방식으로 동양에 접근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수많은 텍스트가 양산된다. 이 연구에서는 텍스트, 저자, 관념 뿐 아니라, 일련의 역사적 일반화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이용할 것임을 밝혀둔다.

 

[ 2 ]

 출발점은, 동양이 활동성 없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는 가정에서부터다. 지암바티스타 비코가 말했듯,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만든 것 뿐이라는 말에 착안, 이를 지리로 까지 확장시킨다. 역사적 실체를 비롯하여, 지리적, 문화적 실체라는 장소, 지리적 구분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연구의 몇 가지 한정 조건을 덧붙이는데, 첫째로, ‘동양이 본질적으로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관념이나 날조였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21)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실제의 동양은 어떤 면에서는 일치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하나의 일관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로, 관념, 문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편성형태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동양과 서양의 권력, 지배 관계, 헤게모니에 관련한 것이며, 어떤 합의도 발견되지 않는 만큼, 이런 담론이 형성된 힘의 관계까지 함께 파악해야 한다. 

세 번째로, 오리엔탈리즘이 허위나 신화에 불과하다거나, 그 진실이 밝혀짐으로 인해, 한 순간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 엄청난 물질적 투자 속에서 하나의 지식 체계가 되었고, 투자가 있던 만큼, 증식되어 양적으로도 증대되었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자유 의지에 의한 조직관계)와 정치사회(국가제도)를 구분하며, 문화의 기능은 지배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합의를 통해 시민사회에서 작용하며, 특정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주도권의 형태를 갖는 헤게모니에 대해 발한 바 있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이런 문화적 헤게모니가 작용한 결과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의거한 전략은 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서양을 중심으로, 동양적 세계가 파생되었다. 

 오리엔탈리즘에 있어서 위와 같은 일반적 관점도 있다. 그리고 그 일반을 이루는 개별적 텍스트들과 소재들이 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총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모두를 문제 삼고 두 가지 관점을 모두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 3 ]

 총체적 관점과 개별성을 양립시킬 수 있는 방법과 관련, 연구에 있어서 직면한 현실적 문제의 세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다. 

 

1. 순수한 지식과 정치적인 지식의 차이

 일반적으로, 지식은 비정치적이며, 정치학과 같은 실제 정치를 다루는 학문에 비해 인문학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떤 학문을 하든지 간에 저자의 인간적 주체로서의 환경조건은 무시될 수 없으며,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직면하게 될 동양은, 아무런 바탕이나 편견이 없는 동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문화가 있고, 오리엔탈리즘이 하나의 담론으로 출현하기까지 작용한 것도 결국엔 문화였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극악무도한 음모, 특정한 정치권력이 아니라, 학문적, 역사적, 사회학적인 관심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조종하며 통합하고자하는 의지나 목적 자체이며, 권력과의 교환과정 속에서 생산되고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로, 오리엔탈리즘은 하나의 문화적, 정치적 사실이며, 동양에 대한 발언, 행동, 지적인 궤도 모두가 여기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텍스트의 경우도,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 속에 있으며, 상호 텍스트성 속에 사고방식이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많은 경우, 인문학자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제국주의도 연구 영역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제국주의와 문화(오리엔탈리즘)의 연구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앞선 시대의 작가들을 포함하여 19세기 대부분의 작가들이 제국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으로, 인종과 제국주의에 관해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제국주의가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그 문화가 더럽혀지고 저급한 것이 당연한 인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한 것을 토대로, 각 저술가들과 대규모의 정치적 관심 사이의 교환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려 하며,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현상을, 인간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인문학의 연구는 각각의 연구, 그 주제, 그 역사적 상황이 형성하는 독특한 맥락 속에서 지식과 정치의 관련성이 갖는 성질을 정식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41)

 

2. 방법론

 오리엔탈리즘의 출발점, 곧 문제설정을 발견하는 것부터 텍스트와 저자를 확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데, 우선 이 연구에 있어서는, 백과사전식이나 이야기체로 서술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인 즉,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를 백과사전식으로 서술한 텍스트는 이미 많으며, 이야기체 모델 역시 서술적이고 정치적 관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방대한 텍스트의 양을 축소시켜 여러 텍스트 내부에 있는 지적인 질서의 성격에 윤곽을 부여해야 하는데, 먼저 동양을 둘러싼 영국, 프랑스, 미국인의 경험을 하나로 보고, 그들의 역사적, 지적 배경이 어떤 경험으로부터 성립되었는지, 그 질과 성격은 어떤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들의 동양을 또한 아랍 및 이슬람으로 한정했다. 이는 다른 극동 지역을 제외하는 것인데, 극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며, 극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그들이 받았음을 미리 밝혀 둔다. 

 이렇게, 영,프,미의 문헌에 초점을 맞추는 첫 번째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가 동양 연구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들의 양대 식민지망에 의해 유지되었고, 이후 미국이 동양에 있어 차지하게 된 지위는, 앞선 두 나라와 많은 면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성서학 이후로, 학문적 오리엔탈리즘에 있어, 제국주의 발생과 관련하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미국 오리엔탈리즘에서 어떤 문제가 어떻게 재생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19세기 중엽까지 독일 학문이 유럽 학문의 정점이었음에도, 독일의 상황은 영국과 프랑스와 같이 타대륙의 식민지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학문의 정점과 오리엔탈리즘 사이에 관계가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독일 오리엔탈리즘이 영국과 프랑스, 이후에는 미국 오리엔탈리즘과 공유한 것은 지적 권위인 만큼, 주제는 ‘권위’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상정해두어야 할 것이다. 권위는 자연적이지 않고 다분히 수단적이고 설득적이며, 지위를 가지고 기준을 가른다. 권위는 진리, 사상과 구별하기 힘들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분석되어야 하고, 이 연구에서 하려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적인 권위와 개개인에 의해 체현된 오리엔탈리즘의 권위 양자에 관한 서술이다.’(49)

 이런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상 중요한 장치는, (1) 전략적 위치설정과 (2) 전략적 편성이다. (1) 전략적 위치설정의 경우, 저술가가 동양과 대치되는 곳에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권위적 저자의 텍스트에서 반복해 나타나는 이미지, 테마, 모티프 등이 합체됨으로써 동양을 표상하는 방법이 된다. (2) 전략적 편성은, 텍스트들의 그룹, 유형, 장르가 처음에는 그 자체 속에서, 그 후에는 문화 전체 속에서 참조 능력을 확보하는 과정과 텍스트들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선례, 예비지식의 존재를 상정하고 의거하게 된다. 그럼으로 인해, 작품, 독자, 동양의 특정 측면이라는 조합은 하나의 분석 가능한 편성이 되고, 이 편성은 담론과 제도에 나타나며 힘과 권위를 얻는다.

 또한, 이런 권위를 취급하며, 텍스트의 숨은 의미보다는 외면을 분석하려 했는데, 동양이라는 표상이라는 것이 그 첫째 이유로, 오리엔틸리즘의 텍스트 내부에 있는 동양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라기 보다 어떤 ‘재현’으로서의 표상이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문화적 담론 및 교환에 있어 문화 내부에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진실이라기 보다는 표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표현되는 ‘언어 자체’도 고도의 표상이자 재-존재라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동양의 표상은 1760-1770년대를 경계로 변화했고, 이후로는 표상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유럽은 훨씬 과학적으로 동양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권위와 규율을 가지고 동양에 거주하였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는 여러 동양 언어의 연대가 확정되었고, 언어학적 관점에서 역시 동양은 재구성되었으며, 현실의 동양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연구에 있어서 밝히려 하는 것은, 이 분야의 형상과 내부 조직, 선구자, 찬양적 관념 등에 이르는 권위다. 더불어, 어떻게 오리엔탈리즘이 문화를 지배하는 강력한 사상과 학설을 차용했으며, 그것들에 어떻게 자극받아왔는가도 중요한 지점으로 기술될 것이다. 여지껏 순수한 동양은 존재한 적도 없고, 오리엔탈리즘은 언제고 단순한 관념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모든 텍스트를 고찰 대상에 포함하였다.

 미셸 푸코의 관점을 많이 차용하였으나 그와의 차이점은, 담론적 편성을 구성하는 개별 저술가에게 역시 흔적을 찾는다는 점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담론적 특성도 이해해야 하겠지만, 개벽 텍스트가 가진 특수한 성격도 함께 이해해야 하기에, 개별 텍스트와 저자, 그리고 그 저술이 속하는 편성 사이의 관계도 동시에 밝히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어떻게 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 자유와 자치의 입장에 서서 상이한 문화와 상이한 민족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리라.’(56)

 

3. 개인적 차원

 저자가 연구를 시작하게 된 개인적 동기도 있는데,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라는, 영국 식민지에서 유년기를 보낸 ‘동양인’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교육을 받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50년대, 유달리 시끄럽던 동양과 서양의 관계 속에서 동양은 항상 위험하고 위협적인 상징이었다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학문적으로 동양연구가 국책의 일부였다는 점, 동양이 전략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관심 지역이 되며, 미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역이 되었다. 더불어, 현 시대에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며 획일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중동에 대한 인식은 더욱 첨예해졌는데, 반이슬람, 반아랍적 편견의 역사의 지속적 투영, 이스라엘과의 대립, 아랍 및 이슬람 문화와 연대 인식 자체의 결여 등이 강대국의 정치, 에너지 정책, 민주주의와 같은 상황과 결합하여, 아랍을 전체주의적이고 테러리스트라는 이분법 사고로 연결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아랍 내지 이슬람 교도를 억누르는 인종차별주의, 문화적 고정관념, 정치적 제국주의, 반인간적인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은 참으로 강력하다.’(60) 위와 같은 상황을 토대로,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이 지적인 문제라는 데에 의심을 품고, 지식과 권력의 결부를 밝히고자, 오리엔탈리즘의 발생, 전개, 강화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서술하였다고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사회와 문자문화를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덧붙인다. 

 연구가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같지만, 반유대주의와 이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지극히 닮아 있다는 점을 토로하며, 동양이 이전의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이 아닌, 동양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확립하기를 기대하며, 서설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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