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후기] 0년 - 3. 복수 +6
토라진
/ 2018-01-29
/ 조회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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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란 무엇인가
이번 주에 다룬 장의 제목은 [복수]였다. 이안 부루마는 복수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먼저 천착한다. 그것은 섹스나 음식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원초적인 욕망이다. 이 욕망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동반하는데, 인간은 이를 통해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 자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특히 나치가 보여준 생명과 신체에 대한 태도는 1945년 전후의 세계의 가장 중요한 실제적 유산을 남겼다.
하지만 복수가 무조건 행해지지는 않는다. 복수라는 행위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와 계급에 대한 질투와 시기라는 심리적 동기가 필요하다. 부를 축척하고 있다고 믿었던 유대인과 중국인(‘아시아의 유대인’이라 불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은 이를 반증한다. 여기에 복수의 행위를 묵인하는 국가적 차원의 독려가 더해지면 복수의 칼은 더욱 호기롭게 춤을 출 수 있게 된다.(폴란드 관료 사회의 방조, 체코의 대통령 선언문, 재산권 박탈에 대한 법령의 공포, 특별인민재판 등)
분노하는 인간 – 인간과 역사
사실 이 당시 여성은 이중의 폭력에 노출되었다. 전쟁 중에 여성들은 전쟁의 전리품으로 성을 착취당했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적군과 섹스를 했다는 이유로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법률에 근거해도 섹스는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이런 사례를 다루는 법안을 새로 만들어 여성들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런 여성들에 대한 복수는 승전국 남자들에 대한 열등감이나 전시에 용감하게 떨쳐나가지 못했던 죄책감을 덮는 방편이 되었다.
사실 열등감 때문에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남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편의점 알바생을 둔기로 때려 치명상을 입힌 남자는 ‘현금이 부족해 담배 사는 것을 망설이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라고 진술했다.) 이안 부루만은 이러한 개인의 울분과 복수심이 전쟁이라는 야만적 조건에서 어떻게 집단과 국가로 확장되어 나타나는지는 보여준다.
정치 공학적 분석과 사건의 인과 관계만을 따져서는 역사 안의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내었던 우연성과 집단적 무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서 물꼬의 방향을 틀게 한 인간의 들끓는 욕망과 야만적인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으로 모든 우연적 사건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가 바라보는 역사는 인간에 대한 탐구처럼 보인다.
목소리의 증언과 기록 – 가려진 역사의 뒤안길
앞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안 부루마는 특히 전쟁에서 여성이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고 이용되는지 주목한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전쟁은 승리한 남성의 기록이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그가 언급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역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며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200여명의 여성 참전자의 목소리가 전한 진실처럼 말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것을 자세하게 싣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배우 마르가레테 셸의 일기를 소개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그녀는 체코인들의 분노에 대해 그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다. 이유는 단지 그녀가 세련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노예 상태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는 존재 자체가 한 여성 경비대원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분노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개인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집단과 국가의 역사에 큰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폭력적으로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죄수들을 관대하게 대했던 유대인 감독원이 있었으며 맨발의 그녀에게 샌들을 가져다주었던 경비대원도 있었다. 폭력이 보편이 될 수 있던 때에는 배려와 예의가 예외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고귀한 인간성 속에서 또 다른 혁명은 싹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들의 진실은 어쩌면 이런 질문들 속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경험과 역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한 성찰도, 인류애가 전하게 될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도 막연한 추상과 통계로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르마는 전후 세계사에 대한 흐름을 정리해나가면서 개인의 역사를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인용되고 있는 수많은 개인적 기록물과 개인적 서사가 담긴 문학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루마의 이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인간을 더욱 다층적으로 이해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부루마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살펴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을 때면 조금은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대다수 수용소 생존자들은 너무 아팠거나 감각마저도 없는 상태여서 보복 행위를 할 기력조차 없었다.’(143쪽)
다시, 복수란 무엇인가?
복수는 전후 세계에 퍼진 심리적 바이러스였다. 전쟁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인류는 폭력의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질병의 증세는 비슷했다. 적국의 국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처단, 자국민 사이의 분쟁, 원칙 없는 부와 계층 간의 역전, 반목과 불신 등. ‘피가 피를 부르는’ 복수의 바이러스는 더욱 넓고 깊게 세계를 병들게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인류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시기와 질투, 집단의식에 의해 무너지는 개인 윤리, 실체 없는 국가의 정체성 등.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발가벗은 채 서로를 향해 겨눈 분노는 결국 서로에게 얼마간의 상처를 남기고 나서야 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시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다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가능성을 주었다면 복수라는 실천을 통해서 인류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종종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반복해 돌아가게 된 이유이다. 세미나를 하는 내내 감돌았던 무거운 분위기는 아마도 모두의 마음에 달려 있던 이 질문의 무게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겁지만 의미 있는 질문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0년’을 곱씹어 본다.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들
역사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여성은 왜 약자로만 살아가는가? 인간은 왜 탐욕적인가? 전쟁의 혁명성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우연적 사건은 필연적 역사 법칙과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가? 등. 질문들을 통해 역사가 단지 사건들의 나열과 인과관계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탐구하게 되는 철학적 사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때로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 있는 생명과도 같이 느껴진다. 역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동안 우리는 안부 한 번 제대로 물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안녕을 묻지 않고 내달리곤 하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제 1945년 들끓는 전후의 시기를 몸살을 겪듯 읽어왔다. 다음은 ‘잔해를 걷어내며’ 어떻게 ‘0년’이후의 시대를 통과하는지 바짝 다가가 들여다 볼 차례이다. 새롭게 떠오른 질문과 과거와 오늘을 돌보는 숙제를 안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음의 페이지를 넘겨보려 한다. 더 많은 문제와 숙제를 예감하면서 말이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그대로 한편의 에세이라 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은 후기네요.
이 후기를 읽고 나니 역사세미나가 끝난 뒤 에세이 쓰기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몇몇 문장들은, 제가 역사세미나를 열고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할 때 가졌던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 주셨어요.
아니 그 이상으로 어떻게 우리가 세미나를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역사가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표현에 무척 공감합니다.
저는 근대학문 체계에서 역사와 철학, 문학의 구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저에게는 사람들이 역사와 철학, 문학이라고 부르는 그 영역들이 한데 묶여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다만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는 인간의 다른 면들을 보아도 예외라고 치부해 버리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탐욕과 경쟁심은, 맑스의 통찰대로 '자본주의적 인간'의 본성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 '자본주의적 인간'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탐욕스러운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라고 믿어버리게 될 겁니다.
<0년>은 전쟁 직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는 거기서 전쟁 전과 지금 현재 인간의 이야기들도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
무척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 토라진님 후기를 보니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닐 것도 같고...
일단은 한파 속에서도 다음 세미나를 무척 기다리게 되네요.
새로운 질문과 숙제를 예감하면서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삼월님이 말씀하신 역사와 철학, 문학의 구분의 넘어 모든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문제 의식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기하신 인간 본성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본성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든 민주주의든, 또는 공산주의든......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둬냈을 때
인간에게 남아 있는 본성은 과연 무엇인지 저도 늘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특히 부루마의 관점으로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인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텍스트를 선정해주고 함께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 넘 감사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 함께 이야기하며 나눌 논의들도 기대됩니다. ~~^^
유택님의 댓글
유택
<0년>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신기하다 아 그렇구나아~~'
줄줄 이야기책 읽듯 읽어서인지, 무언가를 탁 꼬집어 생각할꺼리가 뭔지
솔직히 정리도 잘 안 되고 이렇게 읽어가도 되나 싶기도 했었는데요.
이렇게 토라진님 후기를 읽으니
어떻게 이 책을 읽어 나가야 할 지 살짝 감이 오는것 같기도 하고요.
반장의 댓글을 보니 세미나원들이 어떤 지점에서 멈추는지도 어렴풋이..
여전히 저에겐, 좀 경청하며 따라가야 하는 세미나가 될 것 같으네요. ^^
후기 잘 읽었습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후기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택님의 솔직한 발언들이 어떤 때는 텍스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든 텍스트가 내게 의미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내 행동이나 생각이 늘 바뀌는 게 아닌 것처럼요.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유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여주는 모습이
댓글을 읽는 순간, 얼핏 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이번 주는 유택님이 텍스트와 세미나를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해지네요.
서로의 이야기에 조금은 마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음 좋겠습니다.!
연두님의 댓글
연두
후기 정말 재밌게 잘 읽었어요, 토라진님. 여러 번 읽었어요.
이번 분량 다 못 읽어 가서 아쉬웠거든요. 푸코 발제에 시달려서...ㅜㅜ
이안 부루마의 책은 평면적이고 단선적이었던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에 가까웠던 얄팍한 인식을 단번에 깨주고
현재의 공부하고 있는 니체, 푸코의 이야기들과 많은 연결점이 생겨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가 발굴한 사람들의 삶, 여성들의 목소리 속에서 계속해서 도덕이 문제로 제기되는 점,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을 추동하는 각기 다른 욕망들.
몇 차례 세미나를 해 오면서 이 두 가지가 저에게는 눈에 띄고, 앞으로도 그 점을 유의해서 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천의 고원 강의 때 과거에 대한 들뢰즈의 관점이 매우 인상적었었는데요,
그 때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도 언급되었습니다.
과거는 과연 닫혀 있는가. 하고 들뢰즈가 묻습니다.
과거란 거대한 구멍이고, 미처 발굴하지 않은 거대한 폐허와 같아서 커다란 잠재성의 영역이라고 했다죠.
이안 부루마가 발굴하여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들은
제게 아주 현재적으로 매순간, 새로운 과거로 구축되어 가고 있어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도덕과 욕망의 문제......
연두님이 고민하는 이 두 가지 문제들이 어떤 고민과 만나 현재를 만들어나가게 될지 궁금합니다.
부루마는 정말 우리에게 여러가지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라는 시간과 그 안에 내재한 잠재성에 대한 문제 역시 그런데요......
부루마는 역사 안에 잠재된 무의식을 드러내보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로의 문제 의식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부르마와 좀 더 친밀해지는 시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