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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발제] 성의역사3 :: 제3장 자기와 타인들 0118
아라차 / 2018-01-14 / 조회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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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성의역사3 :: 20180118세미나 발제 _ 아라차


제 3 장 자기와 타인들 

 

푸코는 자기 연마의 발달이 여자와 타인(결혼의 역할), 정치적·시민적 활동과의 관계(정치 게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를 쾌락의 주체로 간주하는 방식을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한다.

 

1. 결혼의 역할

결혼은 적어도 신분의 효력을 지니는 한에서만 이로운 것이었고 재산상속 등 사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계급의 경우는 일손의 증가 등 주로 경제적 기능에 관계된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요구는 특권계급 내에서 지위와 재산이 단지 가족 집단들 간의 협력관계보다 군주와의 친분관계나 군인 혹은 민간으로서의 ‘경력’, ‘사업’에서의 성공에 더 의존하게 되자 어느 정도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혼에서 여자 아버지의 개입은 점점 더 약해지고 결혼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한 결합으로 나타나며, 남녀 간의 불평등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감소한다. 

이렇게 발전된 결혼계약은 남편과 아내를, 분명 평등하지는 않지만 책임과 의무를 공유하는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부부에게는 과거에 비해 훨씬 밀착된 형태의 부부생활이 요구되고 제시된다. 결혼은 실천으로서 더욱 일반화되고 제도로서 더욱 공적인 것이 되며, 생활방식으로서 더욱 사적인 것이 되고, 부부를 결합시키기 위해서 더욱 강력해지며 여타의 사회적 관계의 장 속에서 부부를 고립시키기에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된다. 

어쨌든 기원 초 몇 세기 동안 나온 문헌들을 신뢰한다면, 결혼은 남성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고, 강도 높고, 힘들며, 문제제기적 경험의 온상이었던 것 같다. 결혼이 단순히 도시국가나 가문에 유용한 제도나 훌륭한 가족 구성원의 틀 안에서 그 규범에 따라 전개되는 가정활동이 아니라, 결혼 ‘상태, 즉 삶의 형태, 생활의 공유, 개인적 유대, 이러한 관계 속에서의 파트너 상호간의 위치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부부사이의 친근함과 애정을 배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많은 문헌들에서 부부관계는 혼례적 기능, 남편의 법적 권한,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합리적 관리 등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체의 힘과 문제, 애로, 의무, 이점, 고유한 쾌락들을 지닌 하나의 독특한 관계로 나타난다. 제정 시대의 문헌들은 결혼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 검토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가치는 오이코스의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두 파트너간의 관계양상과 연결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남성은 단지 사회적 지위나 특권, 가정에서의 기능에 입각해서뿐만 아니라 아내에 대한 “관계 역할”에 입각하여 처신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할이 단지 교육·훈련·지도하는 통치기능이 아니라 애정의 상호성과 상호 의존의 복잡한 작용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훌륭한 결혼생활에 관한 도덕적 성찰이 오랫동안 그 원칙을 “가족 구성원”과 구성원들의 내적 욕구의 분석에서 찾아온 것이 사실이라면, 남성이 부부관계에서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 문제인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등장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 게임

기원전 3세기경부터 도시국가 쇠퇴 --> 시민활동이었던 정치생활이 전반적으로 퇴조 --> 전통적 지배계급 몰락 --> 특권계급의 대표자들은 실질적 권위를 상실을 자발적 은거로 변형 --> 개인적 생활과 사생활에 점점 더 가치 부여,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도피의 철학이었으며, 이 도피의 주요한 수단은 자율성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의 군주제와 그 이후 로마제국의 조직을 단순히 이처럼 시민생활의 퇴조라는 부정적 용어로만 분석할 수는 없다. 그와는 반대로 지방의 정치활동이 국가 전체를 이루는 거대한 조직들의 강화와 복구로 인해 억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정치활동이 축소되고 백지화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하나의 복잡한 공간, 즉 작은 도시국가들의 공간보다는 훨씬 더 방대하고 덜 불연속적이며 덜 폐쇄적이지만, 더 유연하고 더 분화되었으며 위계가 덜 엄격한 공간이 편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권력의 중심이 존재하고 수많은 활동과 긴장, 갈등이 존재하는 공간이며, 그러한 활동과 긴장, 갈등이 여러 차원으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타협에 의해 균형을 획득해 가는 공간이다. 

어쨌든 헬레니즘의 군주정치가 지방권력을 제거하거나 속박, 혹은 완전히 재조직하려 했다기보다는 그것에 의지하려했고, 그것을 정기적 조세징수나 특별세의 징수, 또 군대의 필요한 물품조달을 위한 중계자로 삼으로 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실제 정책 중 하나를 보더라도, 피통치자들에게 “자신들이 노예가 아니라 이익과 권위를 똑같이 나눠받고 있으며 하나의 커다한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 귀족계급의 쇠퇴와 그들 계급이 대상이었을 정치적 박탈, 그리고 그러한 박탈의 결과였을 자기에 대한 내적 성찰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정치·경제적 요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도덕적 성찰이 새롭게 강화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결정적인 현상은 전통적 지도계급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조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변화들과 관계된 것이다. 귀족 관료 계급, 엘리트 속에서 개인적 윤리, 일상적 행동 및 사생활과 쾌락의 도덕에 주어졌던 관심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코 퇴폐나 낙심, 침울한 은둔과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러한 관심 속에서 자신의 신분과 역할, 활동, 의무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관계를 성찰하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추구를 보아야 한다. 

고대의 윤리는 타인에 대한 권력과 자기에 대한 권력이 대단히 긴밀하게 뒤얽혀 있었으며, 고로 신분에 부합되는 삶의 미학에 의거해야 했음에 반해, 정치게임의 새로운 규칙들은 현재의 자기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또 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관계 규정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자기 자신을 자기 행동의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일은 한층 더 문제제기적인 된 것이다.

새로운 정치상황이 신분과 직무, 권한과 의무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 바로 그 순간부터 상반되는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신분에 적합한 것으로 맞추려고 하는 것이고,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와의 순수한 관계 속에서” 규정하려는 태도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타나내는 기호체계가 아니라 신분과 신분을 나타내는 외적 형태와는 무관한 관계를 통하여 자신을 자기 행위의 주체로 형성·인식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관계는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지배력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헬레니즘과 로마의 사상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의 귀환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져야할 관심이라는 주제가 지녔던 중요성을 흔히 시민활동과 정치적 책임이 봉착하게 된 일종의 딜레마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주된 분할선은 참여와 회피 사이의 선택에 놓여있지 않다. 더욱이 자기 연마가 그 고유한 가치와 실천에 제기한다는 활동적 삶과 대립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연마는 자기와의 관계 원칙을 규정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원칙은 정치행위, 공직에의 참여, 역할 이행 등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혹은 받아들일 만하거나 필수적인 형식과 조건들을 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헬레니즘과 로마 사회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정치적 변화는 어떤 자성 행위들을 유도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들은 훨씬 더 일반적인 근본적인 방식으로 정치활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촉발하였다. 

 

⓵상대화

새로운 정치 게임 속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상대화된다. 먼저, 자신을 더 이상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 정치는 임의로 주어졌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삶”이고 “실천”이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거기에 투신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나의 접합점의 위치를 차지하는 그물망 속에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통치하고 통치받는다.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신이 하나의 전환점을 차지하는 복잡한 관계의 장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의 사회적 지위가 자리를 정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따라야 할 규칙과 준수해야 할 한계를 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➁정치행위와 도덕적 행위자

제국 시대의 정치사상 속에서 통치자의 덕은 도시국가에서처럼 항상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그 이유는 달랐다. 통치자의 덕이 필수 불가결한 것을 그것이 전체적 조화의 표현이나 결과이기 때문이 아니라 통치자는 통치라는 어려운 기술 속에서나 수많은 함정의 와중에도 자신의 개인적 이성에 따라 스스로를 인도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훌륭하게 처신할 줄 알 때 다른 사람들을 훌륭하게 이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통치할 때의 합리성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의 합리성과 동일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며 타인을 통치할 수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누가 통치자를 지도해야 하는가? 로고스. 통치자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영혼을 인도하며 자기 고유의 “에토스”를 세워야 한다. 

 

⓷정치행위와 개인의 운명

제국 초창기의 정치행위에 대한 성찰에서 권력행사에 고유한 불안정성이 있음을 주목한다. 경우에 따라 호의를 베풀기도 하고 거두어가기도 하는 왕과 원로원 회원과 민중 사이에서 권력의 행사는 불안정한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역전과 불안에 대해 자기가 키우는 야망에 스스로 미리 한계를 정함으로써 대비해야 한다. 

정치활동에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의 요체는 자기 존재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수행하고 있는 임무, 놓여 있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반 원칙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치활동에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의 양자택일 문제는 사회적·시민적·정치적 활동의 총체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형성하는 방법과 관계된 것이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회적·시민적·정치적 활동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다소 거리를 취하였던 말건, 그러한 활동들에 대해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형성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윤리학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전통적인 절제의 윤리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발휘하는 우월함과 한 가정 구성원의 범주 안에서 발휘하는 우월함, 그리고 한 사회의 장 속에서 발휘하는 우월함 사이에 대단히 밀착된 관계를 함축한다. 자기에 대한 우월함의 실천은 나머지 다른 두 가지 우월함을 이성적이고 절도있게 활용할 수 있고, 또한 반드시 활용하도록 보장하였다. 

자기, 가정, 타인의 대한 세 가지 통제 사이의 긴밀한 상관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쾌락의 활용에 대한 성찰은 변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공공적 속박과 금지의 증대인가, 혹은 사생활에 대한 가치부여를 동반한 개인주의적 자성인가. 그보다는 주체의 위기나 주관화의 위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스스로를 자기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 형성하는 데 따를 수 있는 어려움을, 그리고 자기에 대한 몰두 속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규칙들에 복종하게 하고 자기 존재에 궁극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찾기 위한 노력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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