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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후기] 0118 세미나 :: <성의역사3> 제3장 자기와 타인들 +9
아라차 / 2018-01-19 / 조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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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 푸코세미나 <성의 역사3> 제3장 자기와 타인들 후기

 

자기 연마, 힘들지요.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 무슨 대단한 영광을 보겠다고 자신을 갈고 닦으라고 하는지요. 선생입네 하는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잘나신 타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어쩌면 이 삶을 연명하는 방법으로 더 좋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왜 자기 연마라는 말에, 자기 배려라는 말에, 자기 통치라는 말에 자꾸 혹해서, ‘그게 뭘까’ 궁금해 하고 있는 걸까요. 궁금해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래 나도 한번 제대로 자기연마, 자기배려 한번 해 보자고 들썩거리고 있는 걸까요. 

푸코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천년 전 “궁예짓”이라는 비꼼을 당하면서까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의 삶의 기술에 대해 이토록 집요하게 남겨놓은 걸까요. 역사는 결국 거대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편하게 편승하여, 노예인데도 불구하고 주체를 가진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인류만 남겨놓았는데도 말이지요. 그런 게 있었다고, 역사에 기록된 하나의 담론만 있었던 게 아니라고, 분명히 작지만 이런 물줄기도 있었다고,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럴 수도 있지 않으냐고, 가설도 만들어보고, 새롭게 짜깁기도 해가며 천편일률적인 시각을 바꿔보려는 작업. 푸코는 이 작업을 통해 혹여 지금의 거대한 역사를, 괴물이 된 담론을 바꿔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들 각자의 삶을 바꿀 수는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요. 어쩌면 그 가려졌던 물줄기를 복원하여 다른 차원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요. 

 

이번 장에서는 2장 자기연마에 이어,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면서 조금은 변화된 양상의 자기연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때의 자기 연마는 단순히 도피의 철학에서 탄생한 자기로의 몰두가 아닌 좀 더 유연하면서도 확장된 형태의 자기 관계학의 양상을 보입니다. 결혼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립되면서 통치의 영역이던 부인이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확정된 지위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었던 정치도 자기 선택에 의해 할 수 있는 게임이 됩니다. 특히 정치활동에 있어서는 몇 가지 문제가 촉발됩니다. 

첫 번째, 관계성(상대화로 번역된). 자신이 하나의 접합점의 위치를 차지하는 그물망 속에서 권력을 행사합니다. 주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통치하고 통치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신이 하나의 전환점을 차지하는 복잡한 관계의 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푸코의 권력 개념의 핵심이지요. 

두 번째. 정치행위는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을 통치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치할 때의 합리성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의 합리성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영혼을 인도하며, 자기 고유의 ‘에토스’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세 가지 교훈이 인상적입니다. ⓵자기가 행하는 정치적 역할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➁권력에 경도되지 말고, 가장 일반적인 모습으로 덕을 실천해야 한다. ⓷신을 경배하고, 인간을 구원하며, 삶이 얼마나 짧은지를 알아야 한다. 더불어 “평정함을 잃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충분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번째, 정치행위와 개인의 운명에 대한 부분입니다. 권력의 행사는 불안정한 상황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지요. 또 야망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불안에 대해서도 파국의 순간을 상정해 두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어쨌든 정치활동에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의 요체는 지위나 수행하고 있는 임무, 놓여있는 위치에 의해 자기 존재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는 자기 인격의 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 활동은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윤리학을 완성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윤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제의 윤리가 가정생활, 정치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 두 가지 영역에서의 실천을 자기 윤리학을 세우는 데 이성적으로, 또한 절도있게 활용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부여된 중요성, 헬레니즘 시대의 자기 연마의 발전, 그리고 제국 초기에 그것이 누렸던 전성기는 절제의 윤리학을 재구축하려는 노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개인이 스스로를 자기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 형성하는 데 따를 수 있는 어려움을 모두가 알고 있지요. 자기 존재에 궁극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이 시대의 윤리대로 계속되었다면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푸코의 방식이 지고의 정답을 찾고자 함이 아님을 알기에 어떤 잠재성으로 살아있을 또 다른 역사를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연마의 문제를 개인의 덕성에 기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현재가 되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번 시간을 통해 또 한번 새기게 되는 것은, 삶을 통해 나를 통과하는 모든 문제에 하나의 잣대만을 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담론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 편할 대로 생각하고 말자라고 퉁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뭐 쓸려니 끝이 없을 것 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식의 영역이 더 넓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섣불리 더 열심히 해보자는 소리는 안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공부할 힘이 나에게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 토론할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끝이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 힘이 있음을 느끼니까요. 

 

빠른 후기 슥 놓고 갑니다. 

 

 

 

댓글목록

김현님의 댓글

김현

으왕! 빠른 후기에 빠른 댓글 남겨 봅니다.
제게 오늘 세미나 시간은 의미도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뭣보다 아라차님이 후미에 남기셨듯, 저에게도, 아직 공부할 힘이 있고,
그 힘이 있다는 것에서도 또 힘을 느낍니다.

저는 오늘 내용도 정말 좋았지만, 곁가지들의 이야기들도 제게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행복하네요. ㅎㅎ

유택님의 댓글

유택

오... 이렇게 빠른 후기가!
아닐까요 아닐까요.. 이 익숙한 후렴구, 누구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아라차 자기의 진실을 조용히 말하는 마지막은 진짜 감동.. .
탄력 받고 하루 고맙게 시작합니다~~ 돈 마니 벌어야지~
어제 아라차 덕택에 책 겨우 파악하며 따라갈 수 있어 다시 고맙~! ^^*

연두님의 댓글

연두

하하. 아라차는 도대체 왜 힘들게 새벽까지 후기를 올리고 있었던 걸까요.
유택은 도대체 왜 카톡으로 아라차가 빠른 후기를 남겼다고 알려주었던 걸까요.

여튼 어제 세미나는 확실히 힘이 나는 세미나였죠?

저에겐 푸코의 텍스트를 읽는 지루하고 험난한 날들 속에 강렬했던 몇 번의 순간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자기 인식이 아니라, 자기 배려다. 자기 배려란 자기 실천이다. 자기 삶을 욕망하라.
두 번째는 자기 배려를 위해선 타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배려가 곧 타자 배려다.
세 번째로 권력은 도처에 있다. 그것은 다양한 세력관계에서 발생한다.

어제 세미나를 통해서 강렬했던 순간들이 하나로 꿰어지며 하나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장 자기 연마, 3장 자기와 타인들은 제 관심 주제여서 큰 부담없이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읽었던 텍스트가 세미나를 통해서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타자가 필요한 것으로...^^

푸코가 그토록 고약하게 '아닌' 것들을 집요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선명한 가시성, 보이는 것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지 못하는지 알려주기 위함이겠지요.
(그래도 고약한 건 고약한 겁니다.)

고정되어 있는 단단한 것들이 사라질 때,
선명했던 것들 사이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가 복잡한 그물망 안에서 어떤 접합점을 차지함을 깨닫게 될 때
우리에겐 힘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선명해 집니다.
그 힘을 발휘하라고 푸코는 속삭이고 있는 거죠. 비밀의 힘은 너에게 있었다고.

다음 시간에 만나요, 우리.

연두님의 댓글

연두 댓글의 댓글

아 놔, 아침에 일어나 첫 댓글 달고 나서도 그물망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미리 사다놓은 레몬으로 레몬청을 만드려고 칼질을 수없이 하면서도요.
아주 복잡하고 촘촘한 거미줄에 나는 걸려 있었습니다.
거미줄에 걸려서 나는 꼼짝도 못한다고, 꽁꽁 묶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푸코가 이렇게 얘기해요.
'정신차려! 다리를 움직여 보라고! 너는 거미야!"

ㅋㅋㅋㅋㅋ

유택님의 댓글

유택 댓글의 댓글

거미는 팔다리가 가늘구
배가 퉁퉁해야 하는거야!
넌 거미가 아니야! 아니라구우~~~~! ㅋㅋ
난 푸코의 그물망 하면 그게 생각나던데요.
촘촘한 자본주의 “그물망” 밑으로 이 인간들이 훅 빠지지 않게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개개인을 최소한의 경제적 주체로 태어나게 한다는 말.
복지다 뭐다 이름 붙여 촘촘하게 그물망을 짜는
이 거미 같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아마 1978년?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생명관리 정치의 탄생>에서 나오는 말이에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이렇게 빠른 후기와 댓글들 뭐죠? ㅎㅎ
푸코세미나는 제가 지금껏 해왔던 세미나들 중 가장 만만치 않은 세미나였는데도,
이상하게 푸코세미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늦은 밤은 알 수 없는 기운(이게 포스...였던 건가요!)으로 충만했던 것 같아요.
그 힘이 뭐였는지 이 후기와 댓글들을 보니 알겠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무엇을 할 힘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게 푸코세미나였던 거군요.
그 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봉착해 있는 문제들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정말 감사한 타인들, 감사한 시간들이네요.

선우님의 댓글

선우

잘 읽었어요 아라차 님.
어제 주제도 함께 얘기하면 더 좋았겠다 싶어요...
이번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기와의 관계라는 점에서 볼 땐, 정치 사회적 신분이 존재양식의 진정한 표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습니다. 피라는 태생도, 고위관료라는 직업도 자신의 표지가 아니라는 점. 로마의 기사인지,
해방된 자유민인지, 노예인지 하는 것은 비본질적이라는 것. 우리는 지위와 임무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각자는 자기 인격의 장인으로, 사회 정치적 활동 속에서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세워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요.

유택님의 댓글

유택 댓글의 댓글

쪽집게두 아니구
세미나두 빠졋으면서
바리 탁 그냥 젤 중요한가 찌버내시네!
선우님 감사해요~~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듯 알듯 하면서 더 모르겠어요 . ㅠㅠ
"아직 공부할 힘이 나에게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 토론할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요 부분에서 힘들 얻어 감니다~~
알든 모르든 .. 이어나가는 힘이 중요 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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