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후기] 성의 역사2 :: 4,5장 (12/21) +14
삼월
/ 2017-12-25
/ 조회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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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도, 발제자도 아팠던 푸코세미나 2017년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후기입니다. 발제자 유택님이 미리 출력해 두고 갔던 발제문을 고이 꺼내 푸코세미나 공식 아나운서 장석관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줍니다. 퇴근 후 피곤한데도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한 권씩 끝낼 때마다 케잌을 선물해주시는 아라차님이 준비해온 케잌으로 당분도 보충합니다. 현님이 집에서 맛있는 사과를, 연두님은 티라미수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세미나 간식이 풍성했습니다. 세미나는 뒤풀이 없이 10시 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딱 한 번 잠시 쉬고, 뒤도 옆도 안 보고 달려서 꽉 채워, 성의 역사 2권을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후기까지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아 제가 자발적으로 후기를 씁니다. 크리스마스엔 후기를! 참 보람찬 연말입니다.
푸코가 보는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는 말 그대로 정말 문제적 관계입니다. 푸코는 여기에 동성애라는 현대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유형을 동성에 대한 것과 이성에 대한 것으로 대립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분은 쾌락에 지배당하는 자와 절제할 줄 아는 자 사이에 있습니다. 자유민 남성이 여성이나 소년을 사랑할 때 두 경향은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한 개인에 공존할 수 있는 성향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에서 소년애는 자유로웠으며, 종교적으로도 보장되었고, 이 교제의 우수성을 성찰하는 문학작품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가치부여가 있고, 당시 사람들도 그 복잡성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푸코는 그리스의 소년애를 ‘동성애’에 대한 ‘관용’이 아닌 쾌락과 도덕적 관심의 문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소년애가 복잡한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이와 지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차이가 그들의 관계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고, 관심과 염려가 수반되었다. (교육적 관심)
2. 소년애는 규율을 부과하는 의식화의 대상이 되고, 사회적 작용의 계기가 되었다. 소년애의 관계는 위기를 내포한 문제점이었고, 사회적 관심과 걱정의 대상이었다.
3. 소년애는 부부관계와 다르며, 개방적으로 이루어졌다. 쾌락과 만족을 위한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이지만, 자유민 소년은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4. 소년애는 청년기라는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남성 간의 육체관계 자체에서 쾌락에 탐닉하는 일은 비난받으므로, 소년애 관계는 곧 ‘필리아’(우애)의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소년애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런 의문들은 사랑에 대한 성찰의 형식을 취합니다. 서로 독립된 두 사람의 관계는 가정이 아닌 ‘연애술’의 영역입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받는 대상이며 윤리적 주체로 성장해야 할 소년에게 관심이 집중됩니다.
소년을 사랑하는 남성은 상대에게 수치심이 아닌 명예를 부여해주어야 합니다. 젊은이의 행위나 명예는 명백하게 사회적 관심의 대상입니다. 소년의 명예는 전환기에 있으며, 매우 불안정합니다. 명예는 구애를 아예 거부하는 게 아니며, 적절하게 구애를 받아들이면서도 쾌락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소년은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며, 누구에게도 지배받아서는 안 됩니다. 쾌락을 양도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으며 가장 강한 자로 남아있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명예를 보존하고 지배받지 않는 데에는 철학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지배의 원칙, 더 강한 자아, 사고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철학뿐입니다. 소년의 명예는 미래의 역할과 평판을 결정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을 염려하고, 소년의 삶을 공동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년애 관계에서 소년의 지위가 난해한 이유는, 미래에 가지게 될 지위 때문입니다. 자유민 소년은 노예나 여성과 다르고, 미래에 도시의 통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누군가의 쾌락의 대상이 되는 자의 지배를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매음을 하거나 쾌락에 탐닉한 소년은 행정관직에서 배제되고,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기도 합니다. 푸코는 여기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남성적 우월함의 윤리를 발견합니다. 성관계는 남성 상위 삽입 도식으로 이해되고, ‘능동적’ 지배의 역할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 도식에 따라 ‘열등한’ 역할을 선호하는 남성은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소년을 여성화하거나, 소년 자신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쾌락을 느끼는 일은 비난을 받습니다. 소년은 쾌락을 느낄 권리가 없으며, 이들의 관계는 ‘필리아’로 전환시킬 토대를 마련할 때에만 도덕적으로 명예로울 수 있습니다. 그 명예를 위해 이런 물음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쾌락의 대상을 훌륭한 자기 쾌락의 주체로 만들 것인가?’ 사랑에 대한 소크라테스-플라톤적 성찰은 이 문제 제기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문제 제기가 소년애에서 출발했으므로, 그리스인들의 진리와 성적 엄격함에 대한 성찰은 소년애와 관련하여 전개됩니다. 소년애 관계에서 나타난 구애와 허락의 예절, 기술, 규율에 따른 사랑의 게임은 어떤 문제를 제기하게 만듭니다. 바로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다는 사랑에 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논증에서, 소년과의 일시적 사랑은 명예가 아닌 사랑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옵니다. ‘필리아’가 더욱 강조되고, 구체적으로 우정이라 불릴 만한 상호적 사랑의 행동이 제시됩니다. 사랑에 관한 논쟁에서 제기된 전통적 질문은 변형되고, 요점이 이동됩니다. 그 변형과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랑하는 행위의 문제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이행
2. 소년의 명예의 문제로부터 진리에 대한 사랑의 문제로의 이행
3. 파트너들의 불균형의 문제로부터 사랑의 일치 문제로의 이행
4. 사랑받는 소년의 미덕으로부터 스승의 사랑과 지혜로의 이행
하나의 모순은 그리스에서 소년애는 분명히 허용된 관계였으나, 여기에는 양생술이나 가정관리술보다 엄격함이 요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포기가 정신적 가치를 지닌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제가 발견된 것은 소년애에 대한 성찰에서입니다. 그리스의 성 윤리는 소년애와 관련하여 형성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성 윤리는 후에 이 원칙의 이름으로 소년애를 거부하게 됩니다. 푸코는 여기서 ‘금욕주의’가 소년애를 평가절하하거나, 소년애가 그 자신의 금기를 야기하였다는 판단을 경계합니다. ‘금욕주의’는 소년애를 양식화하고 가치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에 욕망의 문제에 주어진 특권과 금욕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적 엄격함은 억압이 아닌, 개인을 윤리적 행동의 주체로 성립하게 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양식의 완성으로 이해된 '윤리'의 역사에 속해 있습니다.
소년애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서 발전한 연애의 기술이 후에 궁정풍 연애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애의 기술과 계속되는 거부, 찬양과 허락에 대한 사랑의 게임들은 중세 문학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의 모델로 자리 잡습니다. 이 사랑의 모델은 우리가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 장을 읽는 내내 소년애 관계에서 소년의 역할을 현대 멜로드라마에서 여성의 역할로 바꿔 읽어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푸코가 말한 대로 성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동형적이라면, 연애에서 현대의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이미 지위를 획득한) 그리스 자유민 남성과 (아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소년의 관계 정도로 비유해 볼 수 있겠네요.
길었던 세미나 시간만큼 후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쉬는 시간에 잠깐 열띤 논쟁의 주제였던 ‘지금 우리가 동성애를 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시간만 많았다면 언제든 오래 이야기해도 좋을 주제인 듯 합니다. 영화에서 동성애 관계가 등장할 때 사랑의 방식이 이성애 관계에서와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다르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고요. 저는 명백하게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동일성에서 출발한 차이는 결국 동일성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으므로, 차이가 계속 분화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는 이성애자와 다릅니다. ‘보편적 인간’이라는 추상적 기준을 만들어 그 안에 모든 인간을 구겨 넣는 일은 ‘관용’도 ‘이해’도 아니며, 동일성에 기반한 차이의 확인과 다시 동일성으로의 수렴을 야기합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다르다고 할 때, 그 차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인물군을 범주화해 버리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지요. 이것은 차이에 기반하였지만 다시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사고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차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이로! 영원히 통일되지 않을 세계를 위하여! 잠시 들뢰즈를 소환하면서 n개의 성, n개의 입이 활약하던 그 시간의 기나긴 후기를 이제 그만 마칠까 합니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번역된 본권보다 삼월의 이 요약이 훨씬 이해롭네요(!)
정말 황홀한 후기, 감사합니다.
초리스펙!!!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까지 이해하게 만드는 후기ㅎㅎ
삼월님의 댓글
삼월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이라니! ㅋㅋ
그럼 안 됩니다요~
덕분에 보람찬 연말이 됐습니다요. 저도 감사합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후기 잘 읽었어요.
그날의 분위기와 내용 간추림 그리고 마지막 개인적 감상까지도!
삼월의 세미나원들에 대한 애정과 노력의 흔적이 보여요. 수고 많았어요.
낭랑한 목소리의 울 석관샘도 익히 상상 가능하고
바리바리 먹을거 싸들고 입장하는 열혈 세미나원들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이렇게해서 <성의 역사 2권 : 쾌락의 활용>이 훌쩍 끝나버린건가요?
아.. 아~앙대~~~~~~~~~~~~~~~~
전 시작도 못한 느낌인데! ㅠ.ㅠ
공사다망한 저의 불찰이겠지요.
여행 가서도 피곤한 몸으로 밤늦은 시간,
돌아가기전까지는 읽어야 하는데 우짜지.. 하며
딱 1분간 책표지만 만지작 하다가 바로 골아떨어져주기~!
하루하루 2주 동안 꽉차게 신나게 쎄리 놀다보니 병도 나고 ㅎㅎㅎ
러시아, 제가 참 많이 몰랐던 나라더라구요. 몰라도 너무 몰랐던 먼 나라.
여튼 밤문화 좋아하는 저로선 미국 보다 훨씬 안전한 밤거리의 느낌적 느낌! ^O^
언제나 울 푸코님의 소환에는 고무신 벗어 양손에 쥐어 들고
콧털 휘날리며 일등으로 푸코님께 달려가고픈 일 인이랍니다.
이제 <성의 역사 3권 : 자기배려>가 시작되겠군요.
3권은 좀 열심히 해 볼라구요.
그럼 새해 첫 세미나 시간에 봐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3권은 열심히 해 보겠다니 이렇게 반가운 소식이.
유택 없는 푸코세미나가 어쩐지 어색해 더 열심히 공부만 했는지도...
여행도 함께 하는 푸코, 푸코에 대한 유택의 애정을 따라잡을려면 나는 아직 멀었군요. ㅎㅎ
서로의 애정과 노력을 본받아가며 열심히 해 봅시다요~
김현님의 댓글
김현
후기 쓸 사람을 안 정했다는 것을 오늘 깨닫고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삼월님의 후기가 이렇게..!
저도 먼저 삼월님에게 리스펙을!!
저는 가정관리술에서 나가떨어져 마지막을 후루룩 읽었는데..
세미나 하며, 또 후기 읽으며 더 재밌던 파트를 읽기 전에 무너진 것이 아닌지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ㅜㅜ
꼼꼼이 읽지 못한 중에도 저 역시 궁정풍 관습이 여기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요.
여러모로, 시간이 촉박하여 거진 세 시간에 육박했던 시간 조차 짧게 느껴졌던 것 같고,
삼월님 말씀처럼 하지 못하고 넘어간 이야기들, 특히 마지막 문단의 주제가 아쉬웠습니다만,
이렇게 후기로나마 삼월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저에겐 2권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는데, 함께 해서 의미있었고, 3권을 시작하려는 마음도 든든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는 말에 왜 내 콧날이 시큰해지는지...
12월 내내 한파와 푸코를 함께 견뎌준 현, 감사합니다.
하필 제일 재미없는 부분을 맡아 어찌나 성실하게 발제와 후기를 써주었는지.
그 덕분에 우리는 고비를 넘었지만, 현은 혼자 지쳤었군요. 이런이런.
다음에는 꼭 제일 재밌어보이는 부분의 발제를 맡아주세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이 역시 삼월의 에토스! 후기 감사합니다.
세미나에 유택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얘기했었죠.
저는 세 시간의 세미나가 힘들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문제 삼는가.에 집중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소년애라는 문제적 관계에서 그들은 무엇을 문제로 제기하는가.
소년이 명예를 획득하는 방법과 그리스인들의 진실한 사랑에 대한 탐구는
저의 연애와 사랑을 떠올려보게 하는 면이 있었죠.
현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이미 지위를 획득한) 자유민 남성과 (아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소년의 관계로 비유하는 것은
관계의 양태를 쉽게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소년기는 찰나와 같이 짧고, 소년 이후의 청년은 지위를 당연하게 획득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다른 점일 텐데요.
저한테는 좀 더 생각할 꺼리가 있습니다.
주체의 해석학, 진실의 용기, 성의 역사 1,2권을 거쳐왔건만 아직도 푸코의 텍스트는
제 신체의 감각과 리듬이 맞춰지질 않네요.
그래도 학우들 덕분에 겨우 여기까지 왔어요. 감사합니다.
참, 그 날 티라미수도 아라차가 산 거예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우리는 왜 윤리를 문제삼는가.
윤리는 나에게 왜 중요한가.
최근에 계속 질문이 드네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앗 티라미수의 주인공도 아라차였군요. 누가 산 건지도 모르게 맛있게 먹었네요. ㅎㅎ
역시 현실의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고민이 치열한 연두의 모습,
그 고민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윤리의 문제 역시도요.
저번에 연두가 주체의 윤리든, 부여된 도덕이든 그게 없이는 살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한 말이 기억나요.
그 말을 조금 바꾸면, 우리 모두는 윤리적 주체로 스스로를 만들어가지 않을 때엔
반드시 도덕의 노예가 된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꾸만 기를 쓰게 됩니다.
사실은 나도 연두처럼 잘 맞춰지지 않는 감각과 리듬으로 오늘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역시 든든한 삼월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2권 마지막 시간 빠져서 너무나 아쉽고 미안합니다.
후기까지 성실히 잘 올려주고 모두들 열정적으로 댓글로 토론이 이뤄져서 정말 기쁩니다.
후기를 올리는 것, 함께 얘기 나누는 것이 삼월과 우리 푸코 세미나 팀의 자기배려, 또 다른 에토스이겠지요.
후기로 더 많은 것을 배워 갑니다. 고마워요 삼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반장 없는 2017년 마지막 세미나가 사실 조금 서운했더랬지요.
올 한 해도 고생 많았어요, 우리 반장. 든든하게 여겨주어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좀더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이 하고, 자기배려도 계속해요, 우리.
유택님의 댓글
유택
세미나 꽤나 빠지셨던 울 유택님 없어서
서운한다는 말은 그 어디에두 찾아볼 길 읍네 읍써~~~~ ㅎㅎㅎ
소리 반장 워찌된거? 몸 많이 안 좋은거?
얼른 몸 추스리고 새해에는 계획하는 일 술술 잘 풀리는 한 해 되길 바래요~!
재작년 벙커에서 병권샘 니체 강연할때 처음으로 봤던 긴생머리 페미니스트 소리!
그 날이 아련히 생각나는 밤!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항상 제목 보고 배신당하는 푸코입니다 ~~ 몬가 러브러브 하길 기대한 내 잘못인가요 . 쿄쿄(이제 기대를 버릴때도 됐는데 말이죠)
후기 생각도 못했는데 솔선 수범 좋은 후기 감사해요 ~
'보편인간'이라는 추상적 기준에 모든 인간을 넣는건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죠. 내가 본 포인트는 '동성애'라는것은 그 사람의 하나의 특성인데 그것이 전부인양 그 규정에 넣으면 안된다는것이였어요
'동성애'라는 규정에 그사람의 인생을 다 넣는듯한 태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에 우려되어 그쪽을 강조한 말이죠....
이성애자라고 다 같지도 않고요. 들뢰즈 n 개의 성에서 저도 공감 많이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나랑 삼월님 같은 이야기 하고 있는것 같은데요 . ^^;;;;
삼월님의 댓글
삼월
ㅎㅎ 이른 발제문 올라온 거 봤습니다. 덕분에 새해 첫 세미나 힘차게 시작할 수 있겠군요.
사실 올리비아님이랑 저랑 같은 얘기하고 있는 거 맞는데, 그 과정이 조금 달라서
우리가 최근에 들뢰즈 강좌도 들은 김에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n개의 성을 '인간은 개체적으로 다 다르다'라고 이해해 버리면, 그 안에서는 개별적 차이들을 감지해내지 못해요.
그리고 이미 그 안에는 '인간'이라는 기준이 자리잡고 있는 거고요.
그 다름의 기준이 되는 '인간'이란 하나의 추상적 척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동성애자의 어떤 특성을 이해하고 이성애자의 어떤 특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차이를 감각할 수 있는 거고요.
모든 차이들은 그렇게 이해되고 감각되어야 하는 것이지,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듯 합니다.
올리비아님이 걱정하는 '동성애'라는 규정에 그 사람의 특성을 다 넣어버린다는 말도
한 사람이라는 개별적인 실체의 특성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 흔히 나타나는 일이겠지요.
어떤 규정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넣는 태도에 대해서도 소수자운동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파리아'나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규정이 그렇다고 봅니다.
그런 규정이나 정체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문제가 올리비아님 말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위험이 있음에도 말이예요.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특성에 대해 주장하는 집단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요.
늘 함께 푸코에게 배신당하는 처지에, 간만에 토론도 하니 공부 의욕도 솟고 좋네요.
새해에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