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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발제] 위험한 책 :: 2부 9~12장 +3
namu / 2018-01-05 / 조회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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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9. 나는 미래 속으로 날아갔다

나는 너무나도 먼 미래 속으로 날아갔다. 섬뜩한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라!  시간만이 내 유일한 동시대인(Zeitgenosse)이 아닌가.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 이미 와 있는 미래

 

“나는 너무 일찍 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미’와 ‘아직’이 공존하는 상황, 신은 죽었지만 그 소식은 아직 전달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광기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다.”(『즐거운 지식』)

☞누군가를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았기(사람들과 보편적인 신념을 고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운명은 오늘을 향해 말하지 않으며, 결코 오지 않을 날을 향해서도 말하지 않는다.”(‘꿀 봉납’)

☞미래는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와 있지만 오해되는 시간이다. (---)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간이며, 비시대적인 것, 때에 맞지 않은 것(Unzeit)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 시대정신 vs 비시대정신

 

“참된 철학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비시대적이다.” (「교육자 쇼펜하우어 」)

☞니체의 ‘비시대성’은 헤겔의 ‘시대정신과 대조.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다.’(『법철학』)

 

“네가 아직도 적대받는 한 너는 너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너의 시대가 너를 전혀 알아 볼 수 없어야 한다.”(『유고, 1882∼1883/4』)

  

▣ 가장 늦게 온 손님

 

“일체의 ‘그랬었다’는 창조하는 의지가 나서서 ‘나는 그것이 그러기를 원했다!’고 말할 때까지는 부서진 파편이요, 수수께끼이자 끔찍한 우연일 뿐이다.”( ‘구제에 대하여’)

☞ 시간(‘그랬었다’)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창조와 생성을 이해함으로써 가능. 차라는 과거를 재창조해서, 미래로 만들어줌으로써, 그리고 과거 속에 들어있던 미래를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풀었다.  

 

“창조하는 자로서, 수수께끼를 푸는 자로서, 그리고 우연을 구제하는 자로서 나는 그들에게 미래를 창조할 것을, 그리고 이미 있었던 모든 것을 창조를 통해서 구제할 것을 가르쳤다.”(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창조와 생성은 현재와 과거를 구원하는 방법이며, 미래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동시에 시간 자체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생성은 그 자체로 시간이다).

 

 

10.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들은 음탕하다

모든 사물들의 기원은 천 겹이다.( 『차라투스트라』)

  

▣ 음탕한 수코양이

 

“오, 예민한 위선자들이여, 음탕한 자들이여! 너희들의 갈망은 천진난만하지 않다. 너희들이 그 갈망을 비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순수한 인식에 대하여’)” 

☞“정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내장까지 속일 수는 없다.” 차라는 학자들이 제아무리 ‘욕망없는 관조’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또 가치중립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욕망을 감춘 위선일 뿐이라고 말한다.

 

▣ 학자들을 위한 사랑학 개론

 

“사랑하는 것과 몰락하는 것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사랑을 향한 의지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당신들이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을 향한 의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인지도 모른다. 

☞학자 너희들은 자신의 진리를 낳아야하며 그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너희는 ‘지혜의 친구’로 불리지 않으면 안된다. 설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며, 서로가 서로를 변신시켜주는 관계, 그것이 되어야 한다.  

 

 

11. 인간만큼 큰 귀를 보았다

 

▣ 바닥에 붙은 키

  

차라: 유일신이 왜 그리 위대해졌는지 아는가?

난쟁이: 신이야 원래 위대한 자 아닌가?

차라:(뜻밖에도)  그건 인간들이 왜소해졌기 때문이야.

  

“호수가 어느 날 스스로 흘러갈 것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흘러나가던 길목에 하나의 둑을 쌓았으니, 그러고 나서부터 그 호수는 자꾸 높아만 갔다. ---아마 인간도 그가 신에게 더 이상 흘러나가지 않을 때부터 점점 높아져 갈 것이다”  ( 『즐거운 지식』).

 

“최대의 인간과 최소의 인간, 그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실 그들은 너무나 흡사했다. 최대의 인간조차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인간은을 혐오하는 이유이다”(‘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프로메테우스 전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인적 노력을 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을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즐거운 지식』).

 

▣ 전도된 불구자

 

너희의 불구는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다. 겨우 눈이 하나 없고 다리가 하나 없는 정도가 아닌가. 나는 너희들보다 더 고약한 불구자들을 알고 있다. 어떤 이는 그저 커다란 눈일 뿐이고, 어떤 이는 커다란 주둥이일 뿐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전도된 불구자라고 부른다.( 『차라투스트라』)

 

사람들이 내게 전해준 바에 따르면 그 거대한 귀는 어떤 사람, 그것도 어떤 위대한 사람이며 천재다.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않았다. 나는 그가 모든 것에서는 너무 적게, 오직 한 가지에서만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전도된 불구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구제에 대하여’) 

☞“거대한 귀” 메타포는 전문가.

 

▣ 만사 귀찮은 게으름뱅이

 

이들(최후의 인간) 중 누군가가 말한다. “신의 죽음이라고? 그런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신을 찾는다고? 언제 신을 잃어버렸나 보지?” 신앙이 없다는 점에선 차라를 닮았는데 이들의 말에선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니컬한 냉소만 있을 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 이들의 유일한 신앙은 무신앙이고, 유일한 근면은 게으름이다.

 

“너희들에게 취후의 인간을 보여주겠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 동경이란 무엇인가? 별이란 무엇인가?’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묻고는 눈을 깜박인다.” (‘차라의 머리말’)

☞‘최후의 인간’은 제 발로 선 적이 없는 , 그래서 항상 뭔가에 의존하고 그것을 숭배해 온 인간의 종착역과도 같다. 허무주의의 전형이자 완성이다. 니체는 현대성(혹은 유럽 민주주의)이 그런 인간형에 기초하고 있고, 그런 인간형을 양산한다고 보았다.

 

※ 허무주의 3유형: 들뢰즈  『니체와 철학』

➀ 부정적 허무주의(negative nihilism) : 세상에 대한 평가절하에서 시작하여 ‘이 세계’와는 다른 ‘저 세계’를 창안하고 모든 진리와 도덕의 기준을 거기에 둔다. 그러고서는  ‘저 세계’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비난한다. (이데아 세계 등.)

➁ 반동적 허무주의(reactive  nihilism) :  ‘저 세계’에 설정했던 기준 자체가 의심받는다. 고차적 가치의 평가절하. 과학이나 자유, 진보,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 등으로 대체.

➂ 수동적 허무주의(passive nihilism) : ‘모든 것은 헛되다.’

 

 

12. 춤추고 웃는 법을 배워라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을 통해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내가 사다리 하나로만 먼 곳을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계속해서 물어가며 걸었다. 물음과 시도, 그것이 내 모든 행로였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

 

▣ 포겔프라이(Vogelfrei)- 중력의 정신에 맞서

 

“중력의 영은 불구대천의 적이다. 나는 그것이 창조한 모든 것, 이를테면 강제, 율법, 필요와 귀결, 목적과 의지, 선과 악을 뛰어넘고자 한다.”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타조가 날 수 없는 이유는 그 머리를 여전히 무거운 대지 속에 처박기 때문이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

 

▣ 댄서의 웃음, 코미디언의 춤

 

“사람들은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죽인다.”(‘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하나의 환영이 수수께끼처럼---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 목자는 그 소리에 따라 뱀을 물어뜯었다.  그것도 단숨에. 뱀 대가리를 멀리 뱉아내고는 벌떡 일어났는데, 갑자기 그 주변을 빛이 감싸더니 그가 환하게 웃는게 아닌가. 그는 더 이상 양치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었다. 차라는 지금까지 그처럼 환하게 웃는 자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에피소드는 영원회귀와 위버멘쉬에 대한 중요한 암시들을 담고 있다. 환형의 동물인 뱀, 그것이 가하는 끔찍한 고통은 일종의 시험대다. 그것을 긍정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가. 그 무서움을 단숨에 벗어던지고 가볍게 춤출 수 있는가. 거기에 영원회귀와 위버멘쉬의 비밀이 숨어 있다. 목자가 환하게 웃었다는 것은 위버멘쉬로의 변신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나의 경멸과 경고의 새는 늪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날아올라야 하는 것이다!”(‘그냥 지나쳐 가기에 대하여’)

 

“위대한 책들은 추악한 현실, 혐오스러운 현실을 다룰 때조차 기쁨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배적 코드가 난처함에 빠졌을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들뢰즈

☞추악한 현실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되돌아오지 않고, 환하게 웃는 자만이 그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 춤의 신, 웃음의 신

 

“‘너는 해야 한다’ 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는 의욕한다’(영웅)이고, ‘나는 의욕한다’ 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는 존재한다’(그리스 신들)이다.”(『권력의지』)

☜차라와 디오니소스의 웃음과 춤이 갖는 차이 : 차라의 웃음과 춤에는 위버멘쉬 와 영원회귀를 향한 의욕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영원회귀의 신이고 위버멘쉬인 디오니소스는 어떤 특별한 의욕도 갖지 않는다. 긍정을 배우는 차라와 달리 디오니소스의 웃음은 그 자체로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다. 차라의 춤, 그 건너뛰기는 매번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지만, 디오니소스의 춤, 그 건너뛰기는 모험이 아니라 생성으로 움직이는 세상 원리 그 자체이다.

 

댓글목록

오돌돌님의 댓글

오돌돌

먼저 전시간에 했던 “8장의 여자의 해결책은 임신이다.” 와 관련한 토론에서 ...... 니체의 여성관은 다른 분야에서와 같이 비시대적이지 못하고, 아주 실망스러운 가치기준이다. 별로 논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유럽의 물질문명에서 앞도적인 화력을 동원한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 비문명적인 면모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모습이다.

9장의 미래속으로 날아갔다 에서는 ...... 니체와 같은 천재적인 학자들의 탄생과 그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인하여 유럽문명의 철학이나 인문학적인면에서 눈부신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인류문명의 역사를 볼떄 개인적으로는 헤겔의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다’라는 시대정신에 더욱 공감이 간다.

10장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들은 음탕하다에서의 ...... ‘욕망없는 관조’라는 문장에서 애기되었던 모든감각을 배제하고 참진리 또는 진리에 대한 의지를 찾고자하는 것에서 위대한 철학자나 수행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인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가치있거나 유의미한 일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나약한 본성을 움직일 동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11장 인간만큼 큰귀를 보았다에서 ...... 전도된 불구자는 문장은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요즈음 사회에서도 모든분야에 전문가 집단이 있고 그 전문가 집단중에서도 수준의 차이가 천차만별인데, 중력의 영을 벗어나 흘러가기를 거부하는 호수가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단지, 주변에 이런것들을 초월한 그런 훌륭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서 살고 싶다.

- 반장님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적기는 했으나, 약간 유치한 사고수준을 다보이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는 하고하여
  다음부터는 그냥 욕먹고 댓글은 적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 글구,  반장님 어제 말했듯시 다음주 15일은 제가 1박2일 교육이라 참석 못합니다.
  대신, 그다음주에 간식은 제가 떡뽁기 & 순대로 제가 쏘겠습니다.
- 그리고 괜찮으시면 제 직업이 건설쪽이니까 아파트가격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이런 종류의 공부를 처음하는 오돌돌님이 얼마나 낯설고 힘들지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유가 있을 뿐이지(그래서 니체는 천개의 사유라고 말했지요!!),
'사고수준'으로 표현되는 사유의 위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높은 사유/낮은 사유가 어디있으며, 유치한 사고/고상한 사고가 어디 있겠어요?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한 것도 훌륭한 일이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칭찬할 일입니다.
남은 세미나기간도 함께 힘을 내서 즐겁게 공부하도록 해요, 오돌돌님^.^

소소님의 댓글

소소 댓글의 댓글

본인의 주관적 가치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가치도 생성할 수 없다는 니체의 말처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일단 시작이라 생각하시고
그런 차원에서 오돌돌님의 생각을, 댓글을 응원합니다! ^^

떡볶이 & 순대 (텍스트만 읽었는데 침이....) 먹으면서 아파트 얘기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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