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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위험한 책 :: 2부 5~8강(수정, 8강부문 추가) +8
엇결과 순결 / 2018-01-07 / 조회 2,549 

본문

5. 신체야말로 큰 이성이다.

 

  - 신체를 단순히 이성과 육신(작은 신체)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서 벗어나 이성과 감정 및 육체를 포괄하는 큰 개념으로서의

    신체를  설명하는 Chapter였습니다.

 

  - 오라클님의 문제 제기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큰 이성으로서의 신체의 개념을 자아와 자기의 구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보다 깊이있게 이해해야 함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창백한 범죄자‘편에서 범죄자가 왜 창백해졌을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물어주셨습니다.

 

  - 큰 이성으로서의 신체에 대해 논의된 내용 중

   · 신체는 여러 형태의 감각과 정서가 들끓고 있는 하나의 장(場)이며, 

     들뢰즈가 표현한 기관없는 신체, 프로이드의 무의식적 이드(잠재성)를 일컫는 것이라는 다양한 설명들이 있었습니다.

   · 한편 소소님께서 신체와는 무관함 감정 상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셨고, 

     오라클님은 감정을 느끼기 이전에  신체에 어떤 외부적 자극이 있었음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음......솔직히 정리하는 지금도 명확한 구분에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

   ·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설명으로, 나무님께서 정리해 주신

     역동적인 복합성, 추동하는 정서들의 움직임, 신체 대한 다양성 등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한 단어는 “다양성” 이라는 것과, 

     자아는 파도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일 뿐 그 자아의 바탕이 되는 감정은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 당시에 주류를 형성하는 감정이 곧 일시적 자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저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을 당시에는 큰 어려움 없이 이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학자들의 표현이나  다소 익숙치 않은 용어들이 나오면서 헷갈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좀 더 고민하고 숙고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두 번째 주제는 창백한 범죄자와 관련하여

    오라클님, 단일한 자아, 주체성의 가정 하에서는 행위자 – 행위 – 의도가 삼위일체(동일성)성을 가지며 이에 따라 사건 후에 

    오히려 범죄자를 만들기 때문에 범죄자가 창백해 진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관련 다양한 좋은 의견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 오라클, 선악 기준하에 만들어지는 범죄에 대해 니체는 부정적 입장이었다.

    · 나무, 신학자들의 악용이 문제였던 것. 그러나 자유의지의 부정 시 사회유지 자체가 불가하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함.

    · 호골산, 서류 속의 범죄자, 행위자가 빠져있는 범죄를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

    · 빠른거북이, 니체는 죄를 광기로 보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비판적 입장에서 우리는 읽을 수  있음을 지적

    · 올리비아, 카뮈의 이방인의 한 장면이 생각났으며, 하나의 범죄를 위해 행위자의 모든 과거 행적을 뒤져 책임을 전가하는 

      과거 시대상의 반영일 수도 있다는 지적

    · 널깊, 니체에게 범죄자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병약함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그 점에서 범죄자가 아닌 

      병자로 본 것이 아닐까라고 설명

   ★ 아......다소 두서없이 나온 말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군요.....^^

 

6.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주제인지라, 토론도 너무 재미있었다는.....ㅎㅎㅎ

 

  - 먼저 오라클님의 정리 : 노동과 전쟁의 개념 구별로서, “자기“ 가치(전쟁), ”타인”가치의 생산(노동)으로 구별했다는 점.....

    우선 개념 구별이 중요함을 강조

 

  - 이어서 올리비아, 창업 준비 과정에서 자기가치의 창조와 경제적 수익성 사이에서 현실적 딜레마가 있음을 토로. 

    즉 니체가 말하는 전쟁의 현실적 실현의 어려움을 지적

 

  - 빠른거북이, 이케아 사례를 들어주시면서 사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최초의 자기가치 창조는 유지되기 어려우며 

   결국은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 노동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 오라클, 첫째 양심적 자본가는 불가능함, 둘째 그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공고하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극복으로서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그 대답으로 협동조합을 공부해 볼 것을 권유하셨습니다.(세미나 주제상 깊이있는 설명은 안해주심.^^)

 

  - 소소, 직장생활과 자기가치의 조화가 가능함을 본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심. 직장에서의 일을 단지 노동하고 있음과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음으로 이분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나의 경험의 확대라는 중요한 가치발견도 가능함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직장) 안에서도 자기 가치는 공존할 수 있음과 그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여기에 더해 빠른 거북님이 동조하시면서 고병권씨의 ‘노동자의 허영심’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의견을 더해 주셨습니다.

 

  - 순결과엇결,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있음.

    노동자는 정년퇴직할 때까지.....그리고 나면 여행다니고 할거야.

    장인들은 내 힘이 닿는한, 죽는 그 순간까지......

    타인가치와 자기가치의 창조가 갈리는 지점이 아닐까? 

 

  - 오라클, 노동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가치의 창조가 중요한 것임을 재차 강조해 주셨고,

 

  - 호골산, 퇴직하고도 이전 직장의 직함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선배의 모습이 바로 허영심이 아닐까하고 설명 

     자기 가치의 창조가 중요함을 직장생활 50세가 넘어야 깨닫는다는게 문제라고 지적해 주심.

 

  - 나무, 노동자의 자기 경험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이 자기기만이며 그것이 외부에서 보면 허영심이라고 본것이라고 설명

 

  - 올리비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장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목표가 있다면 자기가치를 

    위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설명

 

  - 엇결,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올리비에님의 말씀 속에 사람(자기가치)이 우선된다면 그것이 바로 양심적 자본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의견 제시

 

  - 오라클님의 명쾌한 정리, 만일 자본이 우선적 목표가 아닌 자본가가 있다면 그것을 무어라고 부르던(양심적 자본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 특별한 자본가이며 기존의 자본가 개념에서 벗어난 것일뿐......개념의 무화라고 설명해 주심.

 

  - 올리비에, 양심적 자본가를 악용하는 무리들이 많으니, 차라리 전혀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주심.  

 

7.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 전반적으로 국가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국가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중 인상적인 것은 오라클님의 설명, 과거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고자 노력했으나, 

     그런 노력 자체도 절대가치를 추구하는  또다른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 

     이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출구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끊임없이 출구를 찾는 여정이 중요함을 지적하신  설명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 한편 국가에 대한 전쟁의 개념이 정말 화약냄새 나는 전쟁을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 저를 포함한 일부 분들이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정리하기가 좀 어렵네요.)

 

  - 니체가 언급한 전쟁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만, 일일이 정리하기에 좀 힘에 부칩니다.(^^)

 

8. 여자의 해결책은 임신이다.

 

- 지난 시간에 이어 열띤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보다는 확실히 좀 더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여전히 통일된 의견을 모으기에는 각자의 생각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그대로 정리하오니, 각자 의견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나무님, 그리스 헤시오도스 이래 여성 비하 사상은 일반화되어 왔음. 니체가 그리스 문화 및 사상에 경도되었음을

              생각해 볼때 그의 여성 비하 시각도 그리스의 영향이 있었을 듯. 그러나 세부적인 표현보다는 전체적으로

              임신의 창조성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해하자고 정리

- 빠른 거북님, 니체의 여성 에 대한 표현은 그 스펙트럼의 폭이 너무 커서 당혹스럽기까지 함.

                      특히 시대의 고정관념을 깨부셔온 그의 면모를 볼 때 유독 여성관에 있었서는 기존의 왜곡된 이성관을

                      답습하는 모습이 아쉬움.

- 바르샤님, 니체가 활동하던 19세기 당시는 여성의 독립된 주체성이 거의 부정되던 시기임을 상기해야 함.

                  오히려 니체는 여성이 고유의 임신을 통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음에 focus를 맞춤으로서

                  여성도 독립된 주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발견한 것으로 평가해야 함.

- 오라클님, 우선 니체는 여성을 세가지 부류로 분류했음을 이해해야 함.

                  첫째, 남성이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연기)하는 여성      ex) 직장의 꽃으로서의 여성

                  둘째, 남성성을 답습함으로써 여성 해방을 얻으려는 여성

                  셋째, 여성 고유의 특이성으로서 창조성(임신능력)을 가진 여성

                  한편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 온 맥락상 니체 사상의 핵심은 가치의 창조에 있음.

                  니체는 가치의 창조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어떤 용어의 전혀 새로운 정의를 발견함으로써

                  사물과 사유의 새로운 면을 설명하고 있음. 전쟁, 노동 등이 그 예임.

                  이런 사유방법의 연장선에서 여성의 임신성은 또 하나의 가치 창조 역량의 강조임.

                  그 결과 니체에게는 남성도 여성도 중요한 것이 아니며, 불임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한것임.

- 모로님, 니체는 여성의 창조성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생각함.

 

- 개인적으로는 후기 정리가 부담되어 토론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정리하면서 다시 느끼는 것은

  니체에게 여성의 임신은 '여성'이 아닌 '임신'에 초점이 있으며,

  이 점에서 남자도 임신해야 한다 = 남자든 여자든 자기가치의 창조가 중요하다 =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잉태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라는 명제가 모두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모두 연결하면,

       사랑 = 창조하는 행위 = 누구를? 자기 자신을. 자기의 가치를 = 고통 = 전쟁 = 친구를 사귀는 것

       = 사랑의 결과는? 임신 = 자기 가치의 창조 = 그 가치는 천진난만함과 인생을 유희로 만드는 어린아이

       = 가치 창조는 한번만? 아니 영원히 지속되어야 = 가치창조 행위의 영원성(영원회귀)

감사합니다.      

 

후기가 너무 늦어 많이 죄송합니다.

후기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오라클님 말씀처럼 공부는 꾸준해야 한다고 하신 점.....정말 공감이 되었습니다.

1월 1일이라고 한주 건너뛰니 후기 정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습니다.

한편 세미나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누어지고 있음도 재차 실감하게 되더군요.

다소 소화가 어려운 점은 단지 저의 개인적인 역량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창백한 범죄자..... 제 뇌가 창백해 지네요 ... 모엿뜨라..
(책 다시 뒤져 보고 있는중 ~~)

 - 순결과엇결,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라는 물음
들으면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현재 고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요즘 창업이 생각중인 만큼 모니모니 해도 먹고 사는일이 가장 고민입니다.~ 어떻게 먹고 살런지 ~~

연두님의 댓글

연두

세미나 불참한 일인으로 후기를 무척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담담하게 정리해 주셨지만, 열기 넘치는 시간이었을 지난 성탄절 저녁이 눈에 선합니다.
이번 분량도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저는 5,6장에 많이 집중하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신체를 정신/영혼과 분리하고 대상화했던 저의 과거로부터 이별하는 중이고,
최근에는 감각에 더 집중하고 있는 터라 특히 5장은 꼼꼼하게 읽으려고 애썼어요.

자아와 자기의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큰 이성으로서의 신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오라클님의 말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지와 행위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강력한 인과의 끈을 끊어내라는
니체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그가 이야기하는 신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신체에는 사유하는 정신, 느끼는 감각, 그것들을 추동하는 여러 힘들, 정서들이 있다.
"신체란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힘들의 복합체에 다름 아니다(168p)."

신체, 자기 가치의 창조, 국가를 이야기함에 있어 모두 '전쟁'이 등장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전쟁에 대한 공포, 전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니체는 창조란 전쟁이며, 전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라고 합니다. 승리는 전쟁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평화를 지키는 자는 행복한 노예와 맞닿아 있습니다.

엇결과순결님의 댓글

엇결과순결 댓글의 댓글

저 역시 오랫동안 이성과 감성의 구별에 집착해왔고 스스로 이성적이라는 자부심 속에 살아왔기에
니체의 큰이성을 만났을 때의 충격과 자극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경험은 큰이성,감각과 감정의 중요함. 그리고 고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의심하게되자
비로소 아들과의 대화가 진짜 대화가 가능해졌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는 본능적으로 니체적인게 아닌가 생각하는 계기였기도 합니다.

전쟁의 의미가 아직도 머리 속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데 있어서의 치열함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기로......ㅎㅎ
다만 연두님의 평화를 지키려하는 자는 행복한 노예와 맞닿아 있다는 표현. 맘에 크게 와닿네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너는 전쟁을 하고 있는건지, 혹여나 평화를 위해 전쟁을 피하고 있는건지.
또다시 정직함이라는 니체의 중요한 단어가 떠오르네요.....ㅎㅎ

연두님의 댓글

연두 댓글의 댓글

의지와 자유의지를 구분해야 함을 오늘의 세미나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의지와 자유의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해서 위의 표현 중 제가 잘못 쓴 게 있습니다.
니체는 의지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그 자유의지와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고
얘기한 거였네요.

미라클님의 댓글

미라클

세미나 불참한 일인으로 후기를 무척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던 2인입니다. ^^
세미나에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후기를 중심으로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5장 신체야말로 큰 이성이다.

오라클님이 제기하신 문제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1. 자아와 신체의 정의
  - 자아는 행동의 결과이고, 자기는 신체이며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힘들의 복합체이다.
2. 범죄자는 왜 창백해진 걸까?
 -‘살해자의 욕망들은 서로 갈등하고 있다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빠져나오는 뱀들처럼 신체[자기]를 구성하고 있던 욕망들이 정신과 육신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나왔다. 그는 그때의 고통을 살인에 대한 명령으로 느낀 것이다.[p165]’신체는 여러 힘들의 복합체라고 했습니다. 범죄자는 당시의 고통을 살인에 대한 명령으로 느낀 것이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살해의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가 원한것은 단순히 ‘피’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법관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살인 동기를 대라고 범죄자를 닦달합니다. 그렇기에 창백해진 것이죠. 결국 행위의 ‘의도’ 는 없었습니다. 단지 ‘신체’의 의지였을뿐인거죠.

저는 창백한 범죄자를 읽으면서, 차라투스트라는 ‘그는 악당이 아니라 병자다, 그는 바보일지언정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구절을 보면서, 저는 이제까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처벌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처벌이 없다면 지금의 사회가 유지될까라, 살해자를 사회가 용서를 해야 하는 걸까, 지금 우리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 걸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6장.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저는 일을 하는 것을 나름 좋아합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단,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을때까지만요. 몇 년전에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하고, 평일에도 주3일은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건강도 너무 안 좋아지고, 단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어요. 지금은 야근은 많이 안하지만, 업무시간중에 업무강도가 너무 세서 정시퇴근을 해도 집에 와서 그냥 누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니체가 경계한 것은 이런 노동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을 다 소진시켜 버린는 것.
만약 근무중에 일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자기 가치를 실현시키고, 자신의 육체 또한 돌볼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니체가 말하는 ‘전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7장.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빠른 거북이님의 질문인 Q "어느 누구도 최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강자는 경쟁에서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요? 여기서 최강자의 의미는 넘사벽이라 좌절을 주는 존재란 의미일까요?에서,

 - 니체는 경쟁에서 최강자보다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양한 능력을 가진 강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모든 동료들을 능가하는 사람(최강자)이 되면 우월성이 발동하게 되고, 이것이 다른 사람, 가치를 억압하겠죠. 그리고 경쟁에서 진 사람은 최강자를 이기기 위해서 최강자가 가진 가치만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게 되고, 그 기준을 넘기 위해 노력을 할꺼 같아요. 하나의 가치가 다른 다양한 가치를 압도해 버리고 경쟁 자체가 죽어버리겠죠. 그렇기에 최강자는 넘사벽, 우월감을 가진 존재, 다른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이식시켜버리는 사람인거 같아요.

소소님의 댓글

소소

후기가 또 하나의 토론의 장이네요~~ 결석하신 분들의 후기가 참석한 저의 생각보다 잘 정리되어 있는 듯 하네요 ㅎㅎ
연두님의 "의지와 행위 속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강력한 인과의 끈을 끊어내라는 니체의 요구를 받아 들어야 그가 이야기하는 신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는 이야기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저 또한 불안한 현실에 의지와 행위 속에 존재하는 강력한 인과를 추종하며 달려갈수록 오히려 행위 속에 길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자아는 신체가 배제된 허상에 가까운 관념이였습니다.
습관처럼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고 몸은 행위의 도구로서만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나의 몸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서는 둔하기만 하고 신체로 사유하는 방식이 불편하고 서툽니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몸을 더 열심히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이번 세미나는 니체가 가치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니체의 가치전도는 2번에 걸쳐 진행되는데,
한번은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방식(기존의 통념에 대결하는 방식)으로
다른 한번은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1-1. 신체의 경우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방식>
- 기존의 가치에 따르면, 신체는 정신보다 열등하고, 정신의 결단에 의존하는 고깃덩어리이며, 오류와 죄의 유도자였다.
- 그러나 니체는, 신체의 능력에 대해 가르친다. 삶은 신체 때문에 가능했다고!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 자신의 신체와 이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의 삶이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1-2. 신체의 경우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방식>
- 니체는 신체에 대한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한다.
- 신체는 더 큰 이성으로서, '정신'이나 고깃덩어리로서의 '신체'를 모두 포함한다.
  신체는 제3의 눈으로서, 정신의 눈과 신체의 눈 - 두개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본다.
- 신체란 인간의 의도로부터 독립된 자연이며, 다양한 힘들의 복합체로서 '하나의 장'이라면,
  자아(주체)란 다양한 힘들 가운데서 특정한 힘이 우위를 차지할 때 나타나는 '힘들의 잠정적인 중심'이다.

2-1. 노동의 경우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방식>
- 기존의 가치에 따르면, 노동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고 노동을 찬미한다. 이러한 노동에 대한 이미지는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보고, 생산에 투여된 노동시간을 상품의 가치로 보는 '노동가치설'로 이어진다.
- 그러나 니체에 따르면, 효용의 관점에서만 노동의 가치가 평가된다.
  다시말해 노동은 화폐로 표현된 활동이며, 노동에 대한 착취는 미래를 대가로 한 약탈이다.

2-2. 노동의 경우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
- 니체는 노동에 대한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한다.
  노동이 낡은 삶을 생산하는 과정이라면, 전쟁은 새로운 삶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 니체는 노동자가 노동으로 인한 심신의 상실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할 능력을 상실한 것을 심각하게 보았다.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한 가치를 빼았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기서 가치는 물질적 가치)
  '자기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타자의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가치는 정신적 가치)
-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자신을 자유인으로 생산하기 보다 노예로서 재생산한다.
  따라서 니체는 노동을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 그러나 노동을 거부하는 일은 게으름이나 나태로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은 자기 가치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새로운 가치창조 활동을 노동과 엄격히 구분했다.

3-1. 전쟁의 경우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방식>
- 기존의 가치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전쟁을 막기 위해 출현했다. (전쟁은 부정적 가치로 표현)
  "전쟁의 경련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
- 그러나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국가는 전쟁을 재생산하려 했다. (전쟁은 긍정적 가치로 표현)
  "그리스인들에게는 가종할 정도의 정치적 충동이 있었다. 도시국가들간의, 정당들간의 피비린내나는 질투,
  작은 전쟁들의 살인적인 탐욕, 패배한 적의 시체 위에서 구가하는 표범 같은 승리, ...... 그리스국가의 천진난만한 야만성."

3-2. 전쟁의 경우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
- 니체는 전쟁에 대한 기존의 가치를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한다.
  국가가 낡은 가치를 대변하고 경쟁을 저지한다면, 전쟁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경쟁을 부추긴다.
- 전쟁의 참된 의미는 치열한 전쟁(아곤)이다. '화약냄새 나는 전쟁'은 저급한 전쟁이다.
  다양한 가치들을 창조하고 치열한 경쟁을 의미하는 '향기나는 전쟁'이 고차원적인 전쟁인 것이다.
- "모든 재능은 싸우면서 만개해야 한다. 이 전투적 교육의 목표는 전체(국가사회)의 안녕이었다.
  모든 아테네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자기를 발전시켜야 한다."
  경쟁은 각자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사회 전체를 강화시킨다.
- 그리스인들이 두려워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가로막는 초월적 존재의 출현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초월적 존재를 추방하는 '도편추방'을 통해 경쟁을 유지하고자 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최강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말라서 고갈되고 헬레니즘 국가의 영원한 생명근거가 위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빠른거북이님의 댓글

빠른거북이

세미나 불참하지 않았지만 후기를 무척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던 3인입니다. ^^
그런데 정말 소소님 말씀처럼 저보다 불참하신 분들의 댓글과 토론이 더 생생하네요 
제가 퇴근하고 지금 막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2주 동안 쉬어서 그런지 머리가 '창백해진' 것 같아요
어쨌든  연두님 전쟁에 대한 말씀 좋네요, 미라클님 최강자 해석도 좋습니다 ~ 불참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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