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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후기] 0111 성의 역사3 _ 자기 연마 +3
김현 / 2018-01-12 / 조회 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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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세미나] 성의 역사 3권 자기 배려

180111(목) 2장 자기 연마 후기

 

 

 기원후 1,2 세기(이 장에서 제정시대, 헬레니즘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자기 연마는 기원 전 4세기 그리스 시대의 아프로디지아를 대하던 태도에서 변화하고 강조점이 이동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당시의 자기 연마에 대해 푸코는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제정시대의 성적 엄격함이 활발하게 논의되었으나, 이때의 엄격함이라 함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성도덕이나 금기와 같은 엄격함은 아닙니다. 더욱이 이때의 부부간의 정절은 기원 전 4세기 절제로 유명했던 니코클레스가 행하던 정절보다도 엄격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푸코는 이 시대의 성적 엄격함의 원인을, 금지 조항의 강화가 아닌, 자기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에서 찾고자 합니다. 

(여기서 잠시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세미나 시간에도 이 이야기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책에서, 성적으로 엄격한 도덕의 발전이 제정 시대에 들어서며 도시 국가의 틀이 약화되는 과정 속에 개인주의가 증대되었다는 이유라는 해석에 푸코는 무게를 실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주의의 범주를 개인주의적 태도/ 사생활/ 자기 자신과의 관계 강화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결국에 푸코는 ‘제정시대에 표명된 성적 엄격함에 대한 요구가 증대된 개인주의의 표명인 것 같지는 않다.’라고 못을 박지요... 3권 58~59쪽의 내용입니다.)

 여하튼, 푸코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적 엄격함의 원인은 상술한 것(자기와의 관계를 강화)과 같은 맥락에서 ‘자기 연마’의 발달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연마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삶의 기술입니다. 자기 연마와 자기 배려(또는 자기 돌봄)의 차이에 대해서도 세미나 초반부에 이야기했었는데, 세미나를 시작하며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자기 연마는 자기 배려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정시대의 자기 연마는 그리스 시대와는 조금 결이 다른데, 그리스 시대에 절제하라는 식의 권고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제와 같은 미덕은 통치자가 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노예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리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통치자가 될 사람은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2권의 내용도 나왔고요.), 제정 시대에 이르러 자기 배려의 원칙은 일반적 가치를 획득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상이한 교의들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하나의 정언명령’! 자기 연마는 이제 생활방식이 되고, 귀족들에게만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제정시대는 자기 연마의 정점에 이른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자기 연마는 인식유형과 지식의 형성을 야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자기 연마의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 등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

 자기에 대한 관심은, 학파를 막론하고 많은 철학적 교의에서 재발견 되는 것으로, 세네카가 그의 저작에서 이런 내용은 반영하듯, 자기 자신과 관련한 다채로운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읽으면서 세네카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세미나 시간에 들은 바, 부자였다던 세네카가 더 궁금해집니다..) 이어서 에픽테투스는 자기 돌봄이 필요한 이유로, 결핍 때문이 아니라 이성, 즉 필요할 때 제대로 다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능력으로, 자연 속에서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자신을 돌보도록 위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에 대한 관심은 모든 사람에게 일생에 걸쳐 유효한(“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필요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기원 전 4세기의 그리스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지도하던 것과 다르게 제정 시대의 ‘영신지도의 활동은 성인교육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 2 ]

 자기에 대한 전념은, 단순히 고독의 실천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이끌고,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동의 훈련, 그리고 도움을 주고받는 역할이 따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뒤바뀌기도 했다는 점, 주변의 관계 속에서 버팀목을 찾아내어 지도와 충고, 도움을 받았다는 이 모든 기록은 자기에 대한 전념이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고,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자기에 매몰되지 않는 자기에 대한 배려는 타인과의 상호 관계를 포함하여 이루어졌습니다.

 

[ 3 ]

 자기 배려는 의학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파토스란 개념이 공통으로 사용됩니다. 파토스는 신체와 정념에 양자에 관련하여 본인이 제어하지 못하는 ‘수동적 상태’와 관련합니다. (이 때 아펙투스, 아펙트 같은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제가 놓쳐서 그만 후기에 남기지 못합니다.. ^_ㅜ) 본질적으로 심신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에픽테투스는 자신이 운영하는 학교가 단순하게 지식의 전달 차원이 아니라 ‘영혼의 무료 진료소’가 되기를 바라고, 학생들 또한 자신의 상태를 지식을 구하러 온 학생이 아닌 환자라 생각하고 상처부터 치유하기를 권고합니다. 그런가 하면, 의사 갈레누스는 신체 뿐 아니라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과도한 힘’인 정념, ‘그릇된 견해로부터 나오는’ 오류의 치료 역시 자신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의학과 도덕이 근접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환자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도록 권유한다는 점이 중요하고, 이 지점에서 의미심장한 복선을 발견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여하튼, 병에 걸리지 않는 것보다도 자신의 상태를 깨닫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질병을 간과하거나 미덕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 4 ] 

 ‘너 자신을 알라’는 데포이적 원리, 그러니까 자기에 대한 인식의 훈련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시험. 자신에 대한 절대적 지배력을 확립하는 것. (여기서 ‘지배력’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통치’의 싹(?)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험이자 훈련은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에서 공통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어디가 고통의 시작점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스토아 학파는 나중에 재앙?이 닥쳐도 자신에게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무엇이 있음을 알기 위해서라지요.. ^^ 그래서 이들에게는 극도의 가난에 처하는 것 역시 시험이었다지요... 세네카도 축제에 참가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으면서도 향락에 빠지지 않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 궁금해지는 세네카..)

b) 반성. 아침 성찰, 저녁 성찰 등이 있는데, (주체의 해석학에서는 더욱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성찰은 마치 판사나 감독관의 역할과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죄판결이나 징벌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꼼꼼한 감독관의 역할이 되겠지요. 이런 검토는 잘못의 뿌리를 찾고 가책을 느끼려는 목적이 아니라 검토를 통해 훗날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려는 이성적 장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집니다.

c) 사유가 사유 자체에 행하는 작업. ‘표상’이라는 말이 아리송했는데, 1권에 나왔던 ‘성’의 개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고 하기도 하셨고요. 여하튼 어떤 표상에 대해 무작정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 구별하여 받아들이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 소크라테스의 검토란, 자신이 알고 모르고, 그리고 무지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검토를 말했던 반면, 제정 시대에 들어서 이루어지는 검토란, 지배력에 대한 시험, 자제력을 시험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이때의 검토 과정에서는 표상에 대해 그 이면의 의미를 해독하는 차원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까다로운 선별 과정인 검토를 통해 주체의 자유롭고 이성적인 선택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릅니다.

 

[ 5 ]

 자기 실천의 목표는 결국, 자기로의 전향입니다. 자신에 대한 소유권의 개념이 들어오는데, ‘자신이 자신과 맺는 관계’라는 말 역시 이후에 의미심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로 전향한다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감정이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의 방해하지 못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배력의 경험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속에 경험하는 기쁨입니다. 관련하여 세미나 시간에는 자아상 이야기와 내 안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도 나왔지요. 이렇게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인 관능을 대체할 수 있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 정리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본문 3권 88~90쪽 그대로의 힘을 많이 빌려야겠습니다. ^^*)

 

 제정 시대에 쾌락의 도덕에 대한 성찰은 자기 연마와 그 실천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합니다. 성적 엄격함이 강조되어 보이는 이 시기에 그 원인은 앞서 말했듯, 금지에서가 아니라 자기 연마의 발달이라고 했었지요. 자기 연마의 발달도 욕망을 차단하는 것보다 도덕적 주관성을 구성하는 요소의 변화들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윤리적 실체로서의 성적 쾌락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힘―주체가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하고 그것에 대한 지배력을 확신해야만 하는―의 차원에 속한다.’(89) 

-> 여기에서 힘이 어떤 의미인지 발제를 하면서도 궁금했는데, 세미나 시간에 영문을 확인해주신 덕에 force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권력과 연결되는 힘이라는 해석도 있었는데, 지금 후기를 쓰며 생각해보니 제 생각으로는 그 중간 즈음에 있는 것이기에 force를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원전 4세기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그 ‘힘’ 같기도 하고, 이것이 나중에 권력과 연결이 될 것 같다는 의미에서 약간은 전단계이기 때문에 force 가 아닐까 합니다.

 나머지 내용도 본문의 힘을 빌어 써보고자 합니다.

‘성 윤리는 삶의 미학적, 도덕적 기준을 규정하는 일정한 삶의 기술에 개인이 복종할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요구한다. (중략) 잘 규정된 일련의 과업 속에서 자신을 시험, 관찰, 통제하는 임무는 도덕적 주체 형성의 중심에 진실의 문제를 가져다 놓는다. 이러한 형성 작업의 귀결점은 여전히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지배력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지배력은 자신과의 관계가 지배의 형태뿐만 아니라 욕망도 동요도 없는 즐김의 형태를 띠는 하나의 경험으로까지 확장된다.’(89)

 아직 쾌락이 악과 결부되고 욕망이 해부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단계이지만, ‘이미 악의 문제가 어떻게 힘(역시 force)이라는 오래된 주제에 작용하기 시작하는지, 법률의 문제가 어떻게 예술과 “기술”(테크네)의 주제를 굴절시키기 시작하는지, 또 진실의 문제와 자기 인식의 원리가 금욕의 실천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 볼 수 있다.’(90)

-> 선악의 문제에 권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세미나 시간의 이야기를 덧붙여 봅니다.

 

앞으로의 내용은, 기원 전 4세기의 그리스 시대의 자기 돌봄이 제정시대의 자기 연마의 형태로 변해온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듯합니다. 

 

 

성의 역사부터 푸코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1인으로, 주체의 해석학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게 들려, 그때부터 참여하지 못한 것이 원통합니다... 

 

이번 세미나 시간에는 오랜만에 돌아오신 분, 새로 오신 분이 오셔서 반가웠던 한편, 못 오신 분들도 있어서 아쉽기도 한 시간이었네요. 모두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3장을 함께 읽었으면!  

댓글목록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주체의 해석학 못해서 원통한 1인 추가욥 . ㅜㅜ
후기까지 꼼꼼하고 성실하네요 . 쿄쿄
다시 한번 기억이 되살려져 좋았습니다.

*참고로 "힘"의 부분 영문올려봅니다.
그러고.. force 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여러 뜻이 있네요.
물리력, 폭력, (강력한)영향력[설득력], (법률의)효력 등등등.

문장에서의 느낌은 power(권력(힘))보다는 (강력한)영향력을 행사 하는 힘 으로 해석해도 좋을것같다는 생각입니다.
주체가 맞서야 하는 지배력(domination) 싸움이니깐욥 ~~

p89
Sexual peasure as an ethical substance continues to be governed by relations of force-the force against which one must struggle and over which the subject is expected to establish his domination.

p90
Yet one can already see how the question of evil begins to work upon the ancient theme of force, how the question of law begins to modify the theme of art and technē, and how the question of truth and the principle of self-knowledge evolve within the ascetic practices.
---------------------------------------------------------------
어찌댔껀... " May the Force be with you" 입니닷 ~~
-생각해 보니 여기 force 도 물리적 힘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였어요 .. 에너지 같은 복잡한..
 모든 제다이들이 force 가 무엇인지 깨닳기 위해 수련을 하지욥 ~~
(흑 너무 덕후 같은가요 . .~~ ^^;;;; 최근 스타워즈도 추천합니닷. ^^;;;;;;)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자세하고 빠른 후기 감사합니다!
무아지경으로 흘러갔던 세미나 시간의 기억을 덕분에 붙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성의 역사 3권이 끝날 때까지, 푸코의 권력 성찰이 어떻게 윤리적 주체화의 문제로 넘어가는지에 대해
대강의 정리를 끝내놓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지난 시간엔  '힘', '진실' 등의 단어에서 뭔가 큰 힌트를 얻었다 싶었다가도
갑자기 force에서 이건 뭔가...? 싶기도 했었고요.
스타워즈 떠올린 올리비아에게 저도 동의해요. 나도 그때 게임할 때 포스 생각했다능,,, ㅎㅎ
권력, 통치가 주체 스스로 자신에게 행사하는 지배력으로 넘어가는 문제.
자신과 자신이 맺는 관계에 대해 더 고민해 봐야겠어요.
두 분 다 감사합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알듯 말듯 항상 어려운 푸코입니다. ^^
현님, 후기 고마워요.
 읽으면서 또다시 복습을 해봅니다. (그래도 말이 참으로 어려워~) ㅜㅠ

오늘 드디어 2017년 12월 그랜드 오픈 세미나 문집에 실린
푸코 원년 세미나원 삼월<현대예술과 견유주의>과 아라차<이토록 끈질긴 표상>의 글을 읽다가
뒤늦은 감동의 물결에 혼자 빠졌던 오후였더랬어요.
이런 세미나원들과 그 동안 주욱 함께였다니 새삼 자랑스럽기도 했고
얼른 박자 맞춰 쫒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식지 않는 푸코에 대한 애정,
그것으로 버티어 온 지난 시간들..
다시금 그것들을 확인해 주는 이 타인들(세미나원들)!
2018년 새해도 다시금 푸코와 함께 힘차게 열리는 느낌적 느낌이에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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