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발제] 위험한책_1부 2~3장_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
요고마고
/ 2017-12-11
/ 조회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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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라투스트라,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니체는 자신이 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자신과 자신이 쓴 작품을, 그리고 각 작품의 작가로서의 니체와 그에 대해 논평하고 있는 니체를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자신의 생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에게 자신의 생애란 다른 작품들의 근원이나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작품일 뿐이다. 그의 이름이 적힌 여러 작품들은 그 자신의 변신 기록이므로, 각각의 작품의 작가인 니체는 각각의 니체이며, 이를 말하는 니체는 그러한 ‘니체들’을 체험한 사람이자 그들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란 제목의 글에서 니체는 자화자찬을 한다기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칭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차라투스트라』가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인류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더 이상 신이나 진리, 도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극복하고 구원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 vs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본래 페르시아의 예언자로서,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창시자이다. 악명높은 이원론적 세계관(예:선과 악)을 가진 종교로서 서구의 여러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비도덕주의자인 니체는 자신과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차라투스트라를 왜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일까?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그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정직하다고 보았다. “가장 불행한 오류인 도덕”을 창조했지만, 진실과 정직이 도덕을 극복하게 할 가능성이라고 본 것이다. “진실함에서 나오는 도덕의 자기극복; 도덕주의자가 자신의 반대편으로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의미가 있었다. “삶은 필연적으로 자기극복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정직하고 진실한 우리의 진리의지가 도덕의 근거(발생과 유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르시아의 차라투스트라가 도덕적 세계의 탄생을 말했다면, 니체로 넘어온 차라투스트라는 도덕적 세계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니체는 1881년 8월 “영원회귀”를 품기 시작, 18개월간의 수태기간을 거쳐 『차라투스트라』를 세상에 내놓는다. 정작 글로 쓰는 데는 열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의 예고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즐거운 지식』은 수태기간에 쓰여진 책으로 『차라투스트라』의 중요한 개념인 ‘신의 죽음’이나 ‘영원회귀’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영원회귀를 담을 유일한 형식인 “긍정”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니체가 1879년을 정점으로 병적 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긍정의 정신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한편 『차라투스트라』는 총 4부로 구성되는데, 일부 학자들은 3부를 피날레로 보기도 한다. 영원회귀를 향한 극적인 고양이 피날레로 적절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그가 구상한 4부는 인간적 본질을 폭로하고, 인간의 몰락과 변신을 다루고 있다. 또한 『차라...』의 중요한 개념인 위버멘쉬의 시간, ‘위대한 정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차라...』를 미완의 저작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니체는 완결된 멜로디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변주되는 멜로디에 매료되어 있었다. 4부는 자비로 출판되었다. 자신을 외면한 출판업자들과 독자들이 없다는 점에서 그는 고독했다.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차라...』를 밑밥 삼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린다. 니체는 아무나 『차라...』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읽어주길 소망하지도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을 물지 않는 물고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차라...』를 읽을 능력이 있는 자들만이 그것을 읽을 수 있다. 그 능력은 무엇인가? “높은 긍지”와 “섬세한 감수성”, “대단한 용기”, “놀라운 소화능력”, 무엇보다도 “복수나 원한 따위 모르는 즐거운 정신”이 요구된다.
『차라...』의 부제,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은 “만인을 친구로 삼고 싶지만 아무나 친구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표방한다.
3. 니체 이후의 니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출현은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다.”
니체의 정치적 초상화
지난 시간 동안 니체의 ‘그럴듯한’ 초상화는 수없이 그려져 왔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서로 심각한 모순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어느 것이 니체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명확히 가려낼 수 있을까. 니체에게로 가는 길목에는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초상화들이 지나가는 행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내 말 좀 들어봐’라고. 우리는 이 길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새로운 니체
“1960년대의 프랑스는 니체를 맑스, 프로이트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부활시켰다.”아래는 이 새로운 니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좌표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① 하이데거의 『니체』
하이데거는 니체 사상을 서구 형이상학 전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했다. 그러나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니체와 다른 길을 갔다.
<신의 죽음에 직면한 근대 세계에 대한 처방전> 니체 - 인간의 강화와 극복 / 하이데거 -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강조한 것> 니체 - 위버멘쉬가 느끼는 긍정의 권력의지와 자긍심 / 하이데거 - 세계에 대한 감사와 경외심
②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들뢰즈는 니체를, 헤겔의 변증법을 극복한 차이의 철학자로 평가하였다. 또한 “헤겔의 ‘부정의 부정’과 대비되는 니체의 ‘긍정의 긍정’을 발견한다.” 들뢰즈는 “긍정의 긍정이란 차이 자체를 긍정”함과 동시에 “그 차이를 산출하는 실천” 또한 긍정한다. “영원회귀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는 실천의 반복, 즉 ‘차이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③ 데리다와 푸코 등 후기 구조주의적 독해
이들의 독해는 영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에 영향을 미쳤다.
<데리다> “어떤 텍스트”도 “총체적 해석이 불가능하다”, “궁극적 진리를 찾으려 한 형이상학자들”은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니체의 입장과 통해 있다. 데리다의 관심은 “어떤 권위나 중심도 없는 수많은 해석의 놀이”에 있다. 그는 니체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하이데거를 형이상학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구 형이상학이 총체적 해석의 기반으로 삼아온 이분법적 구도를 비판하며 “니체를 동반자로 삼아” 그것들을 해체한다.
<푸코> “인간의 극복은 그것을 중심에 두고 형성되어 온 근대적 인식틀 자체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 “근대성에 대한 중요한 돌파”로 니체를 받아들였다. 또한 “니체의 계보학을 자신의 역사 연구의 방법론으로 차용했다.” 이는 “가치의 발생과 유래를 추적함으로써 기원과 목적을 신성화하기 위해 가해진 폭력과 위선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사건들이 새겨진 장소로서의 육체를 주목”했던 니체의 계보학은 푸코의 연구를 통해서 잘 드러나 있다.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등등.
④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비판적 니체 전집』
“니체의 저작과 미간행 유고들을 꼼꼼하게 검토해서 시기 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니체연구자와 니체주의자
“니체의 영향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살펴보는 일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챕터에서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지식사회학자, 정신분석학자, 작가, 화가, 작곡가들의 이름이 간략하게 나열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영향 관계를 규명하는 학술 논문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니체연구가 아닌 니체주의가 아닐까? “니체주의라는 말 속에는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생각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것이며, 누구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