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1204~1213 <성의 정치학> 발제문
소리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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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세미나] <성의 정치학> 2.논쟁 발제문 2017.12.04 발제자: 소 리
* 밀과 러스킨
성혁명은 서서히 전진하여 문화의 저항이라고 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항상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제 1기 혁명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당대 영향력 있었던 두 사람인 밀과 러스킨으로 대표되는 두 개의 진영의 대립을 통해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부권제도에 관한 문제성과 여성의 상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눈에 띄는 시대였다. 어떤 사람은 빅토리아 시대의 기사도를 섭정시대의 방종으로, 여권운동이 절정에 이름 20세기 초의 혁명적 분위기를 넘어오는 전환기로 보기도 한다. 합리주의적인 입장의 밀은 성의 정치의 현실주의를 말했으며, 기사도적인 입장의 러스킨은 성의 정치가 베푸는 낭만적 신화의 다정함을 볼 수 있다.
문학에서 요부와 정숙한 가정의 부인을 대립시킨 문학들이 많았다. 즉 여성을 아내와 창녀라는 두 계급으로 나누어 이중규범 하의 사회-성적 구분을 설명하려 했다. 러스킨은 여권론의 에너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본인을 중간노선이라고 단언했다. 여성은 집에 있는 한 “여왕”이 될 수 있다고 찬양했고, 반동적인 여성들은 “별개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처단하기 위해 애썼다.
반면 밀은 여성의 심리에 대한 지식에 대해 여성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썼으며, 여남 간의 관계, 소위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그 관계 자체를 자신의 문학에서 문제시했다.
러스킨은 당대 문제시 되던 성역할에 대한 반론을 잠재우고자 “천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상류층과 중류층의 여성들은 각자 자신의 천성에 맞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부드럽고 자비로운 영향력을 잘 행사하는 여성은 상류층이다. 러스킨은 감정적인 용어인 ‘천성’을 통해 합리주의 전통의 밀에 대항했다. 현재에도 자주 쓰이는 여남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서로 상호보충적인 정반대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남성은 인간적 노력의 전 분야를, 여성은 작은 온실을 관리하는 온실의 여왕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온실의 여왕은 주로 질서, 정돈을 하며,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외부의 모든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러스킨은 관습적인 것과 천성적인 것을 혼동하고 편리한 것과 불가피한 것을 혼동한다. 이 기질과 역할의 차이는 여남의 지위에 대한 불공평한 차별의 기로가 되는 것을 뒷받침하며, 남성 지배를 가르치고 영구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는 다른 종류의 권력형태와 같은 식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흔하다. 이에 밀은 지배계급은 항상 자기들의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다고 지적한다. 멋진 말이 나오는데,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단순히 비습관적인 것을 의미하며 일상적인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의 남성에 대한 복종은 일반적인 습관으로 그것을 이탈하는 것은 아주 당연히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성의 천성, 여성적인 것에 대해서도 고도로 인위적으로 조작된 인공재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밀은 교육에서도 지적한다. 여성을 둘러싼 모든 교육은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체제의 일부가 되도록 가르친다. 여성이 받는 거의 모든 교육은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 체제를 영속시키는데 이용된다. 이에 러스킨은 여성이 학식을 몸에 지니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했다. 특히 신학을 금해야한다고 강력 주장하는데(현재도 여전), 여성의 간섭을 부권제 종교에 치명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을 알았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소년은 끌로 깎아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지만, 여성은 “꽃”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아도 자라난다는 주장을 한다.(현재도 여전) 대신 형이상학과 천문학을 가르쳐야 하는데, 여성은 자신이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정도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밀은 여성에 대한 위와 같은 교육들이 정신적 노예화의 가장 솔직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주의(主義)는 여성들이 공동으로 남성의 구너력에 대한 방ㄴ항을 불가능케 하기 위하여 연합한다.”(187p.)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이가 많다. 러스킨은 가정이 평화의 장소로서, 베스타 처녀신이 지키고 있는 사원이며, 가정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진정한 아내가 있는 따뜻한 곳으로 묘사한다. 이에 밀은 가정이란 “가정적 노예제도”라고 정의할 수 있는 체제의 중심으로 본다. 혼인생활 속에서 여성은 종이나 노예와 같으며, 매매나 강젱 근거를 둔 이러한 제도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한다. 여자의 이혼 불가, 남편살해는 경반역죄로서 화형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현재도 정말 비슷. 남편의 아내 살해의 판결과 여성의 남편 살해의 판결은 판결문에서부터 형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크다. 형은 남성에 비해 2배. 논문 참고) 밀은 노예들이 혼인한 여자들보다 훨씬 많은 권리를 가진다면서 역사적인 노예들에 대한 처우를 아내의 처우와 비교하고 있다. 이 모든 노예적인 사항들은 법률로서 여성에게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밀은 법률에서의 여성의 지위개선에 대해 말한다. (가정의 노예제) 그리고 밀은 가장 가난한 계급에서의 여성의 처우에 대해서도 말한다. 하류층이라는 약자들이 유일하게 강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은 자신의 아내의 앞에서이다. (193p.)
밀은 기사도적인 방식이 야만 상태에서 약간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 진화론적 단계로 보았다. 하류층들의 남성 우월의 윤리가 야만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중류계급에서는 가장 야비한 방식인 위선의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 짙다. 밀 스스로도 폭군적인 아버지로부터 기사도적인 방법을 통해 어머니를 경멸하도록 키워졌다. 러스킨도 이러한 방식이 몸에 밴 채 너무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그것의 실체를 분별할 수 없는 지경이었을 뿐이다.
밀의 분석에 따르면 성에 의한 지배체제는 다른 종류의 권력의 남용과 다른 형태의 이기주의의 원형이라고 말한다.(198)
러스킨의 주장처럼 여성은 주로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착하도록 키워지고 착하게 자란다. 그리고 사회는 그리고 러스킨 같은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들보다도 착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착한 사람은 언제나 나쁜 사람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이다. 이 착한 여자들을 나쁜 남자들은 타락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타락한 자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착한 여자들만이 가능하다. 밀이 보기에 이 타락은 노예 지배자가 더 타락하는 것이다.
“자선과 감사의 구조가 갖는 온정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굴욕적인 것이다.”
러스킨의 모든 말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알아차리는 것 이상으로 교묘한 방식으로 굴욕감을 준다. 밀은 여성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상기시키고자 말을 적는다. “여자의 선에 대한 일상적인 관념은 우월한 자로부터 내려오는 축복이다. 여자는 자기가 자유로운 몸이 아니며 자유로운 자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밀은 여성의 자기 희생은 헛되고 천박하며 비열한 자기 방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장된 자기 헌신은 그릇된 애타주의를 만든다. 밀은 기사도적인 아첨의 가면 아래에 있는 편의주의와 표리부동을 말하고자 했다. 밀은 해방될 인류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인류에게 줄 거대한 이익을 위해 성의 해방에 대해 말하고 있다.
*5.엥겔스
부권제 역사와 경제에 대해 가장 포괄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 기원>을 통해, 이론가들 중에서 최초로 부권제의 가족구조의 문제점을 공격했다. 부권제학파는 부권제 가족제도를 인간 사회조직의 최초의 형태로 간주한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 정치적 제도는 신체적인 힘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며, 수렵문화는 농업사회에서도 계속 필요로 했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사회적으로 해석됨에 있어서 다산 숭배와 공공양육의 문화는 임신의 의미를 약화시키지도 않으며, 신체의 열등성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결국 제도의 문제이다. 부권제로 넘어오기 전에 모권제가 있었다. 이것의 존재를 주장함으로써 생물학적이고 환경적, 필연적으로 존재한 부권제라는 것에 대한 도전이 가능하게 된다. 엥겔스의 지적을 통해 제도라는 것은 시대마다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써, 부권제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엥겔스가 봤던 모권제는 개인 재산이나 가족의 재산 소유권도 없는 원시적인 공산체제로 여겼다. 모권제의 실제 성격이 어떠했든 간에 이러한 논의 자체는 부권제는 엥겔스가 개탄한 모든 악폐들인 여성을 노예화하는 것, 다른 노예제도처럼 인간을 소유하는 권리, 계급, 신분, 서열제도, 불공평한 부의 분배, 국가제도 등의 문제들이 부권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논의이다.
6. 신화
신화에서 나타나는 모권제의 흔적은 아이스킬러스(Aeschylus)의 <오레스티아(Oresteia)>에서 복수의 여신들의 심판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는 자신의 딸 이피기니아(Iphigenia)를 전쟁을 위해 제물로서 살해하고, 트로이 전쟁에서 잡아온 여성들을 강간하고 노예로 만들었던 남편 아가멤논을 죽인다. 이에 이 둘의 아들인 오레스티스는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를 죽인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아들 오레스티스를 벌해야한다는 복수의 여신들의 요구는 무산된다. 이 과정에서 생물학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그리스 시대에 자리잡는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부모가 아니”며, “어머니 없이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권제의 사그러져가는 권력의 형태로서의 복수의 여신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늙은 노파들로 그려진다. 그러나 고대의 서술에 복수의 여신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결정짓는 신들이었으나 모권제의 몰락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서 피눈물 흘리는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일화를 통해 부권의 재정립, 그리스에서의 종자에 대한-정자- 확고한 새로운 지식이 자리 잡는다. 생명의 근원은 정자이며, 아버지이며, 여성은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취급된다. 이에 대한 지식은 고대 그리스 문헌들 속에서 알 수 있다.(히포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존재는 이러한 부권제를 견고하게 유지시켜주는 존재이다. 성인의 모습으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테나는 자기와 같은 종류의 인간인 여자들을 계속 해서 배반한다. 자신은 어머니 없이 태어난 것이며, 남편을 죽인 것은 어머니를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죄라는 것이다. 아테나의 옹호 발언으로 인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티스는 벌을 받지 않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신들이 타이탄 이전에도 존재했던 늙은 번식의 여신들을 내던지고 짓밟으며, 위대한 어머니의 두 눈을 빼냈다. 복수의 여신은 나무와 어린아이들에게 병을 내리며 그들의 원한을 풀려하지만, 이에 아테나는 감언이설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누리라며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한다.
이 일화를 통해 울부짖는 복수의 여신들의 모습은 사그러져 가는 모권제를 옹호하려는 마지막 남은 세력을 보여준다. 또 어떤 식으로 여성의 창조적 힘을 빼앗고, 여성을 종속의 체계로 넣고 부권제로 전환되는지를 알 수 있다. 여성이 생식에 대한 창조적인 힘을 전적으로 소유했음에도 부권제의 도그마는 여성의 존재가치를 격하시킨다.
7.성애
여성의 성욕에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여성은 무한한 성욕을 축소시켜왔다. 성적 행위가 남성의 의지에 굴종하는 것을 암시하는 상황에서, ‘정절’, ‘불감증’, 성행위에 대한 어떤 형태의 반항은 성의 정치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인 반응의 성격을 지닌다. 정절과 불감증을 동반한 성교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여성의 쾌감을 제한하고 금지하기 위한 부권제의 사회적 “술책”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여성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체력이 허락하는 하에서 연속적으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질 오르가즘 또한 거대한 음핵의 일부가 자극되는 것으로서, 빅토리아 시대 혹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그런 “질 오르가즘”은 없다. 연속적인 오르가즘의 생물학적 가능성과 이에 대응하는 지치지 않는 성욕이 내재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성욕 또한 사회적 영향에 따라 여성의 성욕은 축소된다. 여성에게는 성적 자극과 흥분을 위한 비상한 생물적 잠재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어떤 성적 결합의 형태도 일부일처제나 일부다처제와 같이 그러한 여성의 능력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며, 집단 혼인의 경우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여성들은 대우혼에 의해 자신들에게 부과된 제한된 성욕을 더 좋아해야만 했다.
부권제의 신화와 신념은 항상 남성이 보다 큰 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왔으며, 이것으로부터 이중규범과 일부다처제까지도 인정한 보다 큰 필요성이 필요했다. 부권제는 여성을 여성적인 물건으로 전환시키려고 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운명으로 결정된 성욕을 즐길 수 없게 장려되었다. 여성은 전적으로 성적 존재로 머물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욕은 참고 견뎌야만 하게 된 것이다.
성적 기교의 증가는 여성들의 제도, 사회, 문화적인 측면의 변화와 함께 문화적 금기와 왜곡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8.
성혁명에 대한 엥겔스의 공헌은 부권제의 혼인과 가족제도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그는 이러한 제도가 영원한 것이 아님을 예증하려 했고, 이는 큰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써 신성불가침한 것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분석이 가능한 길을 터놓았다. 혼인과 가족은 여성을 소유하는 제도 위에 세워졌다는 엥겔스의 선언은 강력한 것이다. 여성은 재산이며, 남성은 재산으로서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여성의 복종은 사회적 심리적 현상, 즉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가난한 자들을 낭만화하는 부분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재산이 없기 때문에 부권제가 경제적으로 강하게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 못지 않게, 어떤 때는 그들보다 더욱 심하게 여성을 감정적, 심리적으로 가재의 일부로서 보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신분에 대한 다른 권리가 없는 노동계급의 남자는 그의 성적 지위 속에서 야만스러운 방식으로 훨씬 더 그러한 권리를 찾으려 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엥겔스의 관점에서 매음과 일부일처제 혼인의 상관성을 잘 말하고 있다. 매음은 일부일처제 혼인의 자연적인 산물이다. 여성에게 정절이 명령되고 간음이 가혹하게 응징될 때, 혼인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일부일처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때 가난한 자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행위를 위해 남겨준 여자들, 그에 대한 제도가 매음이다. 경제적 필요가 아닌 경우의 매음은 남성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제도적 방법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매음녀들의 역할을 대다수의 여성들이 부양을 받는 대가로 성의 제공을 강요당하는 부권제의 경제적 상황의 과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크게 보면 혼인제도는 매음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경제적 계약관계이다.
가족(familia)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로마의 Famulus에서 왔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고대 그리스 로마의 남성의 생활은 크게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오이코스와 이코노미아이다. 오이코스는 공적인 모든 활동, 소위 말하는 정치적 활동을 지칭하는 영역이다. 반면 이코노미아는 가정생활의 전반적인 것을 뜻한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노예들을 관리하는 영역을 뜻한다. 이코노미아에는 가내 노예인 파물루스(Famulus)와 한 남자에게 속하는 노예의 총체인 파밀리아(familia)가 들어간다. 즉, 가족의 기원은 노예제인 것이다. 현대의 가족은 그 기원의 성격으로 인하여 인간과 물건에 대한 ‘소유’의 개념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부권제 가족과 가장의 권위가 결합하는 힘은 그 가족 구성원의 경제적인 종속에 철저하게 의존해 왔다. 엥겔스는 경제적인 요소는 모든 성적 결합에서 완전히 일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혼인은 경제적인 요소가 개입된, 본의 아닌 계약이 되지 않을 때까지는 어떤 의미에서도 일종의 매음행위의 변종으로서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혼인생활로 들어가거나 참고 견디는 여자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이나 기질에 손해되는 고용조건에 스스로 계약을 하는 노동자의 처지와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를 생각했을 때 매우 급진적인 주장인 것이다. 결국 남성의 경제적 지배를 종식시키고 여성이 완전히 평등 독립의 조건으로 경제적 분야에 진출할 수 있을 때만이 성애는 재정적 강제 상태에 근거한 어떤 형식의 교환행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여성의 법률적인 무능력이 부권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경제적 수단을 남성의 손에 집중시킴으로써 양성의 관계가 계급화 되었다는 것이다.
즉 1기 법적, 최소한의 정치적 평등의 성취로부터 시작한 여성운동의 성 혁명이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성취할 때까지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해방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 여성을 공적 산업에 복귀시키는 데에 달려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일부일처제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여성이 자신의 신체적 구조 때문에 어린아이의 유년시절의 유일하고 주요한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강요되는 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보육을 직업으로 택한 가장 잘 훈련된 전문인에게 맡겨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의미의 가족제도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엥겔스의 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