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성의 역사2_가정관리술 발제 +4
현
/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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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세미나 > 성의 역사2 > 쾌락의 활용
제3장 가정관리술
1. 결혼의 지혜
푸코는 먼저, 그리스에서, 즉 ‘자유인’ 남자의 지배가 두드러진 사회에서 절제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데모스테네스 저술로 알려진 《네에라에 대한 반론》에서는, 절제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창녀와 첩, 아내를 각각의 이유(쾌락, 시중, 가정)로 얻는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양 결론부에서 공식화하고 있다. 여기서는, 단 한 명의 합법적 아내만을, 그리고 쾌락은 결혼 생활 외부로, 전제하며, 그와 더불어 부부 관계에 대한―자손을 낳는 것과 관련한 내용 내지는 정치, 사회적인 내용, 그리고 자손이 시민으로서의 조건을 누릴 수 있는 법적인―성찰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여성들의 성 관계는 부부관계 내로 한정적이고, 법적, 사회적 지위 때문에 도덕적 통제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아내의 경우, 간통이 발각되면 그것은 공적 영역에서도 처벌받는 반면, 남편은 일정한 의무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합법적 아내하고만 성 관계를 갖는 것은 그의 의무가 아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다른 기혼 여성을 존중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여성이 다른 남자의 권한 하에 있기 때문이다. 간통이 성립은 기혼 여성이 합법적 남편 외 다른 남성과 관계를 가진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기혼 남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에게는 도덕적 차원에서의 ‘상호 충실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상호 간의 성적 독점 원칙은 부부관계에 요구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권한 하에 있지만, 남편은 그 자신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경우에는 제한 사항과 징벌을 통해 부부관계가 한정지어졌지만, 남편에게 특별하게 구체적으로 부과되는 규율은 없었다. 또한, 성적 쾌락은 애초에 부부 관계 외부로 전제하는 만큼 부부 관계 내에서 문제로 거론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상황이 명백하게 불평등하게 보인다고 해서, 남성이 행동에 완벽하게 자유로웠다고 볼 수는 없는 증거들도 있다. 성적 질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여론이 강요하지는 않았어도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남성에게 기대하는 다른 태도, 니코클레스가 결혼 후 아내하고만 성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의 강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합법적 부부 관계 외의 관계를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간주한 기록 등이 그것이다. 어째서, 이런 명백한 불평등을 전제하고서라도, 결혼한 남성들의 성행위는 관심의 대상이었는가.
논의에 앞서, 푸코는 두 가지 적합하지 않은 해석을 추리고 바로 잡는다. 첫째, 부부관계가 오로지 결합과 생산 외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해석, 그러나 결혼이 유일한 결합방식은 아니라 할지라도, 합법적 후손을 인정하는 특권적 결합은 결혼이 유일한 효력과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둘째, 남성의 행동도 성찰되는 만큼, 여기에서 부부 관계 내에서 남편과 아내, 양쪽에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고 현재의 ‘도덕 규칙 초안’을 발견하려는 시도인데, 남편과 아내에게 같은 규범이 주어진 것처럼 보일지언정, 결코 같은 원칙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남편의 의무에 대한 예외적인 문헌들 속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규범 자체가 아니라, 결혼과 남편의 훌륭한 행동에 대한 성찰, 가정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훌륭한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2. 이즈코마쿠스의 가정
집안을 관리하는 방식, 가장으로서의 행동방식을 기술한 문헌의 예로 크세노폰의 《가정관리술》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재산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규율들의 총체 겪의 문헌으로, 영지 관리, 노동자를 다스리는 방법, 경작의 시행 및 그에 적합한 시기, 물건을 사고, 파는 방법 등의 내용과 함께 이러한 실천을 따라야 할 필요성, 재산 보전과 증식에 대한 목적, 이 목적에 다다르는 방법(관리 기술에 대한 성찰)이 제시되고 있다. 이 문헌의 대상은, 주변과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장인들의 사회가 아닌, 재산을 물려주어야 하는 지주들의 작은 사회로 전제한다. 이런 지주들의 활동은, 그가 가정을 포함하여 재산 등을 훌륭하게 관리하면, 스스로에게 유익하며, 더 나아가서는 신앙심, 시민으로서의 활동, 도시 전체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에 행사하는 권력은 도시에서와 다르지 않고, 가정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 실무 경험을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크세노폰은 “가정관리술”의 범주에서 부부 관계를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관리를 위한 핵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핵심적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결혼 초기 어린 아내는 전혀 관리술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이 때문에 남편에게는 방향을 잡고 지도해야 할 필요와 책임이 있다. 여기서 부부관계는, 오이코스(가정과 가족)라는 배경에서, 다른 것보다도 교육과 처신의 지도가 주요했다. 이런 지도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아내에 있지만, 잘 지도하지 못했을 경우 그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부관계는 그 자체로 문제시되지 않았고, 남편의 관리, 책임의 한 영역이었다.
이즈코마쿠스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내를 맞아 교육시켜 협력자로 만들어 집안일을 맡기고 그 자신은 남성의 활동 무대에서 자신의 일에 전념했다. 이 과정들이 가정관리술(오이코스를 관리하는 기술)에 해당한다.
1) 이즈코마쿠스는 결혼 후, 어린 아내에게 ‘우리의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결혼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결혼에 있어 남편은 그 자신을 위하여, 그러나 딸을 위한 결정은 가족이 내리는 이러한 불평등한 출발에서 부부관계가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재산을 최대한 증식시킨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후손의 문제는 차후에 생각한다 하더라도 아내는 훌륭한 주부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부부관계는 경쟁 등의 다른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 형태 속에서 공동의 목적을 매개로 확립된다.
2) 크세노폰은 “보호처”를 출발점 삼아, 부부 각자의 임무를 규정한다. 후손은 시간적 의미가 있지만, 보호처는 공간적 의미로, 지붕은 남성과 여성에게 있어 가정의 외적, 내적 영역을 구성하고 각각의 영역을 부여한다. 외적 영역에서 남편은 생산, 계절, 수확과 관련한 시기, 내적 영역에서 아내는 저장, 소비, 정돈, 분배, 배치라는 역할이 주어지고, 각각은 여기에 맞는 신들에게 육체적, 성격상 특징을 부여 받았으며, 이는 상호 보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력과 주의력과 같은 공통의 자질도 갖추었다. 부부는 이처럼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법”은 이처럼 신에게서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주어진 것을 수행할 때, 자연에 의도에 부합할 때, 아름답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듯 본래적으로 대립된 능력을 지녔으나, 이 덕분에 가정은 질서가 생기고, 이 질서는 남편과 아내의 의무가 된다.
3) 후손을 낳는 것이 결혼의 주된 목적임에도, 성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그러나 후손의 문제를 경시해서 라기 보다도 오히려 강조하지만, 생식의 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어린 아내에게 이 문제에 있어, 거론할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육체적 접촉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한데,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레스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엔크라테이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전제 하에, 결혼, 가장의 의무, 오이코스의 관리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즈코마쿠스는 자제력을 양성의 공통된 미덕으로 제시하는데, 이 예시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1) 화장과 몸치장은 인위적인 것으로써, 마치 아내에게 남편이 재산에 대해 속임수를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그리하여 올바른 육체의 공통체란 자연스럽게 작용해야 하며, 이것이 자연적 매력이고, 쾌락을 배가시키기 위한 모든 인위적 수단을 거부한다. (2)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렇다면, 이런 인위적인 것 없이 아내는 어떻게 남편의 욕망의 대상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가정의 관리이다. 아내로서의 실제적 미는 그가 집안일을 훌륭하게 돌볼 때, 다른 여성들에 비해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즈코마쿠스의 이야기 속에서, 아내의 성적 충실성이 동등하게 남편의 성적 충실성을 보증하는 조건도 아니며, 그것은 그저 일반적 원칙에 불과하다. 아내가 결혼 생활에 대해 위협을 느낄만한 것은, 남편이 결혼 관계 외부에서 가지는 관계가 아니라 가정 내에서 다른 여자들과 일어날 수 있는 경쟁이다. 그리고 아내가 가정에서의 이런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은, 다름이 아니라 주부로서의 활동과 태도, 품행이다. 하여, 충실한 남편이란, 외부에서의 쾌락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 아내의 특권을 지켜주는 사람인 것이다.
이처럼, 윤리적 면에서 요구되는 충실성의 개념은 성적 독점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동등한 원칙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 만큼 불균등하다.
3. 절제의 세 가지 전략
결혼이 남성에게 최소한의 성적 절제를 요구하는 기원전 4세기와 3세기 초의 두드러진 세 가지 문헌은, 플라톤의 《법률》, 이소크라테스가 니코클레스라는 기혼 남성의 생활방식에 대해 상술한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는 《가정관리술》이 그것이다. 이 문헌들은, 이중의 성적 독점 원칙을 가지고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상호 충실성을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편에게 있어 절제란, 파트너인 아내에게 하는 약속이 아니라, 법률로 부과된 것이거나, 자유인 남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신중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1) 플라톤 《법률》에서 결혼과 관련된 내용은, 자발적 도덕의 형식이 아니라 강제적 규제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의 결혼이란, 도시에 유용한 결혼으로, 내적 요구가 아니라 국가의 필요성과 더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의 규제를 법률에 전적으로 기댈 수는 없으므로, 효율적 설득 수단을 제시하는데, 첫째, 여론(거의 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을 정도의 대중의 일치된 목소리), 둘째, 영광(엄격한 금식 요법을 따르는 운동 선수들과 같이, 쾌락을 물리치고 얻는 승리에서 얻을 수 있는 영광), 셋째로는, 인간으로서의 명예, 마지막으로 수치심을 들고 있다. 플라톤이 제시한 요구들은 마치, 남편과 아내가 미래의 시민을 생산하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식, 같은 원칙에서 출발하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부부 상호 간의 성적 충실성이나 애정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존중, 자신의 평판, 명예, 자신이 도시와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플라톤은 사랑의 선택에 있어, 합법적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관계, 그리고 남성 간의 사랑을 금지하고 있긴 하지만, 처벌에 있어서는 한정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금지는, 부부관계 내에서의 관계를 상호 의무 보다는 도시, 공공도덕, 좋은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이소크라테스의 문헌에서 나타나는 결혼과 절제에 대한 고찰은 정치권력과의 연관성이 크다. 이 연설은, 권력의 정당화와 시민들이 국왕에게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내용이다. 이어 니코클레스 본인에게 있다고 여기는 자질들, 정의로움, 절제(소프로쉬네) 등을 열거하며, 자신의 통치권과 관련지어 절제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절제의 이유로, 순수 혈통의 필요성, 그리고 국가 통치와 가정 관리 사이의 관계의 유사성을 들기도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절제와 권력의 연관성은, 자기 자신의 지배가 본질적이다.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은, 쾌락과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시민들에게 모범이고자 노력했다. 그는 이런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덕을 장려하는 하나의 모델로서 기능했고, 단지 모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우월성―현명하고 자제할 줄 아는 높은 덕을 갖춘 존재임―을 드러내주는 정치적 표현양식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그가 군주로서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였으며, 동시에 피지배자들에게 자신을 입증해주는 자격시험과 같은 것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훌륭한 처신은, 우연과 상황,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 이성에 의해 보증되고, 거의 정치조직은 확고해진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 추정되는 《가정관리술》은 가정 관리 기술에 대한 성찰의 내용으로, 여기서는 인간을 다스리는 기술에, 그 중에서도 아내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크세노폰과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남녀의 자연스러운 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결합이란 자연스럽고 동물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경우, 이 결합이 생존만이 아닌 ‘행복’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후손의 존재는 종족의 보존 뿐 아니라, 부부가 자식을 보살핌으로써, 미래에 되돌려 받는 식의 상호 도움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이치로 자연이 남녀를 배치한 것은 자연스러우며, 상호 보완을 위해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이어서 성행위의 문제를 언급하는데, 이 문헌에서 중요한 점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성 관계를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문헌들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살펴볼 수 있는데, 부부 관계는 재능과 가치에 따라 우수한 자가 지배하는 귀족정의 형태를 띄는 “정치적 정당성과 매우 유사한” 관계로 본다. 이런 관계의 정당성을 토대로, 《가정관리술》에서 가장의 ‘아내에 대한 첫 번째 의무’, ‘어떤 부정도 저지르지 않는 것’을 든다. 여성의 행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그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정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가정에서 아내의 지위를 위협하는 부당한 행위들, 이는 곧, 귀족정 같은 가정의 정당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치장에 대한 비판이 있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나 속임수로서의 치장 모두 앞서 나온 크세노폰의 주장과 흡사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공정성 작용의 측면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가정관리술》에서 역시 남편의 절제는, 아내에게 요구되는 충실성과는 다른 맥락에서, 자발적 태도에서 요구되는 권력의 윤리이며, 정당성 차원에서 성찰된다. 여기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애정을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애정 역시도, ‘공정성, 불평등, 미덕, 귀족정치적 관리 형태’를 규합한 차원에서 정의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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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 본 문헌들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도 부부관계 외 다른 성적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 같은 요소들을 찾을 수 있는 있지만, 이것을 기독교에서 행해진 보편적이고 강압적인 가치, 부부 상호적 충실성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첫째로, 법률로 모두에게 제시한 플라톤적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절제는 동일한 원칙과 형식으로 남편과 아내에게 요구되지 않는다. 아내는 법률상의 종속, 남편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지배와 관련한 의지와 선택의 문제였다.
둘째, 절제라는 가치는 보편적 원리의 형태를 띠지 않는 만큼, 강요된 것, 혹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었다.
셋째, 남편이 절제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부관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즉 아내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결혼한 남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후에, 기독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부 사이의 성 관계와 관련된 형식과 금지, 또 여러 성찰의 요소들, 그에 앞서 감정과 쾌락의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지만, 기원전 4세기에서는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에 성행위는 부부관계에서 개인적 관계에 기반하여 문제가 제기되거나 성찰되지 않았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지위에 맞게 절제를 행했을 뿐, 그것이 동일하지도, 또 서로를 위하여서도 아니었고, 단지 그들 각자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속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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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실험실님의 댓글
우리실험실
[세미나발제문, 세미나후기를 위한 도움말]을 참조하세요^^
http://www.experimentor.net/bbs/board.php?bo_table=b0103&wr_id=4
현님의 댓글
현공지대로 하려했는데 위에 본문 보시는 바와 같이 중간에서 자꾸 잘립니다. ㅜㅜ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지난번에 제가 수정해서 올렸을 때, 텍스트가 전부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봤군요^^
아마도 한번 작업(메모장작업)으로는 원본문서의 속성들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나 봅니다. 현님!!
현님의 댓글
현아 네 오라클님 수정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