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_후기] 1204(화)_1부 1.니체-질병과 치유의 체험 +6
요고마고
/ 2017-12-05
/ 조회 2,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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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세미나후기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 2107년 12월 04일
니체 - 질병과 치유의 체험
니체세미나 첫 번째 시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첫 질문은 ‘신체의 체험이 니체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였다. 신체의 체험이란 질병을 겪는 것을 말한다. 『니체의 위험한 책...』에서는 질병과 치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니체의 철학적 변신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이는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시작은, 니체가 자신을 대변해줄 예술가와 철학자를 찾아서 그들의 작품과 개념을 통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었다. 그 단계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니체의 생각들은 더 이상 그가 기대어온 작품과 개념들이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니체는 ‘작아져버린 옷’에 미련을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기 위해 혼자가 된다. 이후 온전히 자신만의 개념들, 즉 긍정의 권력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 등을 쏟아내게 되었다. 이 세 개의 단계는 들뢰즈가 말한 낙타(기존가치에 복종하고 대변함)의 시기, 사자(기존의 모든 가치를 비판함. 물어뜯는다!)의 시기, 어린아이(새로운 가치를 생성함)의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니체는 전 생애에 걸쳐 다양한 병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질병을 도구로 삼아 염세주의라는 병을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것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니체는 ‘병을 염세주의에 대한 치료법으로 사용했다’, ‘병(염세주의)을 치료하기 위해 병에 걸리는 독특한 삶의 지혜’. 수수께끼 같은 말들. 염세주의는 둘째 치고라도, 우리는 질병과 건강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질병이라고 생각하는가?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강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질병과 건강, 그 판단기준은 보편타당성을 가지는가? 보편타당성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옳은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해오던 질병과 건강으로 니체의 말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수입된’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예:질병과 건강, 정상과 비정상, 표준사이즈 등등)를 아무런 사유 없이 받아들인 뒤, 그것이 ‘주입’된 채로 살아온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병폐로 보이기도 한다.
니체에게 있어서 질병의 의미는 무엇인가. “병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영토를 낯설게 만든다. 병은 자기의 낡은 습속을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건강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모험으로,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자는 획일적으로 규격화된 생을 견디지 못하고, 낡은 습속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시대가 말하는 건강한 자와는 거리가 있다. 표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건강하지 않은 사람일 수 있고, 비록 병약하더라도 니체가 말하는 건강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통념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세미나는 시시각각 버퍼링에 걸리기 일쑤였다. 질병과 건강에 대해 니체는 우리 시대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규격화된 생은 나쁜가? 낡은 습속은 안정되고 좋지 않나?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니체는 기존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가 위선적이고 병적인 징후들로 가득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삶[生]이 아닌 죽음[死]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배신하는 삶’으로 가득 찬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니 우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에 뛰어드는 니체를 이해하려면 그가 비판했던 당대의 문화(부르주아, 기독교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이는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니체의 철학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가 질병과 치유를 반복했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질병이 찾아들면 지배정서(단일화된 관념들, 즉 ‘당연시’하는 것들)는 기존의 압도적인 힘을 잃게 되고, 그 틈을 타 다른 정서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②무정부상태. 억눌려있던 모든 충동들이 신체라는 장(場)에 등장한다. 니체는 이것을 “힘들의 과잉상태”라고 불렀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다양한 자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③인간 속의 많은 정신들은 ‘자아’라는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고 뜯는다. 니체는 이것들을 서로 화해시키지도 대립시키지도 않는 기술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④이것은 정신분열의 상태로 볼 수 있다. 병증과 구분되어야 할 것은, ‘건강한 사람’이 앓는다는 전제조건이다. 여기에서 ‘건강한 사람’이란 힘들의 과잉상태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⑤서로 으르렁거리던 정신들 중 하나가 힘을 갖고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나머지들도 새로이 배치되면서 자아도 이전과 달라진다. ⑥ “힘들의 과잉상태”를 거쳐 다양한 철학(신의 죽음, 권력의지, 영원회귀 등)을 낳고, 세계와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니체의 철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니체는 질병과 치유의 반복과정을 거쳐 “위대한 건강”의 상태로 넘어간다. 위대한 건강이란 ‘인간적인’ 질병들을 앓지 않는 초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신체 상태를 말한다(위버멘쉬). “니체는 자신이 더 이상 병들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 어떤 중병을 앓는다 해도”, 그는 결코 “병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선과 악,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 부지런함과 게으름,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산다는 것과 죽음 등등 우리 문화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분법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니체의 철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각자의 머릿속에 논리정연하게 줄지어 선 이분법들에 기대고 있는 등짝을 떼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느 세미나보다도 활활발발 했던 니체 세미나의 첫 시간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그에 대해 각자가 쌓아올린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들이 엉기고 성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당연한 과정이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부딪힘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걸 더 걱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니체가 말했던 “힘들의 과소상태”가 되는 것 말이다.
니체가 “병에 뛰어”든 것을 발제자는 샤머니즘의 통과의례로 해석하였다. 병에 뛰어든다는 말은 우리가 질병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온갖 의료보험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선뜻 납득할 수 없었지만, 통과의례라는 그 예시에 기대어 잠시 머릿속이 환기됨을 느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니체의 철학서 앞에서 더없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기댄’ 것에 불과하므로 언젠가는 ‘낙타’도 등짝을 떼어야 할 테지만 말이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헐~!! 이렇게 신속하고 멋진 후기를 보았나?!
요고마고와 니체는 참 잘맞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세미나시간의 토론주제는 2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어요!
1. 우리 통념 속에 있는 '건강-질병'과 니체적 의미의 '건강-질병'
- 우리 통념 속의 건강-질병에 대한 것은 2가지 이지요.
첫째, 건강-질병을 구분하는 이분법, 둘째, 건강은 좋은 것, 질병은 극복해야할 것이라는 가치판단
- 니체적 의미의 건강-질병은 우리의 이러한 통념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어요.
첫째, 건강은 질병과 치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힘들의 과잉상태를 말합니다.
"수많은 건강상태만큼, 다양한 철학이 존재한다."
둘째, 질병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영토를 낯설게 만들고, 자기의 낡은 습속을 바꿀 기회를 제공합니다.
"병이 나를 해방시켜준 것이다. 병은 내 모든 습속을 바꿀 권리를 나에게 부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질병은 가장 건강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말합니다.
2. 우리 통념 속의 '자아'와 니체적 의미의 '자아'
- 우리 통념 속의 자아는 '자아의 동일성'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자아, 하나의 주체성이지요.
니체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의 자아, 하나의 주체성에 그토록 익숙한가?"
- 니체적 의미에서 하나의 자아, 하나의 주체성은 '힘들의 과소상태'를 표현합니다.
반대로 '힘들의 과잉상태' 속에서 다양한 자아가 출현하는데, 하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자기를 생성시킵니다.
“나는 항상 나로 머물러 있지만, 그것은 항상 다른 내가 되는 방식으로 그랬다.”
니체의 경우, 다양한 자아를 생성시킴으로써, 다양한 철학을 생산할 수 있었던 거지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헐, 진짜 신속하고 훌륭한 후기!
어제 서로 막 엉기던 세미나 첫날, 우리의 힘의 과잉상태!
좋았습니다. ㅋㅋㅋ
namu님의 댓글
namu잘 읽었습니다. 속이 후련한 후기네요.
오성학님의 댓글
오성학
이 댓글은 오성학님이 세미나공지 댓글로 남긴 것인데, 여기로 옮겨왔어요 (오라클)
..........................................................
처음 해본 이런 유형의 세미나에 참석해 보았는데,
일단 익숙치 않은 발제문의 텍스트가 읽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글씨와
더욱이 니체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발제문의 글들이 무슨내용인가 싶은데,
세미나가 시작되고 발제문의 내용을 읽으면서 희미하게 조금씩 이해가 되는듯 했고,
서로 내용에 관해서 토론하고 의견을 듣다보니 내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도 몇마디 했지만, 정확한 개념이 서질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직관으로 떠든 것 같아서
약간은 미안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의미했던게 선명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질병, 힘들, 자아 등은 니체가 신격화되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고통속에서 깨닫고 느끼고 발전해 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약간의 친근감을 느낄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앞으로 니체와 좀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참석자분 중에 말씀하셨듯이 니체를 알아가면서 나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아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책 사서 읽으려니까 엄두가 안나는데 발제문 읽고 서로 애기하는 거 듣기만 하면 좋겠다고 희망해 본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잘 읽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제가 느꼈던 감상들과 비슷한 것들을 요고마고님의 후기에서 발견해서 무척 반가웠어요.
그리고 차분하게 정리하는 요고마고님 글쓰기 스타일에 감탄. ㅎㅎ
거의 평생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골골대고 살아온 저는, 이 책을 읽고 건강과 질병에 대해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질병을 없애 건강해진다는 어떤 목적에서 벗어나고, 질병과 내 삶의 관계에 대해 보기 시작했지요.
질병이 내 감각들에 미치는 영향에서 특이점이 될 만한 것도 발견하기 시작했고요.
신체가 건강한 자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 피해의식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도 좋았어요.
힘들 땐 니체를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가 있는데, 요고마고님 후기로 무언가 대리만족을 하고 갑니다.
조만간 같이 읽을 날도 있겠죠? ㅎㅎ
neovarsa님의 댓글
neovars…
오리클님 댓글 중 "니체적 의미에서 하나의 자아, 하나의 주체성은 '힘들의 과소상태'를 표현합니다. 반대로 '힘들의 과잉상태' 속에서 다양한 자아가 출현하는데, 하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자기를 생성시킵니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니체의 세미나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에 참가하는 개인은 다양한 자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자아를 지향하지 않고, 다양한 자아가 존중되는 분위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