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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14주차. 거대한 전환_ 20장, 21장 _발제 (1209.토)
올리비아 / 2017-12-09 / 조회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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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14주차. 거대한 전환_  20장, 21장 _발제 (1209.토)                        Olivia


제20장 사회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
*파시즘의 출현 : 전 지구에 걸쳐서 산업화된 국가들 또는 산업화의 극히 초입단계의 수많은 나라들에게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운동 (동시대인들은 해당 국가의 지역적 원인들, 민족성 또는 역사적 배경같은것으로 설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어떤 나라든 파시즘 출현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 문화, 민족전통 등 어떤것도 출현을 막을수 없었다.
*파시즘의 특징 : 대중적 참여의 어떤 형태와도 무관. 대중들의 지지가 아닌 지도자들이 영향력 있는 고위 인사들로 부터 호의를 얻었다. 파시즘은 1930년대 이후 모든 산업 공동체에 거의 자생적으로 터져나온 감성적 반응으로, 항상 하나의 정치적 가능성으로 상존하고 있었다.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한 몰인격적 성격을 가지고, 증후들도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파시즘 “운동”이라기보다는 “움직임” 이라고 하는편이 낫다. 파시즘인지 판단할 수 있는 널리 인정되는 기준도 없고, 파시즘에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교리 따위도 없었따. 중요한 특징은 출현하고 또 사라지는 것이 아주 급작스러웠다.
*파시즘의 징후 : (파시즘 운동의 존재 여부 이상으로 중요)비합리주의 철학, 인종주의적 미학, 반자본주의적 대중 선동, 이단적 화폐이론들, 정당 체제에 대한 비판등의 확산과 정치체제, 즉 기존의 민주주의적 틀에 붙은 이름이 무엇이건 멸시하는 행태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
*파시스트들이 사용한 전술 : 겉으로 보기에만 요란한 반란의 전란을 벌인후 이들과 암묵적으로 연계를 맺은 권력 당국은 마치 폭력에 어쩔수 없이 제압당한 시늉을 하면서 그 반란을 인정한다.
*파시즘상황 / 혁명적상황
유사성 : 기존사회를 지택하는 모든 세력이 심리적 도덕적으로 해체되어 급기야 제대로 무장도 갖추지 못하고 한줌도 안되는 반란자들이 철통같은 요새를 덮칠수 있다
차이점 : 파시즘상황은 습격당한 것이 민주주의와 여러 헌정상의 자유들의 방벽이며 이것을 방어하려는 세력이 혁명에서의 반동 세력처럼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파시즘 운동이 당시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라는점 중요. 그 운동의 힘 때문에 이런 상황이 창출된것이 아니다.
*파시즘 / 사회주의
유사점 : 시장사회가 기능을 멈추어버리는데 뿌리가 있다. 이것도 전 세계적 현상이고 , 그 규모에도 보편성을 가지며, 현실적용의 범위 또한 전면적인것이다.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았고 정치, 경제, 문화, 철학, 예술, 종교등을 가리지 않고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번져나갔다.
차이점 : 파시즘은 저변에 깔려있는 움직임 그 자체와 그것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겉모습을 둘러쓰면서 가지게 된 일시적인 경향이였다.
*1920년대 유럽의 두 경향
반혁명의 경향, 민족주의와 결합된 베르사유 조약 개정의 운동
두 경향은 파시즘처럼 포괄적인 사회운동이었다기보다 혁명정권 타도나 베르사유 조약개정과 같은 아주 분명한 목표에 집중했지만 사람들은 파시즘과 쉽게 혼동했다.
*파시즘의 목표 : 정치적,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차원의 지배가 목표였고 사회퇴화 과정을 반기면서 정치를 반기는 수단으로 동원했던것 뿐이다.
독일이 평등한 지위를 얻게 되는가의 문제는 무장해제와 같은 기술적인 것에 제한된것이 아니며, 탈군사회의 문제가 절대적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혁명적인 단절 없이 독일이 평등한 지위를 얻을 수 없게 되자 이러한 독일인의 평등열망을 악용하며 그것을 범죄 편력의 원동력으로 바꿔 모든것을 나치의 책임으로 명백히 몰았다.
-독일,이탈리아 :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것은 오직 해결되지 않은 민족문제들을 지렛대로 이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국 : 파시즘이 반애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어 결정적으로 약화됨
*기간별 구분
-1920년대 유럽의 파시즘이 민족주의적 경향이나 반혁명 경향과 연결된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파시즘이 맡았던 역할을 결정한 것은 시장체제의 상태라는 단하나의 요인뿐이었다.
-1917~23 : 각국 정부는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파시즘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지만 이때는 그저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출연했을 뿐이었다. 당시는 농업 또는 사회주의 혁명이 벌어지거나. 산업 노동계급이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는 상황이였다. 파시스트 혁명의 징후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오직 형식적인 면에서는 파시스트적이였다. 아직 정치적 요소로 작동하지 않았다.
-1924~29 : 시장 체제의 회복이 확고해진 것으로 보였기에 파시즘은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자본주의의 회복 선언되자 볼셰비즘, 파시즘 모두는 주변부 지역을 제외하고 숙청당했다.
-1930 : 시장경제가 전반적 위기에 봉착, 단 몇년 만에 파시즘은 전 세계적인 권력이 되었다. 1929년 전까지만해도 파시즘은 이탈리아의 권위주의적 정부를 나타낸 특징 정도 이상은 아니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산업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의 체제 사이에는 자유방임의 원칙을 포기한다는것 말고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각국의 대처법
-독일 : 적대국보다 빨리 시장경제의 몰락을 예측하고 준비. 국제적인 자본과 상품, 통화 체제를 스스로 끊어버림, 외부세계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장악력을 줄이는 것이 목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경제적 자급자족을 육성.흑자였던 대외무역조차 포기함. 전통적 체제의 해체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웠다. 19세기 낙후된 체제를 조속히 청한하여 그후 여러나라가운데 선두에 서게 되었다.
-영국 : 낡은 체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대처하는데 장애를 많이 격었다, 일시적으로 금본위제를 탈퇴했지만, 영국의 경제와 금융은 여전히 안정된 외환 가치와 건전한 통화 원칙에 입각해 있었다. 군사적 준비가 허술했던것도 금본위제의 경제학에 집착한 결과였다.
-러시아 : 1917~1929동안 주된 공포의 대상은 볼셰비즘이라기 보다는 무질서 상태였다. 시장경제는 신뢰가 철저히 보장되어야만 작동할 수 있는데 무질서 상태가 계속된다면, 시장경제의 복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것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세계를 향해 혁명을 선동하는 기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대표하게 되었다. 볼세비키들은 사회주의자들임에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확립을 완강히 거부했다. 세계 혁명이 산업화된 서유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음,
러시아혁명이 이룩했던 것
1.국내적인 의미 : 절대주의와 봉건적 토지보유, 인종적 억압등의 파괴
2.국외적인 의미 : 전세계적으로 동시성을 갖는 보편적 변형의 한 부분을 이루는것.
19세기 세력균형 체제의 소명은 러시아의 농산물을 흡수 하지 못하는 세계시장의 무능력과 합쳐져서 러시아로 하여금 스스로 원치 않았던 자급자족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일국 사회주의 노선이란 결국 시장경제가 모든 나라들에 연결 고리를 제공해줄 능력을 잃는 바람에 촉발된 것이다. 비록 나타난 사건의 외양은 러시아에서 자급자족 경제의 출현이지만. 그 본질은 자본주의적 국제주의의 사멸이었다.

제21장 복합사회에서의 자유
* 19세기 문명의 파괴는 그 어떤 이유도 아닌 자기조정 시장의 활동으로 사회가 점멸당하지 않기 위해 취해진 여러 조치들에 의해서였다. 19세기의 사회를 결국파괴해 버렸던 전형적인 긴장과 갈등을 낳았던 것은 조직된 사회적 삶의 기본 요건들과 시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대외적 전쟁들은 그저 그 파괴의 속도를 앞당겼을 뿐이다.
*프랭크 나이트 : 인간의 행동 동기에서 특별하게 경제적인 것이란 없다.는 원칙은 단지 일반적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제생활 자체에도 적용된다.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교역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인간의 경제 활동은 역사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였다.

19세기 사회의 태생적 약점은 그것이 산업 사회였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사회였다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이 없어진 뒤에도 산업문명은 계속 존속할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산업문명을 새로운 비시장적 위로 옮기는 작업에 대해 상상조차 하기 싫어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날 제도의 공백이나 자유의 상실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위협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것인가? 전통적 체제가 무너졌다고해서 우리가 진공 속에 떨어진 것도 아니다. 전환의 물결 속에서 훌륭하고 영구적인 제도들의 맹아를 찾아내는 것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토지,노동,화폐라는 생산 요소들을 시장에서 제거하는 일.

시장경제가 종말을 고하게 되자 각국이 국내에서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간의 협력을 이루어나가는 새시대가 열렸다
*자유 문제 제기
-제도적 차원
규제를 도입하면 자유는 확장되기도 제약 당하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새로 얻은 자유와 잃는 자유의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취한 것인가가 문제이다
반듯이 유지해야할 종류의 자유 : 자유란 평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 경제에서 부산물로 생겨난 것들이지만 그후 우리는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시민적 자유, 개인의 정신적 독립성과 도덕적 자유
시장경제 아래에서는 자유도 평화도 제도화될수 없었다. 그 자체가 목표로 삶는것은 이윤과 물질적 안녕을 창출하는 것이지었지 평화와 자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었지 때문이다. 현재 평화와 자유를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세계적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력은 진정한 목적으로 삶을 만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유지와 확장을 목표로 삶는 새로운 장치들을 계획적으로 창출해야만 하며, 개인의 자유는 우리가 어느 만큼 그런 노력을 기울리는가에 달려있다. 질서가 확립된 사회에서 개개인이 체제에 대한 순응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제도적으로 보호되어야만 한다. 학문과 예술은 어떤 권위에서도 독립적이며 자유로워야 한다. 성별, 정치,종교, 사상, 피부색, 인종과 무관하게 이 권리가 주워져야 하며, 이런 여러 권리를 현실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옹호되어야만 한다. 소수만의 사회적 특권에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그런 원천적으로 오염된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차원
위에서 말한 진정한 자유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불가피한 요소인 계획과 통제가 자유의 부정이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규제를 통해 창충되는 자유란 자유가 아니라고 매도당하며, 그것이 제동다는 정의 자유 복지란 단지 노예제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비방당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가 지배하는 왕국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는 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는 자유라는 우리의 이상을 그릇된 방향으로 오도했다. 평화와 자유보장을 도구로 삶아 본인의 진정한 목적인 이윤추구를 도모하는것은 시장경제이다. 시장은 인간의 삶을 두 영역으로(생산자의영역, 소비자의영역) 파편화 시켜 사람들의 시야를 좁혀버렸다

이 사회는 현실상 자유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파시즘 및 사회주의를 다른편으로 갈라놓는 구분선을 만들었다. 파시즘과 사회주의 사이의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것이 아니다. 이 둘의 경제적 논리는 실로 다른 정도가 극단에 있다. 이 둘을 가르는 궁극적인 지점은 자유의 문제이다.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갈리는 지점은 자유의 이상이 유지 될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죽음의 깨달음(유대인), 자유에 대한 깨달음(예수), 사회에 대한 깨달음(로버트 오언)
인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상태는 오직 인간들의 협동에 근거한 공영체에서만 종식될것이라 믿었던 오언. 그의 사회주의는 바로 그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오언 “인간은 지금 여러 새로운 종류의 권능을 얻으려는 찰나에 서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권력으로도 근원적으로 제거 할수 없는 사회악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것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악이라는것을 인식할것이며,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는 어린애 같은 불평 불만을 그만둘것이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했고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삶아야한다.

권력이나 계획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삶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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