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양생술 발제문
소리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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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양생술>
그리스인들의 성적 행동에 관한 도덕적 성찰은 ‘자유인’인 남자가 자신의 활동 속에서 행사하는 자유를 양식화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역설처럼 보이는 성적 행동에 관한 도덕들이 보인다. 소년과의 관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금욕의 도덕을 정립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성적쾌락은 죄나 악, 자연적 상흔 등의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생각했던 것은 성적 행동과 건강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성적 행동과 건강의 관계에서 주된 성찰 대상은 병리학적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육체를 돌보는 어떤 방식에 따라 쾌락의 활용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치료법이라기보다 ‘양생술’에 가까웠다. 건강관리와 육체의 삶에 가능한 성적 행동을 통합하려는 의지 아래에서, 건강을 위해 ‘조절’을 목표로 하는 관리술인 것이다.
1. 일반적 관리법에 관하여
그리스인들의 관리법에 대한 기원은 히포크라테스 총서에서부터, 다른 하나는 플라톤에서 찾을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관리법에 전념하는 의학을 탄생시켰다. 각자의 건강 상태에 알맞은 특별한 식이요법의 발달이 양생술, 그리스인의 관리법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기원인 플라톤은 관리법에 대한 관심이 의학적 실천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관리법, 양생술은 일종의 나약한 시대를 위한 의학이다. 고대의 자연에 부합하는 섭생과 운동방식, 건강한 삶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필요한 것이다. 양생술은 굴절된 의학으로, 삶의 방식으로서의 관리법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날에서야 치료술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삶의 양식을 바로잡아야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기원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식이요법’ 그 자체가 인간의 행동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본범주로 간주되었다. 이제 해결해야할 것은 행동의 문제설정 방식이다. 관리법은 삶의 기술 전체이다.
1. <전염병>이란 책에 따르면 운동, 음식, 음료, 수면, 성 관계에 ‘절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생술의 성찰을 통해 일종의 목록이 형성되는데, 하루의 일과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마치 시간표처럼 보인다. 이 관리법은 자유인인 남자의 육체적 삶에 함축된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다.
2. 플라톤의 <경쟁자들>에서의 대화 속에는 절도, 중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의 절도는 육체적 차원과 도덕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양생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피타고라스학파의 관리술을 보면 스스로 정해놓은 많은 문화적이고 종교적 의미가 있는 섭생상의 금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도덕적 계율이자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관리법은 대체로 양호한 건강과 영혼의 바른 태도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정의된다. 이 두 가지 영역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육체적 건강을 통해 관리법에 대한 지식이 있는 건강한 영혼을 영위할 수 있고, 절도 있고 합리적인 관리법의 시행을 위해서는 도덕적 강인함(건강한 영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관리법은 일반적 존재미학의 원칙에 편입되어야하며, 육체적 균형이 영혼의 올바른 위계를 위한 조건이 된다. 육체적 관리법 그 자체를 위해 그것에 지나치게 열중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식이요법’의 실천은 그 자체로 두 가지 위험성을 내포한다. 첫 째는 경기자의 과도함이라는 위험으로, 과도한 훈련에만, 육체에 지나친 정성을 들이는 것에 매몰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병약한 과도함이라는 위험으로, 자기가 부여한 관리법에 대한 과도한 도덕성 유지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3. 지나친 관리법에 대한 경계를 통해 식이요법의 목표를 알 수 있다. 삶을 가능한 한 연장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 성과를 가능한 한 높이는 것도 아니다. 식이요법을 비롯한 양생술의 진정한 목표는 삶을 정해진 한계 내에서 보다 유익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관리법은 개인이 여러 다른 상황에 맞설 수 있도록 해준다. 합리적으로 유용한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관리법의 실천에 있어서 주의할 점이 2가지 있는데, 하나는 연속에 대한 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상황적 주의이다. 연속에 대한 주의는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것이고, 상황적 주의는 외부세계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법은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규칙으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개개인이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의 개론서이다.
4. 양생술은 의사나 전문가의 충고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양생술은 존재의 기법이며, 양생이란 개인이 자기 자신과 육체를 신중하게 돌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적합한 관리법을 위해 타인의 조언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때의 타인은 설득의 형태를 취해야한다.
삶의 기술로서 관리법의 실천은 질병을 피하거나 그것의 치료를 끝내기 위한 예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자신의 육체에 대해 적절하고도 필요충분한 배려를 하는 주체로 세우는 방식으로서, 일상생활을 총괄하는 배려이다. 삶의 일상적인 활동들을 건강과 도덕의 관건으로 삼으며, 육체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에게 상황적 전략을 규정하는 배려이자, 종국적으로 개인 자신을 합리적 행동으로 무장시키고자 하는 배려이다.
2. 쾌락의 관리법
디오클레스의 <관리법>에서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일련의 권고와 처방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역, 음식, 목욕, 구토, 수면, 운동 등의 특성들을 분류하여 검토한다. 개인의 특성에 따라, 연령별, 지역별 등등의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르게 처방해야하며, 한 조항에서 다른 조항으로 넘어갈 때에는 “조금씩 조금씩” 넘어가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프로디지아가 추위와 따스함, 건조함과 습기의 작용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여 아프로디지아의 활용이 조정된다.
이 쾌락관리법은 운동과 섭생에 할당된 자리에 비해 아프로디지아의 문제에는 제한된 자리를 주고 있다. 또한 관리법의 행위들의 형식 자체(관심이 성관계의 유형이나 체위나 자위, 피임 등)와 관련이 없다. 주로 어느 정도의 빈도와 어떤 상황에서 행해져야 하는가만 생각한다. 여기서 쓰이는 단어들은 양적 용어들로서, 쾌락을 “보다 충분히”, “소량으로”, “가능한 적게” 활용하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양생술은 성행위를 연대기적 지표에 따라 자유롭게 두거나 구속을 가하는 일종의 ‘활동’으로서 문제시한다. 사실상 기독교의 경우에도 성행위를 제한하는 기준이 시간의 순서에 따르지만 이 기준들이 훨씬 더 자세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고대 의학의 관리법들에서는 이와 다르게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지며, ‘더 많이’와 ‘더 적게’의 양적 범주에서 영속적으로 변화를 줄 것을 제안한다. 기독교에서는 합법과 비합법의 행동으로 성관계를 보지만, 고대의학에서의 아프로디지아는 경제적 체계에 따라야하는 활동으로 고려된다. 이 관점에서 성적 쾌락은 근무일수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와 적합한 빈도수를 최대한 계산하는 것이다.
3. 위험과 해독
아프로디지아는 원칙적으로 가치폄하 되는 대상이 아니다. 아프로디지아와 관련해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두 육체의 상태와 외적 상황에 따라 조정해야하는 일종의 활용법의 문제로서 제기된다. 세심한 관리법에 호소하고 성적 행동에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필요성은 두 부류에 의해 정당화된다. 성적 활동이 가져오는 영향에 대한 일종의 불안이 여기에 내재되어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성행위가 개인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계가 있다. 체질적으로 성행위를 권장해야하는 체질이 있고, 금욕해야하는 체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은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금욕과 가능한 한 성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권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주로 성적 활동이 필수적인 경제적 관리법에 따르지 않을 때 생겨나는 병리학적 영향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전적인 금욕에 의해 야기될 수도 있는 혼란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성적 활동의 부적절한 분배로 인해 생겨난 질병은 대개 과도함으로 인해 생겨난다. 성적 금욕이 가져다주는 이로운 효과들에 대해서 경기자들의 관리법이 나온다. 이들은 타인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금욕을 한다.
따라서 아프로디지아의 관리법에는 역설이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활동으로서 공정한 배분이 중요시되지만, 최다보다 최소가 거의 언제나 더 가치가 크다고 여겨지는 제한을 통한 경제적 관리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자손에 대한 배려가 또한 쾌락을 활용하는데서 발휘해야 할 경계심을 정당화한다. 즉 너무 많은 생식활동은 가족의 장래가 위험해진다. 또한 임신하기 쉬운 기간에 고의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나 과도하거나 부정한 일을 하면 보잘 것 없는 아이들을 낳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위험과 권고의 예방은 세 가지를 문제 삼는다. 첫째는 부모의 나이다. 아이를 낳기 좋은 나이로 남자는 30~35세, 소녀들은 16~20세로 정해두었다. 둘째는 부모들의 양생이다. 건강관리를 비롯한 식생활, 품행 그리고 스파르타에서는 자주 만나지 않는 것 또한 좋은 자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세 번째로는 훌륭한 자손을 얻기에 가장 유리한 계절이나 한 해의 시기에 대한 것들이다.
따라서 이 모든 필수적 배려를 통해 생식행위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을 피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식행위 시의 대단한 주의와 도덕적 태도가 요구된다.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사후에도 명맥을 이어가고, 도시국가의 구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혼의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4. 행위, 소모, 죽음
그리스인들은 성행위를 악으로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윤리적 폄하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 속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것은 행위의 격렬함, 소모(치뤄야 할 댓가), 그것과 연결된 죽음이라는 근거를 둔 불안감이다.일반적으로 성적 활동은 인간의 자기제와 힘과 생명이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아프로디지아의 신체관리법은 건강에 대한 대비책이자 존재의 훈련인 아스케시스인 것이다. 이 두려움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로 행위의 격렬함이 있다. 플라톤은 조심성과 절제력이 없다면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한다. 히포크라테스은 성적 쾌락을 경미한 간질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 성행위를 병리학적 모델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액체기계론적인 모델로 이해한다. 기본적으로 성행위는 남성의 ‘사정 도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여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다. 이 사정 도식으로 인해 한 성에 대한 다른 성의 지배와 조절이 가능해지고, 양성의 경쟁과 대결구도가 자리잡게 된다.성행위는 기본적으로 소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성행위의 핵심은 남성의 사정 도식이다. 그리고 이때 소모되는 것은 정액이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원천이다. 정액은 뇌로부터 기원하여 척수를 타고 성기로 간다. 따라서 모든 정액의 사정에는 개인의 가장 귀중한 요소들로부터 나온, 그에게서 빼낸 무엇인가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관계는 맹백한 쇠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소모에 의한 병이나 소진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성행위는 살아있는 자들의 소멸과 다음세대의 생산 영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음과 연관된다. 성행위는 일종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형식인 것이다. 성행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죽을 운명인 개인과 종족의 존속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성관계는 개인에게 재생을 확보시키는 기술인 것이다. 따라서 성적 활동은 죽음과 삶, 시간의 생성과 영원성이란 넓은 지평 위에 자리 잡는다. 개인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피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들의 경우 불안감의 테마들을 행위의 규약화나 연애 기술의 설정이 아니라 삶의 기술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성찰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