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12월 9일 <거대한 전환> 20장, 21장 세미나 후기 +2
널깊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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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거대한 전환> 후기
- ‘제 20장 사회 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 와 ‘제 21장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거대한 전환> 마지막 세미나는 폴라니가 20장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주제였던 파시즘과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얘기되는 전체주의에 대해 짚고 넘어가며 시작되었다.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단일한 권력의 독재라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이전 시간에 프린트로 따로 살펴본 바 있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먼저 전체주의는 거시정치학적 개념으로 국가 전체가 권력자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합됨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전체주의 개념은 국가 단위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 반대로 파시즘은 미시정치학적 개념으로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통해 선출된 단일한 권력이 펼치는 독재를 의미하며 ‘아래서부터 위로’ 조직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 아래의 대중은 원치 않는 독재로 인해 ‘차가운 죽음’을 맞고, 파시즘 아래의 대중은 죽음과 파멸에 대한 스스로의 욕망으로 ‘뜨거운 죽음’을 맞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라는 조직의 교사나 가정 내에서의 가부장적 가장이 펼치는 독재적 압력은 과연 파시즘일까 전체주의일까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위의 파시즘이 ‘미시정치학적’ 개념이라는 내용에 집중해서 생각해본다면 교사나 가장 모두가 결국 대중의 일부이니, 대중 안에서 펼쳐지는 독재라는 점에서 그 또한 파시즘의 형태라는 이야기가 먼저 제시되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파시즘의 정의가 대중의 자발적 지지를 받는 독재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교사와 가장의 압력을 받는 학생이나 가족 구성원 스스로가 그러한 압력이 지시하는 내용에 동화되어 지지하지는 않기에 그것을 파시즘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도 제시되었다. 일단 이 논의는 다음 기회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마무리 되었다.
이후 우리는 20장에서 폴라니가 중점적으로 다룬 파시즘과 자유 시장주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폴라니는 파시즘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몰락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드러난 일반적 경향이라 보았다. 시장 자유주의의 논리 아래에서 전 세계는 금본위제를 기준으로 국제 무역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앞선 세미나를 통해 살펴보았듯, 이러한 세계 자유 무역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위험을 가져왔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회 보호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시장 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자유 시장주의는 허상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자유 시장주의의 한계는 결국 사회 전체의 파멸로 이어졌고 이 ‘막다른 골목’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이 파시즘은 자유 시장주의의 배경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 그것을 완전하게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파시즘이 제시한 해결책은 또 다른 형태의 파멸을 불러왔다.
파시즘과 관련된 내용은 이 책의 2장 ‘보수적인 1920년대, 혁명적인 1930년대’에서도 다룬 바 있었다. 그 때 세미나에서는 파시즘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번 세미나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제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트럼프 당선뿐만 아니라 아베 재집권, 박근혜 정권, 일베, 어버이 연합 등도 차별과 배제를 생산하는 파시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파시즘의 확산이 대중 스스로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곧 경제적 안정에 대한 갈망이 파멸의 형태로 표출된 결과이지 않을까.
다음으로 이어진 21장에 대한 이야기는 폴라니의 ‘복합 사회’ 개념에 대한 정리로 시작되었다. 폴라니는 이 복합 사회라는 개념에 대해 뚜렷하게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기에 이곳저곳에서 언급된 바를 살펴보아야 했다. 그 결과 폴라니의 복합 사회란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이 탄생된, 농민·노동자·자본가 등 여러 계층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형태로 얽혀있는 사회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봉건 시대와 같이 그 이전의 유기체적 사회와 대립되는 사회이다. 우리는 바로 이어서 그렇다면 폴라니는 이러한 복합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를 지켜내고 인간됨의 형상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에 대해 살펴봤다. 그 답은 곧 ‘규제’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 규제의 가장 이상적 형태로서 폴라니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오언의 협동주의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폴라니의 복합 사회는 곧 여러 이해관계의 부딪힘으로 생산되는 갖가지 갈등이 만연한 사회이다. 시장 자유주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권력과 강제란 사악한 것이며, 또 인간 공동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는 유토피아적 허상에 불과했음을 그 자신의 몰락을 통해 보여주었다. 따라서 폴라니는 복합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권력이나 계획’ 같은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폴라니의 그러한 도구는 말 그대로 복잡하며 파멸의 위험이 가득한 복합 사회 내에서 모든 종류의 ‘불의와 비(非)자유’를 제거해버리고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잃지 않겠다는 것을 목표로 사용된다.
이번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무더운 여름부터 이어졌던 <거대한 전환>을 모두 끝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서도 물론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책의 내용을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는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폴라니가 마지막 장에서 말했듯, 사회를 시장의 관점으로 본다면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개인들은 느끼지 못한다. 자유 시장주의 속 개인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며 아무에게도 빚지는 일 없이’ 살았기에 사회에 어떤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폴라니의 말처럼 사회라는 실재는 우리 실존 각각의 의견과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번 4개월 동안의 세미나는 그러한 책임의 무거움을 일깨워주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있을지라도 자본주의 외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 외부를 향한 걸음의 첫 목적지는 내 안에서부터의 변화라는 사실도.
자본주의 외부에 대한 사유의 첫 걸음을 뗄 수 있어 좋았다.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여정이었기에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목록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그러게요 여름에 시작하여 추운 겨울에 끝났네요 ~~ 큰 책을 끝내니 웬지 기분이 뿌듯 합니닷 .
"차가운죽음" 하고 "뜨거운죽음" 마음에 확 와 닿으면서도 멋있는 표현인거 같아요.
모든 가정이 파시즘적이라고 할순 없이만 부권제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가정이 (극도의 폭력적인 가정 제외) 이런 성향이 있다고 생각 되요. 거기서 받은 교육! 은 권력자에게 복종 하고 지지하는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또는 회사 상사에게 당한 웬만한 부당함은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데 필요한 부당함이라고 참고 동조하게 되죠.
나에게 파시즘의 무서운점은 ... 대중들이 본인을 위해 지지해 놓코 일이 잘못되면 본인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당시의 독일 국민들처럼...물론 시작은 대중 지지였으나 후에 독재로 이어지지만 그러기에 한사람의 절대 악인을 상정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벗어버리는 태도와 사고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상황이 않좋아질때면 언제든 파시즘은 다시 나타날것 입니다. (년도별로 파시즘이 일어났던 것을 보아도 말이죠)
공부는 할수록 빠자드는것 같아요 ~~ 다음 시즌도 같이 거거거 해욧 ~~ ^^
요고마고님의 댓글
요고마고
"파시즘 곧 경제적 안정에 대한 갈망이 파멸의 형태로 표출된 결과이지 않을까"
전적으로 공감해요. 우리들 사이에서 흔하게 쓰는 말 "꼰대"도 결국 불안정이 심해질수록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널깊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