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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성의 역사1> 제5장 발제문 (1116)
삼월 / 2017-11-16 / 조회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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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군주의 권력을 특징짓는 특권의 하나는 생살여탈권이었다. 이는 로마의 가부장 권력이 상당히 완화된 형태로, 군주가 위협받을 때 전쟁을 벌일 권한을 뜻했다. 이런 생살여탈권은 군주의 보호와 존속을 조건으로 갖기에 더 이상 절대적 특권이라 보기 어렵다. 이 권리는 죽음에 의해서만 생명에 대한 권력을 갖는,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둘’ 권리이다. 이런 권리가 존재하던 사회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징수와 착취, 봉사와 노동의 형태로 행사되었다. 권력은 육체와 물질에 대한 탈취권이었고, 생명에 대한 탈취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서양의 고전주의 시대부터 이러한 메커니즘에 변화가 생긴다. 권력에 복종하는 세력에 대한 선동, 강화, 통제, 감시, 이용, 조직화하는 권력의 경향이 나타난다. 19세기의 전쟁과 대학살은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의 생명을 명목으로 한다. 국민들은 생존의 필요를 명목으로 서로 죽이도록 훈련 받았다. (근대적 군대 체계 확립) 전쟁의 파괴 기술이 강화될수록 반전의 논리는, 전쟁의 시작과 끝을 생존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이제 주권의 법적 실재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체적 실재이다. 권력은 생명, 종, 종족, 대규모 인구현상의 차원에 자리 잡고 행사된다.

 군주의 의지나 법을 침해하는 사람에 대한 다른 대응으로 사형을 들 수 있다. 권력이 생명의 관리를 기능으로 갖추면서 사형은 줄어든다. 권력의 주된 역할을 생명의 보장, 유지, 강화, 증대, 조직화로 보면 사형은 모순이다. 다만 교정불가능 범죄자와 사회보호를 명분으로 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권력은 줄곧 죽음에 등을 돌리고 있다. 권력이 생명의 전개를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죽음은 생명에서 벗어나는 가장 “사적인” 지점이 된다. 이승이나 저승의 권력을 침해하는 범죄였던 자살은, 19세기에 와서 사회학적 분석의 영역의 분석으로 들어간 최초의 행위들 가운데 하나였다. (에밀 뒤르켐, 『자살론』, 1897) 자살행위는 생명의 관리가 정치권력의 책무로 대두된 사회에 최초로 경악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들 중 하나였다.

 생명에 대한 권력은 17세기부터 서로 연결되는 두 가지 극을 따라 전개된다. 두 극은 기계로서의 육체와 종으로서의 육체를 말하는데, 먼저 형성된 극의 중심이 기계로서의 육체이다. 육체를 조련하고 착취하여 경제체제로 통합하는 것은 ‘규율’을 특징짓는 권력절차인 ‘인체의 해부-정치’에 의해 보장되었다. 종으로서의 육체는 18세기 중엽 생명체의 기계론과 생물학적 과정의 매체인 육체의 변화와 그 조건들을 말한다. 일련의 개입과 ‘조절하는 통제’ 전체, ‘인구의 생체-정치’가 이것을 떠맡는다. 결국 생명에 대한 권력의 조직화는 육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이라는 두 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제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을 온전히 에워싸는 데 있게 될 것이다.

 최고 권력을 상징하던 죽음의 지배력은 육체의 경영과 생명의 타산적 관리로 옮겨가 고전주의 시대부터 학교, 병영, 일터에서 진행되기 시작한다. 정치행위와 경제활동의 영역에서 출생, 수명, 보건, 주거, 이주의 문제가 대두하고, 육체의 제압과 인구 통제를 위한 기술이 증가한다. 이렇게 “생체-권력” 시대가 열렸으며, 생체-권력이 전개되는 방향은 18세기에도 여전히 규율의 측면(제도, 질서에 관한 성찰)과 인구조절의 측면(인구통계학, 추정, 도표화)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보였다. 이 두 권력기술의 맞물림은 19세기에 광범위한 권력기술을 구성하게 되는 구체적 배치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성생활의 장치는 그러한 배치들 중 가장 중요한 배치 중 하나이다.

 생체-권력은 자본주의 발전에 불가결한 요소였다. 자본주의 발전은 육체가 생산기구로 편입되고 인구현상이 경제과정에 맞춰짐으로서 보장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육체와 인구의 활용과 예속화를 쉽게 만들 권력 방법을 필요로 했다. 권력‘제도’로서 발전한 국가기관들이 생산관계의 유지를 보장했다면, 제도로 이용되는 권력‘기술’로서 19세기에 고안된 해부-정치 및 생체-정치의 기본원리는 경제과정을 떠받치는 세력의 층위에서 작용했고, 각 세력에 별도로 작용하면서 사회적 차별화와 위계화의 요인이 되었다. 자본 축적에 의거한 인력 축적의 조절, 생산력 확대와 이윤의 차등 배분에 대한 인간집단의 긴밀한 관련은 생체-권력에 의해 일정 부분 가능해졌다.

 18세기 서양의 자본주의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생명이 역사와 정치기술 영역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어떤 현상이었다. 이 현상으로 인간이라는 종의 생명에 고유한 현상이 지식과 권력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서양인은 생명에 대한 제어를 통해 죽음을 떨쳐가면서 어떤 공간을 획득하고, 권력과 지식을 통해 이 공간을 조직하고 확대해갔다. 서양인은 생물계에서 살아있는 종으로서의 육체와 그 조건들이 배분되는 공간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로 터득하는데, 이때 역사상 처음으로 생체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살아가는 행위는 점차 지식의 통제와 권력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제 권력은 법적 주체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다루게 되고, 권력의 지배력은 생명 차원에 놓이게 된다.

 “생체-정치”에서 생명은 기술에 통합되는 게 아니라, 기술을 끊임없이 초월한다. 사회의 “생물학적 근대성의 문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이 정치적 전략에서 종으로서의 인간으로 대두되는 시기이다. 인간의 문제가 생명체로서의 특수성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관계 아래에서 드러나는 특수성의 문제로 제기되는 이유는 이중의 입장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역사와 생명의 새로운 관련 양태에서 생명을 생체의 주변으로 역사 외부에 놓고, 동시에 지식과 권력의 기술이 스며든 인간의 역사성 내부에 두는 것이 이중의 입장이다.

 생체-권력의 확대로 규범의 작용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생명을 떠맡은 권력은 지속적으로 조절하고 교정하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배치는 규범을 중심으로 실행되고, 갈수록 법이 규범처럼 작동하면서 사법제도가 조절기능을 갖는 기관(의료, 행정)에 통합되어 간다. 규범화하는 사회는 생명에 중심을 둔 권력기술의 역사적 결과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떠들썩하게 늘어나는 입법활동은 본질적으로 규범화하는 권력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형태이다. 19세기에 등장에 이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 역시 생명과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발판으로 삼았다. 투쟁의 목적은 이제 정의의 회복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생명이다. 정치투쟁의 쟁점도 권리이기 이전에 생명이다. 생명과 욕구에 대한 권리. 이 권리는 모든 권력절차에 대한 정치적 응수였는데, 모든 권력절차도 주권이라는 전통적 권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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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 정치적 쟁점으로 중요성을 띄게 된 배경은 생명의 정치기술이 전개된 두 가지 축의 연결점에 있다. 성은 육체의 규율을 경제적 사용과 연결시키고, 인구조절의 영역에서 모든 총괄적 결과를 유도한다. 성은 육체의 생명과 동시에 종의 생명으로 접근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은 성을 규율의 모태와 조절의 원리로 이용했다. 성생활은 또한 정치적 조작, 경제적 개입, 도덕화 또는 책임감의 고취를 위한 이데올로기 캠페인의 주제가 된다. 18세기부터 성에 관한 정책이 나아간 네 가지 공격선이 가지는 중요성도 육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이라는 목적을 조합하는 전술의 배열로부터 유래한다.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 어린이 성의 교육학화, 출산의 사회화, 도덕적 쾌락의 정신의학화)

 푸코는 피가 권력메커니즘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사회를 “다혈질 사회”라 부르는데, 이런 사회에서 권력은 피를 ‘통해’ 말하고 피는 ‘상징적 기능을 갖는 실체’이다. 이와 달리 우리는 “성생활 위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이런 사회의 권력메커니즘이 겨냥하는 것은 육체와 종의 활용가능성 강화이다. 권력은 성생활에 ‘관해’ 성생활‘에게’ 말하고, 성생활은 표지나 상징이 아닌 목적이나 표적이다. 성생활의 중요성은 규칙적 반복성, 은밀한 현존, 도처에서 자극되는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사실에서 온다. 증식하는 의미로 이용되는 성생활은 ‘의미의 가치를 갖는 효과’이다.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피가 성으로 대체되는 변화 자체라기보다 현대에서 성생활이 끊임없이 부추겨지는 이유이다. 고전주의 시대에 구상되고 19세기에 사용된 새로운 권력절차는 사회를 ‘피의 상징론’에서 ‘성생활의 분석론’으로 넘어가게 했다.

 사드와 최초의 우생학자들이 말하는 성은, 규범보다는 군주나 귀족, 혈통과 쾌락 등 피가 성을 흡수한 피의 상징론 안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피의 상징론과 성생활의 분석론이 겹침이나 상호작용, 반향 없이 차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특히 피와 법에 대한 관심이 성생활에 출몰하면서 나타난 변화 중 두 가지 간섭현상을 주목할 만하다. 인종차별과 정신분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종차별은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긴 계열의 개입이지만, 피의 순수성을 보호하려는 가공의 근심에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나치즘은 피의 환상과 규율의 권력이 가장 순진하고 교활하게 결합된 결과였고, 무한한 국가의 관리체계가 피의 고양을 수반하여 대량의 학살을 가능하게 했다. 정반대의 극단에서는 성생활의 주제를 법, 상징적 질서, 주권의 체계에 재편입시키기 위한 이론적 노력이 발견된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대립했으나, 여전히 법, 죽음, 피, 주권의 심급에 따라 성적인 것의 영역을 사유했던 정신분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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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는 자신의 견해가 성급한 역사주의가 빠져 생물학적으로 확고한 성적 기능의 실재를 회피한다는 비난에 처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아주 너그럽게 봐준다 해도 푸코가 밝혀낸 것에 대해, 정신분석이 개인의 차원에서 명확히 찾아낸 메커니즘을 확산시킨 것뿐이라는 비아냥거림 역시 감수한다. 이 지점에서 푸코는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 두 가지 문제를 구별하자는 제안을 한다. 먼저 성생활을 “정치적 장치”로 분석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육체와 생물학적 기능의 누락을 전제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푸코는 자신의 논의가, 육체의 기능과 쾌락이 권력의 장치와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오히려 생명을 표적으로 삼는 근대적 권력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분석에서는 육체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코는 자신의 연구가 육체를 고려하는 “심성의 역사”가 아니라, “육체에 관한 역사”가 될 것이라 강조한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이 물질성이 성의 물질성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성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데도 육체의 차원에서 성의 역사를 쓰고자 하는 데는 모순이 있지 않을까? 권력이 강요하는 성생활의 영역이 있는 게 아니라, 성생활 자체가 권력의 배치가 낳은 결과이자 권력 배치를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은 푸코가 보기에도 여전히 인정할 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성‘에 대한’ 관념이 무엇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의” 관념이 갖가지 권력의 전략을 가로질러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19세기부터 성생활의 장치가 확대된 노선을 따라 성이 실재한다는 관념이 형성됨을 목격할 수 있다. 여성의 히스테리화 과정에서 여러 전략을 거치면서 히스테리는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이고, 전체이면서 동시에 부분이고, 기본요소이면서 동시에 결여된 것으로서 성이 수행하는 작용으로 해석된다. 현존과 부재, 현존과 결핍, 표면화와 뒤늦은 결과로 감추어진다는 성의 관념은 어린에게 성적 특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성도착의 정신의학화에서 성은 방향과 목적을 부여받고, 본능과 관련된다. 갖가지 전략을 통해 “성의” 관념을 확립하는 것은 성생활의 장치이고, 이 관념은 히스테리, 수음, 페티시즘, 질외 사정의 네 가지 주요한 형태를 바탕으로 성에 관한 일반 이론의 틀을 형성한다.

 이렇게 생성된 이론은 성생활 장치 속에서 몇 가지 기능을 수행함으로서 성생활 장치에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특히 세 가지 기능이 중요하다.

① “성”의 관념은 해부학적 요소, 생물학적 기능, 행동, 감각, 쾌락을 인위적 통일성에 따라 모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이 허구적 통일성을 인과의 원칙, 편재하는 의미, 도처에서 발견해야 할 비밀로 기능하게 했다. 따라서 성은 유일한 기표인 동시에 보편적 기의로 작용할 수 있었다.

② 성은 해부학적 구조인 동시에 결함으로서, 기능인 동시에 잠재성으로서, 본능인 동시에 의미로 간주됨으로서, 인간의 성생활에 관한 지식과 생식에 관한 생물과학 사이의 접촉선을 표시했다. 인접의 특권은 불확실한 유비관계에도 불구하고 준과학성을 보증하고, 생물학과 생리학의 일부내용을 인간의 성생활에 대해 정상성의 원리로 구실할 수 있게 했다.

③ 성의 관념은 본질적인 반전을 보장했다. 권력이 성생활과 맺는 관계의 표상을 전도시키고, 권력을 “권력”으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 권력을 단지 법과 금기로서만 사유하게 했다.

 우리는 성에, 우리를 지배하는 심급과 현재 모습 아래 감춰져 있는 비밀, 보이는 권력과 감춰진 의미에 의해 현혹된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푸코는 이런 요구를 받는 성이 사실은 성생활의 장치와 이 장치의 작동에 필요하게 된 관념적인 지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권력과의 접촉면을 따라 부차적으로 성생활의 다양한 결과를 산출할지 모르는 자율적 성의 심급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성은 오히려 권력이 육체의 물질성과 힘, 에너지, 감각, 쾌락을 장악함으로서 조직하는 성생활의 장치에서 가장 사변적·관념적이며 내면적인 요소이다.

 성이 보다 실천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이해가능성에, 자기 육체의 총체성에, 자신의 정체성에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것은 성, 즉 성생활의 장치에 의해 고정된 상상적 지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 자체를 얻기 위해, 성의 진실과 주권을 얻기 위해 생명 전체를 내놓고 있다. 역사적 현상으로 오해받는 죽음의 본능이 명백히 성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랑이 죽음을 대가로 요구해왔고, 현재에는 성이 죽음을 권리로서 요구한다. 성생활의 장치는 권력의 기술로 생명을 에워싸게 해 준 반면에, 성생활의 장치에 의해 드러난 성이라는 허구적 지점에서는 죽음이 매혹적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생활의 장치는 “성”이라는 상상적 요소를 만들어냄으로서 가장 중요한 내적 작동 원리들 가운데 하나로 성에 대한 욕망, 성을 소유하고 발견하고 해방하고 진술하고 진실로서 확립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성이 바람직한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성생활의 장치에 사실상 묶여있는데도, 스스로 온갖 권력에 대항하여 성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믿게 된다. 성의 역사를 성의 심급에 관련짓지 말고, 어떻게 “성”이 역사적으로 성생활에 종속되어 있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성을 현실 쪽에, 성생활을 불명료한 관념과 환상 쪽에 놓아서는 안 된다. 성생활은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매우 구체적 형상이고, 이 작용이 사변적 요소로 성의 관념을 불러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양한 성생활의 메커니즘을 전술적으로 반전시킴으로서 권력의 발판에 대해 육체, 쾌락, 지식의 다양성과 저항가능성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이 성의 심급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성생활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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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을 인식하고 담론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오래된 명령이 고전주의 시대의 구도자들과 영성지도자들의 경우에 못지않게 효과적으로 프로이트에 의해 재개되었다. 성생활 장치의 아이러니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해방”이 문제라고 믿게 만드는 데 있다.

 

 

이번 주 발제기계 가동 종료! 후기기계로 배치 전환 준비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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