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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1114 세미나 후기 (운명과 성격, 초현실주의) +2
삼월 / 2017-11-19 / 조회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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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벤야민의 짧은 글 <운명과 성격>과 <초현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벤야민의 글은 짧지만 밀도가 높고, 글을 쓴 당시의 시대성과 현재성을 반영하려고 한 점이 많습니다. 때문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이해가 쉽지 않지 않음을 이번에 발제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또 그런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운명과 성격>은 1919년에 쓰인 짧은 글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운명은 사회적 세계와 연관해 표현되고, 성격은 개인의 독자적 부분으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성격이 운명의 원인이라고 믿지만, 벤야민은 기호의 인과관계만으로 운명과 성격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성격과 운명을 함께 이해하는 니체의 사유와도 견해를 달리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운명은 신화와 연관된 것입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인간의 운명을 바라봅니다. 비극 속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휘브리스’(오만)를 통해 스스로 신과 동일해지고 자신을 긍정하기, 인간의 ‘창조적 정신’은 이렇게 출현합니다.

 

그러나 비극의 운명 개념은 성격 개념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운명에서 불행은 죄와 연결될 뿐 구원과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운명은 종교적 사유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운명을 종교와 분리하여 사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명을 종교와 분리하여 사유해야 하는 것처럼, 성격에 대한 사유 역시 윤리적 연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격은 오히려 자연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니체가 그리스 비극에서 운명을 사유했다면, 벤야민은 희극에 관심을 둡니다. 인간의 성격은 희극에서 나타납니다. 희극 무대에서 비로소 인간의 행동은 도덕적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고도의 명랑함의 대상이 됩니다. 무대 위 인물의 행동은 관중에게 도적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성격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관심을 끕니다.

 

<초현실주의>는 1929년에 쓰인 글로, ‘유럽 지식인들의 최근 스냅 사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벤야민은 이 글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파리의 모습을 통해 예술과 혁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벤야민은 도취의 힘 외에도 현실과 경험에 놀라우리만치 솔직하게 반응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몇 가지 모습에 주목합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의미나 자아보다, 이미지와 언어를 앞에 놓았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는 벤야민으로 하여금 혁명을 다시 사유하게 합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내려준 답은 전방위적 염세주의와 불신입니다. 문학의 운명, 자유의 운명, 인류의 운명, 그리고 모든 소통에 대한 불신. 그래서 새로운 시각의 힘이 필요해집니다.

 

벤야민은 비유와 이미지의 구별에 대해 통찰한 아라공의 견해를 확장시켜, 정치에서도 도덕적 메타포를 추방하고 이미지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미지공간은 ‘안락한 방’이라는 게 없는, 보편적이고 완전한 현재성의 세계입니다. 변증법적 파괴와 공유가 진행되는 이미지공간은 구체적으로 신체적 공간입니다. 이미지공간에서 우리의 각성이 진행됩니다. 벤야민이 말하는 각성은 일상적인 것을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으로, 꿰뚫어볼 수 없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시각의 힘을 가지는 것이며, 이를 범속한 각성이라고 부릅니다. 벤야민은 독서하는 자, 사유하는 자, 기다리는 자, 거리산보자를 각성된 자들이며 범속한 자들로 봅니다. 벤야민이 말하는 각성은 결국 습속의 변형에 관한 문제입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하는 게 만드는 것. 이것은 습관인 동시에 일상적 부르주아 질서의 재배치를 위한 벤야민의 처방이기도 합니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운명과 종교와의 연관, 성격과 윤리와의 연관, 그 두 가지 연관에서
벤야민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승리자들의 정치적 요구와 욕망을 읽어낸 것 같아요.
당시의 그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적폐로 여겨졌던 것이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민한 것 같아요. 삼월 님 말씀 대로 희극에서 제시되는 '고도의 명랑성'이 벤야민이 사유한
탁월한 적폐청산의 방법론이었던 거죠. 희극 작품 안의 주인공은 어떤 윤리적 올바름과는 상관없이
엉뚱하고도 재기발랄한 성격을 마음껏 표출하는데, 그게 묘한 흥분과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죠.
그 느낌을 상상하다 보니, 벤야민의 말에  공감이 되더라고요.ㅎㅎ
암튼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는 완전 강추 작품입니다!
이번에 창비에서 몰리에르의 다른 희곡들이랑 같이 묶어서 새로 발간을 했더라고요.
급히 발제 맡아 주셨는데도 너무 성실하고 정갈하게 잘해와 주시고,
후기도 늦지 않게 올려 주셔서 너무 감사, 감동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고도의 명랑성'이 적폐청산의 방법론이라는 희음님의 말에 감탄합니다.
흐음. 역시, 그랬어!
앞으로는 희극 속 인물의 명랑성을 대할 때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될 듯 합니다. 어떤 귀한 것을 대하는 시선으로.
<상상병 환자> 꼭 읽어보고 싶네요. 희곡 읽는 세미나가 필요할 듯 합니다. ㅎㅎ
벤야민, 발제할 땐 힘들었는데 알게 모르게 다른 책들 읽을 때 조금씩 도움이 됩니다.
지난 주 내내 느꼈지요.
벤야민 텍스트 읽는데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역시 하길 잘 했어요.
여러 모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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