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1118(토) 후기_거대한 전환 16~17장 +6
널깊
/ 2017-11-19
/ 조회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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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세미나 후기>
제 16장 시장과 생산조직 / 제 17장 자기조정 기능, 망가지다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16장과 17장은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삼은 전 세계의 자유무역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칼 폴라니의 허구상품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폴라니의 논지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 허구상품 개념은 인간(노동), 자연(토지), 화폐가 본래 상품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조정 시장 체제의 지지자들은 노동 시장, 토지 시장, 금융 시장이 각각 존재하며 어떤 개입도 없이 오직 그 자체들만으로 원활하게 경제가 굴러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폴라니는 아예 이 세 요소들이 시장을 이룬다는 생각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이전의 세미나에서 살펴보았던 인간과 자연의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컵이나 노트북처럼 판매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상품’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은 인간 활동 그 자체를 의미하며 토지는 자연에 대한 임의적 선 긋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화폐의 경우를 이번 세미나에서 살펴봤었다. 16장에서 폴라니는 시장은 각종 상품(폴라니에 의하면 허구상품인 것들)을 소유한 각 개인의 물물교환으로 굴러가는데 이 물물교환 과정에서 보다 빈번히 사용되는 상품이 바로 화폐이며 화폐는 따라서 교환수단이라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구매력(청구권) 화폐 이론’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화폐는 곧 구매력의 증표이며 따라서 화폐는 교환수단이 아닌 ‘지불수단’이다. 옮긴이 해설에서는 이 청구권 화폐 이론의 선구자였던 크나프의 ‘화폐란 국가의 입법 활동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이 국가의 입법 활동이란 곧 조세 활동을 의미한다. 즉 화폐는 시장에서의 물물교환의 편리함을 위해 발생하지 않았으며(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국가가 세금을 걷기 위해 고안한 지불 수단으로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는 상품이 아니다. 그 자체로는 공허한 청구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16장, 17장의 중심 내용인 자기조정 시장의 몰락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의 논리대로 토지, 노동, 화폐에 대한 시장이 성립되어 실제로 작동하게 된다면 사회는 파괴의 위협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공동체 스스로의 자기 보호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토지와 노동은 각각 각종 곡물관세와 사회입법들로 그러한 보호 운동을 개진했다면 화폐의 영역에서 일어났던 보호 운동은 바로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폴라니는 이 화폐 영역의 보호 운동이야말로 시장 메커니즘이 ‘급작스럽고도 완벽하게 균열’을 일으킨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보호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 자유 무역이었다. 금본위제는 점증하고 있는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파운드화의 환율 안정이라는 목적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명목 화폐 즉 각 나라 안에서만 사용되는 화폐는 외국에서는 통용되기 힘들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금을 기준으로 하는 실물 화폐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본위제는 자국 통화의 외환 가치 안정을 위한 국내 경제의 디플레이션을 필요로 했으며 이 디플레이션이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은 파괴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각 국은 이러한 금본위제의 파괴적 결과로부터 국내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이것이 앞서 말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었다. 폴라니는 따라서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했던 자유무역이야 말로 마치 ‘갑각류’와 같이 단단한 장벽을 둘러친 국민국가가 등장하게 된 원인이라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국제적 자유무역은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펼치는 보호 운동 아래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이 보호 운동은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명백하므로 어떠한 개입도 없이 각 국의 무역이 스스로 잘 작동할 것이라는 자기조정적 자유무역주의자들의 논리는 붕 뜬 허상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는 폴라니가 노동의 가격을 임금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잠시 마르크스의 생각으로 넘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아닌 ‘노동력’의 가격을 임금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과 노동력은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노동력은 ‘사용가치’가 ‘가치증식’의 원천이 되는 ‘상품’이다. 즉 노동력은 ‘인간이 살아있는 신체 속에 존재하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총체’이다. 반면 노동은 사용가치를 갖는 활동 자체이며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구매하는 것은 ‘노동’이 아닌 ‘노동력’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임금이란 곧 노동력의 가격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노동력의 매매는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각기 다른 임금으로 책정되어 이뤄진다. 하지만 노동력의 사용(노동)은 이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을 넘어서서 진행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노동력의 사용 즉 노동이 창출해내는 잉여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곧 이 잉여 가치를 통해 자신의 이윤을 취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본주의 논리 내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 ‘등가 교환’을 하며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부당함도 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왔다. 즉 노동자와 자본가는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다. 그러나 보통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에 대해 ‘연민’을 갖고 바라보기 쉬우며 노동자는 곧 자본가에 대비해 ‘약자’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쉽다. 마르크스는 그런 관점으로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투쟁을 바라보지 않았던 듯하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싸움은 똑같은 위치에서 벌어지는 힘vs힘의 싸움인 것이다.
우리가 나누었던 위의 이야기들 외에 나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술술 잘 풀어내는 경제적 이론들은, 얼핏 보기에는 정말 맞는 말 같고 그 이론대로라면 문제없이 경제가 잘 굴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러나 그 이론들이 포섭해내지 못하는 현실의 구체적 내용들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그들이 주장한 그 모든 이론들이 터무니없으며 인위적인데다가 허술하기까지 한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폴라니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무역 및 통화 이론은 현실에 존재하는 나라들 사이의 생산 능력, 수출 능력, 무역, 해운, 은행업의 경험 등에서의 차이를 무시한 이론이며 따라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비단 나라들 사이의 자유무역뿐만 아니라 자기조정 시장 체제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으로 적용된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간과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현실 그 자체다. 인간 존재와 삶 속에서의 다양한 양상 모두를 다 간과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은 오로지 한 곳으로 수렴한다. ‘이윤’이다.
자본주의 구조 내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욕망하는 것들은 어쩌면 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적 욕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폴라니가 말한 ‘몇 천년에 걸쳐 자신들의 자연적 욕구를 나름의 방향으로 발전시켜온 원주민’들과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라는 인위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은 그 뿌리가 의심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상품들에 대한 ‘불타는 욕망’은 결국 이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도록 구조 지어져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조정 시장의 ‘자유’는 만들어진 자유이다.
17장의 마지막에서 폴라니는 자유무역주의가 종국에 취하게 되는 모습은 결국 ‘함대의 협박’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능력에서 차이를 갖는 나라들이 자유롭게 무역을 하게 되면 자연히 낮은 경제능력을 가진 나라의 대외 채무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 채무를 갚게 하기 위해 강대국들은 바로 ‘함대’ 즉 폭력을 사용한다.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 자유무역주의가 내세우던 자유롭게 어떠한 개입도 없이 이뤄지는 세계 무역의 이상은 이로써 허상에 불과한 것임이 밝혀졌다. 사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모든 장에서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의 공허한 이론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자기조정 시장의 근본적 원리는 ‘어떠한 개입’도 없이 스스로 운영됨에 있다. 그러나 노동 시장에 있어서도, 토지 시장에 있어서도, 그리고 이번 세미나에서 살펴보았듯 화폐 시장의 경우에도 사회의 보호운동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자기조정 시장은 이러한 보호운동들이 이어져 온 까닭에 그 허물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의 말대로 이 보호운동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조정 시장은 그 수명을 다한 것이며 사실상 몰락했다고 보아야 한다.
앞서 있었던 세미나에서 ‘시장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는 고속도로에서의 자유와 같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유무역의 자유, 자기조정 시장의 자유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통해 갈고 닦은 고속도로 위에서의 자유에 불과하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세미나 전체를 통체로 복귀한 모범적인 후기입니다.
거기다 맥락이 돋보이는 전개도 멋지네요^.^
세미나 시간의 깔끔한 문제의식이 후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군요!!
다음의 주제에 대해 참조할 만한 훌륭한 글입니다.
1. 노동, 토지, 화폐가 허구상품인 이유
2. 자기조정시장은 어떻게 몰락에 이르는가?
3.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는 어떻가 다른가?
4.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현실 자체를 간과하는가?
5. 자기조정시장은 정치적 개입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제씨님의 댓글
제씨
와 대단한 후기!!! 진짜 잘 읽었어용 !!!
아무래도 우리 세미나의 에세이는 서영님이 쓰시는게 정답일듯요^*^
요고마고님의 댓글
요고마고맨 밑단만 읽고 출력중. 이런 아름다운 후기라니요;; @_@
영민님의 댓글
영민진짜 이건 뽑아서 읽어야 하는 후기네요-!!! 감사합니다.
요구하고님의 댓글
요구하고코뮨에세이로 바로 제출하심 될듯!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저번시간에 부득이하게 빠졌는데 도움이 많이 댔어요 ~~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