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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성의 역사 1> 1116 세미나 후기 +3
삼월 / 2017-11-20 / 조회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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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끝내는 이 날, 나를 포함한 세미나원들의 마음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조금씩은 있었을 것이다. 유독 많은 세미나원들이 결석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시작하는 분위기가 무거운 감이 있었다. 이놈의 책이, 이 얇은 한 권의 책이 손에는 쏙 들어오면서도, 어딘가 내 머릿속에 쏙 박혀온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책거리라고 다들 손에손에 술과 안주들을 가지고 왔다. 지난 주 마시다 남은 보드카에 곁들일 진저에일과 주스에, 이름도 낯선 중국술에, 기분이라도 풀려고 안주도 푸짐하게 시켰다. 머리를 안 채우면 배라도 채워야지. 향기로운 술과 기름진 안주에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사람도 아닌 법이니.

 

에라 모르겠다고 술 한 잔씩 걸치며 세미나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어느새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도무지 뜻을 알기 어렵던 암호같이 긴 문장들이 단단한 쉼표들의 결속을 풀고 조금씩 해독 혹은 오독되어 가기 시작했다. 몇 사람이 떠들면, 몇 사람은 환호하며 맞장구를 쳤다. 오, 그런 내용인 것 같아요.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뭐 이런 식으로다가. 그러다가 가끔은 논쟁 비슷한 것도 펼쳤다. 술을 마시고도 서로의 설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없을 때는, 내 말이 맞는지 함 들어봐요. 하고 한 마디씩 이야기를 얹어갔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를 떠들고는 책장을 덮었다. 책장을 덮고는 한 마디씩 소감도 나눴다. 소감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터넷으로 댓글을 달 듯 말들이 따라붙었다. 힘들어서 세미나 나오지 말까 고민했다는 말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아서였다. 세미나 오래 해 온 사람은 오래 해 온대로, 얼마 안 된 사람은 얼마 안 된 대로 각자 고민하는 지점들을 털어놨다. 조금 후련했고, 덕분에 조금 진득해졌고, 그래서 다음 책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남몰래 결심했다. 푸코가 말했듯, 고백의 효과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야!

 

새벽에 썼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이런 잡소리만으로 후기를 채울 수는 없다. 나름 푸코세미나 원년멤버로서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고, 그날 세미나에 빠졌던 세미나원들을 위해 뭐라도 푸코에 대해 썰을 풀어야 한다. 발제는 나름 길고 꼼꼼하게 했지만, 길고 꼼꼼하게 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차라리 짧게 몇 줄이라도 요점을 정리해줘야 한다. 마지막 남은 의리로다가. 그렇지만 그 작업을 시작하는 즉시 이 후기는 얼마나 재미가 없어질 텐가! 슬프도다.

 

그렇지만 잡소리를 계속하려면, 그 재미없는 작업을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의 정체는 어디까지나 세미나 후기가 아닌가! 그래서 5줄 요약을 시도해 보았다. 그조차 읽기 싫고, 관심 없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좋다.

 

1. 서양 고전주의 시대부터 권력 메커니즘은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둘’ 권리에서 생명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변한다.

2. 생명에 대한 권력은 육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 이 권력 메커니즘에서 중요한 배치 중 하나가 성생활의 장치이다.

4. 성생활의 장치는 ‘성’이라는 상상적 요소를 만들어냈다.

5. 성생활의 장치는 우리가 성 억압을 받고 있으니 해방이 필요하다고 믿게 만든다.

 

결국 푸코 이 사람은 ‘성’이 상상적 요소라고, 허구라고 말하면서도, 《성의 역사》라는 제목이 떡하니 붙은 책을 세 권이나 썼다. 사실 더 썼는데, 한 권은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이쯤 되니 나는 이 양반이 내리는 결론보다 사고방식 자체에 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의문을 적으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후기를 그만 마칠까 한다. 내용을 자세히 요약해 주길 원한다면, 내 발제문을 두 번 정독하길 추천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을 것을 안다. 심지어 나도 2페이지까지 읽다가 전철에서 졸았다.

 

의문 1. 푸코가 성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권력이다. 성이 억압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이 억압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억압하고 죽이는 권력, 피통치자들에게 악의를 품고 잔혹하게 대하는 폭군 같은 통치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푸코가 말하는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권력 메커니즘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당연하게 억압받는 피통치자, 결백한 약자의 위치에 놓는 이유는 어쩌면 권력을 악으로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해야 그 반대편에 놓여있다고 믿는 자신을 선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문 2. 관념으로만 알고 있는 무엇을 부정하기는 왜 이리 어려운가? 성, 권리, 욕망, 자유, 평등, ... 그게 뭔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어려운데, 나는 분명 이것들이 뭔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더구나 이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거라고 믿고 있다. 푸코가 말했듯 비-지식의 의지도 지식의 의지다. 지식이 아닌 것을 지키고 만들어가는 지식의 의지. 내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것들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모르겠다. 푸코의 사고방식으로는 그 이유를 궁금해 해야 한다. 왜 이런 걸 가르치고, 배우는가? 무엇을 위해서? 있지도 않은 것을 있게 만드는 그 힘이 바로 지식의 의지가 아닌가? 우리가 힘들게 세미나하면서 한 마디씩 보태는 것도 어찌 보면 지식의 의지일 텐데, 그 의지로 허깨비 같은 것들을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을지?

 

이렇게 거대한 의문을 두 개나 남겨준 푸코는 역시나 따수운 사람이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후기가 오늘 날씨같음.
차가우면서도 어찌나 신선한지!

따수운 삼월의 츤데레 버전 후기 좋다!

PS.아 5장까지 다 읽고 나니 1장 2장이 다시 이해되더라는..!

소리님의 댓글

소리

아 정말 따뜻한 삼월의 후기네요. 담백하게 그리고 핵심적으로 참 고마워요.
한 권은 끝났지만 훨씬 더 많은 의문이 남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월 발제문 읽었다!! 다시 정독하고 예습 복습 해서 갈게요.
후기까고 고생 많았어요. 2권 함께 달려봐요!!

유택님의 댓글

유택

엄청 인간적인 냄새 폴폴 풍기는 후기 남기셨네. 남기셨어~ ㅎㅎㅎ
굿 좝~! 잘 읽었음요~~
그런데 다들 <성의 역사 1권>에서 많이들 좌절했나봐요. 후기를 보니.
전 <성의 역사 1권> 총 5회 세미나 중에 2번이나 빠져서인지...
어느 지점에서 좌절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대략 난감 형국이랄까요~!! 
그냥 전 푸코 텍스트 읽는 그 자체로써
이미 거대하게 완성되어 있는 이 '자기 기쁨'이 있어서~~
난 좋으기만 하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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