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1114 발제문 (운명과 성격, 초현실주의)
삼월
/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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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성격 (1919)
사람들은 보통 성격이 운명의 원인이라고 믿는다. 운명을 미래에 놓고 예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믿지만, 성격은 현재와 과거에 놓여 있어 인식 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운명이 예언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운명이 현전해 있다고 말한다. 성격과 운명은 그 자체가 아니라 기호를 통해서만 조망할 수 있다. 성격과 운명이라는 개념들이 뜻하는 맥락이 직접적으로 가시적인 것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성격학 기호의 체계는 일반적으로 신체에 국한되지만, 운명의 기호는 신체적 현상들 이외에 삶의 모든 현상들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관찰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기호가 아닌 기의 자체이다. 기호들은 인과적 연관관계를 근거로 성격이나 운명을 의미할 수 없다.
전승된 견해는 성격을 ‘활동하는 어떤 사람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나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은 외부에 대한 개념과 경계를 그을 수 없다. 활동하는 사람과 외부세계는 상호작용하고 넘나들며, 개념도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성격이고, 무엇이 운명인지도 말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성격과 운명은 구분되기는커녕 서로 합치한다. 운명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성격 개념과 순수하게 구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성격 개념을 엄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성격을 윤리적 연관 속에, 운명을 종교적 연관 속에 넣는다. 오류는 운명 개념이 죄 개념과 결부되면서 생겨난다. 운명적인 불행은 종교적 죄에 대한 신의 응답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죄 개념이 빠져 있다. 종교적 질서에 아무런 해방의 길도 없이 불행과 죄만 있을 수는 없다. 벤야민은 불행과 죄만 통용되는 다른 영역으로 법의 저울을 찾았다. 운명의 법칙들인 불행과 죄는 법을 인격의 척도로 상승시킨다. 법의 질서는 실존단계의 한 잔재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법의 질서를 정의의 영역과 혼동하여 그 질서를 유지시켰다. 창조적 정신이 죄를 뚫고 나온 것은 법이 아니라 비극에서였다. 비극 속에서 이교적 인간은 자신이 신들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 인식으로 인해 말을 잃고 둔중한 상태가 된다.
인식은 죄를 측량하여 저울 위에 올리지 않고, 뒤흔들어놓는다. 도덕적 인간이 흔들림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비극의 숭고함’은 곧 도덕적 무언성, 도덕적 유아성 속에서 창조적 정신이 탄생한다는 역설이다. 그 숭고함 속에서 신이 아닌 창조적 정신이 출현한다. 운명은 한 삶을, 심판 받고 나서 죄인이 되는 삶으로 바라보는 데서 드러난다. 죄의 연관은 살아있는 것의 자연적 상태, 아직 해체되지 않는 가상에 상응하는데, 인간은 그 가상에서 벗어나 있다. 따라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운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운명의 주체는 규정될 수 없다.
비극에서의 운명 개념은 성격 개념과 완전히 무관하며, 그 규정 근거도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 성격 개념도 이에 상응하는 상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두 질서 모두 해석하는 방식과 연관되고, 그 질서는 자연적 인간, 인간 속의 자연에 해당한다. 운명이 종교와 상관이 없듯이, 성격도 윤리나 도덕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운명 개념과 혼란스럽게 결합하여 구성되는 특성들도 벗어던지면, 성격은 촘촘한 그물망으로 인식될 것이다. 도덕적 특성이 아닌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은 희극이다. 운명이 인물의 죄의 분규와 연계성을 전개해나간다면, 성격은 죄 연관 속에 있는 인물의 노예화에 대해 창조적 정신의 답변을 준다. 분규는 단순함이 되고, 운명은 자유가 된다. 창조적 정신은 원죄의 도그마에 대해 인간의 자연적 무죄의 비전을 맞세운다.
초현실주의 - 유럽 지식인들의 최근 스냅 사진 (1929)
벤야민이 독일에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찰자는 초현실주의의 원천에 있지 않으며, 좀 더 넓게 조망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브르통의 선언을 변증법적으로 요약하면, 밀접하게 결속한 사람들이 ‘시적인 삶’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시의 영역이 내부로부터 폭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29년 당시의 초현실주의는 변형 단계에 있었지만, 초현실주의 초기에 접촉한 것은 모두 융합되어 버릴 만큼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다. 초현실주의에서는 의미나 자아보다, 이미지와 언어가 먼저였다. 도취를 통해 자아를 느슨하게 하는 일은 사람들을 도취의 마력에서 탈출시킨 생산적이고 생생한 경험이었다. ‘초현실적인 경험들’은 종교적 엑스터시나 환각제의 효과뿐만이 아니다.
종교적 각성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환각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물론적이고 인간학적인 영감 속에서 범속한 각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와 브르통의 『나자』는 이러한 각성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저술들이다. 이 책들에는 파리 약탈의 날들과 빈민가의 폭동이 묘사되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혁명에서 파생되었고, 모두가 그것이 심령론의 눅눅한 뒷골방에 머무르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자』는 사랑에서 범속한 각성을 인식하려면, 사랑을 진지하게 여겨야 함을 암시한다. 기사도적 사랑은 순결이 황홀경이기를 바란다. 한 세계의 엑스터시가 상보적 세계에서는 냉철한 상태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도취의 변증법이 가지는 희한한 특성이다. 브르통은 나자보다 나자에 가까이 있는 사물들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낡아버린 것’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에너지와 맞닥뜨린다. 브르통이 발견한 것은 사회적 빈곤과 마찬가지로 건축상의 빈곤, 실내장식의 빈곤, 노예화된 사물들과 노예화시키는 사물들이 혁명적 니힐리즘으로 반전하는 과정이었다. 이 사물세계를 극복할 트릭은 과거를 향한 역사적 시선을 정치적 시선과 맞바꾸는 데 있다.
이 사물세계의 중심에 도시 파리가 있다. 폭동은 도시의 초현실주의적 얼굴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어떤 얼굴도 한 도시의 진짜 얼굴만큼 초현실주의적이지 않다. 나자는 대중의 대변자이고, 대중을 혁명으로 고취하는 무의식의 대변자이다. 브르통은 실제 파리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소설 속 삽화처럼 등장시킨다. 초현실주의자들의 파리도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큰 세계나 우주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파리는 초현실주의의 서정시가 보고하는 공간이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한 번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예술의 위기는 비의적秘義的문학의 역사를 통해 극복될 것이다. 그 역사서의 마지막 장에서 초현실주의의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될 것이다.
브르통은 중세 철학의 실재론이 시적 경험의 바탕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아폴리네르는 단 하나의 단어를 통해 대중·민족·우주 같은 복합적 본체들을 빠르고 단순하게 칭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며, 이런 속도와 단순함에 상응하는 현대적인 것이 문학에는 없다고 지적한다. 이 틈새를 메꾸는 것은 시인들이고, 존재들의 구체적 현상은 집단을 표현하는 말들과 마찬가지로 복합적이다. 그러나 신비화를 과학적 발전이나 기술적 발전의 토대로 삼는 일은 성급한 일이다.
급진적인 정신적 자유 표명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적대감은 초현실주의를 좌익으로 몰아넣었다. 벤야민은 당시 초현실주의가 도달한 노선을 전략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좌파 부르주아 지식인 계층에 확산된 사고 유형을 살펴본다.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점은, 그들이 가진 긍정적 기능이 혁명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라 전승된 문화에 대한 의무감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들의 집단적 업적은 긍정적인 한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업적에 근접한다. 러시아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좌파 부르주아 입장은 전체적으로 이상주의적 도덕을 정치적 실천과 구제불가능하게 연계하고 있다. ‘신념’의 무력한 타협과 대비할 때만 초현실주의 전통이 지닌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악에 대한 숭배가 온통 정치를 도덕화하는 딜레탕티슴에 대항하는 장치로 발견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전 저작에서는 악에 대한 정당화가 나타난다. 『악령』의 등장인물 스타브로긴은 가장 비열한 행위 속에서 영감을 보았다. 스타브로긴은 이상주의적인 부르주아가 덕행을 인식했듯, 야비함을 세상의 흐름과 우리 안에 이미 배태되어 있는 것 혹은 적어도 실행해볼 만한 것으로 인식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신은 하늘·땅·인간·동물 이외에 야비함과 복수, 잔인함도 창조했다.
미하일 바쿠닌(1814 ~ 1876) 이래 유럽에서 급진적인 자유의 개념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도덕적·휴머니즘으로 낡아빠진 자유의 이상을 처치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유의 향유에 대한 필요를 확신한다. 그 확신이 인류의 가장 단순한 혁명적 형태의 해방투쟁이 가지는 가치를 증명한다.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 얻기는 초현실주의의 모든 시도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모든 혁명적 행위 속에 도취적 요소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비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작업에는 낭만주의적 머리로는 다가갈 수 없는 변증법적 교차의 사고가 전제된다. 수수께끼에서 수수께끼 같은 측면을 강조하는 일은 도움이 못 된다. 오히려 일상을 꿰뚫어볼 수 없는 것으로,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시각의 힘이 필요하다. 독서하는 자, 사유하는 자, 기다리는 자, 거리산보자는 아편 복용자, 몽상자, 도취된 자와 마찬가지로 각성한 자의 유형들이며, 더 범속한 자들이다.
벤야민이 보는 당시 부르주아 당들의 프로그램은 비유로 가득찬 시들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미지일 뿐인 천사들, 부유함, 자유를 본다. 사회민주주의 클럽은 낙천주의를 표상한다. 한편 나빌은 “염세주의의 조직”을 시대의 요청으로 삼는다. 나빌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를 규정짓는 핵심적 물음인 혁명의 전제조건을 언급한다. 초현실주의는 그 물음에 대한 공산주의적 답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답은 전방위적 염세주의였다. 문학의 운명에 대한 불신, 자유의 운명에 대한 불신, 인류의 운명에 대한 불신, 모든 소통에 대한 불신.
아라공은 비유와 이미지를 구별에 대해 통찰했다. 벤야민은 그 통찰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만큼 비유와 이미지가 노골적이고 화해불가능하게 충돌하는 곳은 없다. 염세주의를 조직한다는 것은 정치에서 도덕적 메타포를 추방하고, 정치적 행동의 공간에서 백퍼센트의 이미지공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지공간은 정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부르주아 출신의 예술가를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거장으로 만드는 일보다는 그의 예술활동을 희생시켜 이미지공간의 중요한 장소들에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심지어 그 예술가의 ‘예술가적 경력’을 중단하는 일이 오히려 그의 기능에서 본질적 부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지공간은 ‘안락한 방’이라는 게 없는, 보편적이고 완전한 현재성의 세계이다. 정치적 유물론과 신체적 피조물이 내적 인간, 영혼, 개인 또는 우리가 거기서 비난하려고 하는 것을, 변증법적 정의에 따라 어느 부분도 찢겨나가지 않도록 서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변증법적 파괴 뒤에도 그 공간은 여전히 이미지공간이며, 구체적으로 신체공간이다.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경험이 입증하듯 인간학적 유물론으로 단절 없이 넘어갈 수 없다. 잔재가 남는다. 집단 역시 신체적이다. 기술 속에서 그 집단에게 조직되는 자연은, 범속한 각성이 우리를 친숙하게 만드는 이미지공간에서만 생성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신체와 이미지공간이 서로 깊이 침투함으로써 모든 혁명적 긴장이 신체적인 집단 신경감응이 되고, 이것이 다시 혁명적 방전放電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현실은 「공산주의자선언」이 요구하는 것처럼 그 자체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