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성의정치학 1장, 제2부 3~8 (1113) 후기 +2
올리비아
/ 2017-11-15
/ 조회 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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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성의정치학 1장, 제2부 3~8 (1113) 후기
얼마 전까지만해도 난 가족, 사회, 국가에 대한 이데아적 시선 갖고 있었다, 그간 세미나에서 읽은 책들과 토론으로 인해 수년간 한결 같았던 나의 생각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전보다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것을 볼수 있게 되었다.
이번 장에서 가장 언급이 많이 되었던 "가족" !!
인류의 모든 역사중 모권제였던 사회는 없었다. 과도기적 단계의 모계제가 잠깐 있긴 했으나 모계사회는 부권제 통치의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모든 사회는 부권제였다. 부권제 사회에서는 가족의 머리는 아버지이며 그 권한은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이다. 이런 사회에서의 가족은 미성년자로 하여금 부권제적 이데올로기를 몸에 지니도록 사회화시킨다는 것이 새삼 무서웠다.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일부의 여성이 일부의 남성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부권제적 사회에서는 아무리 여성의 지위가 높아도 태생적으로 남성자체가 더 높은 서열이라고 믿게만들어 여성의 지위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억압한다. 동일계급에서의 차별은 말할것도 없다.
궁정연애사는 여성을 찬미하지만, 그러한 찬미는 여성의 법적,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그 찬미로 여성에게 불가능한 덕성과 미모의 틀을 남성의 기준으로 만들어 놓는다.
기사도, 요즘도 기사도적인 남자들을 많이 볼수 있다. 여자들은 약하니 남자가 보호해줘야 한다 등등. 그들 스스로은 본인을 훌륭한 인간이라고 우쭐해 있을지 몰라도 그건 같은 인간으로 여성을 취급하는것이 아니다...우리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스스로 밥을 못찾아 먹으니 밥도 챙겨 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기사도와 궁중연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부당성에 대한 완화제인 동시에 그 부당성을 감추는 기술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 프레임을 많이들 믿고 사용되고 있지만 이것 또한 남성의 이중 기준의 다양한 잇점으로, 우월한 사회적 경제적 힘을 사용하여 만들어넨 프레임이다.
읽으면서 웃겼던(?) 부분은 나와 다른 성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부권제 사회에서는 다름을 인정 못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열등의 프레임으로 다른 대상을 눌러 버렸다. 내가 남자 성기를 처음 본것은 중학생때쯤 우연히 길에서 본 동네 변태의 것이였다. 막연히는 알았지만 실물은 본건 처음이였고 충격적이였다. 더럽고, 추하고, 두럽다고 느껴졌다. 남자도 여성성기를 볼때 이런 관점이였을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중학생이였을때의 시각이였다. 지금의 나는 다름이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 지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진 않다.
성경에 나오는 원죄의 계념. 그럼 모든 기독교인들은 여성의 열등함을 하느님이 내려준 지침이라고 믿고 있는걸까? 성경을 그대로 해석하든 상징적으로 의역하든 이브가 선악과를 아담에게 건내준 원죄 스토리의 내용은 변함이 없을것이다..
부권제 최대의 심리적 무기는 보편성과 긴 생명.그 구조안의 여성은 무기력해질수 박에 없고 그 무기력은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것을 받아들이고 믿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무기력증은 본인이 바꿀수 없는 상황에 많이 부딪치고, 어쩔수 없는 구조와 현실에서 포기하고 내가 무등한것으로 받아들여져 의욕이 상실되는것을말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이런 어쩔수없는 부조리한 구조속에 우린 같이 살고 있어 이런 이유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자신을 자책 하는 경우가 우린 살면서 종종 있다. 그런데 거기에 여성은 젠더적인 이유로 이중의 무기역증을 앓고 있을수 밖에 없다. 그 참혹한 결과는 자신이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라고 믿어 버리는것..
이번 장은 그동안 나의 편견 또는 불편함을 속시원히 정리해준 장이였다. 다음장도 기대 된다.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은 "분할하여 통치하라"라고 하는 권력의 통치 기술 중의 하나이지요.
여성들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고,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정치에, 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수법이기도 하고요.
외모, 도덕에 대한 더 수위 높은 기준들은 모두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혼과 미/비혼 여성들의 반목, 가정주부와 직업여성의 반목을 사회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가부장제의 두려움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세미나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은 여성과 남성이 페미니즘을 대하는 기본 출발선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다시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살기위해서, 나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나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힘듦과 절망의 상당부분은 사회구조적으로 나에게 프로크르스테스의 침대로 작용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 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생각의 방법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 권력이고 어떤 것이 힘인지, 누구의 지식이고 누구의 진실인지 다시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되기도 했고요. 저를 공격하는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세상이 말하는 '나' 대신 내가 경험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세미나 중의 준민 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남성성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깊이 공감합니다. 여성들의 날 것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사회의 여성성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을 남성성의 재구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과 세미나의 경험들은 제게 있어 도전이고,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다음 장과 다음 주의 세미나도 기대되네요. 중간중간의 의식의 흐름이 끊긴 댓글이군요. ㅎㅎㅎ
그럼 다음주에 봐요.
소리님의 댓글
소리추가로 페미니즘 세미나의 댓글도 세미나만큼이나 활발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