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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14장 시장과 인간, 15장 시장과 자연_발제문
영민 / 2017-10-28 / 조회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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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제문이라기 보다는 그저 요약문입니다...

<거대한 전환>_ 칼 폴라니

 

제14장 시장과 인간

439쪽. 노동을 인간의 다른 활동들로부터 떼어내어 시장 법칙에 종속시키면 인간들 사이의 모든 유기적 존재 형태는 소멸되고 그 자리에는 대신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 즉 원자적 개인주의의 사회 조직이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파괴 공작을 실행에 옮기는 최상의 방책은 자유계약의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다른 개입은 반대하지만 특정한 종류의 개입, 즉 개인들 사이의 비계약적 관계들을 파괴하고 그것이 저절로 재형성되는 것을 방지할 그런 종류의 개입은 얼마든지 환영하는 편애에 젖어 있는 것이다. 

 

1. 노동시장 확립을 위한 전통사회의 파괴

‘노동’을 자유로운 시장경제 속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굶주림’을 이용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기적 전통사회가 해체되어야 했다.

 

노동시장 제도 확립을 위해서는 노동 팔아 생계 있도록 강제해야.

= “사회 구조를 박살내어 거기에서 노동이라는 요소만 뽑아내는 행태”

원시 사회 개인에게 ‘굶주림’은 사회 전체적인 것이지 개인적 문제가 아니었기에 전통적 제도들은 파괴되고 다시 형성 되지 않도록 해야 함.

ex) 카피르족의 크랄 토지 체제, 콰키우틀족, 인도의 촌락공동체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양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식량의 양(굶주림)’뿐

‘‘기꺼이 스스로 일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최종 단계는 ‘자연의 징벌’, 즉 굶주림을 노동 기율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2. 그럼, 전통사회가 담당하던 ‘사회 보호’의 임무는?

처음에는 직접 법령을 만드는 ‘지배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그런데 (이후?) 경제적자유주의자들의 경우, 자신들은 많은 혜택을 베풀지만, 정치영역의 지배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명제로 접근하고 있다. (But, 애덤스미스까지만 해도 다르게 생각~경제영역 지배자들의 문제 알고 정치영역 지배자의 개입 필요하다고 봄. 인도 동인도회사의 사례.)

이 과정에서 노동 인민들 자체는 거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산업혁명의 급류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호 하는 과업은 이해관계로 보나 성향으로 보나 영국의 지주들에게 떨어졌다.(스피넘랜드법->공장법)’

수출품을 생산하는 맨체스터 공업 지대의 사업가들은 임금 수준 하락, 곡물 가격 하락 주장, 스피넘랜드법의 철폐와 기계제 공장들의 성장 속에서 마침내 146년 반곡물법을 향한 대중선동까지.

토리 사회주의.

1847년 10시간 노동법

*영국의 노동계급: 1840년 말 이전까지는 정치적으로는 ‘투표권이 없는 자’, 경제적으로는 ‘구호대상 극빈자와 구별되는 자’로서 자신들의 구원 찾을 길이 없는 채로 과거 회귀적 성격 보임.

1840년대 말~10시간 노동법의 등장, 차티스트 운동의 종식,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개막 등

 

3. 전통사회 회복을 향한 오언주의 운동

‘(차티스트 운동과 함께) 시장경제가 출범하는 순간부터 시장에서 인간을 보호할 필요가 생겨나는 것이 얼마나 필연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인간을 기계의 주인으로 만들어줄 존재 형태를 찾아보자’

인간에게 일을 시키는 주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 (BUT, 기계≠적)

협동 혹은 ‘단결’의 원리를 따르기만 하면 인간은 개인의 자유나 사회적 연대 또 인간의 존엄과 옆사람에 대한 동정과 공감과 같은 가치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기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사회 재구성의 방법을 찾아낼 것을 주장함

현대 노동조합 운동의 시초

종교적 차원에서의 분별력 있었음(기독교 반대한 첫 번째 근대노동계급 지도자, cf.생시몽-기독교의 재생 향함)

노동자의 실제 삶을 지배하는 구체적, 물질적 사실들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또한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다.

협동촌, 조합상점, 노동교환소(~노동 화폐), 건축자 길드...

뉴래너크(스코틀랜드)

 

*오언주의와 폴라니 주장이 맞닿아 있는 지점

451-2쪽. 오언주의는 근대 사회주의 운동의 원천이지만, 그것이 제안한 바는 소유 문제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사적 소유의 문제란 오로지 자본주의만이 갖는 독특한 법적 측면인 것이다. 그 대신 오언주의가 착안한 것은 산업이라는 새로운 현상이었으며, 그것과 대결하는 가운데 생시몽이 그랬던 것처럼 기계라는 새로운 도전이 나타났다는 것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시몽주의와 다른 오언주의의 독특한 점은 사회적 접근을 취할 것을 주장한 데에 있었다. 오언주의는 사회를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으로 분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을 따로 조직하기를 거부했다. 경제라는 분리된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경우 이는 사회를 조직하는 힘으로서 이득과 이윤이라는 원리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었던 바, 이것이야말로 오언이 한사코 거부했던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기계를 인간의 삶 속에 융합시키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산업과 연관된 측면을 가지는 것은 세상 만사 모두였기에 그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제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산업 문제를 그렇게 경제적인 것으로만 제한시키게 된다면, 이는 그가 그렇게 거부했던 시장적 사회관으로 귀결될 것이다.)

38쪽(서문) 19세기 이전에 인간의 경제는 항상 사회에 묻어 들어가 있었다. BUT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자기조정 시장 체제에서는 경제가 여러 사회 관계 안에 묻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사회 관계가 경제 체제 안에 묻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언이 비판한 한나 모어 <보급판 팸플릿 문고>와 같은 기독교식 사고

454쪽. 오언이 기독교에 등 돌렸던 것은 그것이 인간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를 정복하는 과업을 저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복합 사회에서 인간이 새로 당면하게 된 상황은 신약 성경의 내용을 훨씬 넘어서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렇게 공포스러운 신의 계시가 새로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용감히 직면하여 그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외면해버렸고, 저 비참한 탄광촌의 소녀에게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지위와 기능을 부여하여 그것을 무작정 치켜올리기나 하고 있는 것이다.

 

4. 결국 산업문명에 편입된 차티스트 운동

‘오언주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 본능에 호소하는 것이었기에, 오언주의가 현실적으로 실패하게 되면 곧 그것이 나타나서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점을 거의 예견할 수 있었다.’

 

1838-1840후반, ‘보통선거’를 바탕으로 한 의회 민주주의를 요구. 

영국 보통선거 확대 과정

: 1832 중간계급 대부분 1867 도시노동자 1884 농업노동자 (요 부분만 봐도 1832 정도에는 도시 부르조아의 영향력이 농촌 지주계급보다 우세) 1918 30세 이상 여자 1928 21세 이상 여자 

중간계급은 본인들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노동계급과 함께 운동을 펼쳤으나, 자신들이 의회를 장악한 이후에는 투표권 확장에 비타협적. 차티스트 운동이 잠잠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들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비로소 투표권을 허락. 

시장적인 사회적 형식을 전 사회로 확산시킨다는 관점에서도

→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 유기체적 생활 형태가 시장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었고, 참정권 확산이 전통적 유기체 해체에 큰 도움

 

* 너무나 중요했으나, 깨닫지도 못 했던 과제

456쪽. 산업혁명으로 뿌리째 뽑혀버린 보통 사람들의 삶을 회복시켜주고 공동의 민족적 문화의 품에 안기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었건만, 이는 아무도 손조차 대지 않고 있었다. 투표권이 주어진 시점이 되면 노동자들은 이미 스스로 정치적 창의성을 발휘할 능력이 돌이킬 수 없도록 손상당한 상태였다. 따라서 투표권이 있어봐야 그것으로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는 데에 쓸 수도 없었다. 산업 문명이란 인간을 계속 저질로 퇴락시키는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것으로부터 인간 문명을 지켜내려면 인간 공동체 전체를 포괄하는 문화적·교육적 통일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종류의 문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배 계급은 계급 지배의 원칙을 냉혹하게 유지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이러한 산업 문명에까지 비타협적으로 끌고 들어오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영국과 유럽대륙에서 차이의 양상

457쪽. 영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1848년 4월 12일만큼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양의 폭력이 출동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날 수십 만 명의 일반 시민들이 특수 경찰의 재량을 부여받아 여차하면 차티스트들을 때려잡기 위해 무기를 사용할 만반의 준비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해 파리에서 벌어진 제2차 봉기는 6월에 일어났기에 영국의 민중 운동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게다가 이 즈음에는 구빈법 개혁, 그리고 1840년대의 기아사태로 야기되었던 반란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었고, 대신 대외무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그 물결을 타고 고용 창출이 늘어나는 등 자본주의가 드디어 좋은 결실을 낳기 시작하고 있었다. 차티스트 운동가들은 평화적으로 해산했다. 

  • 영국-대륙 간 산업혁명 확산의 시차(반세기)
  • 대륙에는 반농노의 농업 노동자들과 혁명으로 해방된 인구 존재

→ 인클로저운동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높은 임금/도시생활(여전히 열악했으나)의 매력/신분상승 등의 이유로 자발적 도시 유입

  • 대륙은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은 봉건 귀족과 가톨릭 교권에 맞서 긴밀한 동맹

→ 영국의 경우, 영국 귀족들이 부유한 중간계급을 자신들에 동화 시켜 사회적 위계 꼭대기 확장// 대륙의 경우 봉건주의가 남아 있어 중간계급이 부유해도 상류층에 편입되지 못했고, 장자상속권으로 귀족 자식과 중간계급이 섞일 일도 없었음

~1789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830년 이래로 노동계급이 봉건제에 맞서는 부르주아들의 전투에 도움을 주는 것은 유럽적 전통의 일부가 됨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로 그 승리의 열매는 결국 중간 계급에게 사기당하고 말았지만’)

  • 영국-대륙 간 국민적 통일 확립에의 시차(반세기 이상)

~ 국가적 통일에서 더 넓은 지평에서 사회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이 입법과정에 영향력 행사

⇒ 영국에서 정치문제는 상층 계급에게만 완전히 내맡긴 셈, 대륙 노동자들은 국가 경영의 여러 문제들까지 익숙하게 다루는 정치적 사회주의자가 됨, 사회보호 방법에서 영국은 노동조합과 같은 자발적 조직과 노동 시장에서 노동 공급을 독점할 수 있는 힘에 의지했던 반면(자발성), 대륙은 주로 입법의 도움으로 이를 쟁취(강제성)

 

463쪽. 노동시장이 이러한 제도(인간의 노동이 상품이 되어버린 시장)라면, 그것에 맞선 사회 보호란 당연히 그런 제도를 파괴하여 다시는 생겨날 수 없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노동이 상품이라고 우겨댄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라는 본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제15장 시장과 자연

464쪽. 전통적으로 토지와 노동은 분리되지 않았다. 노동은 인간 삶의 부분을 형성하며, 토지는 자연의 일부인 채 남아 있고, 삶과 자연은 함께 뭉쳐 유기적 전체를 구성한다...반면 ‘단일한 거대 시장’이라는 경제생활 장치에는 여러 생산 요소 시장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생산요소 시장들은 인간 사회의 제도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즉 인간 및 자연과 구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 즉 그 내부의 제도들이 시장 메커니즘의 요구에 종속되도록 조직되는 사회를 이미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471쪽. 오늘날 농업 인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는 모든 나라 모든 대륙에서 제기되고 있다. 

 

  • 산업사회 필요에 따른 자연의 종속화

토지를 인간에게서 떼어내고 사회 전체를 부동산 시장의 작동 조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토지 유동화)이야말로 시장 경제라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의 절대적 핵심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cf) 18-19c 서유럽의 상황

~ 제3장 170쪽 어떨 때는 변화 속도가 변화의 방향 그 자체만큼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토지유동화 단계

1) 경작지의 상업화 :토지에서 발생하는 봉건적 형태의 각종 수입들을 유동화 (봉건제 청산)

2) 전국 규모에서 식량과 유기물 원자재의 생산 강요

: 토지 사용을 당시 빠르게 증가하는 도시 인구의 필요에 종속시킴

3) 농산물 잉여 생산체제를 바다 건너 식민지 지역으로까지 확장(자유무역)

 

Q) 유럽 대륙 여러 나라에서 중간 계급의 손에 들어간 국가에서도 봉건계급이 큰 영향력을 지녔던 이유?

473쪽. 그 어떤 제도도 기능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하는 법이고, 만약 그래도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사실상 그 제도가 다른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새로운 기능(들) 중에 그 제도가 예전에 본래 수행하던 기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A) 토지의 유동화가 가져올 끔찍한 재난에 한계를 정함(ex.스피넘랜드법)

 

2.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농민 지위 향상 운동

~배경: 내부의 적(노동계급/공산주의), 외부의 적(전쟁)에 대비

-본질적 배경

480쪽. 중간 계급이 정말로 재난이라고 느꼈던 것은 공산주의 따위가 아니었다.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정당이 전후의 긴급 상황을 틈타 시장경제의 원칙들을 마구 무시해버리는 것이었다. 

484쪽. 사실 자급자족 운동도 파시즘도 모두 다음 사실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즉, 일단 사람들의 마음이 모종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그 위험의 원인들이 제거되기 전에는 항상 공포가 그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법이라는 사실 말이다. 

 

485-6쪽. 인간에 대한 위험과 자연에 대한 위험을 깨끗이 분리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시장경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응과 농민들의 대응은 모두 보호주의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시장 체제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며 그 보호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두 세력 모두가 그것에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들이었지만, 토지에 관련된 사회 계층들은 시장 체제와 타협하는 방향을 지향했던 반면,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은 시장 체제의 여러 원칙들을 거침없이 깨어버리고 그것에 공공연하게 도전하는 일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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