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성의 역사> 1102 예습 +2
유택
/ 2017-11-01
/ 조회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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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말 듯 하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네요. 이 무슨 소설 같기도 하고.. 거대하게 굴비처럼 줄줄이 다 끼워 맞춰진 퍼즐 같기도 하고... 대하소설도 아니고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은 왜지? 이리 돌려치고 저리 내리쳐도 버릴게 하나 없는 이 환상적인 직조의 솜씨! 울 푸코님 만세! *^^* 이번주 세미나 결석이기도 하고 다음주도 어떻게 될지 몰라 급한 마음에 혼자 텍스트 열심히 읽었네요. 세미나원들 이해의 보폭 따라 가려고. 미리미리! 놓치면 완전 혼자 또 탈맥락속을 헤매야 하자나~~~ 지금도 그러고 있나..? 그건 정말 시러~~~ ^^ 곧 전격공개 될 석관샘의 알찬 발제/후기를 열심히 읽고 다시 푸코에게 다가가겠어요.
[약간의 질문??]
1).푸코가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유전퇴화 이론 등등과 근친상간.. 뭐 이런 거 엮어서 이야기 하는 맥락이 좀 어렵더라고요. 혼인관계의 장치와 성생활의 장치, 그리고 가족을 관통해서 거대하게 엮어서 분석하는거! 말해보라고 하면 깅가밍가 알듯말듯 그러나 말 몬하겠음!
2).이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이라는 것, 권력효과라는 것. 살짝 알 것 같기도 해요. 그 사이에서 성과 진실이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그리고 권력-쾌락-담론-지식의 계열을 잊지는 말 것!
3).불랭빌리에 또 나오네요 여기서도 ^^
4).변별성을 가지기 위해 억압이론을 부른, 부르주아지 계급의 성생활. 그리고 프롤레티라의 계급의 성생활이 드디어 배려 받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전술/기술들의 전제 조건이 발동 되면서부터라고 하는 점(147쪽) 등이 인상 깊었네요
5).역시 울 푸코님! 혼인관계의 장치와 성생활의 장치, 이분법적으로 구분 따박따박 하시더니.. 또 그거 아니라구! 그거 아니야~~! 그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혼재되어 있는 거라구. 그럴수 밖에 없다구. 이럴 수도 저럴 수도의 푸코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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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
제 4장 성생활의 장치
성, 감추어지는 것일까? 새로운 절제의 태도 때문에 숨겨지고 부르주아 사회의 맥 빠진 요구로 인해 계속해서 진상이 은폐되는 것일까? 아니다. 반대로 환한 불과 같은 것이다. 성이 엄청난 ‘지식의 요청’에서 중심을 차지한 지 벌써 수백 년이다. 성의 진실, 성에서의 진실에 대한 이 광범위한 추구는 무엇 때문일까.
쟁점
욕망이 있는 곳에 이미 권력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사후에 실행될 억압에 비추어 권력관계를 규탄하는 것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권력과 무관한 욕망을 찾아 나서는 것은 허사일지 모른다. 그래서 푸코는 권력의 “이론”쪽으로보다는 오히려 권력의 “분석론”쪽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권력의 기계론은 틀렸다. 권력에 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 표상이 있는데 푸코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적 관계’ / ‘규범의 심급’ / ‘금기의 순환’ / ‘검열의 논리’ / ‘장치의 단일성’ 왜 이토록 권력에 대한 법적 이해방식이 그토록 쉽게 받아들여질까? 권력은 바로 권력 자체의 중요한 부분을 감추는 조건 아래에서 용인된다.
여전히 권력의 표상을 군주제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해야 하는 이 권력과정은 법이 아니라 기술에 따라, 법률이 아니라 규범화에 따라, 징벌이 아니라 통제에 따라 작동하며, 국가 및 국가기관의 한계를 벗어나는 차원과 형태에 작용한다. 권력이 코드화 되고 표상체계에서 벗어나는 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권권력이 아니라 규율권력, 즉 법 없는 성과 동시에 왕 없는 권력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권력의 법적이고 부정적인 표상을 벗어 던지려고 시도하자. 법, 금기, 자유, 주권의 관점에서 권력에 관해 사유하기를 단념하자. 근대 사회에서 실제로 성생활을 법과 주권에 입각하여 규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자.
방법
권력의 편재. 권력의 관점에서 분석을 하고자 한다면, 국가의 주권이나 법의 형태 또는 지배의 전반적 단일성을 애초의 여건으로 상정해서는 안 되는데, 이것들은 오히려 권력의 말단 형태일 뿐이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몇몇 사람이 부여 받았다고 하는 어떤 역량도 아니다. 권력은 어느 주어진 사회의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1)권력은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불평등하고 유동적인 관계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행사된다. (2)권력은 아래로부터 나온다. 강력한 지배는 모든 대결 상황의 강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주도권의 효과이다. (3)권력관계는 의도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이지 않다. 전술의 합리성. (4)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결코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저항은 권력관계에서 다른 항이고, 요지부동의 맞은편으로서 권력관계에 편입된다.
세력관계의 영역에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적 사유를 현혹시킨 군주-법 체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1)내재성의 규칙 : 권력이 성생활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의 기술, 담론의 절차가 성생활을 에워쌀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끊임없는 변이의 규칙 : 권력-지식 관계는 어느 일정한 배치의 형태가 아니라 “변화의 모태”이다. (3)이중 조정의 규칙 (4)담론의 전술적 다가성(다면적 가치를 지닌)의 규칙 : 권력과 지식이 서로 맞물리게 되는 것은 담론에서이다. 담론은 침묵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으로 권력에 굴복하지도 권력에 대항하여 일어서지도 않는다. 담론이 권력의 도구이자 동시에 결과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물, 제동장치, 저항지점, 대립적 전략을 위한 거점일 수 있는 복잡하고 불안정한 작용을 인정해야 한다.
영역
권력관계에서 성생활은 가장 은밀한 요소가 아니라 가장 많은 활동에 이용될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전략에 대해 거점 또는 연결 지점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큰 도구성을 갖추고 있는 요소의 하나이다. 19세기 줄곧 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네 인물이 특권적 대상으로, 지식의 기획을 위한 표적과 정착 지점으로 점점 뚜렷해진다.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히스테리증의 여자) / 어린이의 성의 교육학화(수음에 빠져든 어린이) / 출산의 사회화(산아제한을 하는 부부) / 도착적 쾌락의 정신의학화(성도착적 성인).
근대의 서양사회는 혼인관계의 장치와 겹치고 혼인관계의 장치와 단절되지 않으면서 이 장치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데 일조한 새로운 장치를 특히 18세기부터 고안하여 배치했다. 그것이 바로 ‘성생활의 장치’이다. 혼인관계의 장치에서는 “생식”이 가장 중요하다. 성생활 장치의 존재이유는 생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급증하는데, 육체들을 쇄신하고 한데 모으고 새로 만들고 점점 더 상세한 방식으로 육체에 스며드는 데, 그리고 점점 더 전반적으로 인구를 통제하는 데 있다.
18세기에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가치를 부여 받은 가족은 성생활의 장치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 가족의 두 가지 주된 차원, 즉 남편-아내의 축과 부모-자식의 축 위에서 전개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서 가족은 법과 법적인 것의 차원이 성생활의 장치로, 쾌락의 경제와 감각의 강도가 혼인관계의 체제로 펴져 나가는 공간이다. 가족은 18세기부터 필연적으로 정서, 감정, 사랑의 장소가 되었고, 성생활의 특권적 개화 지점은 가족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생활은 “근친상간”적인 것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다. 성생활의 장치는 가족 제도의 주변부에서(영성 지도, 교육학에서) 우선적으로 전개된 것이지만 점차 가족으로 몰려들게 된다.
정신분석은 기술적으로 성생활의 고백을 가족의 절대적 지배가 미치지 않는 곳에 위치시키는 듯함에도 불구하고, 이 성생활의 중심 자체에서 혼인관계의 법, 혼례와 친족관계가 뒤섞인 상호작용, 근친상간을 가족 형성의 원리와 가족에 대한 이해 가능성의 표지로 발견했다.
성생활의 장치는 혼인관계의 제도와 정통 기독교를 지배하는 규범에 기댐으로써 정통 기독교에서 활용된 “육신”의 기술과 함께 탄생했지만, 오늘날에는 역할이 뒤바뀌어, 오래된 혼인관계의 장치를 지속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성생활의 장치이다.
시대구분
억압의 메커니즘을 성생활의 중심에 놓고자 한다면 성의 역사는 두 가지 단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17세기 동안,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세기에 일어난다.
18세기말에 완전히 새로운 성의 기술이 출현했는데, 이 새로운 기술로 인해 성은 교육학, 의학, 경제를 매개로 하여 세속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회체 전체와 거의 모든 개인이 감시 당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기술은 또한 세 가지 축, 즉 어린이의 특수한 성을 겨냥하는 교육학의 축, 여성에 고유한 성적 생리를 겨냥하는 의학의 축, 끝으로 자연발생적이거나 계획된 출산 조절이 목적인 인구통계학의 축을 따라 전개되었으므로 새로운 것이다. 대체로 이 시기부터 의료제도, 정상성의 요구, 그리고 죽음과 영원한 징벌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생명과 질병의 문제가 성의 기술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인간 종의 온전한 병리학적 자본의 원천에 성이 출현한다. 결혼, 출산, 생존의 국가적 관리를 조직하려는 의학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기획은 이로부터 유래하는데, 이에 따라 성과 성의 생식능력은 행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성의 기술에서 성도착의 의학과 우생학의 계획은 19세기 후반기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적 조치였다.
무엇보다 먼저 경제적 특권층이자 정치적 지도층인 계급을 대상으로 가장 엄밀한 기술이 고안되어 가장 강도 높게 적용되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성생활을 우선 문제로 의식한 것도, 여성의 성생활을 의학의 영역으로 편입한 것도, 성의 병리학을 확립할 가능성, 긴급한 감시의 필요성, 합리적 교정의 기술을 고안해낼 필요에 맨 먼저 눈을 뜬 것도 “부르주아” 또는 “귀족” 가족이다. 부르주아 귀족 가족은 성이 정신의학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현장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민층은 오랫동안 “성생활”의 장치와 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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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착취 계급의 성에 대한 억압보다는 오히려 “지배” 계급의 육체, 활기, 수명, 자손, 가계가 먼저 문제 되었다. 성생활의 장치가 처음으로 쾌락, 담론, 진실, 권력의 새로운 배치로서 확립된 것은 바로 지배 계급에서였다. 부르주아지는 스스로 창안한 권력과 지식의 기술에 의해 자기 계급의 성을 이처럼 에워쌈으로써 자기 계급의 육체, 감각, 쾌락, 건강, 존속의 높은 정치적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타자의 노예화가 아니라 자기확인을 통해 구성된 것은 바로 생명의 정치적 배치이다. 육체의 중시는 분명히 부르주아지의 패권이 증대하고 확립되는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19세기 전반기에 프롤레타리아에게 강요된 생활조건은 프롤레타리아의 육체와 성이 결코 배려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이 사느냐 죽느냐는 거의 중요하지 않고, 어쨌든 그놈들은 저절로 번식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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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동안 성생활의 장치가 패권의 중심으로부터 일반화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19세기말에는 다른 계급의 성생활에 맞서 자기 성생활의 특수성을 재규정하고, 자기 자신의 성생활을 차이의 견지에서 재검토하고, 자기 육체를 특수화하고 보호하는 분할선을 그으려고 애쓰게 된다. 이 분할선은 이제 성생활을 새롭게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생활을 가로막는 것이 되고, 구별을 짓게 되는 금기이거나 적어도 이 금기가 행해지는 방식과 이 금기가 부과될때의 엄정성이다. 여기에 억압의 이론의 출발점이 있다. 억압 이론은 역사적으로 성생활의 장치가 확산되는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정신분석은 법과 욕망이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이론이면서 동시에 가혹한 금기로 인해 병이 생기게 되는 곳에서 금기의 효력을 없애려는 기술이다. 또 정신분석은 혼인관계의 제도에 성생활을 고정시키는 메커니즘이고, 유전적 퇴화의 이론에 대해 반대의 입장으로 확립되며, 일반적인 성의 기술에서 차별화 요소로서 구실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형성된 광범위한 고백의 요구는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억압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띤다.
5장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오랫동안 군주의 권력을 특징짓는 특권의 하나는 생살여탈권이었다. 이것은 군주의 보호와 고유한 존속을 조건으로 갖는다. 상대적이고 제한된 근대적 형태이건 고대의 절대적 형태이건 비대칭적 권리이다. “생살여탈권”을 표명되는 권리는 사실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둘’ 권리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러한 권력의 메커니즘이 고전주의 시대부터 크게 변화했다. “징수”는 더 이상 권력 메커니즘의 주된 형태가 아니고, 권력에 복종하는 세력에 대해 선동, 강화, 통제, 감시, 최대의 이용, 조직화의 기능을 하는 다른 부품들 사이에서 단지 하나의 부품, 즉 세력을 가로막거나 굴복시키거나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세력을 만들어내고 늘리고 정리하기 위한 권력이 되는 경향을 띤다. 죽게 ‘하든가’ 살게 ‘내버려두는’ 오래된 권리가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몰아가는’ 권력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생명에 대한 권력을 17세기부터 두 가지 주요한 형태로 전개 된다. 한쪽 극의 중심은 기계로서의 육체였다. ‘규율’을 특징짓는 권력절차, 즉 ’인체의 해부-정치’. 다소 늦게 18세기 중엽에 형성된 두 번째 극의 중심은 종으로서의 육체, 일련의 개입과 ‘조절하는 통제’ 전체, 즉 ‘인구의 생체-정치’이다. 생명에 대한 권력의 조직화는 육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이라는 두 가지 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생체-권력은 틀림없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육체가 통제되어 생산기구로 편입되는 것을 대가로 치름으로써만, 인구현상이 경제 과정에 맞추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만 보장될 수 있었다.
이제 권력은 법적 주체, 즉 권력의 최종적 권한이 죽음인 법적 주체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다루게 되고, 권력이 생명체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지배력은 생명 자체의 차원에 놓이게 된다. 권력은 살해의 위협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떠맡음으로써 육체에까지 미치게 된다. 생명을 떠맡는 것이 임무인 권력은 지속적으로 조절하고 교정하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권력은 주권의 영역에서 죽음의 효력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가치와 유용성의 영역에 배치하는 것이다. 규범화하는 사회는 생명에 중심을 둔 권력 기술의 역사적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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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생명의 정치 기술이 전개된 두 가지 축의 연결점인 것이다. 한편으로 성은 육체의 규율, 즉 훈련, 체력의 강화와 배분, 에너지의 조절 및 경제적 사용과 관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성은 인구조절의 영역과 관련하여 모든 총괄적 결과를 유도한다. 성은 육체의 생명과 동시에 종의 생명으로 접근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이 성을 규율의 모태와 조절의 원리로 이용한 것이다.
우리 사회를 ‘피의 상징론’에서 ‘성생활의 분석론’으로 넘어가게 한 것은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구상되고 19세기에 사용된 새로운 권력절차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법, 죽음, 위반, 상징체계, 주권 쪽에 있는 것은 피이고, 성생활은 규범, 지식, 생명, 의미, 규율, 조절 쪽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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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분명한 목적은 어떻게 권력의 장치가 육체, 즉 기관, 기능, 생리적 과정, 감각, 쾌락과 직접적으로 맞물리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 연구에서는 육체가 지워져야 하기는 커녕, 생체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옛 사회학자들의 진화론에서처럼 잇따르지 않는 분석을 통해, 달리 말하면 생명을 표적으로 삼는 근대적 권력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복잡성이 증대하는 가운데 생체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서로 연결될 분석을 통해 육체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생활의 장치는 “성”이라는 이 상상적 요소를 새로 만들어냄으로써, 가장 중요한 내적 작동 원리들 가운데 하나, 즉 성에 대한 욕망, 성을 소유하려는 욕망, 성에 이르고 성을 발견하고 해방하고 담론으로 조목조목 진술하고 진실로서 확립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성생활의 장치에 의해 “성”이 바람직한 것으로 설정된 것이다. 성이 바람직하다는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 각자는 인식하고 성의 원리와 권능을 밝히라는 명령에 얽매이고, 성의 검은 광채를 우리가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신기루처럼 우리 자신의 깊은 곳에서 떠오르게 하는 성생활의 장치에 우리가 사실상 묶여 있는데도, 스스로 온갖 권력에 대항하여 성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믿기에 이른다.
다양한 성생활의 메커니즘을 전술적으로 반전시킴으로써 권력의 발판에 대해 육체, 쾌락, 지식의 다양성과 저항 가능성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바로 이 성의 심급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성생활의 장치에 대한 반경의 거점은 성-욕망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임이 틀림없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우와 혼자 성의 역사1권 다 끝냈군요.
어제 책 읽다 보니까 이번주 분량 굉장히 중요하고 어렵더라고요.
꼼꼼이 정리하고 싶다고 마음만 먹었는데 벌써 실행하셨다니.
ㅎㅎ 역시!
이렇게 열심히 정리하신 분이 세미나 못 나오신다니 아쉽네요. ㅠㅠ
유택님의 댓글
유택
네 전 '성'의 맛•쓰•타 니깐요 ㅋㅋㅋ
중요하고 어려운 이번주 세미나 잘 끝내서
꼬욱~ 후기들이 풍성하게 올라오길!
결석하는 저에게도 도움을 좀 주시압! 진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