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후기_거대한 전환_13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 계급적 이해와 사회변화 +1
요고마고
/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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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 계급적 이해와 사회변화
폴라니는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두 가지 잘못된 통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 사회변화를 설명하기에 협애한 계급이론은 적절하지 않다. 두 번째, 계급적 이익이 곧 경제적 이익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는 사회적 인정이 우선이다.
첫 번째 지적, ‘협애한 계급이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폴라니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나 사회에서 일어난 현상을 계급이론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보았다. 사회변화의 중요한 동기는 계급적 이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13장에서 폴라니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다.
폴라니는 왜 ‘협애한 계급이론’이라고 표현했을까? 폴라니의 입장은 전체 사회의 필요라는 것으로부터 각 계급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는 각 계급의 필요라는 것으로부터 전체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입장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떠한 계급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급들의 폭넓은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익이 되는 것은 지지를 얻을 수 없으므로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회’라는 구성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폴라니의 주장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하나의 유기체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본다면 폴라니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계급 대 계급의 투쟁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하나의 몸이긴 한데 서로 방향성이 완전 다르다. 이 두 계급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사이다.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은 모두 노동자의 몫인데 자본가가 잉여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주로 시장경제, 즉 상품의 유통과정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놓친 부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에는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는 사회였다면,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마치 몸 안에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기이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봉건제 사회가 결함이 없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회가 된 마당에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인클로저와 식민지정책에 대한 폴라니와 맑스의 관점에 차이가 있다. 폴라니는 “문화적 붕괴”라는 관점에서, 맑스는 “본원적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그 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사회현상을 계급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협애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두 번째 고정관념, 즉 계급적 이익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에 대해 폴라니는 사회적 인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수입관세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실업에 대한 안전, 지역 상황의 안정화, 산업해체에 대한 보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사람들이 숙련된 직종을 떠나 전혀 다른 일자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위의 상실을 피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폴라니는 말하고 있다.
한편, 산업혁명이 노동계급에게 혜택이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폴라니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의 개선이 일어난 것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폴라니는 산업혁명과 같은 사회적 재난은 문화적 현상이지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구 통계나 소득 수치로 측량할 수 없다.
산업혁명과 같은 경제적 대지진 속에서 인간이 파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착취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환경의 붕괴 때문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법인데, 바로 그 사회 제도들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을 때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단락에 대한 사례로서 인류학자들이 보고한 남아프리카 카피르족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그들은 본래 자신들의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안정된 삶을 살았으나 식민지화 된 이후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들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부족사회에서 대대로 지녀온 기술들은 쇠퇴하고 그들 사회 내부의 여러 가지 장치들은 낱낱이 파괴당했다. 그들은 인류학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문화적 진공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살아갈 모든 동기 부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지루함과 권태에 치여 죽을 지경이 되고 의미 없는 일들에 그들의 생명까지 소진해버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 사태를 보고,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가 생겨난다면 극복되지 않겠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연구 조사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부족사회의 구성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문화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식량 부족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문화적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배고픔만으로는 움직임의 목적(노동의 목적)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부족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사회가 몰락한 후 금광의 광부나 선원으로 살아가야할 처지가 되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서서히 죽어갔다고 인류학자들은 보고했다.
식민주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착취의 문제에 초점이 몰려서 위와 같은 문화적 붕괴라는 측면을 간과하였다고 폴라니는 주장하고 있다. 착취도 중요하다. 다만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시장경제가 아니었던 사회를 덮치면서 일어난 유기적 사회의 문화적 제도들이 낱낱이 해체된 일에 보다 중점을 두고 싶었던 것이다.
13장에서 폴라니가 하고 싶은 말은 부록(p.433~438)에 요약되어 있다. ①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오는 문화적 접촉이란 일차적으로 경제 현상이 아니다. ②초기 자본주의에서 벌어진 노동계급의 비인간적 저질화는 사회적 파국의 결과이며 경제적인 단위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사회의 몰락 이후, 그들의 문화적 진공상태라는 것에 공감이 되었다. 인류학자의 보고서에서 저질의 떼거리 혹은 물품 쪼가리로 묘사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마지막에 물거품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결말인데, 자본주의가 원시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끝장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자부심이나 삶의 동기, 그 외에도 그들 문화에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던 삶의 가치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인어공주의 혀가, 지느러미가 ‘정상적이라고 단정지어진 인간의 모습’을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듯이. 숨을 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사회와 함께 무너져버린 그들이나,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강렬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부분부분 맑스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을 보이기도 합니다.
폴라니와 맑스는 모두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는가가 다르다고 보여집니다.
먼저, 폴라니는 모든 사태를 이항적 대립으로 놓고 본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사회변화의 원인 : 계급적 이해인가? 사회전체의 이익인가!
계급적 이해 : 경제적 이익인가? 사회적 인정인가!
산업혁명 시기. 비인간화의 원인 : 경제적 착취인가? 문화적 붕괴인가!
공동체파괴의 원인 : 경제적 요인인가? 문화적 접촉인가!
폴라니-텍스트의 이항적 대립구조는 표현형식의 측면에서 폴라니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태도 이항적 대립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이항적 요소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나를 해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음, 폴라니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계급적 경제적 요소를 약화시킵니다.
이는 요고마고의 지적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폴라니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계급대립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폴라니-관점의 사회유기체적 사고는 내용형식의 측면에서 폴라니의 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통일된 유기체가 아니며, 사회를 위해 각 계급이 자기이해를 희생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통해 전계급의 해방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자기계급의 이해와 모든 사회계급의 이해가 일치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유기체 관점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바 임무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로 쉽게 이어집니다.
자유주의 교리에 대한 폴라니의 논점이 조목조목 비판된 알찬 후기이고,
지난 공부를 다시 정리하는 의미있는 텍스트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요고마고 *^^*
특히 식민지개척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계기가 되면서 원시사회가 어떻게 허물어져갔는지,
육지라는 낯설고 폭력적인 상황에 처한 인어공주의 처지하고 잘 포개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