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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1101(수)_첫 시간 후기 +4
기픈옹달 / 2017-11-05 / 조회 2,443 

본문

어쩌다보니 연구실에서 오랜만에 세미나를 하게 되었어요.

 

루쉰의 <외침> 가운데 <서문>과 <광인일기>를 읽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루쉰의 글이 갖는 독특한 매력, <광인일기> 등에 언뜻 보이는 기묘한 분위기가 늘 여운을 남깁니다.

오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세미나를 마치면서는 '루쉰은 참 재미있어'라는 결론으로 대동단결되는 분위기... ^^

 

나누고 싶은 글이 여럿 있지만 세미나 시간에 나왔던 몇몇 글을 옮깁니다.

 

우선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꿈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중요한 것입니다.

돈이라는 이 글자는 아주 귀에 거슬립니다. 고상한 군자들로부터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사람들의 의론은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설령 식전과 식후라도 종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밥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승인하면서도 돈은 비천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일 그의 위를 눌러 볼 수 있다면 그 속에는 어쩌면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생선과 고기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름지기 하루 동안 그를 굶긴 다음에 다시 그의 의론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라를 위해 헤아려 볼 때, 돈이 ㅡ 고상하게 말하자면 바로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팔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는데, 바로 항상 배고프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권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가정에서는 우선 남녀에게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사회에서는 남녀가 서로 대등한 세력을 차지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단지 여전히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참정권을 요구할 때보다 더 극렬한 투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세상에는 무뢰정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요점은 바로 끈기 입니다. 듣자 하니 권비의 난이 있은 후 텐진의 건달들, 즉 이른바 무뢰한들이 크게 발호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남의 짐을 하나 옮겨 주면서 그들은 2원을 요구하고, 짐이 작다고 말해도 그들은 2원을 내라고 말하고, 길이 가깝다고 말해도 그들은 2원을 내라고 말하고, 옮기지 말라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2원을 내라고 말합니다. 물론 건달들을 본받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끈기만은 크게 탄복할 만합니다.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일은 너무 진부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경제권을 요구한다고 대답해야 하고, 너무 비천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경제권을 요구한다고 대답해야 하고, 너무 비천한 것이라고 말해도 경제권을 요구한다고 대답해야 하고, 경제제도가 곧 바뀔 것이므로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더라도 여전히 경제권을 요구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덤> 뒤에 쓰다>라는 글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조차도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대개 청연들의 '선배'와 '스승'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아니며, 나도 그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종점, 그것이 바로 무덤이라는 것만은 아주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므로 누가 안내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길에 달려 있다. 그 길은 물론 하나일 수 없는데, 비록 지금도 가끔 찾고 있지만 나는 정말 어느 길이 좋은지 알지 못하고 있다. 찾는 중에도 나는, 내 설익은 과실이 도리어 내 과실을 편애하는 사람들을 독살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를 증오하는 놈들, 이른바 정인군자들이 도리어 더 정정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말을 할 때는 항상 모호하고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며, 나를 편애하는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은 '무소유'보다 더 좋은 것이 없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생각해본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소개하면 말했지만, 

루쉰의 글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글이 갖는 형식, 내용적 특징 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 늘 실패하며 좌절하고 서성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설이 있는데, 

그런 '실패'가 어쩌면 루쉰의 독특한 문학을 '이루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런 '서성임'이 결코 무디어지지 않는 어떤 예리함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댓글목록

연두님의 댓글

연두

결코 무디어지지 않는 예리함을 품고 있는 서성임!
시간이 안 맞아서 함께 못하는 게 참 아쉽네요.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써놓고 보니 문득 말을 보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성임'이란 루쉰의 말을 빌리면 '방황彷徨'이라 할 수 있겠어요.
<외침>에 이은 소설집의 제목이 방황입니다.

늘 뚜렷한 상대와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그였지만,
자기 존재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회의를 지니고 있었지 않나 해요.

^^ 시간이 아쉽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요!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첫 시간 루쉰 정말 강렬했습니다. 풍문으로만 듣던 루쉰을 이제야 만났구나, 싶었어요.
언제 루쉰을 읽어도, 그때가 적절한 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옹달님의 말문이 터지는 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ㅎㅎ
쵝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댓글의 댓글

^^! '말문이 터지는 순간이라니.. ㅎㅎ'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조심조심 이야기해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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