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성의 역사 1> 1019 후기 +5
유택
/ 2017-10-24
/ 조회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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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 1019 후기
오래간만에 모인 즐거운 푸코 세미나였답니다. 며칠이 지나서 살짝 기억이 가물 하네요. 원래 세미나 끝나고 쏟아내듯이 바로 후기 써야 제 맛(본인의 빈병맛)인데 말이죠. 이번에 다같이 둘러앉아 나름 이름 붙이기를 푸코 세미나 <시즌1>에서는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을 다 읽은 거였고요, <시즌2>라고 이름 붙이고 시작한 이번 세미나는 푸코의 정식 저서들을 읽을 계획이랍니다. 여튼 멋지게 이름 붙여진 것 같아요. ㅎ <제1장 우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풍의 사람들>, <제2장 억압의 가설> 두 장에 대해서 토론했습니다. 페이지로 치면 1에서 61페이지까지.
성은 과연 억압되었는가
성(혹은 성생활)은 과연 억압 되어 있는가. 억압되어 있기에 우리는 성을 해방해야만 하는가. 푸코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성에 대해 시끄러울 정도로 너무 많은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하네요. 17세기초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그냥 자신의 성생활을 어느 정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보고요. 그 이후 빅토리아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성을 다른 방식으로, 성과학(성의학)적 관점으로, 또 사람들을 고백시키면서, 성이라는 매개를 통해 권력효과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권력은 왜 성을 통해 ‘그 효과’를 내야 했을 까요. 그것은 촘촘히 통치(통제)해야 할 ‘인구’에 스며들 수 있는 최고의 매개/수단, 그 어느 것보다도 미시권력 규율권력이 표도 안 나게 스며들 수 있는 이 성/성생활이라는 아주 자잘하고 일상적이며 그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훌륭한 중간 매개! 누구나 성생활 다 하니까! 안 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ㅋㅋ 전 그렇게 이해되네요. 권력은 더 이상 주권 권력이 아니기에 권력의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푸코는 권력을 ‘권력 효과’라고 보는 것 같아요. 국가를 모든 관리권력들의 절차들의 총체로 보듯이 말이죠. 참으로 손아귀에 잡힐 듯 말 듯 애매모호한 말들이에요.
근대 사회에 고유한 것은 근대 사회가 성을 어둠 속에 머물도록 운명 지었다는 점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성을 ‘그’ 비밀로 내세움으로써 언제나 성에 관해 말할 운명이었다는 점이다.(44)
권력과 담론은 함께 간다 그리고 지식의 의지(앎의 의지)
말들이 많아진다. 담론화 된다. 그 말인즉슨 주목된다 그래서 무슨 효과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라고 이해됩니다. 무엇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뭘까요. 앎에 대한 의지 지식에 대한 의지.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그 알고자 하는 그 ‘저의’가 뭘까요. 누군가 미리 계획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지식 그 자체가 권력효과를 낳는다고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동성애나 성적도착 조차도 명명되고 규정되어서 확립되어야 하는 것, 그래야 권력효과의 망속에 ‘인구’라는 통계치로 잡힐테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 요즘 시대의 동성애자는 동성연애자라고 불리기 싫어하는데요. 그 이유는 자신들이 성적주체로서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는 것이지요. 1800년대말 독일 성과학자 하르슈펠트가 동성애자 라는 인구집단을 그때서야 비로소 학문적으로 규정했는데, 푸코식으로 생각해보자면.. 사실 동성연애자라고 불리는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질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에서도 동성애자는 없었고 동성애라는 성적 양태만 존재했다고 하고요. 그런데 성과 권력이 맞물리면서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는 인구집단을 명명하고 발명해야 했기에 ‘동성애자’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고 푸코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60년대말의 성해방 담론도 사실 그네들은 성해방을 주창하면서 자유적이고 전복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겠지만, 사실 성억압 가설의 또다른 이면일 뿐이듯이 말이죠. 성억압 가설의 구조속에서 태어난 성해방 담론! 이럴때 보면 푸코식의 사유는 정말 제게 충격을 줍니다. 다 뒤집어 버리는 그 재주! 혀가 내 둘리네요. 어떻게 따라가야 할 지.
권력-지식-쾌락-담론
권력이 부정적이면 그것이 무슨 매력이겠냐며 푸코는 책에서 멋지게 반문합니다. 권력은 생산적이고 생식적이어야 한다. 권력은 긍정하고 쾌락까지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푸코의 권력/권력효과를 우리가 포착하기가 이렇게나 힘든가 봐요. 부정과 금기 처벌 이런 식으로 권력의 모습을 이해 하는건 좀 아니라고. 권력-지식-쾌락-담론. 긴가민가 좀 아리송 하지만 여튼 이 신기한 단어들은 푸코를 읽는 동안 무조건 ‘한 계열’로 같이 간다고 외워둘라고요.
그러므로 근대의 산업사회가 성에 대해 한층 더 억압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가설은 아마 폐기해야 할 것이다.(60)
노동자의 성, 생식에 복무하지 않는 성은 배제하고 억압했을 거라고 보는게 우리의 상식이었는데 여지없이 또 깨지네요. 오히려 규율권력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은 억압이 아니라, 더 다양하게 말해지고 규정되고 의학화되고 관리되고 실천되고 통제되어, 권력효과가 충분히 생산될 수 있는 어떤 매개, 어떤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라고 읽혔습니다. 성을 통한 권력 효과. 어린이의 자위를 들먹이며 이루어지는 부모들의 성 통제. 성도착자들은 명명하고 발명해냄으로써 비정상인의 창출. 그럼으로써 이루어지는 효과로써의 권력. 무슨 말..? ㅋㅋ ㅠ.ㅜ 말이 꼬여요 꼬여. 알듯 말듯. 뒤늦은 후기 이상입니다. *^^*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오 네츄럴 유택표 후기얌.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아니라 자기식대로 소화되어 나온 후기, 멋짐!
누군가, 뭔가를 문제삼을 때, '아 그게 문제구나!'라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문제삼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게 푸코식 질문인 것 같아요.
성도 마찬가지. 당시에도 성 문제를 끌고 들어와(담론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자, 혹은 집단이 누구였던가라고 질문을 돌려보면
'역시 성은 문제야!'라고 우루루 몰려가진 않았겠지요.
이런 식으로 담론의 장을 만들고, 그 담론이 상식처럼 통념처럼 자리잡아버리는 과정을 푸코가 잘 풀어주고 있어서 좋았어요.
우리에게 상식처럼(정상이라고 억압되어진) 통념처럼 잡힌 생각들은 한 번씩 그 밑바닥을 뒤집어버리는 질문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성의 역사> 앞으로도 흥미진진쓰입니당 ㅎㅎㅎ
삼월님의 댓글
삼월
뒤늦은 후기치고는 상세하고, 알차네요. 잘 읽었어요.
평소대로 두어 가지 정도만 지적질을 하고 싶은데요.
유택의 후기는 너무 완벽에 가까워서 땜질을 좀 해 주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달까, 아니면
지적인 논의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달까. 암튼 꼬투리를 몇 가지 끄집어내 봅니다. ㅎㅎ
1. 푸코는 1870년 베스트팔의 논문에서 동성애가 규정되면서 성립되었다고 말해요. (그런데 하르슈펠트는 누구? 알려줘요.)
그전에는 동성애가 아닌 남색이 있었을 뿐이죠. 남성이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이상행동 같은 것으로 본 것.
성관계의 어떤 형태를 말하는 것일 뿐 사랑의 형태나 동성애자라는 집단을 특정하지는 않고 있었죠.
2. 동성애자라는 규정이 생겨난 데에 권력을 가진 어떤 주체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세밀하게 대상을 규정하는 것은 지식의 의지이고, 통치는 대상을 파악하려 하고, 사람들은 성을 이야기하면서 쾌락을 느낍니다.
모든 것들의 의지가 뒤섞여 나선형의 원환운동을 하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손이 이 메커니즘을 만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의 성해방담론 역시 저항이 아니라 쾌락을 통해 작동하면서 이 메커니즘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아, 난 삼월의 해설이 더 놀랍네요. 고마워.
유택님의 댓글
유택
1. 하르쉬펠트가 아니라 히르쉬펠트 라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착각했더라고요. 맞아요 '베스트팔 논문'이 맞죠. 마그누스 히르쉬펠트는 독일 성과학자고 동성애자 인권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입니다. 나치 시대를 맞아 망명을 했고 프랑스에서 죽었어요. 그가 베를린에서 성의학(성과학) 클리닉을 열였을때, 어떤 젊은 군인이 찾아왔다네요. 동성애적 욕망으로 힘들다고. 근데 지금 업무 시간 끝났으니 내일 오라고 돌려보냈고. 그 다음날 그 군인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아 성해방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네요. 그도 동성애자였고. 조수가 애인이었다고. ㅎㅎㅎ (참 좋은 관계야)
2. 지금 <성의 역사2>를 읽고 있는데요. 그리스 시대의 남색, 즉 남성동성애에서 건져내는 푸코의 이야기는 이런거더라고요. 쾌락의 활용. 연애술. 양생술. 이런것들과 버무려져서, 결국 사랑의 대상(남자냐 여자냐)에 초점을 맞추는게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할것이냐 그 사랑의 기술의 문제. 그러고보면 그리스 시대의 남성동성애를 너무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한거더라고요 우리가. 그리스 시대에 남성동성애는 자연스럽고 허용되었다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초점이 맞지 않다는 것. 그건 너무나 현대적 해석이라는 것. 허용/비허용이 아니라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았느냐 그리고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문제, 그런것도 연계해서 생각해야 하기에 많이 다르더라고요.
3. 나선형의 원환 운동, 성을 고백하면서 사람들은 쾌락을 느낀다. 너무 좋은 지적! 책에서도 나왔었는데 후기 쓰면서 깜까미 다 까먹었었네 ㅎㅎㅎ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항상 생동감있는 후기 너무 좋아요 .. 댓글 달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쿄쿄쿄
권력은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자발적이라고 착각하게 해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힘이다.
하수가 아닌 진짜 지대로 교묘하네요 ....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제가 하수였어요 .. ㅠㅠ
P16 내가 제기하려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 가 아니라.......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푸코의 관점...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
전 이번 1장2장으로 그동안 푸코를 오해 했던 걸 벗은 느낌이였어요
(혼자 오해하고 혼자 풀고 .. 쿄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