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차이와 반복 14th 세미나 후기 +1
namu
/ 2017-10-25
/ 조회 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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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 14th 세미나 후기
들뢰즈는 어느 책에선가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작업이다”라고 했다는데, 지난 시간에는 엄청난 개념들의 홍수에 익사하는 줄 알았습니다. 연이어 몰아치는 개념의 쇄도에 마치 롤러코스트를 탄 기분이기도 했는데, 실상 그 기분은 속 빈 강정이었지요. 여직까지 알았던 개념들마저 얽히고섥히는 통에 거의 다 망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러운 건 세미나를 통하여 그나마 전에 배운 내용들을 어느 정도는 되살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많은 논의들이 있었으나 기억에 남은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있어서의 선별의 문제, 그리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에 관련된 여러 개념들(‘비공가능성’이니 ‘충족이유율’, ‘가능세계’ ‘예정조화설’ 등) 그리고 ‘나’의 균열과 ‘자아의 분열’ 등입니다. 여기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를 거칠게나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톤주의 전복이란?
들뢰즈가 말하는 플라톤주의의 전복은 여러 층위에서 말할 수 있지만 이데아론과 결부하여 짧게나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란, 한마디로 시뮬라크르들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연하자면 사본에 대한 원본의 우월성, 혹은 이미지에 대한 원형의 우월성을 부인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지요. 아울러 사본에 맞서서 허상(시뮬라크르)의 권리를 긍정한다고 말입니다.
우선 논의의 진행을 위해 시뮬라크르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지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형상(eidos)의 그림자/이미지/복사가 그리스어로 에이돌론(eidolon)인데, 에이돌론은 에이콘(eicon; 圖像icon/복제copy)과 환타스마타(phatasmata, 虛像 ) 둘로 나뉩니다. 에이콘은 형상을 모방하므로 원본을 참조하지만, 판타스마타는 형상을 거부하므로 아예 원본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사(eidolon)에도 우월한 것(eicon)과 열등한 것(phatasmata)이 있으며, 전자는 원상原象(원본/형상)과 내적으로 질적인 유사성(resemblance)의 관계가 있지만, 후자는 그런 관계가 (거의) 없고 단지 상사성(simultude)만이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환타스마타는 사본과 비교해볼 때 유사성이 배제된 이미지입니다. 이러한 판타스마타가 불어로 시뮬라르크이고 우리말로 虛像 혹은 幻像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럼, 들뢰즈가 지망자들과 경쟁자들에 대한 선별의 원리(이는 아라비아의 민담을 차용한 걸로 알려졌음.)로 해석한 플라톤주의를 살펴보지요. 플라톤에게分有한다는 것은 최선의 경우가 이차적인 것 속에서 소유함을 말하는데요. 그로부터 신플라톤주의자들의 三者論이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다시 말해, ⓵분유 불가자 ⓶ 분유되는 자 ⓷분유하는 자라는 삼각구도가 펼쳐지는데, 이는 ⓵근거 ⓶지망의 대상 ⓷경쟁자(또는 ⓵아버지 ⓶딸 ⓷구혼자)의 관계로 볼 수 있지요. ⓵은 일차적인 것 속에서 ⓶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1차적인 것 속에서의 소유자’이며, 그는 자신이 소유한 ⓶를 ⓷에게 분유하도록 넘겨줍니다. 이때 ⓷은 ⓵로부터 ⓶를 넘겨받아 ⓶를 복사한 사본을 주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⓷은 ‘이차적인 것 속에서의 소유자’가 됩니다. 예를 들어 正義로운 자(⓷)는 정의(⓵)로부터 그 정의 질(⓶)을 분유하도록 넘겨받아 그것을 복사한 사본을 주장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의 ‘사본’은 시뮬라크르(허상)와는 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가령 마릴린 먼로)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원본(모델인 먼로)을 참조하지 않은 채 어떤 사진(원본과의 질적 유사성을 조금 가졌다고 할 수 있다)을 대충 본떠서 색깔만 달리해서 복사해 놓은 것이잖아요. 여기에는 복사의 복사이므로 질적 유사성은 없고 단지 상사성(차이)만이 있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에이콘(eicon; 圖像icon/복제copy)과 시뮬라크르(판타스마타/허상)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이래서 소피스트는 어떤 근거도 없이 제각기 뭔가를 주장하는 켄타우로스, 사티로스, 괴물같은 것들이고, 다 죽여버려야 하는(몰아내야 하는) 족속들이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허상, 허상의 허상---비존재, 시뮬라크르들인 것이지요.
플라톤은 내재성의 장들에 초월성(transcendence/이데아, 근거)을 끌여들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왜 그는 기껏 신화에 기초한다는 근거를 끌어들여 무모한 동일자의 마왕, 폭군이 되었던 것일까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들뢰즈의 혜안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당시 고대 아테네는 아무나 아고라 광장에 나와 내가 최고의 정의로운 자다. 가장 훌륭한 의사다, 라는 둥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었잖아요. 이렇다보니 사회가 혼란한 거예요. 어떤 시험을 거쳐 정말 정의로운 자가 누구인지 선별을 할 필요가 생긴 거죠. 그래서 어떤 기준,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배후에는 폴리스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어떤 도덕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게 들뢰즈의 탁월한 견해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단순히 可知界(실재)와 感覺界(현상)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들뢰즈가 플라톤에게 아쉬운 점은 <소피스테스>의 말미에 드러나듯이 플라톤 본인이 허상에 대한 탐구 가운데, 허상이란 단순히 거짓된 사본이 아니라 오히려 사본과 모델의 개념 자체를 의문시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플라톤주의의 전복에 있어 최초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라는 말을 하지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시뮬라르크들(차이 그 자체)의 반란과 귀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이 세상은 역동적이면서 일의적인 세상이 된 것이지요.(희망사항) 아울러 들뢰즈의 기획은 이러한 차이와 반복을 바탕으로 영원회귀로 이어지는 대단원(?)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유가 없어서 다시 쳐다보지도 못하고 횡성수설이 되었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신 반장님과 회원님들, 년말 주제 발표에 위의 내용을 다시 보충하고 정리하여 번듯한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이동 중이라 본문은 아직 못 읽었어요.
마지막 남기신 말에 감동받아 손가락이 가만있질 못하네요 ㅎㅎ
누가 발표하실까 했는데, 나무님이 1번 타자이신거네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