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세미나] 화재경보 발제 (pp. 115-170)
최원
/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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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뢰비,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pp. 115-170 발제
발제자: 최원
테제 8번
벤야민은 두 역사관을 대결시킨다.
- 진보주의적 교의: 역사적 진보, 더 많은 민주주의․자유․평화로 향하는 사회의 진화는 규범이다. 파시즘을 진보의 규범에 하나의 예외로 취급.
-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의 관점에 위치하는 교의: 역사의 규범, 상례는 거꾸로 승리자들의 억압, 야만, 폭력이다. 파시즘을 계급 억압의 역사인 ‘영구적 예외상태’의 가장 최근의, 가장 난폭한 표현이라고 봄.
벤야민은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1922)에서 영향 받았는데, 슈미트는 주권과 예외상태를 동일시했다. 1940년에 제3제국의 본질에 대해 성찰할 때도 이런 진단이 벤야민에게 있었음이 틀림없다. 사태를 이렇게 볼 경우 파시즘은 승리자들의 연속 행렬, 반복된 야만의 최고, 최후의 얼굴로서 메두사의 머리이다. 그러나 뢰비에 따르면 이런 시각의 가장 큰 결점은 파시즘이 어떤 새로움을 갖는지를 부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총체적 관리’라고 부르고, 아렌트가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면은 그러나 벤야민 사후에 1941~45년에야 특징적으로 현시된다는 점에서 벤야민을 변호할 수 있다.
진보 이데올로기에 고취된 파시즘의 적들(사회민주주의, 공식적/스탈린적 공산주의 운동)은 파시즘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 몰이해가 파시즘 성공의 조건 중 하나가 되었다.
사민주의에서 칼 카우츠키는 1920년대에 쓴 글에서 파시즘이란 이탈리아 같은 반-농경국가에서나 가능할 뿐 독일 같이 산업화된 근대 국가에서는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 공산주의에서는 1933년에 거둔 히틀러의 승리가 일시적이라고 확신했다.
벤야민은 파시즘의 근대성, 파시즘이 현대산업/자본주의 사회와 맺고 있는 내밀한 관계를 완벽하게 간파했다. 파시즘은 근대의 산업-기술적 진보에 깊이 뿌리박은 현상이며 최종심에서 20세기에서만 가능했던 현상이다.
반파시즘 투쟁의 궁극 목적은 ‘진정한 예외상태’, 다시 말해 지배의 폐지,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유토피아적 ‘예외상태’는 권력자들의 개선 행렬을 중단하는 모든 반란과 봉기에 의해 미리 예시되고 그런 예외상태의 유희적인 전조는 카니발 같은 민중축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예외상태’에 대한 뢰비의 설명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급 없는 사회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란과 봉기라는 사건을 오히려 지시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카니발에 대해 쓴 것도 ‘카니발은 예외상태이다’이지 ‘카니발은 예외상태에 대한 전조다’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벤야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외상태에 대한 인식도 슈미트를 완전히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보긴 어려움.)
테제 9번
이 구절에는 예언적 차원이 있다. 이 구절의 비극적 경고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예고하는 것 같다. 인류사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파국을, “하늘까지” 치솟은 더미를 마무리 지으러 온 가장 끔찍한 두 가지 잔해를 말이다. (그러나 잔해를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와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당한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 테제는 문서 전체를 “마치 하나의 초점에” 요약한다는 점에서 알레고리라고 볼 수 있다. 이 테제는 벤야민이 젊은 시절 취득한 클레의 그림 한 점에 대한 논평으로 제시된다. 이 구절을 구축할 때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영감을 받은 듯 보인다. 알레고리의 주요 구조는 각각의 이미지들을 관통하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신학과 정치 사이의 보들레르적 의미에서 조응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뢰비의 설명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낙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인데, 뢰비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논의가 벤야민을 베낀 것이라고 폭로하려고 하는 의도가 앞선 나머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논의가 벤야민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벤야민에게 ‘낙원에서 불어오는 폭풍’은 진보이다. 따라서 낙원은 진보의 상관물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1944)의 구절은 정반대이다. “화염검으로써 인간을 낙원으로부터 기술적인 진보의 궤도로 몰아낸 천사는 그 자체가 이런 진보의 상징이다.” 여기서 낙원은 좋은 것이며 천사는 인간을 낙원에서 쫓아내서 기술적 진보의 궤도로 들어서게 만든 자로 그려진다(따라서 사실 아/호가 벤야민을 베꼈다고 보긴 어렵다, 그냥 에덴동산에 대한 비유를 활용한 것으로 보임). 이렇게 뢰비가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등치시키는 오류를 저지르는 이유는 그가 벤야민의 ‘낙원’을 유토피아 및 원시적인 무계급사회로 바라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이 테제에서 말하는 낙원은 진보가 도달해야할 목적지로서의 낙원을 의미한다. 벤야민은 그런 낙원에서 불어오는 진보의 폭풍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뢰비는 낙원을 원시적 무계급 사회, 역사의 벽두에 존재한 공산사회라고 보면서 그 대척점에 지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벤야민이 <중앙공원: 보들레르에 대한 단장>에서 한 말을 근거로 제시한다. “진보의 개념을 파국의 이념에 기초한 것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물이 ‘이렇게 계속’ 진행된다는 것 그것이 파국이다...스트린드베리의 생각: 지옥은 임박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승의 삶이다.” 벤야민은 <파사젠베르크>에서 지옥의 본질은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희랍신화의 시쉬포스와 탄탈로스에게서 잘 나타난다.
역사의 천사는 머물고 싶어하고, 잔해 더미 아래 깔린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 하건만 폭풍은 그 천사를 과거의 반복 쪽으로, 새로운 파국으로, 새로운 헤카톰베(대학살)로 몰아간다.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지닌 비극적 시선과 프리드리히 실러가 진보주의적 계몽의 경전 중 한 곳에서 묘사한 올릠포스적, 제우스적 시선과 대비해 볼 필요가 있다. 제우스는 인간의 전쟁의 참혹한 작업들, 혼란스러운 유희, 무질서를 멀리로부터 바라보면서 그 무질서하게 배회하는 자유가 필연성의 끈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잔해들은 미학적 관조의 대상이 아니다. 그 잔해들은 역사의 파국, 살육, 다른 ‘참혹한 작업들’의 비통한 이미지이다. 벤야민은 이 용어를 택함으로써 십중팔구 헤겔의 역사철학과 벌이는 암묵적 대결을 속행했다. 역사상의 모든 ‘잔해’와 모든 파렴치를 이성이 승리하기 위한 도적의 필수 단계로서, 인류가 자유의 의식을 향해 가는 진보의 불가피한 계기로서 정당화하던 이 도저한 합리주의적 변신론과의 대결을 말이다. 헤겔에 따르면 처음부터 역사는 ‘개인들의 이름 없는 눈물’로 가득 찬 드넓은 잔해의 들판이자, ‘민중의 행복과 ... 개인들의 덕이 제물로 바쳐진’ 제단이다. 헤겔은 이 잔해에 대해 감상적 성찰을 넘어서서 핵심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잔해들은 ‘보편사의 진정한 결과’, 즉 보편 정신의 실현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벤야민은 이런 역사관을 뒤엎는다. 벤야민은 진보가 낳은 잔해를 고통 깃든 시선, 도덕적 분개가 깃든 시선으로 본다. 뢰비에 따르면, 오히려 이 잔해들은 역사의 대량살육과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들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잔해는 진보 속에서 희생되는 자들, 억압되고 삭제되는 자들 일반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천사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이들, 곧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다시 결합함으로써 투쟁하고자 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진보의 폭풍을 어떻게 멈춰야 할까? 그것은 이중적이다. 종교적이고 세속적이다. 신학에서 그것은 메시아의 과제이고 그 세속적 등가물은 혁명이다. 벤야민은 준비노트에서 진보주의적 좌파와 자신의 혁명관을 차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맑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인류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행위일 것이다.”
숄렘에 따르면 벤야민의 정식은 카발라의 티쿤 교의를 암묵적으로 참조한다. 이는 “그릇의 깨어짐”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 신의 조화를 메시아가 본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을 뜻한다. 뢰비는 그것을 계급 없는 사회라고 보며, 거기에 진정한 메시아적 얼굴을 다시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의 공산주의는 원시공산주의로의 회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숄렘은 벤야민의 낙원이 “인류의 기원이자 원과거인 동시에 인류가 구원받는 미래의 유토피아적 이미지”라고 썼을 때 옳았지만, “변증법적이라기보다는 순환적인” 역사과정개념이라고 봤을 때 틀렸다고 뢰비는 주장한다. 뢰비에 따르면, 미래의 계급 없는 사회에는 그 자체로 변증법적 종합으로서 인류의 과거 전체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는 뢰비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헤겔의 지양 개념과 너무 똑 같지 않은가?)
테제 10번
이 테제에서 벤야민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라는 트라우마적 사건을 암묵적으로 참조한다. 뢰비는 첫 문장이 역설적이라고 말하면서 ‘명상을 위해 행위를 포기하라는 말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뢰비는 벤야민이 그런 식의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벤야민을 옹호하지만, 여전히 벤야민의 수도원 비유는 너무 이상하고 오해받기 쉽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뢰비는 벤야민이 염두에 두고 있는 수도원이 프란치스코파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따라서 여기서 벤야민이 말하는 것이 무위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벤야민이 말하는 “파시즘의 반대자들이 희망을 걸었던 정치가들”이라는 표현은 스탈린식 공산주의자들을 지칭하거나 더 정확히는 소비에트공산당과 달리 “무릎을 꿇”었던 독일공산당을 지시한다. 그러나 벤야민이 이런 스탈린식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공산주의나 맑스주의 자체와 단절한다는 뜻은 아니며 소비에트적 현실과 공산주의 이념사이의 결정적 분열을 인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벤야민은 하인리히 블뤼허(아렌트 남편), 빌리 뮌첸베르크, 마네 슈페르버처럼 파리에 망명한 여러 공산당 반대파들과 함께 조약을 규탄했다.
이 테제에 나오는 das politische Weltkind 라는 표현은 번역이 어려운데, 뢰비는 “세기의 아이들”이라는 벤야민 자신의 번역이 정확한 의미를 제공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곧 20세기의 세대. 벤야민 자신의 세대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벤야민은 정치가들이 쳐놓은 그물에서 세기의 아이를 해방시킬 계획을 짜는데, 이 그물은 벤야민 자신의 프랑스어 번역본에서는 ‘약속’이라고 이야기된다. 착각에 빠진 좌파의 약속은 마비 효과를 낳았고, 사람들을 무력화해 행동에 나서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 착각은 세 형태로 표현. 진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 대중의 지지가 미리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 통제 불가능한 기구(특히 공산당)에의 종속. 이 테제에서 벤야민은 좌파일반, 그리고 암묵적으로 공산당들을 겨냥한다. 다른 테제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겨냥한다. 1930년대에 벤야민은 트로츠키의 글들에 관심을 표명했고, <파사젠베르크>에선 칼 코르슈에 준거했고, 공산당반대파의 블뤼허에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등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벤야민은 진보 이데올로기를 발본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공산당반대파 등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나간다. 이 관점에서 보면, 벤야민의 위치는 전례없고 독보적이다. 벤야민은 시대를 앞서갔으며 이때문에 그의 주장이 반향을 얻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유일한 예외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한 벤야민 친구들이 41-48년에 쓴 글들이지만 그들은 계급투쟁에 대한 벤야민의 몰입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 호르크하이머의 <권위주의적 국가>(1942)라는 예외적인 텍스트에서 벤야민과의 접근이 나타났으며, 거기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사회의 급진적 변화는 ‘진보의 가속이 아니라 진보 바깥으로의 도약’이라고 말했다.
테제 11번
테제 11번에서는 사민주의의 타협주의를 공격한다. 프로테스탄트적 노동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의 내밀한 연결(막스 베버)을 벤야민은 잘 알았다. “모든 부를 산출하는 노동”에 대해 사민주의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체계에서 노동자는 근대 노예제의 조건으로 전락하고 자신이 산출한 부를 재산가에게 탈취당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벤야민은 노동과 산업에 대한 숭배, 기술적 진보에 대한 숭배, 유럽 사민주의의 실증주의, 다윈주의, 진화주의를 비판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리가 이런 사민주의적 타협주의의 전형적 예이다. 페리는 사회주의는 인간진화의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그 결과 불가피하고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이라고 말함. 카우츠키, 플레하노프, 엥겔스, 디츠겐에게서 이런 진화주의적 사고가 모두 발견된다.
테제11번은 기술발전의 흐름을 타고 헤엄치겠다는 착각을 겨냥하는데, 이 낙관주의적 숙명론은 노동자 운동을 수동성과 관망주의로 끌고 간다. 1933년에 일어난 패주의 이유 가운데 하나.
벤야민을 비판하며 하버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진보를 생산력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지배의 영역에서도 고려하는 역사적 유물론에 수도사의 두건 같은 반-진화주의적 역사개념을 씌울 수는 없다.” 뢰비는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1) 20세기가 19세기보다 진보했는가? 2) 역사 유물론은 반드시 진화주의적 교의인가? 3) 역사적 진화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반드시 과거를 향한 반계몽주의적 퇴보(수도사의 두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4) 역사 유물론의 쟁점은 지배 형태의 개선으로서의 진보인가 아니면 지배의 폐지인가? 벤야민에게 지배Herrschaft 개념은 조작과 폭력을 매번 특정하게 결합해 권력을 권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며 억압Unterdruckung과 마찬가지다. 벤야민은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테제 11번의 끝부분은 벤야민이 20세기 말의 생태주의적 관심사를 선취한 것을 보여준다. 벤야민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진보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데, 독일의 사회실증주의자인 디츠겐이 그 대표자이다. 디츠겐은 자연을 산업 원료, 무상의 상품, 착취의 대상으로 환원했다. 이에 맞서 벤야민은 1948년 혁명기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와 특히 샤를 푸리에의 환상적 공상들에 호소한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여기에 벤야민은 속류 맑스주의를 대립시키면서, 벤야민은 아이들의 놀이에 영감을 받은 조화로운 인간들의 정념적 노동을 해방된 활동의 유토피아적 모델로 보았다. 놀이에 의해 생기가 불어 넣어진 노동은 가치 창출이 아니라 자연의 개선을 지향한다. <파사젠베르크>에서 푸리에는 바호펜이라는 이름과 연결되는데, 바호펜은 모계사회에서 이런 화해의 선조격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 화해의 형태는 자연을 풍요로운 어머니로 숭배하는 것으로 자연 착취 개념과 정반대이다.
테제 12번
니체에 따르면 역사는 고고학적 호기심의 문제여선 안 되고 “삶과 행위에 도움이 될 때만 유용”하다. 역사적 인식의 주체를 논하는 첫 문장에서 룩셈부르크의 사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계급의식이 노동자 계급의 투쟁적 실천, 능동적 경험에서 기인한다는 생각. 카우츠키와 레닌의 전위주의와 대립된 생각. 벤야민이 룩셈부르크를 읽었다는 증거는 없고 인용한 적도 전혀 없지만 루카치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뢰비는 루카치가 카우츠키와 힐퍼딩의 ‘중립적 과학적 인식으로서의 역사 유물론’이라는 인식에 반대했던 것, 맑스주의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당파성 문제로 바라본 것을 논하면서, 벤야민이 루카치의 구절을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취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테제 12번의 맑스는 루카치로 바꿔 읽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까지 말한다. (거의 루카치에 대한 팬심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뢰비의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다. 텍스트에 루카치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고 .... 게다가 루카치는 헤겔주의자이고 목적론의 대표적인 주자인데, 그에 대한 벤야민의 관계는 이렇게 단순할 수는 없다.)
벤야민은 패배한 선조들을 강조하고 있는데, 종교에서는 순교자 숭배, 노동자 운동에서는 ‘시카고의 순교자들’이나 ‘룩셈부르크와 리프트크네히트’와 같은 순교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런 예들이 있다.
패배자들에 대한 집단 기억은 영웅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국가의 여러 만신전과 구별된다. 패배자들은 임의의 권력을 위해 도구화되지 않는 한에서만 전복적 영향력을 갖는다. 벤야민에게 희생자들에 대한 회억은 멜랑콜리한 탄식이나 신비주의적 명상이 아니라 테제4번에서 나온 과거와 현재의 변증법이며,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서 파시즘에 맞선 힘을 길어올리는 전투이다.
벤야민은 증오와 복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니체의 원한감정 비판과 쟁점을 형성한다. 벤야민은 맑스처럼 개인들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체계에 대한 증오를 권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예, 농노, 농민, 장인의 패배한 전투들의 계승자로서 스스로를 지각해야 한다.
테제12번의 논변의 역사적 증인 둘. 1) 로마제국에 맞서 봉기한 노예들을 계승하는 스파르트쿠스. 2) 오귀스트 블랑키(진보에의 믿음을 전혀 전제로 하지 않는, 현재의 불의만을 제거하려는 결심만을 전제로 하는).
테제 13번
여기서 뢰비는 벤야민이 발전시키지 않지만 대안적 역사관에 바탕을 둔 비판 세 가지를 검토한다.
1/ 지식과 능력의 진보와 인류 자체의 진보를 구별해야 한다. 후자는 과학 기술 진보로 환원될 수 없는 도덕, 사회, 정치적 차원을 내표한다.
2/ 인류 자체의 진보를 바란다면 점진적으로 무한히 완벽해지는 과정을 신뢰할 게 아니라 급진적 단절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3/ 자동적이거나 연속적인 진보는 없다. 유일한 연속성은 지배의 연속성이며, 자유의 유일한 순간은 중단, 불연속, 억압받는 자들의 봉기이다.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성의 교의를 공격하면서 벤야민은 대안으로 질적이고, 이질적이며, 충만된 시간을 제안한다.
테제 14번
역사철학테제를 받고 아도르노는 테제 14번의 시간 개념을 파울 틸리히의 카이로스와 비교했다. 그는 크로노스(형식적 시간)와 카이로스(충만된 역사적 시간)를 대립시키곤 했다.
유행과 혁명을 비교한 부분에 대한 뢰비의 설명은 좀 이해가 안 된다. 뢰비는 이렇게 말한다. “겉보기에 유행과 혁명의 방식은 동일하다. 프랑스 혁명은 고대 로마를 인용하지만, 18세기 말의 유행은 고대 희랍을 인용한다. 유행의 시간성은 지옥의 시간성이다. .... 따라서 유행은 여하한 급진적 변화에 대한 지배계급의 혐오를 가리기 위해 지배 계급을 위장하는 구실을 한다. 반대로 혁명은 영원회귀의 중단이요 가장 심원한 변화의 도래이다.” 운운. 그러나 벤야민의 텍스트에서 유행과 혁명은 겉보기에만 동일하고 실제로는 반대인 것이 아니다.
어쨌든 과거에는 현재 또는 현재시간Jetztzeit이 포함되어 있다. 테제 14번의 이본에서 현재시간은 폭발물로 정의된다. 역사적 시간에 대한 개념에 힘입어 역사의 연속체를 폭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베스피에르가 로마 공화정을 상징으로 끌어들이는 것.
맑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로마에 대한 자코뱅들의 착각을 격하게 비판했는데, 한편으로 이는 착각이 맞다(로마는 노예제와 세습 귀족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므로)고 볼 수 있지만,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과거에서가 아니라 미래에서만 자신의 시를 끌어낸다고 말할 때 틀렸다. 오히려 현재시간으로 충전된 과거의 폭발적 순간을 전유함으로써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 아래에서 펼쳐질 변증법적 도약을 사고한 벤야민이 맞다. 이 전통은 불연속적이고 예외적이고 폭발적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